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41화
타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총탄의 소음과 함께 정면에 앞서나가던 리더가 오른팔을 뻗었다.
전완근이 꿈틀거리더니 이윽고 찬란한 빛이 흘러나오며 전신을 가리는 황금빛 방패가 생성됐다.
유영민이 쏜 마탄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리더는 팔뚝을 타고 흐르는 묵직한 충격에 눈살을 찌푸렸다.
“소리가 가깝다! 녀석이 멀지 않았어!”
“이대로 가면 된다!”
처음 기습으로 1명의 팀원을 잃었지만, 그 이후 네 명의 용병들은 단 한 차례의 피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초장거리에서 저격을 할 정도로 실력자라는 것은 알겠지만, 활도 아니고 총을 사용한다면 그들도 대처할 방안은 얼마든지 있었다.
활과 다르게 총은 곡선의 공격이 불가능하다. 곡사가 가능한 활과 비교하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쉬웠다.
무엇보다 저격수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근접전에 취약하다는 것.
붙기만 하면 이쪽의 승리였다.
리더는 추가로 날아오는 탄환을 막아 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녀석! 끝까지 제자리를 고수하겠다는 건가?’
저격수는 자신의 위치가 들통 나면 곧바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모든 저격수가 반드시 머릿속에 기억해야 하는 기본적인 교범이기도 했다.
그런데, 상대는 이쪽이 접근하고 있는데도 계속 자리를 유지한 채 총을 쏘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간에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어 천천히 접근했지만, 이윽고 함정의 흔적은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고 생각이 바뀌었다.
근처를 지키는 동료가 있다면 그들이 도달하기 전에 중간 길목을 막아섰을 터다.
지금까지 방해라고 할 만한 걸 받지 않았다는 건 동료도 없다는 소리.
‘그 먼 거리에서 초탄을 명중시키는 능력을 지녔으면서 제자리를 지킨다고? 중간에 함정도 파 놓지 않고 기본적인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은, 재능만 믿고 자라 온 애송이라는 뜻.’
간혹 그런 녀석들이 있다. 너무나도 굉장한 재능을 지니고 있어서, 기본적인 것을 터득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에만 매몰되는 녀석들이.
기초를 탄탄히 다지지 못한 천재들은 진짜 천재가 아니다. 알량한 능력 하나만 믿고 스스로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의 그 날카로운 공격도 우연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애송이에게 팀원 하나를 잃은 것은 나름 뼈아픈 손실이지만, 그만큼 개인의 몫으로 돌아오는 황금빛이 늘어나는 건 나쁘지 않았다.
“다 왔다!”
이윽고 총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올 정도로 접근했을 때.
“어?”
리더는 풀숲에 놓인 저격총을 보고 사고가 실시간으로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총은 있다. 그리고 이 총은 지금도 방아쇠를 당기며 격발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저격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없었다.
저격수가 없이, 총이 저절로 움직이며 이쪽을 저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함정!’
대장이 그것을 눈치채고 부하들에게 외치는 것보다도 먼저.
그들의 머리 위, 하늘이 빛이 번쩍였다.
“피해!”
리더는 그렇게 외치며 황금빛 방패를 하늘을 향해 치켜세웠다.
동시에 허공에서 무수한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이쪽을 확실히 죽이기 위한 광범위한 공격. 화살 한 발 한 발에 담긴 힘은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몸을 지키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는데도 황금빛 방패가 끝부분부터 갉아먹히듯 부서져 나간다.
“으아아아아!!!”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내질렀다. 리더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면서 화살 비를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고, 지면에 꽂힌 화살들이 잡초마냥 가득해졌을 때.
리더는 겨우 황금빛 방패를 거두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이봐! 괜찮나?! 다들 대답해!”
그렇게 고개를 돌린 그녀는 이윽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따라온 3명의 팀원이 모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생존자는 없었다. 리더는 이를 악물었다. 상대방을 얕잡아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말도 안 되는 함정을 파 놓은 적을 향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침착해. 녀석은 단순히 총만 쓸 줄 아는 게 아니야. 활도 쏠 줄 아는 거였어.’
그리고, 왜 이렇게 대놓고 방향을 알려 줬나 했더니 충분히 그럴 만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료가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단 한 명이 한 짓이야. 초장거리에서 총을 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광범위한 화살 비까지 내리게 한다는 것은, 상대방은 그야말로 원거리 공격의 스페셜리스트라는 뜻.’
보통 슈터들은 자신의 무기를 고를 때 활, 혹은 총 2개를 고른다. 그리고 그런 무기를 고르는 기준은 자신의 특성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두 개를 다 사용하는 슈터는 없다. 적어도 그녀의 상식에서는 그랬다.
쐐액!
