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59화
흑검단은 과연 정예라고 할 수 있는지 다른 군단의 병사들처럼 당황하지 않고 유현을 곧바로 포위했다.
그들은 유현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초월자를 앞둔 레벨 100의 감각은 딱 한 가지만을 외쳤다.
방심하지 마라. 눈앞의 남자를 상대로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지 않으면 전부 죽는다.
해방군을 무차별로 죽일 생각으로 들떴던 흑검단원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레벨이 100이고 흑뢰군주의 정예 병사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촤자작!
순식간에 유현을 중심으로 검진이 펼쳐졌다.
묵화무궁만개진(墨花無窮滿開陳)
레벨 100에 도달한 20명의 흑검단원이 단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검진이 유현의 목숨을 노렸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가장 서열이 낮은 20검이었다.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유현의 뒤에 나타나 그대로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죽……!”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현의 우악스러운 손이 20검의 멱살을 쥐고 지면에 메다꽂았다.
쿠웅! 땅이 쩍쩍 갈라지며 20검이 피를 토했다. 즉사였다. 그 광경을 본 18검과 19검이 움직였다.
각기 양쪽에서 유현을 동시에 노렸다. 유현은 20검을 쥔 손을 놓고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검격을 막아냈다. 그것을 확인한 17검이 유현의 미간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잔상도 남기지 않는 초속의 찌르기가 아포리아의 가면 중앙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콰득! 검을 찔러 넣은 17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느려 터졌군.”
가면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검을 문 채로 놔주지 않았다. 유현은 양팔로 막은 검날을 강하게 쥐었다. 무기를 붙잡히며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세 사람은 손에 쥔 검을 놓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뒤로 크게 뛰어올라 검진에 합류했을 때.
그들의 목 위로 머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걸로 넷.”
잘려 나간 머리가 뒤늦게 유현의 주위를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흑검단원 넷이 당했다. 나머지 흑검단원은 경악하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11검부터 16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촤라락! 그들은 유현의 주위를 어지럽게 누비며 강기가 담긴 검을 찔러 넣었다. 잔상처럼 흩어지는 검강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공간을 누볐다.
“꽃이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지.”
유현은 몸속에 두른 내공을 바깥으로 방출했다.
칠마흑천신공 일마 재화(災花).
검은 꽃이 피어나더니 이윽고 꽃잎이 폭발했다. 유현이 일으킨 묵빛 강기는 흑검단의 강기를 모조리 찢어발긴 것도 모자라 주변 공간 일대를 휩쓸었다.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자 흑검단원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공격에서 방어로 바뀌며 빈틈이 드러났다. 유현이 움직였다.
파앗!
유현의 신형이 가장 가까운 16검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뭐라고 외치려는 순간 유현의 주먹이 머리를 터뜨렸다. 유현은 멈추지 않았다. 허공에 붉은 선이 촤자작 그어졌다.
그리고, 15검부터 11검까지 연달아 머리가 날아갔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전력을 다해라!”
순식간에 전체 전력의 절반인 10명이 당했다. 나머지 10명은 이를 악물고 유현에게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절기를 사용했다.
사방에서 검강이 난무하며 유현의 목숨을 노렸다. 유현은 펼쳤던 재화를 다시 자신의 주위로 회수하듯 모았다.
검은 꽃잎들이 하나둘 뭉치더니 이윽고 커다란 거울을 만들었다.
총 5개의 거울이 유현의 주위를 지키듯 둘러쌌다.
칠마흑천신공 이마 변초식.
묵경옥(墨鏡獄).
거울은 이윽고 강기와 충돌하더니 그것을 사방으로 튕겨 냈다. 흑검단원들은 자신이 쏘아 낸 강기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20명이서 펼쳐야 하는 묵화무궁만개진이 그대로 파훼 됐다. 20명이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압박해도 모자란 판국에 숫자는 절반으로, 그것도 검진까지 사라진 것은 치명적이었다.
유현은 흩어진 흑검단원들을 쫓았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사, 살려……!”
퍼억!
죽음을 직감하고 애처롭게 빌던 단원의 머리가 날아갔다. 유현은 그들을 봐주지 않았다.
피 냄새.
흑검단원들에게는 오래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오른 뒤에도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는지 유현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니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철저하게 사냥해서 죽인다.
