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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45화 (34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45화

유적의 안쪽은 바깥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넓었다.

특이한 공간. 유현이 이곳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그랬다.

그의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구조와 공기를 타고 흐르는 기묘한 기운까지.

심지어 어디선가 상처가 오랫동안 곪아서 썩어 버린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단순한 유적지 같은 곳이 아니야.’

유현은 벽면을 손으로 쓰윽 만졌다. 분명 재질만 보면 아주 단단하게 느껴져야 할 유적지인데, 만지는 순간 느껴지는 감촉은 말랑거리는 무언가를 만지는 쪽에 가깝다.

단지 벽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 진짜 벽이 아니었다. 그리고 벽을 타고 흐르는 액체도 누수로 인해 흐르는 물이 아니었다.

체액.

이 벽 자체가 꿈틀거리는 거대한 살덩어리였다.

유현은 곧이어 이 유적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의 중심에 지아 씨가 있다는 건가. 살덩어리 유적지라니, 기괴한 것도 정도가 있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온갖 기억들이 혼재되어 이 끔찍한 괴물을 탄생시킨 건지 모르겠다.

계속 여기에 머무르면 자신도 정신이 이상하게 될 것만 같았다.

유현은 최대한 신속하게 권지아를 구하기로 했고, 그렇게 움직이려 하는데.

쩌어어억.

벽면의 살점이 기이하게 벌어지는 소리와 함께 갈라진 틈새로부터 환상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끈적거리는 체액을 가득 묻히며 쏟아져 나오는 것은 맨들맨들한 흰 피부를 지닌 괴인이었다. 놈들은 피막 같은 것을 쭈욱 찢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건가.’

[으에에엑. 이게 뭐야! 징그러워! 더러워!]

‘뭐긴 뭐야. 모체가 새끼를 치는 거지.’

이 유적지 자체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이며, 그 본체는 괴물들을 낳는 모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얌전하다 갑자기 이렇게 새끼를 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모체가 유현의 침입을 알아차리고 내부에서 배제하려고 하는 것.

단순히 적을 없애고 싶어서가 아니다. 안쪽에 있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일종의 방어 기재에 돌입한 것에 가깝다.

[어쩔 거야?]

“돌파한다.”

유현은 무기를 뽑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분명 환상체는 매우 위협적인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유현의 상대가 아니었다.

쿠웅!

내공을 실은 한 걸음. 그 발을 내뻗는 순간 유현을 향해 달려드는 모든 환상체들이 압력에 짓눌려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 광경을 서수민이 봤다면 매우 놀라워했을 것이다.

유현은 지금 칠마흑천신공의 변초식인 천압묵파를 새롭게 개조해서 사용했다.

이미 한 번의 변화를 가한 변초식에 또 다른 변화를 가해 사용하는 것. 본래 무공의 창안자인 서수민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고, 유현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방해받을 시간 없어.”

꿈틀거리는 통로가 갑자기 확 좁아지기 시작했다.

[모체가 길을 못 가게 막으려고 해!]

“뚫으면 그만이야.”

유현이 백련을 손에 쥐고 작살의 형상으로 바꿨다. 작살을 고쳐 쥔 유현은 어느덧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살덩어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리바이어던]

검은 바다의 짐승이 입을 벌리고 나가며 길을 뚫었다. 비좁던 통로가 확 넓어지며 거대한 상처의 길이 생겨났다.

찢어진 살점들이 떨어지고 냄새나는 액체가 곳곳에서 터진 파이프처럼 뿜어졌다.

[으윽. 더러워!]

“간다.”

유현은 리바이어던이 만든 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달렸다.

* * *

“세상에 이게 대체 뭐야.”

“점점 커지고 있어.”

강릉에 터진 폭주세계를 막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컬렉터들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돔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분명 처음 들었을 때는 강릉 전체를 삼켰다고 했는데, 어느덧 돔은 그 범위를 차근차근 넓히며 강원도 동부 지역을 장악했다.

“크기가 직경 50km를 넘었다고?”

“이미 평창까지 집어삼키고 있어. 게다가 점점 확장 속도가 빨라져서, 서울까지 도달하는 데 6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야.”

“이런 미친. 대체 이런 건 뭣 때문에 터지는 거야!”

협회 직원들이 알려 준 브리핑 자료에 의하면, 현재 폭주세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강릉에서 시작된 폭주세계는 어느덧 평창까지 닿았고, 그 크기가 직경 50km에 도달.