멀리서 공기를 가르고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긴장하고 있던 그녀는 팔뚝에 황금빛을 두르고 그것을 쳐 낼 수 있었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온 공격이었지만, 이 정도는 조금 전 당했던 기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거리에서 이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를.
입가에 해골 모양의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고, 마치 레인저처럼 가볍고 활동적인 검은 복장을 입고 있는 모습.
녀석의 날카로운 시선과 마주하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이윽고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리더는 이를 악물고 파편의 힘을 끌어모았다.
‘죽여 주마!’
이윽고 그녀의 몸을 휘감은 것은 황금빛 갑주였다. 이 정도로 파편의 힘을 유지하는 것은 5분이 한계이며, 그마저도 지속시간이 끝나면 내리 2일 정도는 기절하듯 누워 있어야 했으나 그녀는 뒷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탓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저격수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녀는 챙겨 온 총과 쓸모없는 무기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양손에 각기 군용 대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영민은 시위를 매기는 대신 활을 거두었다. 그 대신 허리춤에 걸어 놓은 근접용 단검을 쥐고 그녀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뭐?’
그 광경을 본 리더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순간 화를 내는 것도 잊었다.
지금 저 저격수가 자신의 이점을 모두 벗어던지고 똑같이 근접전에서 싸우겠다고 한 것인가?
이 황금빛 갑주를 두르고 있는 자신을 상대로?
빠득! 리더는 이빨이 부서져라 악물었다.
‘그래 좋다. 어디 그러면 한번 가까이 붙어서 싸워 보자.’
그녀는 허벅지에 힘을 줘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갑주의 힘 덕분에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포탄처럼 쏘아졌다. 순식간에 유영민과의 거리를 좁힌 그녀가 양손으로 쥔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뱀의 독니처럼 떨어져 내리는 대검을 본 유영민은 차분하게 자세를 잡으며 그녀의 일격을 받아 냈다.
채앵! 허공에 불똥이 튀기며 두 사람의 시선이 엉켰다. 이쪽이 체중을 싣자 유영민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려났지만, 그대로 굳건한 두 다리는 쓰러지지 않고 육체를 지탱했다.
리더는 곧바로 다음 공격에 들어가고자 검을 고쳐 쥐었다. 유영민은 그 순간 단검을 버리고 그녀의 팔뚝을 쥐었다.
‘무기를 버렸다고?’
그 행동에 의아해하는 순간, 그녀의 시야가 허공에서 몇 바퀴나 돌았다.
이윽고 등 뒤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 갑옷을 뚫고 들어오는 통증에 리더의 눈이 부릅떠졌다.
“왜. 내가 근접전에도 약할 거라고 생각했어?”
유영민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주먹 위로 뚜렷한 권기가 맺히며 불꽃처럼 타올랐다.
“미안한데, 나는 근접전도 잘해.”
들어 올린 주먹이 황금 갑주 위로 떨어졌다.
* * *
유현이 손을 뻗었다. 검은 강기가 꽃잎처럼 퍼지며 책벌레를 둘러쌌다. 이윽고 펼쳐졌던 손이 꽈악 오므려지자 무수한 강기의 꽃잎은 칼날처럼 변해 책벌레를 향해 쏘아졌다.
책벌레는 그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몸을 한차례 웅크리고는 이윽고 포효를 내질렀다.
“■■■■■■!!!”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꽃잎들이 가루처럼 사라졌다.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은 그 광경에 혀를 찼다.
‘어중간한 공격은 전부 다 책벌레에 닿기도 전에 분쇄된다.’
밀도가 낮은 광역 공격 또한 마찬가지. 녀석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기준치 이상의 힘을 최대한 압축해서 날려야 했다.
책벌레가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에 발자국 형태로 땅이 소멸했다. 지척까지 접근하는 순간 쏘아지는 책벌레의 일격. 유현은 백련을 방패의 형태로 펼치며 녀석의 주먹을 막았다.
쩌엉!
백련을 타고 흐르는 충격이 유현의 몸을 미약하게 흔들었다.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이야기의 결속력 자체에 영향을 주는 파동이었다.
유현은 살짝 비틀거렸지만, 그의 몸은 이윽고 엄청난 속도로 복구됐다.
생명의 열매와 지혜의 열매, 거기에 감로까지 섞여서 만들어진 궁극의 육체는 사소한 상처는 가볍게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백련이었다.
“백련. 괜찮아?”
[어. 버틸 수 있어.]
책벌레가 상대라면 무기조차 닿기만 해도 가루가 되어 사라질 거다. 하지만 신화급 무구인 백련은 그런 책벌레의 일격을 받아 내고도 멀쩡했다.
[그래도 엄청난 위력이야. 내가 아닌 어중간한 무기라면 버티지도 못할 정도로. 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이 뚝 떨어진 거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하계에 책벌레가 나타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계해야 마땅했다.
