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336화 (33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36화

“그래서, 가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요?”

“말도 아니었습니다.”

사탄과 둘이서 독대를 하는 유현은 지난 유배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다. 사탄은 묵묵히 유현의 말을 들으며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런’ 하는 감탄사를 흘리며 그의 말에 호응을 해 주었다.

그렇게 게오른의 최후와 레안이 새로운 성령에 등극했으며, 천체주식회사 내부 파벌의 큰 변동이 있다는 말을 끝으로 유현이 겪었던 장대한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었다.

“듣기만 해도 정말 범상치 않은 일들을 겪었군요.”

“뭐, 진짜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위기를 겪었죠. 사탄님이 주신 선물도 두고서, 거의 맨몸으로 그곳에서 움직여야 했으니까.”

특히나 라플라스가 없을 때 겪는 불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곳을 가겠다고 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 유현은 도박 수에 가까운 짓을 몇 번이나 벌이고, 그것을 전부 성공해 냈다.

그로 인해 벌어들인 포인트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유현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게오른이 지니고 있던 파편을 회수했으며, 지금까지 그 형상조차 잡지 못했던 의념이 어떤 것인지 깨우쳤다.

어디 그뿐인가? 레안이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얻었다.

“레안, 이라고 했었죠.”

“벌써 소문이 퍼졌습니까?”

“2세대 성령인 게오른의 힘을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지니고 있는 격과 힘은 훨씬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벌써 두 자릿수가 넘은 성령들이 박살 났습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단순히 게오른의 힘을 이어받아 2세대라 불릴 수준이 아닙니다. 하계에 있을 때부터 엄청난 무와 업을 쌓아 온 상태에서 별의 자리에 등극했으니, 사실상 4세대. 어나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죠.”

대부분 성령은 4세대를 무시하기 일쑤지만, 1세대 성령인 사탄은 4세대의 진정한 무서움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았다.

고작 태어나길 잘 태어나서 선천적으로 힘을 얻은 녀석들과 다르게, 어나더는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을 이룬 끝에 별의 자리에 오른 자들이다.

단순히 삶에 임하는 각오부터 여타 성령들과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유현 차장, 아니…… 이제 퇴사했으니 차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런가요?”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만 부르시면 됩니다.”

“좀 듣고 놀라긴 했습니다. 설마하니 천체주식회사의 이사직을 제안받았는데도 그것을 걷어차고 오히려 프리랜서로 전향하겠다뇨. 심지어 회장인 롯피우트가 명함까지 건네줬다죠?”

유현은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1세대 성령, 그중에서도 특히 사탄이라 그런지 정보가 빨랐다.

“그보다 퍼즐 조각은, 많이 모으셨습니까?”

“예. 제가 없는 사이에, 제 소중한 계약자들이 열심히 모았더라고요.”

“오. 그러면 이제 슬슬 퍼즐이 그리는 그림의 윤곽 정도는 볼 수 있게 된 겁니까?”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시스템을 의식해서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서로가 대화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유현이 없는 사이에 강혜림과 권지아, 서수민, 유영민은 유현이 남겨 놓은 파편의 팔찌를 통해 다른 파편을 회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로써 한반도 내에 있는 모든 파편은 이쪽에서 완전히 회수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아직 남아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역시 해외의 파편이리라.

“지난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을 해 보니, 저 말고도 조각을 모으는 사람이 더 있다 하더라고요.”

“저런.”

파편의 존재를 아는 것은 유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청운, 그 또한 파편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다른 파편의 소유자 또한 자신의 특이점을 인지하고 다른 소유자들을 눈치챈 것이다.

그로 인해 현재 지도에 표시된 파편은 산발적으로 뿌려진 것이 아닌, 큼지막한 것들이 여러 곳에 뭉친 형상을 띄었다.

“여러모로 귀찮게 됐겠네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쪽에서 미리 모아 줬으니, 적당히 협상을 해서 한꺼번에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협상이라.”

사탄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듣기만 했을 뿐인데도 어째 평화로운 느낌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렇게 들리셨다면, 뭐 어쩔 수 없고요.”

