# 나만 아는 주인공들 373화
작지만 사람들의 생기가 가득한 도시 린델.
그곳에 들어온 유현은 강혜림을 데리고 조심히 이동했다. 혹여라도 누군가와 부딪쳐서 사고라도 날 경우에 주위가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혼자 있을 경우에는 과격하게 움직일 수야 있겠지만, 지금은 강혜림과 함께 움직이는 몸이다.
강혜림이 멀쩡했으면 모를까, 지금의 그녀는 기억도 상식도 온전치 않은 어린아이 수준이다. 한순간이라도 시선을 뗐다가 그녀를 다시 잃게 된다면, 유현은 자신이 진짜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선이 느껴지는군.’
도시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를 따라오는 시선이 몇 있었다. 시선에 적의는 담기지 않았지만, 이쪽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노골적으로 탐색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연합에서 나온 정보원이겠지. 내가 책더미 군주라는 소식을 들었으니 소문의 군주가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건가?’
유현은 저들이 이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생각해 봤다.
만약, 그가 저 사람들의 입장이었다면 일단 소문의 군주를 경계하면서 자신의 윗선에 보고를 올릴 것이다. 직접 손을 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윗선에서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못해도 도시를 책임질 정도의 인물의 귀에 들어갔겠지. 그렇다는 것은 이곳의 군주도 내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고.’
듣자 하니 린델의 군주는 가장 작은 군주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군주인데 가장 작다고 불릴 정도라면 그 실력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소리다.
초월자들 사이에서야 군주가 상당히 크게 다가오지, 지금 유현의 수준에서는 린델의 군주는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린델의 군주가 지금 유현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유현은 이미 그러리라 확신을 가진 상태였다.
‘어차피 나도 이곳에서 사고를 칠 생각은 없으니 며칠 머무르면서 조용히 지내야겠어.’
말을 하려고 해도 저쪽에서 경계를 할 테니 일단은 행동으로 보여 줄 심산이었다.
가만히 있는다면 저들도 굳이 유현을 건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유현의 목적은 연합에 무슨 뜻을 전하는 것도 아닌, 그저 자신의 옛 동료를 찾으려는 것뿐이니까.
만약 연합의 영토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러 가기는 하겠지만, 아마 이후에는 계속 혼성계를 떠돌 것 같았다.
‘모두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단지 선행의 목적에 지나지 않아.’
그 이후에 무엇을 할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았다.
혼성계 어딘가에 뿌려져 있을 파편을 모아야 하고, 또 이곳 어딘가에 살아 있을 진청운을 찾아야 했다.
어디 그뿐일까.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을 테니 걱정이 많을 오엘로와도 다시 만나야 하고, 그 외에도 천체주식회사의 지인들과도 해후를 끝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아 씨가 내게 말했던 진짜 종말.’
권지아는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본 것은 이 우주 자체의 끝. 우주의 별들이 떨어지고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버리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의 끝이라고 말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파편과 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무언가 알 것 같은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하는데.’
가장 먼저 의심이 가는 것은 자신을 5년 뒤의 미래로 보낸 석가모니였지만, 지금 그는 존재 자체가 소멸해서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다.
그렇다면 석가모니가 소속된 극락정토는 어떨까? 과연, 그들이 유현을 반갑게 맞이해 줄까?
‘아니, 아직 하나가 더 있어.’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
얼어붙은 행성의 지배자인 사탄.
그는 석가모니가 하계에 개입을 했을 때 그 또한 지구의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폭발에 휩쓸린 백련을 회수한 것도 사탄이었고, 그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백련을 돌려준 것도 사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에게 라플라스의 힘을 선물로 준 것도, 파편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사탄이다.
그는 대체 무엇을, 또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자신에게 대체 뭘 바라고 있는 걸까.
사탄이 기거하는 영토에도 한 번은 방문할 필요가 있었다.
꾸욱.
그때 유현의 소매를 당기는 강혜림의 힘이 강해졌다.
“혜림 씨? 무슨 일인가요?”
“…….”
강혜림은 대답하지 않고 노점상이 진열된 시장을 가리켰다. 곳곳에서 맛있는 음식의 향기가 거리를 가득 채우며 행인들의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강혜림의 눈동자에는 그 미식을 향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유현은 고작 그런 거로 부른 거냐고 묻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밥이라도 먹으러 가죠.”
[어휴. 아주 아빠가 다 됐네. 다 됐어.]
백련은 그런 유현의 모습을 보며 장난스럽게 놀렸다. 유현도 그 말에 딱히 반박은 하지 못했다. 확실히 지금 자신의 행동을 보면 강혜림의 아빠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가시죠. 그렇게 말하며 유현은 강혜림의 손을 잡아끌려고 했다.
그 순간, 유현의 시야에 강혜림의 모습이 다르게 비춰 보였다.