[성령들이 책벌레의 등장에 당황해합니다.]
[일부 성령들은 책벌레가 뭐냐고 궁금해합니다.]
책벌레의 위험성을 아는 1세대 성령을 제외한 나머지 성령들에게 책벌레는 생소한 말이었다.
1세대가 아닌 이상 아주 먼 과거에 벌어졌던 신화 전쟁을 겪어 본 자들은 없었으니까.
1세대 성령들은 책벌레의 등장에 강렬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책벌레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
오히려 놓고 보면 시스템마저도 파괴하는 바이러스 같은 놈들이다.
[일부 성령들이 녀석은 약한 개체니 어서 쓰러뜨리라고 주장합니다.]
[성령들이 책벌레를 쓰러뜨리면 포인트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포인트까지 덩달아 준다는데, 거절할 수 있을 리가.
‘그래도 책벌레라. 오엘로님이 경고를 했을 정도라면 상당히 위험한 놈이라는 건 변함이 없을 텐데.’
책벌레의 위험성은 1세대 성령들의 기억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 위험한 녀석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유현이 상대하는 책벌레도, 수준만 놓고 보면 하급 중의 하급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놈들의 특성상, 아무리 최하급 책벌레라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위험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체, 이런 녀석이 어떻게 하계까지 기어들어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가면의 4개의 눈동자의 안광이 폭사했다. 유현의 주위로 소용돌이치는 강기가 이윽고 가늘게 압축되며 실처럼 변했다.
유현이 손을 뻗자 무수한 검은 실이 책벌레를 향해 쏘아졌다. 책벌레도 이번 공격은 위험하다 판단했는지 회피 동작에 들어갔다.
녀석의 등 뒤의 갑피가 열리더니 이윽고 반투명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책벌레의 신형이 길게 쭈욱 늘어나며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
“어딜.”
책벌레가 고공으로 벗어나는 것보다 유현이 녀석의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 더 빨랐다.
책벌레의 신형이 지면에 처박혔다. 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먼저 유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흑사뢰가 책벌레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녀석은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기운을 강하게 방출했다. 흑사뢰가 점점 희미해졌다. 유현은 곧바로 의념을 흑사뢰에 둘렀다.
자신의 의지를 기운에 불어넣는 수준까지 도달한 유현은 이미 초월자의 단계를 목전에 둔 상태. 아무리 책벌레라 하더라도 최하급이 감히 대적할 수 없었다.
“……!”
책벌레는 흑사뢰가 끊어지기는커녕 더욱 선명해지며 자신의 몸을 휘어 감자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이 책벌레의 마지막 반응이었다.
촤자자작!
유현이 손에 힘을 주자 흑사뢰에 묶인 책벌레의 전신이 잘게 갈려 나갔다.
책벌레의 파편은 활자조차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끝났군.’
책벌레의 능력은 매우 위험하지만, 유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성령들이 유현을 칭찬하며 무수한 포인트를 후원했다. 하지만 유현은 그런 후원의 세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상해.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 훨씬 더 강한 녀석을 불러야 했을 텐데, 이 정도로 약한 녀석을 보냈다고? 프라이티온이 보낸 것치고는 어딘가 많이 부족해. 설마 이게 녀석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까?’
상대방은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무려 태초의 서를 찢어 버린 장본인이다.
그런 프라이티온이 고작 하급 책벌레 하나만 움직이게 했을까?
무엇보다 책벌레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 성령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특히 1세대 성령들은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책벌레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프라이티온이 이걸 몰랐을 리가 없어. 이따위 책벌레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성령들의 경각심을 심어 주기 충분한 일이지. 그렇다면 본인에게 가장 큰 손해일 텐데, 왜 이렇게까지 손해를 감수하려고 한 거지?’
마치, 그걸 감안해서라도 이쪽의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처럼.
그것은 가능성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강혜림과 서수민으로부터 연락이 날아왔다.
[유현 씨! 들려요?!]
“무슨 일이죠?”
[지금 지아 씨를 도우러 강릉까지 왔는데, 상황이 이상해요. 아니, 저기 보이는 건 대체……치지지직!]
“혜림 씨? 혜림 씨!”
강혜림과의 통신이 끊겼다. 그냥 통신도 아니고 계약자와 텔러끼리 할 수 있는 염화였다.
한국 어디에 있어도 반드시 닿는 염화가 끊어졌다는 건 상황이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섰다는 소리다.
유현은 가면을 벗지 않은 채 질주했다.
휴식을 취할 시간 따윈 없었다. 음속을 넘어선 육신이 공기를 찢으며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여긴가.’
유현이 강릉까지 도착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한 유현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저건 대체…….”
강릉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돔 형태의 막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