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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58화 (35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58화

“그,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현은 별거 아니라며 답했다. 그 여유로운 태도에 여관 주인은 정말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이 남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내뱉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현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녀석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알았으니까 곧바로 행동으로 들어가죠. 한 시라도 빠르게 나생문을 넘어야 하니까요.”

그 목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묘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다. 여관 주인은 유현의 태도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케이트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뭐 해요? 어서 움직이세요.”

“으, 웅? 정말 그래도 괜찮나?”

“다 생각이 있으신 분이에요. 허투루 말을 하는 건 아닐걸요. 아마도.”

“아마도라니…….”

“어차피 마땅한 방도가 없는 시점에서 뭐든 잡아 봐야죠. 도시에 있는 해방군 동포들을 모두 불러 모으죠.”

“아, 보낼 거면 전부 다 광장으로 오라고 해 주십시오.”

유현의 말에 케이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여관 주인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눈치였다.

“광장에 전부 모이면 군단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

“군단의 눈은 제가 끌어모을 겁니다. 두 분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만 집중해 주세요.”

“끌어모으신다고요? 어떻게요?”

“어떻게 할 거 같습니까?”

여관 주인은 유현의 미소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그는 불안한 가슴을 안고 부디 그러지 않기를 빌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

유현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이행했다.

여관 주인은 자신의 불안한 상상이 현실이 됐음을 깨달았다.

* * *

안개가 가득한 광장의 중심에 선 유현은 처형대를 올려다봤다.

목을 매단 시체들이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유현은 손 위에 검은 강기를 일으켰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끌어모아야 하니, 첫 시작은 화려하게 갈 생각이었다.

콰과광!

손끝에서 뻗어져 나온 강기가 처형대를 부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썩어 가던 시체들 또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화장은 해 줄 수 없으니 적어도 이렇게라도 보내 주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었다.

“무, 무슨 일이냐!”

“광장이다! 광장에 반란군 놈이 나타났다!”

검은 갑옷을 갖춰 입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유현은 그들이 자신을 포위할 때까지도 광장의 중앙에 가만히 서 있었다.

“뭐야. 고작 하나?”

“복장은 또 왜 저래? 미친놈인가?”

군단의 병사들은 유현의 몰골을 보며 의아해하면서도 광장을 빽빽하게 포위했다. 광장을 돌아다니던 도시의 시민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도망쳤고, 이윽고 광장 내부에는 유현과 수백 명이 넘는 병사들만 남았다.

유현은 그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다 모였나?”

“네놈은 누구냐!”

“지금 그게 중요한가?”

이렇게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정체가 무엇이고, 그런 것이 뭐가 궁금할까.

이름을 알면 죽이지 않기라도 할 건가? 웃기는 말이다.

숫자는 많지만, 죄다 실력이 어중간한 녀석들이다. 이러면서도 군단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죽이고, 수탈하고, 괴롭혀 왔겠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만 묻지. 군단에 가담해서 적어도 힘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만 손을 들어라.”

그 누구도 유현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만약 그 말을 듣고 싶어도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겠지. 이 자리에 모인 병사 중에서 피 냄새가 나지 않는 녀석들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분류의 과정은 거치지 않아도 됐으니까.

“빨리 끝내 주마.”

이번에는 가면을 쓸 필요도 없었다.

* * *

“세상에.”

해방군 동료들을 불러 모은 케이트는 저 멀리 중앙 광장에서 치솟아 오르는 검은 기둥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녀를 따라오던 다른 해방군 동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여 경계마저 모호한 도시에서, 안개를 뚫고 나타난 검은 기둥은 너무나도 뚜렷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시선을 끌어모으겠다고 호언장담 하기는 했지만 이게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나?

이쯤 되면 악성향 성령이 저 자리에 강림했다고 해도 믿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안다. 이곳은 혼성계의 최외곽이라 할 수 있는 도시였고, 진짜들은 저 나생문 너머 혼성계의 중심 땅에 있다는 걸.

저 검은 기둥은, 이 세상을 뚫을 기세로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폭풍은 그들에게 동료들을 모아오라고 시켰던 남자가 일으킨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세상에.”

“미치겠군.”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해방군은 모두 자리에 얼어붙어 침음성을 흘렸다.

광장에는 쓰러진 병사들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몰골은 처참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모두 고통 속에 허덕이다 죽었음을 모르진 않았다.

그 중심에 우뚝 선 남자를 보며 누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다 오셨습니까?”

남자, 강유현이 웃으며 그들을 반겨 줬다.

“그러면 도둑 잡기를 시작하죠.”

그 미소에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케이트와 지미를 비롯한 해방군 동포 50명은 다시 안개가 짙게 깔린 광장에 들어섰다.

“우릴 다 모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뭡니까.”

한 청년이 유현을 보며 당돌하게 물었다. 여관 주인이 눈을 부릅뜨며 허튼짓하지 말라고 말리려고 했지만, 유현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의 영주를 찾기 위해섭니다.”