커지면 커질수록 팽창하는 속도라 빨라지고 있어서 서울까지 닿는 데 6시간.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도까지 닿는 데는 10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이 사태를 막지 못하면 10시간 뒤 한국은 폭주세계에 완전히 집어삼켜진다는 소리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온갖 상급 컬렉터들과 워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분쇄기! 분쇄기의 사용은?! 텍스트 슈뢰더 있잖아!”

“그게, 폭주세계가 너무 거대해서 분쇄기로도 커버가 안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저 안쪽에 분쇄기 가지고 들어가려면, 얼마나 많은 컬렉터가 필요할지.”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곳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분쇄기를 사용하려고 해도 폭주세계의 크기가 너무 커진 탓에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 미지수였다.

전조 현상이 없이 발생하고, 발생 3시간 만에 저기까지 크기가 확장되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탓이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량의 인원을 때려 박아서 내부의 핵으로 추정되는 코어를 없애는 게 전부.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컬렉터가 죽어 나갈지 누구도 모른다.

그래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물러날 곳도 없다. 해외로 도망친다고 해서 저 폭주세계가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각 조별로 서둘러!”

“차분히 들어가라! 안쪽에서 통신은 먹히지 않으니 조원들 확인 잘하고!”

컬렉터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를 보더니, 이내 결심한 듯 폭주세계 안쪽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모두가 안쪽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놀랐다.

“미친 이게 대체 뭐야.”

“이건 또 무슨 세계야? 한두 개가 합쳐진 게 아닌 거 같은데.”

“융합형 사상세계? 그런데 아무리 대충 훑어도 50개 이상이잖아.”

그들을 반겨 준 것은 단순한 사상세계가 아니다. 왜 폭주세계라고 불렸는지 알 정도로 안쪽의 모습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온갖 기이한 것들이 섞이고 뒤틀려서 존재하는 공간. 마치 정신이상자의 끔찍한 미적 감각의 상상물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생겼다.

기존에 있어야 할 산맥은 끔찍한 살덩어리와 금속의 구조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위를 누비는 것은 처음 보는 환상체들이었다.

“이런 젠장! 온다! 숫자가 많아!”

“모두 진열을 짜라!”

외부에서 들어온 컬렉터를 본 환상체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숫자만 해도 족히 수천은 넘어 보였다.

단지 외곽에 막 들어왔을 뿐인데, 반겨 주는 것이 환상체 대군이라니.

일부 컬렉터들의 시선이 환상체들 그 너머를 향했다.

‘대체, 저 안쪽에는 뭐가 있는 거지?’

‘우리. 무사히 저기까지 갈 수는 있을까?’

잡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지척까지 접근한 환상체들을 상대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니까.

이윽고 컬렉터 군단과 환상체 대군이 서로 충돌하며,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 *

“쓰읍. 이거 큰일이네.”

유영민은 입가에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자신의 총을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훌륭하게 사용해 온 저격총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 유영민은 백기사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분전했지만, 그의 공격은 백기사가 두른 기묘한 힘을 뚫지 못했다.

‘온갖 강화 버프를 두르고 특수 관통탄까지 다 사용해도 뚫지 못하다니.’

게다가 상대방의 공격은 한 방만 맞아도 위험하다. 실제로 조금 전 화살이 어깨를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상처가 푸르죽죽하게 죽어 갔다.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핑 돌았다.

화살에 담긴 온갖 질병의 힘이 그의 몸을 좀먹어 간다.

‘저걸 어떻게 이겨.’

이쪽의 공격은 먹히지 않고, 반대의 공격은 한 대만 맞아도 위험하다.

게다가 이미 질병까지 걸린 상태라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 유영민의 앞으로 말을 탄 백기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녀석의 부리부리한 시선이 유영민에게 저항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하 씨, 이거 참.’

평소의 유영민이었다면 승부가 나지 않은 시점에서 후퇴를 선택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싸움만 해 왔다. 하지만 이 녀석은 첫 탄환이 막힌 순간부터 느낌이 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고.

그러면 도망치는 것이 맞았다. 그게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대체 동료가 뭐라고.’

여기서 물러나면 유영민은 정말로 겁쟁이가 되고 만다.

안 그래도 이 외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을 배신하다니.

살겠다고 동료를 버리고 혼자 떠나면, 그때는 정말로 혼자가 되고 만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

털컥.

유영민은 망가진 저격총을 바닥에 버리고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무기는 단순히 총기에 지나지 않고 원거리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가능하다.

“아직 안 끝났다. 활 대 활. 한 번 더 붙어 봐야지?”

유영민의 도발에 백기사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가 타고 있는 백마도 유영민의 행동에 분노했는지 거친 콧김을 내뱉으며 투레질을 했다.

유영민은 그 모습을 보며 애써 강한 척을 하며 피식 웃었지만, 속으로는 죽을상이었다.

