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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51화 (35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51화

파편이 맹렬한 빛을 내뿜으며 주변 이야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악몽세계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한 명의 회귀자가 600번이 넘도록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쌓아 온 방대한 역사다.

그 모든 이야기가 파편 하나에 꾸역꾸역 밀려들어갔다. 파편에 모이는 힘은 금방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유현은 떨리는 눈으로 그걸 보며 직감했다.

이것이 폭발하면 이 자리의 모두가 죽는다.

-너, 파편이 정확히 뭔지는 아냐?

유현은 오엘로와 예전에 나눴던 대화를 상기했다.

-말씀해 주셨잖습니까. 파편은 로고스가 만든 태초의 서, 코덱스가 찢어진 조각이라고요.

-그래. 근데 그건 말 그대로 사전적 의미라는 거고. 이 파편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녔는지 아냐고 물은 거다.

-흠. 글쎄요.

유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파편이 정말로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은 유현도 익히 아는 바다. 당장에 그가 지니고 있는 라플라스의 힘부터 해서, 맥스웰, 데카르트, 다윈으로 얻게 된 힘은 일반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역시 아직은 잘 모르는 거 같구나.

-제가요?

-파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오엘로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유현은 마땅히 반박할 수 없었다. 본인도 가끔 파편의 힘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기는 했으니까.

-코덱스가 세상의 근간이라면, 그 파편은 세상의 조각이라고 할 정도인데 왜 그렇게 파편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 약해 빠진 지 궁금하지 않았어?

-그런 적이 있기는 했죠. 파편을 지닌 녀석들치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해서, 이렇게 빨리 모아도 되나 싶었으니까요.

-그게 바로 놈들이 파편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편의 제대로 된 힘이요?

-너도 봐서 알고 있을 거다. 게오른. 그 얼어붙은 성령이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 바로 파편 때문이다. 게오른이 비록 반쪽이나 되는 힘을 따로 놔두고 있었지만. 바꿔 말하면 성령이 무려 절반이나 되는 힘을 아직 지니고 있었다는 소리야. 그런 녀석이 파편에 타락해서 그 꼴이 됐다.

-……그 말은 즉, 파편의 진정한 힘은 지금까지 제가 본 것과 다르다?

-다르다 뿐일까. 네놈이 지닌 그 맥스웰의 힘만 하더라도, 당장에는 확률에 개입하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범용성은 훨씬 더 크다. 라플라스도, 데카르트도, 다윈도 마찬가지지. 파편은 하나하나가 말 그대로 거대한 힘 덩어리다. 아주 사소한 조각조차도 성령 하나를 그 꼴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지녔지.

-그런데, 왜 파편 소유자들은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거죠? 그들은 파편의 선택을 받은 거 아니었습니까?

-선택을 받았다 해서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 파편에게 주인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는 있다고 하지만, 말을 할 줄 알거나 생각할 줄 아는 이성과 지능은 없다. 일종의 거대한 본능과 흐름에 이끌리는 녀석들이거든.

-그래서요?

-하계, 그것도 지구의 너희들의 시선에 맞춰서 말하면 일종의 애완동물이라고 보면 된다. 말도 할 줄 모르고, 네 뜻대로는 따르지만 네가 시킨 것을 뭐든지 하는 건 아니지. 강아지를 키운다고 해서 강아지의 모든 것을 네가 다룰 수는 없다. 강제로 하려하면 녀석은 오히려 이빨을 드러낼지도 모르지.

파편이란 그렇게나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것이라고, 오엘로는 말했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다루려면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파편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네가 다루는 그 파편의 힘도, 본래 힘에 비하면 단 1할도 되지 않아.

-……그 정도였다고요?

-파편 하나가 반쪽짜리 2세대 성령을 그 꼴로 만들었어. 제대로 된 파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를 리가.

-그러면 파편의 힘을 완전히 100% 사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런데 정말 파편 하나의 힘을, 그것도 수준이 높은 파편의 힘을 100%까지 끌어낼 수 있다면…… 최소한 규모를 행성 단위로 기준을 잡아야 할 거다.

-……행성 단위라니. 스케일이 갑자기 너무 커지는데요.

-파편 하나가 성령보다 못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겠지. 그러니까 너는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파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 파편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나는 파편의 위치를 알 뿐 그걸, 어떻게 쓸지는 모르니까. 그건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다만…….

-다만?

-프라이티온이 만약 파편 하나를 통째로, 게오른을 타락시킬 때처럼 병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지금의 너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다. 아니, 놈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파편에 담긴 거대한 힘을 한꺼번에 폭발시켜서, 폭탄처럼 쓸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것을 터뜨렸을 때 위력은, 행성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물론, 그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다. 애초에 폭탄으로 활용하려면, 그것에 반응할 정도의 연료가 필요하지.