“그래도 일단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축하드려요.”

“하하. 사탄님께 그런 말씀을 듣게 되다니, 되게 황송하네요. 저희 매니지먼트 사람들은 엄청 잔소리를 하던데.”

유현은 아직도 복귀한 그 날을 잊을 수 없었다.

놀려 주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연락하지 않고 사옥에 찾아갔더니, 이쪽을 보고 눈을 부릅뜨던 그 광경이 얼마나 웃기던지.

평소에 표정 관리 하나만큼은 끝내주던 권지아마저도, 마치 총알에 맞은 비둘기 같은 얼굴이 돼서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물론, 그 대가는 아주 혹독한 잔소리였다.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왜 그런 위험한 짓을 사전에 상의도 없이 저지른 거냐고, 큰일 날 뻔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기는 하냐고.

모두가 입을 모아서 그렇게 말하니 아무리 유현이라도 웃으면서 넘길 수 없었다.

“거의 1주일은 감금당하다시피 잡혀 있었습니다.”

“하하. 고생 끝에 돌아왔더니 새로운 고생이 있었군요.”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았죠.”

“평화. 행복. 그런 소소한 것에 즐거움을 찾는 것은 좋은 거죠.”

사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는 겁니까?”

“안부 인사도 건넸겠다, 무탈하다는 말도 들었겠다, 이 정도면 만남의 해후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바쁜 일이 있다 보니, 독대는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아 참. 그러고 보니 선각자가 한 번 더 만나 보고 싶다고 전해 달라 하더군요.”

“선각자님이요? 뭣 때문이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자의 속을 알 수 있는 존재는 같은 성인의 칭호를 얻은 나머지 셋뿐일 겁니다. 나 참. 판데모니움의 군주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사탄은 투덜거리면서도 선각자의 부탁을 들어줬다.

“아무튼, 수고하십시오.”

[사탄과의 독대를 종료합니다.]

독대실을 나온 유현은 매니지먼트 사옥으로 돌아왔다. 유현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복귀를 축하한다고 온갖 성령들이 다가와 그에게 독대를 요청하거나 한 번이라도 만나 달라고 러브 콜을 보낸 탓에 하루하루가 피곤했다.

‘그것도 전부 오엘로님과 롯피우트님 때문인가.’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의 왕은 네 명.

유현은 그중에서 둘의 후원을 등에 업고 있는 최초의 프리랜서 텔러였다.

그러다 보니 유현에게 사업과 관련된 거로 연락을 취하거나, 혹은 이 기회에 든든한 후견자가 되고 싶다고 나서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엘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못 먹어보는 감 찔러나 보자는 마인드였다.

‘이 짓도 참 못 해 먹겠군.’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는 얼추 끝났으니, 이제 남은 일은 파편을 회수하는 것뿐.

다행히도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그의 훌륭한 계약자들이 국내에 있는 파편을 전량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남은 것은 해외에서 거대한 파편을 지니고 있는 자들뿐인가.’

유현은 지도를 펼쳐 보였다. 지구 곳곳에 밝고 큰 황금빛 점들이 찍혀 있었다.

파편을 지닌 자들끼리 뭉쳤는지, 혹은 한 명이 남의 것을 강탈해서 전부 소유하고 있는지는 이것만으로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정도의 파편을 상대방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점.

아니, 오히려 저렇게 모으기까지 했다면 필시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

‘그러면 어쩔 수 없고.’

유현은 지구로 돌아온 이후 멤버들에게 나누어줬던 이야기를 다시 돌려받았다.

의념까지 깨우치게 되어 칠마흑천신공의 절기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유현은 이제 지구에서 그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

그리고 유현이 강해진 것만큼, 지구의 상황도 급변해 갔다.

유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구는 어느덧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해서, 기존에 절반의 비율을 유지하던 혼성계와 물질계의 차이를 더욱 벌렸다.

현재 지구에 가해지는 혼성계의 영향은 약 7할.

지구가 이제 곧 완전한 혼성계로 편입되는 날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이제 전생에 있었던 종말이 찾아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이제 지구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멸망을 막겠다고 움직이던 그의 역할을 이로써 끝을 맞이한 셈이다.

