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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55화 (35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55화

유현은 스스로를 해방군이라 부르는 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들이 자신을 보며 얼마나 경계하고 긴장하는지도 납득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사람이 군단의 병사들을 쓸어 버리고 마을 사람들을 구해 줬으니 고맙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강력한 존재를 덥썩 믿을 수만도 없을 터.

이해한다.

다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쪽을 향해 칼을 겨누는 것까지 봐줄 생각은 없지.”

목숨까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금 상대를 얼마나 잘못 건드렸는지는 톡톡히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다.

일단은 가볍게 한 발을 내딛는다.

쿠구궁!

동시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거대한 압박감이 해방군을 짓누른다.

“크억!”

“이, 이게 대체……!”

압력이 짓눌린 사람들이 지면에 처박힌다.

순식간에 마을에 모인 해방군의 전력 중 8할이 전투 불능이 됐다.

버티고 서 있는 사람들은 2할. 그중에서 고개를 뻣뻣하게 든 채 유현을 제대로 주시하는 것은 선두에 선 남자 한 명뿐.

“꽤 버티는군. 세월이 흐르면서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벌어진 건가.”

현재 유현의 압박감을 견디는 사람들은 최소 중견급 컬렉터 이상의 전력들이었다. 그중 선두의 남자는 상급. 레벨을 따지면 90은 가볍게 넘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유현은 가볍게 두 번째 발을 내디뎠다.

쿠우우웅───!!!

더 강한 압력이 해방군을 덮쳤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서 있던 2할 중에서 대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해방군의 리더로 추정되는 남자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까득 말아 쥐며 버텼다.

그의 목에 핏대가 솟고, 눈동자가 붉게 충혈됐다.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유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윽고 그의 머리 위로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그 모습에 유현은 가면 속에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보통 기운이 아니다. 인간이 다루는 힘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 저것은 성령이 내리는 축복이었다.

“직접 계약의 힘인가?”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남자의 얼굴이 한층 더 편해졌다. 성령은 자신의 권속이 유현의 힘에 밀리지 않도록 힘을 불어넣었다.

유현은 잠자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속으로 상황을 가볍게 분석했다.

‘상급 컬렉터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성령에게 지원을 받는다고 친다면 그 힘은 실제 컬렉터들보다 훨씬 더 강하겠군.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싸움에 개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의외로 크지.’

지구가 완전히 혼성계의 일부가 되었을 때, 시스템은 더 이상 성령들의 개입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 지구는 더 이상 물질계로 분류되는 하계가 아니니까.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을 버텨 낸 리더는 곧바로 빛으로 이루어진 창과 방패를 쥐었다.

유현은 무기만 보고 리더가 누구와 계약을 했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킬레우스와 계약을 했군.”

“……그걸 어떻게?”

“보면 알지.”

사실 눈치로 안 것이 아닌, 리더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책을 이용해서 알아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방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에는 충분했다.

리더는 이를 악물고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대로 신속하게 끝낼 생각으로 미간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죽일 생각인가?”

유현이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딪칠 상대라 생각해 살초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사실이기도 했고, 그 정도는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나쁜 건 아니었으니까.

유현은 곧바로 찔러 오는 창을 피하며 팔을 뻗었다.

리더는 방패를 앞세워 유현의 손을 막으려 했다. 유현의 손끝이 방패에 닿는 순간, 리더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머리 위에 맹렬하게 요동치는 검은 기운이 엄청난 힘으로 그를 짓누른 것이다.

칠마흑천신공 변초식 천압묵파였다.

“끄으으으으!!!”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몸은 지면에 파고들었다. 리더가 쥐고 있던 빛의 창과 방패마저도 사라졌다. 성령이 지원해 준 힘마저 사라지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리더가 바닥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유현은 곧바로 힘을 회수했다.

주위에 침묵이 감돌았다.