‘아, 이거 진짜 죽겠네.’

그래도 저 녀석에게 한 방이라도 먹여 주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딱 한 발이라도 좋으니 녀석에게 반격만 하면.

[그런 제멋대로인 행동은 별로 좋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누, 누구?”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영민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새까만 연미복과 머리에 쓴 검정 실크햇. 얇은 건틀릿을 낀 양손에 쥔 것은 그도 익히 아는 리볼버였다.

[당신과는 꽤 오래 붙어 있던 거로 아는데, 기억 안 나시나요?]

“아, 아! 맥스웰 씨!”

[드디어 기억하셨군요.]

“왜, 왜 갑자기 저를…….”

[주군께서 당신들이 혹시 위험하면 도우라고 하셨거든요. 지금까지는 잘하고 계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지만, 저 백기사를 상대로는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겠더군요.]

맥스웰은 그렇게 말하며 백기사를 향해 리볼버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리볼버의 탄환이 백기사를 향했다. 백기사는 평범한 리볼버 공격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이 탄환도 자신의 방어를 뚫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이내 바뀌었다.

퍽!

맥스웰이 쏜 총알이 백기사의 몸에 박혔다. 백기사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상처로부터 새하얀 피가 흘러내린다 싶더니, 이내 시간을 되돌린 듯 순식간에 복구됐다.

“사, 상처가……. 어떻게 되먹은 회복력이야.”

[이런. 아무래도 제 공격으로는 저 자에게 상처를 입히기엔 위력이 부족한 것 같군요.]

“그러면 어쩌죠?”

[영민 씨가 도와줘야겠습니다.]

“네? 하지만 저는 저 백기사의 방어를 뚫지 못하는데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맥스웰은 점잖게 웃으며 가면 속에서 붉은 눈을 빛냈다.

[제가 영민 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영민 씨가 쏘아 낼 수 있는 강력한 위력과 저의 확률 개변이 합쳐진다면 저 백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백기사가 그것을 얌전히 기다려 주지 않겠지만 말이다.

상처를 입어 당황하던 백기사는 이윽고 분노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맥스웰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었다.

이윽고 빛살처럼 쏘아진 화살이 정확히 맥스웰의 미간에 닿으려는 순간, 화살이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리더니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맥스웰이 확률에 개입해, 자신이 맞을 확률을 비틀어서 빗나가게 만든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유영민은 ‘이대로 그냥 이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맥스웰의 악마가 말했다.

[많이는 못 씁니다. 저라고 기력이 무한한 것은 아닌지라 오래 버티지 못해요. 조금 전처럼 막을 수 있는 것도 앞으로 5번 정도가 한계. 이 싸움을 끝내려면, 영민 씨가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할게요.”

[좋습니다.]

맥스웰은 곧바로 유영민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의 쪽으로 끌었다. 유영민이 엇 하는 순간 조금 전까지 그의 머리가 있던 곳에 백기사의 화살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저쪽도 저희가 뭘 하려는 건지 대충 눈치를 챈 것 같네요. 제가 아닌 영민 씨를 노리는 걸 보면 말이죠.]

“일단, 어떻게 할까요?”

[시간을 법니다. 제 확률 개입을 당신에게 완전히 전수하기 전까지.]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잊었습니까? 저는 ‘불가능’한 것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당신처럼.]

맥스웰은 모든 가능성에 개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완전히 가능하거나,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100%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영민은 맥스웰의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할게요.”

[좋습니다. 저 머리에 뿔 난 백기사를 상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자고요.]

유영민과 맥스웰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백기사에게 도망쳤다.

분노한 백기사가 둘의 뒤를 쫓았다.

* * *

콰앙!

살점의 벽을 뚫고 유적의 가장 안쪽에 도달한 유현은 눈앞의 제단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제단의 꼭대기에는 권지아가 눈을 감은 채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너무나도 평온해서 마치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와 연결된 왕좌는 제단과 기이한 촉수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은 실시간으로 꿈틀거리며 권지아로부터 무언가를 주입받았다.

“지아 씨!”

권지아는 유현이 애타게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 대신 유현의 외침에 답한 것은 어린 양의 울음소리였다.

매애애애애.

유현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결국 우려하던 4번째의 봉인까지 풀리고 말았다.

유현과 권지아의 사이에 있는 계단의 중심. 한 존재가 스산한 검은 기운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해골로 이루어진 말을 타고 한 손에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낫을 쥔 해골 기사.

“죽음의…… 청기사.”

전생에 유현을 죽이고, 99번째 시련의 대미를 장식했던 종말의 청지기.

그가 권지아의 악몽을 빌려 다시 유현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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