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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52화 (35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52화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속을 한 소년이 달렸다.

이제 갓 10살이 됐을 것 같은 소년은 땀범벅이 된 채 숨이 넘어가라 헐떡이면서도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추적대의 기척이 소년의 공포심을 더욱 강하게 자극했다.

“꼬맹이가 금역으로 간다!”

“어서 잡아! 반란군은 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뿌리째 뽑으라는 명령이다!”

험악하고 고약한 목소리가 소년의 귀를 울렸다. 반군, 끄나풀, 사형 등등. 무서운 말들이 그들의 사이로 오갔다.

금역으로 돌입하기 전 소년을 잡으려고 하고 있지만, 쫓기는 소년은 안다. 금역이라고 해 봤자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금역에 들어가면 저주를 받느니 천벌이 내린다니 하는 것은 미신일 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추격대도 입으로만 금역이니 위험하니 해도 쫓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 자그마한 꼬맹이가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소년의 추적을 느슨하게 하고 있었다.

이런 행동에서 재미를 느끼려고 하는 저열한 의도가, 역설적이게도 소년이 지금까지 저들의 손에 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지미는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 않은 딱 그 정도의 일상. 부모님은 계시지 않지만,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와 함께 지내는 것에 불만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같은 일상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던 지미의 일상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 병사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이 마을에 반란군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군단 휘하 병사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순식간에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끌려갔다. 지미는 그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뒤로하고 도망쳤다. 누나가 필사적으로 그를 내보내도록 시간을 끌어 주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으리라.

‘도망쳐야 해.’

하지만, 어린아이가 도망치려고 해도 어디로 가서 어디에 숨을지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소년이 본능적으로 선택한 곳은 바로 금역이라 불리는, 5년 전까지 강릉이라 불렸지만 대폭발이 일어난 이후 누구도 찾지 않는 폐허였다.

그곳이라면 추격대도 알아서 물러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얄팍한 기대감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라도 기댈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며 금역에 도착한 지미가 본 것은 5년째 지워지지 않은 거대한 구덩이였다.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부처님이 직접 내려왔다고 알려진 이곳은 처음에 성역이라 불렸다. 혹시라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아무것도 없는 폐허였다. 아니, 차라리 폐허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성역에 발을 담근 자들은 하나같이 반쯤 미쳐서 돌아왔다. 그들은 그곳에서 악마를 봤다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자연스럽게 성역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로 자리 잡았고, 금역이라 불리게 됐다.

“하아. 하아. 누구, 거기 누구 없어요?”

지미가 도움을 요청하려고 말을 내딛으려는 순간, 딛고 있던 흙이 무너졌다. 지미의 몸이 커다란 크레이터 안쪽으로 굴러떨어졌다.

다행히도 일대의 토양은 자갈이 없는 부드러운 흙이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수백 미터가 넘는 크레이터 안쪽까지 구르다 보니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지미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비틀거리며 다시 지면에 고꾸라졌다.

“하. 대체 얼마나 열심히 도망치나 싶더니, 구덩이 안쪽에 굴러떨어지는 거로 끝이야?”

“싱겁게 시리.”

3명의 추격대가 지미의 근처에 가볍게 착지했다.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지닌 그들은 흙투성이가 된 지미를 내려다보며 낄낄 웃었다.

“그래도 꼴에 열심히 달려서 어디까지 오나 싶더니, 결국 금역까지 왔네?”

“야야. 얼른 이 새끼 끌고 가자. 이곳에 더 있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거 같아.”

“뭐? 설마 너 쫄았냐? 금역이라고 해 봤자 그냥 소문만 무성할 뿐이라고.”

“여기에 악마가 나온다잖아.”

“악마는 무슨 악마. 직접 봤어? 악마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냥 헛것을 본 거겠지.”

“만약에 진짜라면?”

“그건…….”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싸늘해진 느낌이 났다. 추격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곧바로 지미에게 다가갔다. 말로는 강한 척을 해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니, 어서 이 귀찮은 꼬맹이를 데리고 복귀하자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품었다.

지미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누가, 제발 도와줘요!’

이 애타게 뻗는 손을 누군가 부디 잡아 줬으면 했다.

구원을. 신이 아니라 악마라도 좋으니 부디 구해 줬으면 좋겠다고.