“영주를 찾는데, 왜 저희를 모으는 거죠? 혹시 저희 내부에 영주가 숨어 있기라도 하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제대로 봤습니다.”

유현이 수긍하며 답하자 해방군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일부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강자고 자시고, 그들이 2년 동안 함께해 온 자 중에서 그토록 찾으려던 영주가 숨어 있다는 말이 곱게 들릴 리가 없었다.

“뭐, 여러분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쁠지는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하려고 들 수는 없죠.”

해방군이 급한 것처럼 유현도 영주를 찾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나생문을 넘어 강혜림이 기거하는 흑뢰궁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 놓으시고요?”

“어차피 지원군이 오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 전에 끝날 일입니다.”

“어떻게요?”

“방법이 있죠.”

물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을 통해서 정체를 하나씩 분석하는 것이지만, 50권이 넘는 책들을 다 훑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유현은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확실하면서도 한꺼번에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확인할 방법을.

“모두 이걸 봐 주십시오.”

유현이 한 손으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해방군이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유현이 손에 쥔 것은 죽은 사람의 머리였다.

“이게 무엇으로 보입니까?”

“뭐라니, 사람의 머리잖습니까.”

“머리라니. 저건 그냥 살덩어리야.”

“다들 눈이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야? 저건 그냥 고양이 시체잖아.”

삽시간에 다른 답들이 도출됐다. 분명 다들 같은 것을 보고 있었지만, 그들이 내놓는 결과물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더 이상한 점은 그런 말을 하면서도 해방군은 자신의 대답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유현은 피식 웃으며 손에 쥔 것을 그대로 허공에 띄워 보였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여 준 것은, 그저 저의 힘을 모아서 만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네?”

“뭐라고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분명 같은 것을 봤으면서도 다른 걸 떠올렸죠. 대체 왜인 것 같습니까?”

누구도 유현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도 머리가 복잡했다. 마치 안개의 마력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안개……?”

케이트의 중얼거림에 유현이 씨익 웃었다.

“정답입니다. 정확히는 저 나생문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안개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나생문의 안개 때문이라니.”

“그게 말이 돼?”

곳곳에서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안개 속에 울려 퍼졌다.

유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나생문이 뭔지 아십니까? 정확히 그 나생문이 무엇 때문에 유명해지고 이름을 얻었는지 아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사라진, 5년 전 지구의 잔재라 할 수 있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변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생문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915년도에 집필한 소설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살겠다고 남의 것을 뺏고 뺏기는 짓을 하는 단순한 내용이죠. 하지만 이 나생문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 본격적이었습니다.”

“라쇼몽?”

“나생문의 독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생문의 내용은 같은 원작자가 따로 집필한 <덤불속>과 합쳐지게 되죠. 영화 라쇼몽에서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두고 증언이 엇갈리고, 다양한 관점으로 설명하게 됩니다. 그들은 분명 같은 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을 본 거죠.”

같은 현상을 다각적으로 인식하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즉 나생문의 앞에 있는 이 안개 낀 도시야말로, 바로 그런 라쇼몽 효과가 상시 발동하는 공간이라는 소리였다.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 된 이곳 혼성계이기에 가능한 일.

그는 도시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들을 살폈다. 그의 눈은 진짜를 살폈지만, 케이트와 지미는 그러지 못했다. 거리의 쓰레기봉투를 시체라고 하질 않나,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짐승이라 부르지 않나.

유현은 거기서 이 도시의 특이점을 깨달은 것이다.

“여러분은 이 안개 속에서 같은 것을 보고도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서로 의견이 엇갈리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제가 조금 전 여러분께 이게 뭐냐고 물었을 때 다들 다양한 대답을 했었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치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유현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그중 딱 한 명, 마치 무언가를 눈치채고 입을 꾹 다문 채 대답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더군요. 자신이 혹시라도 제대로 된 답을 말하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유현의 시선이 해방군의 틈새에 섞여 있는 한 남자를 향했다.

특출날 것이 없는 평범한 인상에 주변 분위기에 아주 잘 녹아 있는 청년이었다.

너무 주변과 동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유현은 남자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씨익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케이트를 비롯한 해방군은,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오한을 느꼈다.

그들의 착각이 아니라면 유현이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눈과 입만 보인 것 같았다.

“찾았다.”

“……!”

해방군 사이에 숨어있던 청년이 이를 악물고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채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유현이 남자의 팔목을 붙잡고 그를 제압했다.

“저런. 도망치려고 하면 안 되죠. 당신을 찾기 위해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요.”

유현은 해방군 틈새에 숨어든 영주가 혹시라도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내공을 이용해 그의 몸 전체를 억눌렀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해방군은 자신들의 사이에 간자가 숨어 있다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냥 스파이도 아니고, 그들이 무려 2년 동안 도시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그토록 찾고자 했던 영주였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기 어려웠는데, 설마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었을 줄이야.

