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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71화 (37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71화

“대체, 왜……?”

중계에 속한 텔러가 상계의 성령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있다. 그런 예시가 극히 적을 뿐이지, 실제로 그것을 달성한 자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텔러들이 이야기의 지평선에 도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지평선에서 성령이 되는 것을 택한다.

그게 상식이고 당연한 것이었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거부하는 자는 없으니까.

하지만 유현은 그 상황에서 별의 좌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인간이 되었다.

중계의 존재가 상계에 가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남지 않았으며, 스스로 하계의 존재로 영락한 것이다.

‘물론 유현 씨의 실력을 생각하면 인간이어도 어지간한 성령보다 더 강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과 성령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인간의 육신은 물질계에 구애받는다. 그들이 아무리 완전히 혼성계로 넘어왔다 하더라도 다치면 피를 흘리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눈을 붙여야 한다.

욕구에 휘둘리고, 의식주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혼성계에서 거의 장애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그렇기에 물질계에서 혼성계로 넘어온 자들은 대부분 강해지고 격을 올리고자 노력한다.

제대로 혼성계에 녹아들게만 되면 다쳐도 텍스트만 있으면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으며,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잠을 자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높아지고, 감각은 극대화된다.

인간세계의 이야기로 치자면 성령이라는 존재는 종의 극한까지 도달한 진화의 최종 형태나 마찬가지.

그런데, 유현은 그런 기회를 걷어찬 것도 모자라 스스로 저 아래로 내려갔다.

성령이 된 가레스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런 짓을, 하신 거죠?”

“그게 뭐.”

“당신은, 별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원래도 강했는데, 거기에 성령까지 된다면 필시 1세대 성령들과 비슷한 힘을 지녔겠죠. 4세대라고 비하를 받는 다른 자들과 다르게, 제대로 어나더 세대라고 불릴 수 있었어요.”

유현이 성령의 자리에 올라가면 어떻게 됐을지, 가레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 남자라면, 성령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1세대 성령 중에서도 각 대성군의 지도자급이라 할 수 있는 최상위의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쩌면 자신만의 새로운 대성군을 만들 수도 있었다. 어지간한 성령들은 그의 눈치를 볼 것이고,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고, 어느 땅에서든 신으로서 군림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능한 자리가 있는데, 유현은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성령이 돼서, 그게 뭐.”

“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데. 성령이 된다고? 그래서 대단한 힘을 지니면, 그게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그, 그렇다 해도 인간이 되는 것은 이상하잖아요.”

가레스도 한때 인간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절의 인간은 지금의 인간보다 훨씬 더 월등했다. 지금의 인간들은 신비의 힘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만, 가레스가 살던 시절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 정도의 힘을 다룰 수 있었다.

사실상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일 뿐이지 그들은 전혀 다른 종이다.

인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다. 그들은 나약하고, 뭉치지 않으면 힘을 낼 수도 없다.

“인간은 세계에 제대로 된 공헌을 할 수 없어요. 물론 그러지 않은 자들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 인간은…… 물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요.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재능이 모자랄 수도 있죠. 그런 자들은 더 나은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없어요.”

혼성계에서 이야기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세상의 모든 것이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근원이 이루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책이다.

책에 새겨진 이야기란 곧 우주의 역사이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뜻한다.

그런 이야기에 다양한 존재들이 저마다의 발자취를 남긴다.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있는 반면, 단 하나의 글자조차 따내지 못하고 잊혀지는 자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대부분 인간이다.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들. 혼성계에 있어서 저 밑바닥 아래에 처박혀 있는 가련한 종족들.

“당신은 더 나은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있어요. 텔러였을 때부터 남달랐으니 성령이 됐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이야기를…… 이 혼성계라는 거대한 흐름에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새겨 넣었을 수도 있었다고요.”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유현이라는 남자는 고작 이 정도에서 멈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더 대단한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있다. 가레스는 그의 시화에서 그 가능성을 느꼈다.

그런데, 대체 왜.

대체, 왜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지평선에서 인간이 되길 택했단 말인가.

그것이 유현의 의지였다 하더라도 가레스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신은…… 더 값진 삶을 얻고 싶지 않나요?”