멀리서 이 싸움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불안함에 몸을 떨었고, 해방군들 또한 유현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믿었던 그들의 리더마저도 유현을 상대로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세상에.”

뒤늦게 지미를 데리고 나온 케이트는 바깥의 상황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현이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적어도 승부가 나더라도 승자도 상처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유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손끝 하나 다치지 않을 정도로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 손대중을 했다.

유현은 그만큼 강했다.

“대체, 왜……당신 같은 자가, 이곳에 있는 거지?”

유현에게 패배한 해방군의 리더는 입가에 한 줄기 피를 흘리며 물었다.

“말 해리. 목적이 뭐냐.”

“목적 같은 건 없어.”

“그러면 왜…….”

“왜 구해 줬냐고? 그건 저기 있는 아가씨한테나 물어. 나는 딱 하나만 말하지. 나를 건드리거나 혹은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에는 그래도 내가 적당히 자비를 베풀어서 넘어갔지만.”

유현의 시선이 해방군을 쓰윽 훑었다. 그 시선이 닿을 때마다 바닥에 엎드린 해방군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다음은 없다. 명심해.”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유현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미 자신을 향한 공포가 각인됐음을 확인했으니까.

유현은 등을 돌려 마을 바깥을 향했다. 이미 알아낼 정보는 다 알아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자, 잠시만요!”

케이트가 황급히 유현을 따라왔다.

“지금 떠나시려는 건가요?”

“내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흑뢰군주에게 가시는 거죠?”

“…….”

유현은 대답 대신 케이트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채라 보통 담이 큰 사람도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공포에 질려 미칠 텐데, 케이트는 입술을 깨물며 유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누나!”

옆에서 듣고 있던 지미가 외쳤다. 의외인 것은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런 게 아니에요. 방금 그쪽이 한 경고는 저도 들었으니까요. 미치지 않고서 제가 바로 어기려고 들겠어요?”

“그래도 그러겠다?”

“이용하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유현은 더 말해 보라며 그녀에게 턱짓으로 까닥였다. 케이트는 잠시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힌 뒤 입을 열었다.

“흑뢰군주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어차피 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굳이 여기서 물어볼 필요는 없으니까.”

“흑뢰군주가 기거하는 곳은 흑뢰궁이라고 해서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요. 무턱대고 간다면 필시 길을 잃을 거예요. 최대한 지름길로 간다고 해도 중간에 도시 3개는 거쳐야 하고, 그중에는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통과할 수 없는 ‘나생문’이 있죠.”

“…….”

“당신이 강한 것은 알아요. 아무리 봐도 최소 초월자 정도니, 군단의 누가 오더라도 개의치 않겠죠. 하지만 이대로 가도 정말로 괜찮겠어요? 분명 숱한 방해를 받을 거예요. 흑뢰궁에 도착한다 해도 예정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겠죠.”

유현은 한층 더 가라앉은 시선으로 케이트를 주시했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잘 알았다.

“감당할 수 있겠나?”

“그러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어요.”

케이트는 유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는 떨리지도 않았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그 시선은 유현을 응시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의 눈에는 지금 당장이라도 유현이 케이트를 죽일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합격.”

유현은 씨익 웃으며 아포리아의 가면을 벗었다.

죽음마저 각오하고 있던 케이트는 너무나도 힘 빠지는 대답에 자기도 모르게 바보처럼 되묻고 말았다.

“네?”

“합격이라고요.”

“어, 그게……그러니까…….”

“흔들리지 않는 기개, 아주 잘 봤습니다. 자고로 사람이라면 그래야죠. 어중간한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면 저도 화를 냈겠지만, 케이트 씨는 그러지 않았으니 합격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싫지 않거든요.”

유현은 언제나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그 사람이 강한지 약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를 얼마나 끝까지 밀고 나가느냐다.

아무리 대단한 힘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꺾이고 무너지기 마련.

그런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케이트는 달랐다.