“인간임을 포기한 짐승들의 말로란 그래야 하니까.”
퍼석!
유현의 손에 또 하나의 흑검단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단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시체가 되어 주변에 널브러졌다.
일검주는 그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오늘은 사람을 얼마나 죽일지에 대해서 떠들던 동료들이 다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그들의 말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눈물을 질질 짜면서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빌다가 죽었다. 정정당당한 싸움을 통해 패배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사냥당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해 온 모든 악행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괴, 괴물…….”
일검주는 폐허의 중심에 선 유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휙. 유현의 고개가 일검주를 향했다. 일검주는 두려움에 찬 소리를 내뱉으며 손에 쥔 검을 내밀어 유현을 향해 겨누었다.
‘어? 검이 어디 갔지?’
검뿐만이 아니다. 검을 쥔 그의 양손이 손목 아래로 사라져 있었다.
뒤늦게 고통이 밀려왔다.
“크아아아악!!!”
유현은 검을 쥔 일검주의 양손을 멀리 집어던졌다. 일검주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렸다. 유현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참 전에 레벨 100에 도달해, 초월자를 코앞에 뒀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그가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저 악마 가면을 쓴 괴물은 그냥 초월자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어쩌면 상급 초월 지경을 넘어서는…….
“군주…….”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일검주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자신을 향해 손을 휘두르는 유현의 모습이었고, 직후 시야가 검게 암전됐다.
* * *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해방군은 유현이 보여 준 경천동지할 무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도 약한 건 아니었지만, 유현이 보여 준 수준은 감히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어떻게 싸웠는지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흑검단과 유현의 신형이 서로 복잡하게 교차하고, 검은 강기가 폭발하며 주변 일대를 휩쓸었을 뿐.
귀를 울리는 폭음과 뿌옇게 일어난 먼지구름, 폭발하는 대지.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바깥으로 걸어 나온 것은 유현 혼자였다.
“호, 혼자서 흑검단 20명을 전부 쓰러뜨렸다고?”
“흑검단이라면 전부 100레벨로 구성된 정예들이잖아. 그 20명이 검진까지 펼쳤는데도…….”
“보통 초월자가 아니야. 어쩌면, 저분이야말로 마천후의 폭정으로부터 우릴 해방시켜 줄…….”
해방군이 저들끼리 뭐라고 떠들든 말든 유현은 곧바로 케이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별거 아니었습니다.”
아포리아의 가면을 벗으며 유현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가볍게 닦았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이겼다 해도 흑검단 상대로 빠르게 승부를 내는 것은 그로서도 조금은 지치는 일이었다.
다행이 다윈의 육신 덕분에 체력은 소모하기 무섭게 차올랐다.
“그보다 나생문을 통해 들어간다고 했는데, 원래도 저렇게 화려하게 열 생각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생문을 저렇게 일부러 크게 연 것은 영주 녀석이 이쪽을 물 먹이려고 그런 거예요. 허가만 떨어지면 그냥 밑에 있는 쪽문으로 통과할 수 있으니까요.”
“덕분에 이목만 집중되게 생겼군요. 괜히 열라고 했나.”
“네. 그래서 큰일이에요. 입구부터 흑검단이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생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니 본격적으로 군단의 본대가 움직일 거예요. 이대로면 충돌을 피할 수 없어요.”
케이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길 안내를 해 주기로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유현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유현이라 하더라도 동생과 자신을 지켜 주며 흑뢰궁으로 향할 수는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다른 동포들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동포들이 유현 씨에게 과한 기대감을 품고 있어요.”
“저한테요?”
“나생문을 열고, 도시를 해방시켰고, 흑검단을 쓰러뜨렸으니까요.”
“여러분들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요.”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죠. 유현 씨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호의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쩌면 그 이상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보이는군요.”
유현은 벌써부터 기대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향하는 해방군 사람들을 보며 한심함을 숨기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저희의 동행은 여기까지겠군요.”
“네, 네?”
케이트가 놀라서 되물었다.
“뭘 그렇게 반응하시는 겁니까.”
“하, 하지만 흑뢰궁까지 안내를 해 주기로…….”
“이대로 쭈욱 가다 보면 나오겠죠. 어차피 나생문을 넘어서는 것이 제일 힘들다뿐이지, 그 이후로는 쉽다면서요. 흑뢰궁이라면 길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고요.”