“값진 삶이라는 건 대체 뭐지?”

묵묵히 듣고만 있던 유현이 그렇게 되묻자 가레스는 당황해하면서도 답을 회피하지 않았다.

“어…… 당연히 명성을 쌓고 이름을 널리 알리며, 이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것이…….”

“그래서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뭐가 있지? 그렇게 하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사라지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채워지나?”

“그건…….”

가레스는 거짓말로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별의 자리, 성령의 좌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왕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옛 영광을 떠올린 채 그저 살아가기만 할 뿐인 왕이.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는 가레스에게 유현이 통렬하게 받아쳤다.

“너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뭐가 훨씬 더 대단한지에 대해 제대로 논할 수도 없잖아.”

“…….”

“적어도 네가 뭘 말하려는 건지는 알아. 그래. 크게 보면 성령들이 대단한 자들이 많고, 하계의 존재들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겠지. 재능이 없고, 게으르고, 능력도 모자란 사람들 말이야. 하지만 네가 그렇게 평가한 인간 중에서도 자신의 이야기와 진지하게 마주한 사람들도 있었어. 하지만 성령들은 과연 그랬던가?”

유현은 자신이 지금까지 사상세계에서 보아 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야기로 만들어졌을지언정, 그들은 분명 살아 있는 인간들이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다한 마지막 황제가 있었고.

복수를 위해 항거할 수 없는 바다의 악마에 맞선 용감한 뱃사람이 있었으며.

자신의 꿈에 짓눌려 현실을 마주해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기사가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벽에 부딪히고, 불합리한 고통을 겪어도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나아갔지.”

유현은 그래서 그들을 존경했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완전함이란 없다. 누구나 결국 불완전함을 품고 산다.

성령들은 스스로가 진화의 끝. 종으로서 완전함과 고결함을 품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일까?

“월등한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너희 성령들이야말로 이야기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건…….”

가레스는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아니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그의 진실된 마음은 유현의 말이 맞다고 수긍하고 있던 것이다.

반박을 하려면 할 수 있다. 분명 성령 중에서 계속 정진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도 있다.

인간 중에서 대단한 자는 오히려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통계, 확률, 이성적인 사고.

그 모든 것을 들먹인다면 충분히 유현의 말을 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네요…….”

가레스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유현이 이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유현은 결국 자신이 봐 온 것을 존중하고 동경했기에 스스로 이 길을 택한 것이라는 것을 말했을 뿐.

그것을 가지고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하더라도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이 남자의 의지는 꺾이지 않을 텐데.

“적어도 나는 인간이 된 걸 후회하지 않아. 누군가는 이런 나를 미련하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상관없어.”

“…….”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을 손가락질하는 녀석들에 비하면, 실패하더라도 계속 나아가려는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좋으니까.”

모두가 성령을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유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종의 극한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유현이 본 성령들은 모든 것이 자유로운 혼성계에서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에 묶여서 성장조차 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월등히 강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성령들은 가능성을 소실했다.

가능성을 상실한 자들이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과연 다른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면서 모자란다고 폄하해도 되는가?

사실, 누구보다도 지탄받아야 하는 것은 자신들일 텐데.

“역시, 유현 씨는 대단하네요.”

가레스는 웃으면서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뭔가 못 본 사이에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은 예전 그대로예요. 그 빛나는 이상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굳센 눈동자도. 결국, 틀린 건 저였던 거죠.”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건 왜 묻지?”

“나름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제가 근방의 지리를 잘 알고 있거든요. 오래는 못하지만, 잠시 동안은 길잡이를 해 줄 수 있어요.”

“길잡이인가. 원탁의 기사가 그렇게 나서다니 황송하군.”

“에이. 저는 그냥 형님의 위광을 등에 업은 말단에 지나지 않아요.”

가레스는 아닌 척했지만, 유현은 이 기사가 얼마나 뛰어난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기사가 되기 위해 신분과 정체를 숨기고 굳은 잡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가 바로 가웨인의 동생 가레스였으니까.

배신의 기사라고 알려진 랜슬롯을 누구보다 존경했으며, 그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성령이 된 지금도 그를 용서하고 높게 평가하는 마음씨까지 지녔다.