-대체, 왜!
눈물과 피를 흘리며 이쪽을 향해 부르짖던 그녀의 모습이, 그런 그녀를 자신의 검으로 무자비하게 베었던 그때의 기억이 뇌리를 강타했다.
순간 시야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전신의 근육이 수축했다.
유현이 갑자기 덜컥 멈춰 서자 강혜림이 의아해하며 유현을 올려다봤다.
유현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시선을 어디에 둘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유현? 야! 유현! 정신 차려!]
무언가 이상함을 인지한 백련이 유현의 뇌리에 찌르르 울리도록 소리 질렀다.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유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유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너…… 괜찮아?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고,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지?]
‘어, 괜찮아. 그냥……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유현은 그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강혜림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강혜림은 갑자기 유현이 어딘가 아파 보이면서 공황에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손을 꼬옥 잡아 주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는지, 이내 배시시 웃으며 유현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유현은 그런 강혜림의 모습을 보며 입으로는 웃었지만, 눈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유현은 자신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소중한 사람을 이 손으로 죽였다는 경험은 이미 전생에서도 한 적이 있었다.
횟수로만 따지면 소중한 동료를 벤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게다가 강혜림은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쪽을 향해 울부짖으며 왜 자신을 두고 떠났냐고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이, 검을 겨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자신의 나약함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내가 죽였다. 이 손으로 그녀를 죽였다.
지금 살아 있는 그녀가, 과연 자신이 기억하던 강혜림이 맞는 걸까? 이미 진짜 그녀는 죽어서 없고, 자신의 기억과 정보로만 이루어진 가짜가 그녀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내미는 순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현을 괴롭혔다.
유현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고통과 함께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자 정신이 확 들었다. 찢어진 입술은 순식간에 재생됐다.
‘나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많은 것을 고려하고 생각하는 그의 버릇이 독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유현은 비겁하게 답을 내리는 걸 회피했다.
지금은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자.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유현은 강혜림과 노점상을 돌아다녔다.
“어서옵쇼! 뭘 드릴까요?”
강혜림은 눈을 빛내며 먹고 싶은 요리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켰다. 그 숫자가 일반적인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탓에 주인아저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 강혜림은 초월자의 육체, 그러니까 물질계에서 벗어나 혼성계에 걸맞은 몸을 지녔기에 굳이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유현이 자주 뭘 먹는 걸 보고 거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함께 밥을 먹다 보니, 지금 강혜림은 자신의 미각을 즐겁게 해 줄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기게 됐다.
“총 얼마죠?”
“아, 남자 친구분이신가? 다 해서 4,300TP입니다.”
혼성계의 모든 화폐는 전부 텍스트로 대체한다. 유현은 텔러로 활동하면서 이미 막대한 자금을 모아 놨기 때문에 굳이 아쉬워하거나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야외 테이블에 순식간에 강혜림이 주문한 음식들이 가득 깔렸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햐!”
강혜림은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올 기세였다. 유현은 곧바로 그녀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 줬다. 혹시라도 흘리면서 먹을 새라 그녀에게 곧바로 앞치마까지 세팅해줬다.
곧바로 식사가 시작됐다. 아니, 그걸 식사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를 정도로 강혜림은 온갖 음식을 다 집어먹었다. 유현은 옆에서 그런 그녀를 보면서 가끔 고기 몇 점 집어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유현의 기감에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잡혔다.
시장의 입구 너머에 한 어린 소녀가 기사들을 대동하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 군주님이다.”
“아기 군주님이 여기에 어쩐 일이시지?”
‘군주라고?’
상인들이 아기니 작은 아가씨니 어쩌니 부르는 것보다도 군주라는 말이 걸렸다.
유현은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등에 빛나는 날개와 백발을 지닌 자그마한 꼬마 아이였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책은 찬란한 무지갯빛이었다.
저렇게 보여도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소리. 괜히 군주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리델의 군주 윈다린은 곧바로 유현의 앞에 멈춰 섰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지면에 10cm 정도 떠 있었다.
“당신이 책더미 군주, 맞지?”
“그러는 그쪽은?”
“윈다린. 이곳 린델의 군주야.”
“가장 작은 군주로군.”
그 말에 윈다린의 눈매가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필사적인 인내심으로 분노를 억눌렀다. 상대가 정말 소문의 책더미 군주라면,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
“옆에는…… 흑뢰군주 강혜림이 맞군.”
윈다린은 여전히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강혜림을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아는 흑뢰군주와 모습은 같은데, 하는 행동은 정 딴판이었던 것이다.
뭐, 어쩌면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이미지가 실제와 많이 달랐던 것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진짜 흑뢰군주라는 것이었다.
“둘씩이나 되는 군주가, 우리 연합의 영토에는 무슨 일로 왔는지 알 수 있을까?”