-그 연료가 바로 이야기군요.

-그래. 찢어진 종이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자뿐이니까. 물론 그 정도의 이야기를 쏟아부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계에서 그만큼 거대한 이야기를 지닌 인간이 있을 리가 없잖아?

오엘로는 파편을 폭탄처럼 쓰는 것은 가능성만 있다고 했을 뿐이지 그럴 걱정 자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유현도 조금 불안해하면서도 오엘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유현은 자신의 안일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럴 일이 없다고,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의심했어야 할 자신이 가능성을 외면해 버렸다.

‘내가 안일했어.’

오엘로는 하계에서 이만한 이야기를 모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가 딱 한 명 있었다.

지금까지 무수한 회차를 반복해 역사를 쌓아 온 회귀자를,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권지아가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이야기가 구현된 악몽세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무너지며 잘게 부서진 그 잔해가 파편에 빨려 들어가 연료로서 작용했다.

‘막을 수 있나?’

유현의 눈이 미래를 봤다. 막을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지금 폭발하려는 이 파편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파편의 빛은 점점 더 강해지며 어느 순간 크기를 줄여 나가며 콩알만 한 크기로 압축됐다.

유현이 뒤를 돌아봤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당혹스럽고 긴장되며 그러면서도 기대 어린 눈빛을 보며 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힘을 합쳐서 파편의 폭주를 억누르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치기에는 파편의 상태가 임계점을 넘었다. 지금 당장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도.’

살릴 수 있는 길은 있다.

유현은 동료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도해도 괜찮다고.

그런 유현의 미소에서 무언가를 읽었던 걸까. 권지아는 불안감에 떨리는 시선으로 유현의 이름을 불렀다.

“유현, 너 지금…….”

유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상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돌렸다. 움직인 것은, 주위에 도열해있던 네 악마들이었다.

“어, 어어?”

“뭐야! 이거 놔!”

“갑자기 무슨 짓이냐!”

네 악마가 각기 한 사람씩 붙들고 달렸다. 거기에 저항하고 발버둥 치려고 했지만, 모든 힘을 소진한 그들이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악마들은 제단에서 멀어졌다. 권지아는 라플라스의 손에 붙들린 채, 멀어지는 유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안 돼…….”

그녀가 유현을 향해 애타게 손을 뻗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허공에 나부낀다.

“가지 마…… 제발…….”

그 목소리가 닿았던 걸까. 유현이 뒤를 돌아보며 입 모양으로 마지막 말을 전했다.

‘미안해요.’

그 뜻을, 권지아를 포함한 네 사람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안 돼! 이거 놔! 유현 씨! 유현 씨이이이!!”

“형! 뭐 하려는 거예요!”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유현은 눈앞의 파편에 집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소리가 멀어진다.

악마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 폭발의 범위 바깥으로 동료들을 데려가라고 명령을 내렸으니, 그들은 멈추지 않고 착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이 파편의 폭발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

‘이번만큼은 살 수 없겠지.’

파편에 담긴 힘은 거대하다. 그것은 일개 개인이 억제할 수준을 넘어섰다. 만전의 상태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이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해야 한다. 이것만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다윈의 육체로도 이 폭발을 견딜 수는 없어.’

그러니 미련을 끊어 낸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자신이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그 장소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쿠르르르릉! 세상이 진동했다.

제단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제단이 무너지고, 유적의 형태를 한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찢겨 나갔다. 하늘위로 먹구름이 몰려와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세상의 멸망을 방불케 하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이곳이 그가 마지막으로 서는 최후의 무대였다.

지금까지 보여 줬던 모든 이야기의 종착점이자 이야기의 끝.

그러니까.

떠날 거라면 추하지 않게.

최소한 모두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멋있게 가자.

“백련. 도와줄 수 있겠어?”

[……이 바보야.]

백련은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이 남자의 곁을 끝까지 지켜 주는 것은 말 많은 검이었다.

[성령들이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고 외칩니다.]

[모두가 어서 도망치라고 당신을 닦달합니다.]

시스템 창이 시끄럽게 울린다. 성령들은 유현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현은 그래도 상관없었다.

하늘의 별빛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그들은 유현이 끝까지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그의 최후를 직감했다.

그것은 대성군 에덴의 미카엘도 마찬가지였다.

이 바보 같은 남자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희생을 택했다. 미카엘은 그 모습에 기시감을 느꼈다. 아주 먼 과거, 분명 그녀는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체 누가 그랬었는지, 기억이 흐릿해서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멀리서 거대한 힘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탄?]

눈을 감아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그의 존재.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사탄의 힘은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시스템 창 너머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들이 지켜보는 지구의 너머에서 다가오는 중이었다.