스스로 성령이라며 남을 업신여기는 다른 자들과는 격이 달랐다.

“본인이 그런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어디로 가실 건가요?”

“일단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혹시 들은 것 없나?”

“아, 백화 매니지먼트 사람들 말이죠?”

누가 뭐래도 지금 유현이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대상은 자신의 옛 동료들이다.

유영민은 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으니 그렇다 쳐도, 아직까지 권지아와 서수민, 백서련과 성유찬에 대한 소식은 듣지도 못했다.

“흐음.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래도 의심이 가는 곳은 있기는 해요.”

“의심이 가는 곳?”

“아, 의심이라기보다는 뭐…… 그냥 가능성이 큰 곳이죠. 이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군주끼리 모여서 영토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 있거든요.”

그건 유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라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동했다.

가레스는 드디어 유현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는 것에 기뻐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꺼냈다.

“군주 중에서도 나름 약한,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다른 군주에 비해서 부족한 자들이 연합을 하기도 하거든요. 대충 군주연합이라고 부르던데, 거기 이념이 좀 독특해요. 약자를 보호하고, 수탈을 막는다고 했던가.”

“그런 곳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뭐, 진짜로 강한 군주들은 그런데 소속되지 않죠. 주로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약해도 군주는 군주라서 뭉치다 보니 무시 못 할 세력이 됐죠. 아마 지구 출신 사람 중 대부분이 연합의 영토로 들어갔을걸요?”

“헤어진 옛 동료들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크겠군.”

“맞아요. 유현 씨가 찾는 당사자가 없다 하더라도 소식을 아는 사람을 접할 수도 있으니까, 가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요?”

가레스의 말은 타당했다. 확실히 가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권지아나 서수민의 경우에는 워낙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 보니 분명 어딜 가도 훌륭히 제 몫을 하고 있을 거다.

연합의 영토에서 그런 소문이 돌지 않을 리가 없으니 밑져서 손해 볼 건 없었다.

유현은 다음 목표를 연합으로 정했다.

“조금 빨리 움직여야겠군.”

“뭐, 여기서 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죠. 그래도 길 자체는 복잡하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가.”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레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지금 바로 출발하게요?”

“아니. 손님이 왔거든.”

“손님이요?”

가레스는 그제야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희미한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숫자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대놓고 이쪽을 향해 힘을 흘리면서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봐도 대화 좀 나누자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가레스는 자신이 눈치채기 전에 먼저 불청객의 등장을 알아차린 유현의 기감에 감탄했다.

‘인간이 된 거 맞아? 뭔가 전보다 더 강해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그림자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며 유현과 가레스를 포위했다. 인간이 아닌 아인종, 그것도 초월자의 경계선을 막 넘어선 자들이었다.

“네놈이 책더미 군주인가?”

유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도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이 아닌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잠든 강혜림을 노려봤다.

“마천후. 역시 아직 살아 있었군. 이봐 책더미 군주. 그녀를 당장 우리에게 넘겨라. 그러면 너희는 곱게 보내 주지.”

“……너희들.”

가레스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일어서려는 것을 유현이 제지했다.

“유현 씨?”

“이건 내가 할 일이야.”

애초에 이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자신을 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강혜림을 죽이기 위해 찾아오는 자들도 지난 일주일 동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강혜림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자들은 유현의 노골적인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며 각자 기운을 일으켰다.

가레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상당히 강하다. 숫자는 10명 정도에 전부 초월자. 특히 저들을 이끄는 대장은 거의 2세대 성령에 준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유현은 그들의 살기에 집중되고 있는데도 별다른 미동도 없었다.

그는 자리에 서서 주변을 쓰윽 훑어봤다.

“3세대 성령 다섯. 군주급 바로 아래인 상급 초월자 하나. 중급 초월자 일곱. 하급 초월자 열다섯. 그리고 그 밑으로 103명.”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들이 찾아오기 전, 내 손에 죽은 놈들의 숫자다.”

무덤덤하게 대답한 유현은 아포리아의 가면을 착용했다.

“거기에 열 명 추가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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