돌아왔을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일을 벌써 달성한 것에 대한 기쁨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리에서 방방 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덤덤하기까지 해서,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막연히 예상한 것 같았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니까.’

코덱스의 파편. 지구가 크게 변한 만큼 파편은 지구로 몰리게 되었고, 그 파편을 빌미로 새로운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게오른의 사태를 떠올리면, 최악의 경우 지구는 아포칼립스가 터지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어. 그러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파편의 회수에는 박차를 가해야 해.’

그리고, 넘겨짚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프라이티온이었다.

오엘로와 롯피우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보았던 유현에게, 그들과 대등하거나 혹은 더 우월할지도 모르는 프라이티온의 존재는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형.”

“어, 영민아.”

독대실을 나오는 것을 기다렸는지 유영민이 곧바로 유현에게 다가왔다.

본래라면 차후 파편을 회수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을 짜기로 약속을 했지만, 유영민의 표정은 유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무슨 일 생긴 거야?”

“네.”

유영민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에 있는 파편의 소유자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 * *

브리핑실을 향하자 그곳에 이미 대기하고 있는 3명이 유현을 반겨 줬다.

“왔군.”

“지아 씨. 황금빛 소유자들이 움직였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보다시피, 조금 전에 막 움직이던 참이었다.”

권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팔찌를 통해 지도를 펼쳐 보였다. 유현이 소유권을 넘긴 이후로 어느덧 1달 가까이 흘렀기에 일행들은 팔찌를 훨씬 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

아직까지 팔찌의 진짜 소유자는 유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힘을 다루는 데 있어서 불편함은 없었다.

모두가 지도에 찍힌 황금빛 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반짝이는 황금빛은 빠른 속도로 지도 위를 누비고 있었다.

“움직이는 숫자는요?”

“전부. 예의주시하던 5개의 세력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놈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여기로군요.”

해외에 뿌려진 파편을 지니고 있는 자들은 크게 5개로 나뉘었다.

유럽, 러시아, 북아메리카, 호주, 아프리카.

이 5개에 존재하는 파편을 소유한 개인, 혹은 집단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편을 지닌 자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쪽으로 오고 있어.’

이건 누군가가 일부러 그들을 모으려 하지 않는 이상은 보이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 동시에 움직인다. 유현은 그 움직임을 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 분석했다.

‘일단 편의상으로 놈들을 조직이라고 분류하자. 다섯 개의 조직이 서로 협업을 통해 움직인다는 생각은, 제외하는 게 낫겠어. 만약 놈들이 서로 협력을 하려 했다면, 이렇게 각개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나로 뭉친 이후에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테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답 중 하나는, 저들은 다른 누군가의 명령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상대는 파편의 소유자다. 크건 작건, 그들의 힘은 어지간한 컬렉터를 가볍게 능가한다는 소리다.

그런 파편을 지닌 자들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예상가는 상황은 두 가지. 하나는 파편 자체가 무언가 공명을 하며 소유자를 어딘가로 이끄는 것.’

상당히 가능성이 컸다. 유현 또한 파편을 많이 지니고 있었지만, 이 코덱스의 파편이라는 것은 아직도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다.

힘 자체가 워낙 범용성이 넓다. 미래를 보고, 가능성을 실현하고, 환상과 현실을 가르고.

당장 그가 지니고 있는 능력만 놓고 봐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뿐.

파편이란 명확한 정의가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힘이다. 그런 파편이 소유자를 어느 한 곳으로 이끈다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어.’

바로 이 파편에 개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강제로 명령을 내리는 것.

같은 파편 소유자 중에서도 우열은 갈린다. 그리고 유현이 아는 한, 다른 그 누구보다도 파편을 빠르게 획득하고 그 진실의 일부를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진청운.’

지금까지 가만히 숨어 있던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다들 열심히 움직이는군.”

진청운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파편 소유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또한 지난 세월, 유현이 없는 사이에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또한 파편을 다수 모아 왔고, 곧 있을 변화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진청운.]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잊지 않았겠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청운은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에 답했다.

“프라이티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