미카엘은 지금 사탄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눈치챘다.

[너 설마……!]

그녀의 비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주를 누비는 거대한 뱀은 저 멀리 보이는 지구를 육안에 담는 데 성공했다.

늦지 않게 도착했다. 시간은 아직 충분했고, 지금이라면 충분히 도울 수 있다.

그것이 설사 자신이 죽게 만들지라도.

유현은 여기서 죽으면 안 됐다.

그렇게 생각하려는 순간, 은은한 빛 하나가 사탄의 앞길을 막아섰다.

[……당신은?]

사탄의 눈이 상대를 보고 찢어져라 커졌다.

* * *

임계점에 도달한 이야기가 팽창을 시작했다.

유현은 곧바로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 짜냈다. 끈적거리는 안개처럼 퍼진 칠마흑천신공의 기운이 책 주위를 둘러쌌다. 이를 악물고 전신이 으스러져라 힘을 주며 파편을 억누른다.

콰아아아!

유현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팽창하는 파편의 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념을 담은 강기마저 밀어내며 점점 더 거대해졌다.

‘밀려난다!’

유현은 자신의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파편의 크기는 어느덧 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부풀었다.

‘지금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절망감이 엄습했다. 찰나라도 시간을 벌어도 좋으니 이 자리에 남았는데, 남은 힘으로는 폭발을 단 1초조차 미루지 못했다.

이것이 터지면, 지금 대피시키고 있는 일행들도 휩쓸린다.

‘그래도 막아.’

입가에 느껴지는 피 맛에 멀어져 가는 이성을 부여잡으며, 유현은 두 손으로 점점 거대해지는 구체를 억눌렀다. 그것으로 부족해 이마를 들이받았다.

찌지지직! 양손을 타고 흐르는 힘에 정장이 손목부터 팔뚝까지 찢어진다. 핏줄이 터지고 근육이 찢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피는 이윽고 텍스트로 변했다.

‘막아!’

단 1초라도 좋으니까.

‘버텨!’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휩쓸리지 않을 때까지……!’

[잘 버텼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눈앞의 폭발하기 직전의 빛과는 질적으로 다른, 평화롭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빛이.

그 익숙한 목소리에 유현이 눈을 크게 뜨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선각자님……?”

선각자 석가모니.

초라한 남자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을 타고 흘러나오는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거대한 손으로 변해 파편을 쥐었다.

“지금, 이게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유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석가모니가 하고 있는 짓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스템을 무시하고 하계에 직접 강림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모든 힘을 써서 파편이 폭발하는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석가모니는 얼굴빛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시스템을 거역한 그에게 반동이 없을 리가 없었다. 전신에 가해지는 고통은, 아무리 성령이라 하더라도 인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영혼이 찢어지는, 그 이상으로 존재가 말소되는 끔찍한 통증일 텐데도 석가모니는 웃었다.

“대체, 대체 왜……?”

[당신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주위로 황금빛이 뻗어져 나간다. 그것은 한반도를 뒤덮는 것을 넘어, 지구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빠직! 석가모니의 피부가 유리처럼 금이 갔다.

[끝없이 반복되며 끝나지 않는 영겁의 굴레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쯤이야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석가모니는 자신이 내려왔던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대체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유현은 알지 못했다. 그것을 신경 쓰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긴박했다.

석가모니는 한 손으로 파편을 억누르고 다른 한 손을 유현에게 뻗었다.

유현의 몸이 커다란 연꽃에 삼켜졌다.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고 이런 무례한 짓을 한 것을 용서해 주시길.]

석가모니가 한 사죄의 말을 끝으로 남은 힘을 모두 폭발에 집중했다.

빠직거리며 그의 몸이 손끝부터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무표정하던 석가모니의 표정에 아련함이 깃든다.

내 소중한 제자 출라판타카야. 너는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느냐.

그게 무엇이든 묻지 않으마. 하지만 이 한 가지만 대답해다오.

바라던 것은, 나처럼 이루었느냐?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파편이 폭발했다.

───────!!!

세상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섬광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멀리서부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컬렉터들이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윽고 그들은 폭발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해를 미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멍하니 팔을 내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빛이.

따스한 빛이 그들을 지켜 주고 있었다.

폭발은 유적 바깥까지 뻗어 나가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폭풍은 경계선을 긋기라도 한 듯 일렁이는 반투명한 막에 막혀 안쪽에서만 요동쳤다.

그 아득한 광명의 너머에서 한 존재가 희미하게나마 그들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그날 악몽세계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부처님이 내려와, 세상을 구했다고.

하지만.

현장에 남아 폭발을 억누르고자 했던 강유현 텔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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