“그건…… 그렇지만…….”
케이트는 그래도 아쉬움 때문에 쉽게 헤어지자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남자를 붙들어서 해방군의 도움을 받는 것? 그런 치졸한 생각을 해본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 받기만 하고 제대로 해 준 것이 없어서 그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딱히 없었으니까.
“미안함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표정에서 다 드러납니다. 길잡이를 자처한 것 치고는 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자신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꿰뚫는 말에 케이트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이 작게 웃었다.
“도움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당신에게도, 지미에게도.”
“……저는 제대로 한 게 없는걸요.”
“그건 케이트 씨가 상황을 절대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어섭니다. 애초에 제가 케이트 씨에게 처음부터 바랐던 것은 길을 안내와 나생문을 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뿐이었어요.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죠.”
그 위로의 말이라 할지라도 케이트를 완전히 납득시킬 수 없었다.
그것은 유현도 잘 알았다.
“사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서, 누구나 저마다의 한계가 주어져 있죠.”
아이가 할 수 있는 일과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유현이 할 수 있는 일과 케이트가 할 수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한다는 것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니까.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마세요. 당신이 할 수 없고 남이 할 수 있다고, 이 불공평한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인 불만을 토하지는 마세요. 케이트 씨는 지금 자신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걸로 된 거예요.”
분명, 케이트가 한 것은 아주 작은 도움에 지나지 않았다.
유현의 입장에서는 없어도 상관없을지도 모를……그저 일정을 며칠 단축시켰을 그런 도움.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와 같은 입장일 때, 과연 그녀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그런 사소한 도움이 별것 아니고 의미가 없겠다고 하겠지만, 정작 그들은 모른다.
이런 자그마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무엇을 하고 싶냐가 아니라, 무엇부터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세요. 그리고 차근차근 늘려 나가면 되는 겁니다. 작은 선행, 별것 아닌 친절, 뭐든지 좋습니다.”
유현은 등을 돌렸다. 이 이상 이 도시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아, 유현 씨……!”
“나중에 만나게 될 때,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기대하죠.”
그 말을 끝으로 유현은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 어어?! 사, 사라졌다!”
“찾아! 저분이야말로 우리의 비원을 이루게 해 주실 분이야!”
뒤에서 동포들의 다급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케이트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문득 손끝에 닿는 따스한 감촉을 느끼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동생인 지미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고 있었다.
“괜찮아 누나.”
“지미, 나는…….”
“누나는 충분히 노력했는걸. 나머진 구세주님께 맡기자.”
케이트는 지미의 모습에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삼켰다. 지미도 알고 있다. 부모님은, 마천후 강혜림의 폭정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케이트는 복수를 원했다. 그 이상으로 언제까지고 이렇게 억압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했다.
변해야 한다. 자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니,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유현의 말에 그녀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은 구분해야 했다. 거기에 매몰돼서는 안 됐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마음의 나침반을 제대로 정하지 못했지만, 한참 어린 동생 지미는 그것을 해냈다.
케이트는 입술을 깨물더니 이윽고 손에 쥔 힘을 풀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자, 지미. 기다리는 거야. 좋은 소식이 돌아오기를.”
“응. 누나.”
비록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기대감에 기대는 거라 하더라도, 지금은 그저 이렇게 빌 수밖에 없었다.
부디, 그 남자가 성공하기를.
* * *
유현은 빠른 속도로 길을 내달렸다.
나생문 너머의 세상은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황폐한 땅이었다. 길이라고 할 것도 제대로 나지 않았지만, 유현은 마침내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느껴진다.’
저 멀리, 자신이 익숙하게 봐 온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고 있었다.
그 끝에 그토록 찾던 강혜림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유현은 다리에 힘을 더욱 불어넣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검은 빛 두 줄기가 반짝였다. 직후 정면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유현은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저 두 불청객의 기습에 당했을지도 몰랐다.
“반응이 빠르군.”
“인사차 날린 공격이라 해도 피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흙먼지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머리에 뿔이 난 검은 피부의 거한과 붉은 피부의 남성이었다.
유현은 둘을 보는 순간, 곧바로 그들의 강함을 눈치챘다.
‘둘 다 강해.’
레벨 100을 넘어서, 자신의 종으로서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초월한 존재.
유현의 앞길을 막아선 둘은 초월자급 강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