“저는 케이트 씨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필시 본인에게 어떤 사정이 있을 거고, 제가 아니면 그것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을 한 거겠죠.”

“……그걸 알면서도 받아들인다고요?”

“그 정도면 동행자로 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적어도 다른 멍청한 사람보다는 사리 분별할 머리는 충분히 돌아가는 거 같으니까요.”

그 말끝이 향하는 게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는 해방군은 그야말로 뭐 씹은 표정이 됐다. 그래도 유현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길잡이로서 손색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싫습니까?”

“……아뇨. 그냥 너무 뜬금없어서 당황했을 뿐이에요.”

케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케이트 클린첼이에요. 흑뢰궁까지 가는 동안에, 잘 부탁해요.”

“강유현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이름,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

“누나!”

그때 지미가 끼어들었다.

“나도 같이 가!”

“지미!”

케이트는 지미를 마을에 맡기고 유현과 둘이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눈치가 빠른 지미는 케이트에게 달라붙었다.

“갈 거면 나도 같이 가! 혼자 남는 건 싫단 말이야!”

“지미! 억지 부리지 마! 지금 가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는 거야?!”

케이트는 죽음을 각오하고 유현을 돕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유일한 혈육인 지미까지 그곳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미는 고집불통이었다. 그는 케이트의 옷자락을 잡으며 절대 혼자 못 간다며 매달렸다.

지미에게 손찌검을 해서라도 쫓아낼 생각으로 케이트가 마음을 독하게 먹는 순간이었다.

“데려가죠.”

“네?”

정작 유현이 지미를 데려가겠다고 두둔하고 나서자 당황한 것은 케이트였다.

“어차피 이런 곳에 남아 봤자 지미가 마음을 놓을 수도 없거니와, 이곳도 딱히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 하지만…….”

“한 명 정도 일행이 는다고 해서 딱히 저한테 불편할 건 없습니다. 게다가 지미는 제가 도움을 받은 것도 조금은 있으니까요.”

유현은 자신이 깨어난 것에 지미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지미는 유현을 이곳에 부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그런 아이에게 자그마한 선행 정도는 베풀어도 상관없었다.

“……그쪽의 뜻이 그러시다면야.”

“헤헷.”

“지미, 넌 나중에 보자.”

“아, 왜!”

두 남매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현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케이트와 지미가 황급히 유현의 곁에 따라붙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예정인가요?”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바로 짐을 챙겨 올게요!”

케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졌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등 뒤에는 커다란 배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시죠.”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시군요. 이럴 줄 알고 계셨습니까?”

“오래전부터 잔뜩 벼르고 있었거든요.”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길잡이가 저렇게 철저하다면야 이쪽에서 나쁠 건 없었다.

“케이트…….”

“지금까지 저희 남매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야 해요.”

해방군의 리더는 단호하게 말하는 케이트를 붙잡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트를 보내 주기로 했다.

“……조금 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굴었음에도 목숨을 살려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 선을 넘는 욕심인 건 알지만, 케이트와 지미를 부탁합니다.”

해방군의 리더는 유현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그의 부하들이 뭐라고 외쳤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해방군에 당신 같은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진짜 대장은 아닌 것 같은데.”

“……눈치채셨습니까?”

“기분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대장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거든요.”

그 말에 리더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지부장 정도밖에 되지 않죠. 진짜 해방군의 대장은 훨씬 더 강합니다.”

“그게 누구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분은 언제나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어서 정체가 베일에 휩싸여 있거든요.”

“그런 사람을 잘도 믿는군요. 제2의 흑뢰군주가 될지 어떻게 알고?”

“적어도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니까요.”

“…….”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답하는 리더의 모습에 유현은 그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리더 또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상 유현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유현이 케이트를 재촉했다.

“가시죠.”

“아, 네!”

케이트는 지미의 손을 잡으며 유현의 뒤를 따랐다.

목표는 강혜림이 기거하는 흑뢰궁.

유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단 그녀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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