유현은 슬쩍 윈다린과 그 뒤에 도열한 기사들을 응시했다. 일단 말로는 정중히 묻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이쪽을 그렇게 달가워하고 있지 않았다.
그럴 것이, 책더미 군주는 그렇다 쳐도 강혜림은 흑뢰군주라는 악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바뀌었다고 해도 쉽게 믿을 수 없으며, 심지어 유현도 그렇게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대체 몇이나 되는 자들을 죽였는가.
자신이 모욕받았다고 생각한 성군이나 다른 조직이 유현을 적대시해서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가 지금 머물고 있는 군주의 영토에서 분쟁이 벌어지게 된다.
“사람을 찾고 있어.”
그 사실을 깨닫고 있기에 유현은 순순히 그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애당초 이곳에 사람을 찾으러 온 거지 싸우러 올 생각이 없었다.
“사람, 누구?”
“말하면 알려 줄 수 있나?”
“그쪽이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이미 이쪽이 사고를 칠 거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군.
“의심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이쪽은 조용히 지낼 생각이야.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것도 진심이고. 연합의 정보력이 좋다고 해서, 사라진 옛 동료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거든.”
“사라진 옛 동료라고? 그보다 정보를 찾으려면 번지수가 잘못됐어. 린델은 자유무역 도시고, 가장 작은 도시라서 정보상이 없거든.”
“그러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할 수 있을 거야. 물론, 그 신분으로 쉽게 출입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가. 그러면 일단 이곳에 더 머물 필요는 없는 거겠군.”
그 말에 윈다린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혹시라도 유현이 여기서 돌변해서 자신을 공격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머릿속에 몇 번이고 걱정하던 참이었으니까.
“밥만 먹고 바로 떠나도록 하겠어.”
“응?”
“말했잖아. 사고 칠 생각 없다고. 이쪽은 그저 조용히 움직이면서 사람을 찾으면 그걸로 족해.”
“어, 어…… 정말?”
긴장이 풀리자 윈다린의 말투가 본래 자신의 것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그녀는 유현의 대답이 의외이기도 하면서 기뻤다.
윈다린은 곧바로 표정을 고쳤다.
책더미 군주야 뭐 그렇다 쳐도, 그 옆에 있는 흑뢰군주는 어떨지 모르지 않는가.
“그녀는…….”
“걱정하지 마. 지금 그녀는 예전 흑뢰군주가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윈다린의 뒤에 도열해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불쑥 물었다.
그러니까 흑뢰군주가 얌전히 지낸다는 그 발언을 책임질 수 있냐고 돌려서 말한 셈이다.
유현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발언을 한 기사를 향했다.
“내가, 그렇다고, 말했잖아.”
“으윽.”
유현과 눈이 마주친 기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동료들과 부딪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기사들과 윈다린 또한 피부에 오한이 도는 것을 느꼈다.
유현은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군. 안 그래도 요즘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서,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거 같아.”
“아, 아니. 뭐, 신경이 날카로우면 그럴 수도 있지.”
윈다린은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유현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때 그녀의 부관이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군주님.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면 집행자를 부를 필요 없던 거 아닙니까?”
“아니,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런데 집행자는 지금 어디래? 얼마 뒤에 도착한다고 말했어?”
“어, 그것이…….”
“왜 뜸 들이고 그래. 빨리 말 해봐.”
“……3분 뒤 도착이라고 합니다.”
“……뭐?”
둘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강혜림의 앞에 놓인 요리는 전부 사라져 있었고, 빈 접시만 대신 황량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의 군주가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고 식사도 끝났으니, 차라리 더 안쪽 도시로 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우린 이만 가지.”
“어, 어.”
윈다린은 유현을 불러 세워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이대로 그를 보내자니 이미 집행자가 온다고 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붙잡기에는 여전히 그의 존재가 그녀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 유현은 강혜림을 데리고 도시의 바깥으로 향했다.
강혜림은 더 맛난 음식을 먹고 싶은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봤지만,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도시의 커다란 문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강혜림과 유현이 동시에 먼 하늘 너머를 바라봤다.
[유현아. 왜?]
‘뭔가, 온다.’
[뭐?]
저 하늘 너머에 자그마한 점 하나가 보였다.
그것을 봤다고 인지하는 순간, 점은 삽시간에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것은 크기만 5m가 넘는 거대한 매였다. 그리고 그런 매 위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남자가 매의 위에서 뛰어내려 지면에 가볍게 착지했다.
“이곳에 책더미 군주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너인가?”
“너는…….”
남자를 알아본 유현은 눈을 부릅떴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어찌 모를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전생에서 지긋지긋하게 본 무심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동자도, 한 자루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기세도.
그는, 그 녀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최도윤.”
전생의 악연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과의 만남은.
그렇게 갑자기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