영주를 드디어 찾아냈다는 기쁨보다도 허탈감이 먼저 밀려왔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사이에 영주가 있었다고?”

“대체, 대체 우리는 2년 동안 뭘 한 거지?”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유현은 영주의 목을 살며시 밟았다.

“꽤나 재미난 취미를 지니고 계셨군요. 자신을 쫓는 해방군을 알면서도 그들의 사이에 숨어서 소꿉놀이를 하다니. 그러면서 속으로는 계속 비웃고 있었겠죠. 너희들이 그토록 찾고 있는 영주가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너는…… 누구냐…….”

영주는 떨리는 입술을 열며 그렇게 물었다.

“누굴까요.”

“말장난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나생문을 열 수 있는 권한, 당신에게 있죠?”

영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유현의 눈동자 속에 불길이 타올랐다.

“열어.”

“안쪽으로…… 가겠다는 건가? 저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흑뢰군주가 있겠지. 그녀가 이끄는 군단과 그 휘하 정예 병사들이.”

“그런데도 가겠다고?”

“가고 말고는 내 자유지.”

유현의 말에 영주가 덜덜 떨며 말했다.

“내가 나생문을 여는 순간 놈들이 움직일 거야.”

“놈들, 누구?”

“흑검단(黑劍團). 군주님이 이끄는 정예 병단이다. 전부 다 레벨 100으로 구성되어 있지. 그 녀석들은 왜 나생문이 열렸는지 이 도시를 조사하러 올 거야. 그리고 내가 배신을 했는지, 혹은 도시 안쪽에 반란군이 있는지 색출하겠지. 그렇게 되면 모두 죽어. 놈들은 자비가 없거든.”

유현은 흑검단의 이름을 처음 들어 봤지만, 해방군들은 달랐다.

“흐, 흑검단?”

“그 미친 검귀들이 온다고?”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벌써부터 오한이 도는지 두려움에 떠는 자들이 더러 보였다.

유현은 그 반응만으로 흑검단이 꽤나 위험한 집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관없어. 열어.”

“……진심이야?”

“내가.”

유현이 영주를 향해 씹어 먹을 듯이 이를 갈았다.

“지금 장난하는지 알아?”

“……알았어.”

영주는 한숨을 내쉬더니 이윽고 눈을 감았다.

쿠구구궁!

직후 거대한 나생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문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저 문을 열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흑뢰군주가 기거하는 흑뢰궁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영주는 비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 열었으니 내 목숨은 살려 줘…….”

“살려 줄게.”

유현은 영주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리고는 해방군들의 틈새로 집어 던졌다.

“나는 말이지.”

“이, 이봐!”

해방군의 시선이 곧바로 영주를 향했다. 그들을 2년 동안 농락하고 동료인 척 굴면서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비웃고 있던 남자가, 그들의 앞에 벌레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곧이어 광장 내부에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케이트가 유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문을 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소란이 너무 컸다. 그리고 흑검단이 온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가 경고했던, 피해야 할 대상 중에는 흑검단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변하는 건 없어.”

“네?”

“어차피 놈들을 피할 수 없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순간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면…….”

“그래. 뚫고 나간다.”

유현의 목소리에는 망설임 따윈 없었다.

* * *

흑뢰군주의 정예 부대라 할 수 있는 흑검단원 20명은 갑자기 나생문이 열렸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입구에 포진했다.

그들의 역할은 나생문 근처의 수상한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혹은 간혹 나생문과 가까운 도시에 숨어든 반란군을 색출하는 것.

갑자기 문이 열려도 그들이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이곳 영주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철저히 지켜라. 혹시라도 반란군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어차피 놈들은 여기를 넘지 못할 거야. 끽해 봐야 도시를 검거하고 농성에 들어가겠지. 10명 정도 모여서 가자고. 누구 칼 좀 무뎌진 사람?”

“오랜만에 피 맛 좀 보겠어.”

흑검단원들은 벌써부터 사람들을 죽일 생각이 기뻐했다. 이들은 모두 칼에 미친 검귀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검에는 피가 마르는 날이 없었다.

흑검단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방군들의 수준으로 그들에게 대적할 수 없으니 여유롭게 움직여도 상관이 없었다.

녀석들의 대장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해방군도 몸을 사릴 테고, 대장이 올 때가 되면 그때는 군단의 지원 병력이 도착할 테니까.

그때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잠깐. 저기 뭔가 날아오는데?”

“뭐?”

모두의 시선이 도시를 향했다. 나생문이 열리며 점점 옅어지는 도시의 안개를 뚫고 검은 무언가가 포물선을 그리며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격추하기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검은 물체는 이윽고 흑검단의 중심에 내려앉았다.

쿠웅!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은 옷깃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 내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시간이 부족하니 용건만 바로 말하지.”

그의 시선이 흑검단을 한번 쓰윽 훑었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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