지미는 손끝에 무언가 닿는 감촉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

누군가 손을 잡아 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흙더미 사이에 파묻혀 있던 아주 자그마한 꽃봉오리였다.

대체 이런 폐허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에 어쩌다 이런 꽃봉오리가 남아 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지미는 이것이 마치 운명의 인도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꽃봉오리를 향해 빌었다.

제발 도와달라고.

동시에 꽃봉오리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지미를 향해 다가오던 추격대가 비명을 내질렀다.

흙이 완전히 씻겨 나간 꽃봉오리는 자세히 보니 아주 자그마한 연꽃이었다. 그것이 이윽고 만개하듯 활짝 펼쳐지더니 안쪽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검은 정장을 입은 미남자였다.

“저건 또 뭐야?”

추격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이 상황을 바라봤다.

난데없이 꼬맹이가 뭘 쥐고 있나 싶더니 빛이 터져 나오고, 그 안쪽에서 사람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추격대는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뭐가 어찌 됐든 다 죽이거나 잡아가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결론이었다.

“음?”

연꽃에서 튀어나온 남자는 감았던 눈을 떴다.

“여긴…….”

그는 아직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단서가 더 필요했다.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니 보이는 것은 이쪽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3명의 남자와 자신의 발아래에 쓰러져 있는 10살 남짓한 남자아이 하나가 전부.

일단은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은 3명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죠? 그리고 시간은 또 얼마나 흘렀는지…….”

“죽어!”

챙강!

남자 하나가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검을 휘두른 남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어?”

“초면에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다니, 무례하네요.”

연꽃에서 튀어나온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는 조금 전까지 그가 휘둘렀던 검날이 반으로 똑 부러진 채 잡혀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분명 검을 휘두를 때까지도 이 정장 입은 녀석은 자리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다들 동시에 덮쳐!”

보통 녀석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눈앞의 녀석은 단순한 불청객이 아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쓰러뜨려야 할 상대가 됐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머지 추격대원이 무기를 뽑았다.

남자, 강유현은 그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상황을 보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없는 사이에 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어차피 무슨 질문을 해도 쉽게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고.”

유현은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쪽을 향한 지미의 시선에는 기대감과 호의로 가득했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알겠다.

“최대한 빨리 끝내 주지.”

유현의 얼굴에 검은 활자가 모이며 하나의 가면을 이루었다.

아포리아의 악마가 5년 만에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 * *

“와.”

지미는 눈앞의 광경에 연신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10살짜리 아이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라고 해도 제대로 된 미사여구나 어휘가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지금 광경을 봤다면 지미처럼 감탄사 말고는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단 1초.

추격대로 편성된 남자 셋이 쓰러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유현이 가면을 쓰고, 그 몸에서 어둠이 폭발한다 싶더니 세 남자가 쓰러졌다.

그 모습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정작 이 광경을 초래한 장본인인 유현은 지미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채 허공을 보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라플라스. 라플라스 없나? 맥스웰. 데카르트. 다윈. 내 말 들리나? 아무도 없어?”

평소였다면 부르자마자 바로 달려왔어야 할 네 악마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포리아의 가면은 그대로 쓸 수 있고, 네 악마의 힘도 얼추 다룰 수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네 악마는 유현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이리라.

‘링크가 끊어지기라도 한 건가.’

대체 정신을 잃고 얼마나 되는 시간이 흐른 거지?

유현의 시선이 이내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미를 향했다.

“아.”

지미는 유현의 눈빛이 몸에 닿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유현은 한숨을 내쉬며 지미에게 다가와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 줬다.

“아, 가, 감사합니다.”

“이름은?”

“지미, 에요.”

“지미?”

그 이름에 유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지미는 혹시라도 자신이 이 구세주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닌가 황급히 머리를 굴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한국 이름이 아닌데. 해외에서 입국한 건가? 어디 출신이지?”

“네? 해외라뇨? 전 투르도 마을 사람인데요.”

“투르도……?”

유현은 대화의 핀트가 어딘가 엇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은?”

“한국이요? 아, 그러고 보니 누나한테 들은 게 있어요. 5년 전에는 여기가 한국이었다고.”

“5년 전?”

“네. 5년 전, 세상에 대폭발이 일어난 이후로 나라의 경계가 사라졌어요.”

“……그 대폭발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봐.”

지미는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유현에게 전부 설명했다.

전부 다 잠자리에 들기 전 누나에게 동화처럼 들었던 것들이었고, 지미는 머리가 좋아서 그걸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5년 전에 금역, 그러니까 저희가 있는 지금 이곳에서 대폭발이 일어났어요. 강릉이라 불리던 곳은 그대로 사라졌고, 그 이후 세상이 변했죠.”

“……그랬나.”

유현은 자신이 기절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파편의 폭탄이 터지기 전, 남은 힘을 쥐어 짜내며 그것을 억누르려 할 때 석가모니가 나타나 그를 구해 줬다.

선각자는 자신을 희생해서 유현을 구하고 지구의 멸망을 막아 냈다. 원래라면 세상 전체까지는 아니어도 한반도 일대를 모조리 날려버 릴 폭발은 주변 반경 수백 미터만 뒤엎고 사라졌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발생했다.

악몽세계는 사라졌지만, 하계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터진 일은 상계에서도 좌시하고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지구가 혼성계에 완전히 들어가게 됐다고?”

“네.”

지미가 말한 지난 5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넘어서, 초동(超動)의 시대라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대폭발과 1세대 성령의 개입, 그리고 그의 소멸. 이후 변해 버린 혼성계의 정세까지.

재단이 직접 나서서 지구의 수준을 끌어올렸고, 지구는 곧바로 혼성계에 편입됐다. 국가의 개념이 사라지고 물질은 곧 이야기로 대체됐다.

전생에서 혼성계에 오는 데 5년이나 걸렸던 과정이 한 달로 단축됐다.

‘결국, 이곳의 지구는 내가 알던 그 지구가 아니라는 거로군.’

지구이되 지구가 아니다. 지형도 대륙도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사는 사람들은 그대로지만, 삶의 방식도 바뀌었다. 당장에 이 지미라는 아이가 그걸 의미했다.

지구는 혼성계의 일부가 되었고, 그들이 지금 대화를 나누는 이곳은 거대한 세계 중에서도 가장 외곽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녀석들은 대체 뭐지?”

유현은 쓰러진 추격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도시에서 온 군단 휘하의 병사래요.”

“군단?”

“군주를 섬기는 병사들을 총칭하는 말이에요.”

“군주는 또 뭐고.”

지미는 이 남자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싶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오히려 지미는 지금 구세주에게 도움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군주는 초월자보다 훨씬 센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에요. 아, 물론 전부 다 사람은 아니지만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군주 중에서는 성령들도 더러 있거든요.”

“그렇군. 군주란 결국 초월자를 넘어선 강자……인가.”

5년 전까지만 해도 초월자의 ‘초’자도 보기 힘들었는데, 지난 세월 동안 레벨 100을 넘어 초월자가 된 사람들이 꽤나 늘어난 듯싶었다.

물론, 같은 초월자여도 서로의 실력은 나뉘기 마련이다. 초월자 중에서도 더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일부 초월자들은 스스로 격을 넘어서거나, 혹은 상위 성령에게 힘과 지위를 받으며 ‘성령’의 자리에 올랐다. 또 다른 일부는 인간으로 남은 채로 초월자를 유지하며 더욱 강해지기도 했다.

그중에서 초월 지경이 상급을 넘어선 자들에게 ‘군주’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즉 군주란 초월자를 넘어서서 혼성계에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하고 있는 성령,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혼성계에서 핵심적인 구역은 대성군이, 그다음으로 중간 크기의 구역은 일반 성군이. 그 밖에 나머지 구역은 군주들이 차지하고 있군.’

유현이 지금 서 있는 이 땅은 혼성계의 가장 바깥쪽이며, 군주의 지배를 받는 영토라고 한다.

“저희 마을에 쳐들어온 것도 군주의 휘하 군단이었어요.”

“그래. 군단이 군주의 병사인 것은 알겠어. 그렇다면 이 땅을 지배하는 군주가 있다는 말이네?”

“네. 조금 전 쓰러뜨린 나쁜 사람들이 흑뢰군주(黑雷軍主)의 병사들이에요.”

흑뢰군주라니. 이름만 들어보면 상당히 강해 보인다.

아니. 군주라는 존재 자체가 초월자보다 급이 하나는 더 높다고 했으니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다면 적어도 이 땅의 지배자에 대해서는 알아 둘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 흑뢰군주는 누구지?”

스스로 물어 놓고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지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유현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천후(魔天后), 강혜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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