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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34화 (33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34화

“포상이라…….”

유현은 롯피우트의 말을 곱씹으며 정말로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허허. 내게 역으로 묻는 건가?”

원래라면 이렇게 묻는 것부터가 매우 실례되는 행동이었지만, 롯피우트는 겸허한 마음으로 넘어가 주기로 했다.

유현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회사 안쪽에 숨어든 벌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단순히 부장급도 아니고, 무려 전무 이사가 프라이티온의 농간에 넘어갔다. 이것은 쉬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회사 그 자체인 본인이 멀쩡한 시점에서 회사가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막대한 타격을 입었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

그러니 마땅한 포상을 유현에게 내리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좋을지는 롯피우트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다.

“부장의 자리, 아니. 새로운 이사직이 탐나느냐? 내가 손을 쓴다면 가능하다.”

유현의 재능은 그가 유배지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충분히 증명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단순히 시화를 성공하고 돌아온 것을 넘어 자신을 이런 함정에 빠뜨린 데미알로스를 곧바로 응징했다.

‘이렇게 이사진을 모으려면 마땅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소린데.’

롯피우트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평이사 하나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회, 회장님. 그보다 데미알로스와 이번 게오른님 관련된 건은 어쩌시렵니까…….”

“아. 그랬지. 내 정신 좀 봐.”

유현에게 너무 흥미가 동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일을 깜빡하고 있었다.

아니,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닌가. 지금 당장 눈앞의 대단한 인재를 어떻게든 본사의 높은 자리까지 올려놓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그에게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래, 게오른의 일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겠지. 아무리 나라 하더라도 밑에 녀석이 저렇게까지 심각한 짓을 저지른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번 일을 완전히 묻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피해를 최소화 시킬 방법은 있었다.

“좋다. 일단 데미알로스 녀석은 꼴도 보기 싫으니 끌고 나가라.”

“처리합니까?”

“처리? 웃기는 말을 하는구나. 이대로 깔끔하게 보내 주는 것만큼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무엇이지?”

롯피우트는 싸늘한 시선으로 평이사를 노려봤다.

하반신이 없이 상반신만 연기처럼 이루어져 있는 녀석. 모데우스라고 이사라고 했던가.

답답한 친구로군.

“본사를, 더불어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려고 한 녀석에게, 자네는 지금 자비를 베풀라 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즉각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데우스 이사가 곧바로 텔러들을 시켜서 데미알로스를 끌고 나갔다. 데미알로스는 조금 전 하타 전무 이사가 죽은 시점부터 이미 모든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이 자리까지 올라가며 온갖 텔러들을 짓밟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공포로 군림하던 데미알로스 치고는 초라한 결말이었지만.

아직 그의 삶은 이대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기대해도 좋아.”

데미알로스를 끌고 가는 것은 우타타 부장이었다.

이전까지 붉은 기운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그는, 지금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기뻐서 찬란한 흰빛을 내뿜고 있었다.

“너는 죽지 않을 거다. 부디 죽여 달라고 빌어도,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우타타는 자신의 부하들의 원한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 물론 부하들을 죽인 것은 변장한 하타 전무 이사의 짓이었지만, 데미알로스의 잘못도 없지 않았다.

이전부터 그를 이렇게 사로잡는 것을 얼마나 꿈꿔 왔던가.

녀석은 단순히 폐기함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을 거다.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감옥에 갇힐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데미알로스도 처리했고, 남은 건…… 게오른과 관련된 일이로군.”

“그 부분은 어떻게 하시려는지…….”

“일단, 소문은 내지 말도록.”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게오른의 후계자인 레안이라는 자가…….”

“레안. 가르드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했지. 그자와는 내가 따로 만나서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오히려 회장인 그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됐다. 레안이라는 자의 성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게오른의 일을 빌미로 천체주식회사를 적대한다면 피곤해진다.

이쪽도 솔직히 변명을 할 거리는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으리라.

“하지만, 다른 목격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목격자? 그래봤자 2세대도 되지 못한, 3세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가.”

아무리 3세대라 하지만, 성령을 어중이떠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롯피우트 뿐일 것이다.

새로운 성령의 탄생에 흥미를 품고 구경하러 온 녀석들이다 보니 대부분 게오른이 어떻게 됐는지, 거기에 연관된 천체주식회사의 사건은 모르는 게 태반이다.

개중에는 수상한 걸 알고 이쪽을 예의주시하는 녀석들이 있겠지만, 진실은 언제나 극소수만 알고 있게 되는 법.

롯피우트의 입장에서는 레안만 어떻게든 구워삶으면 그만이었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가 오늘 전무 이사 하나만 바꾸지 않길 바란다면, 눈치껏 잘해야 할 거야.”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가 보게.”

롯피우트가 턱짓하자 모데우스를 비롯한 이사진들이 우르르 법정을 빠져나갔다. 오늘 일을 기점으로 이사진들의 거만했던 태도는 한층 크게 누그러지게 되리라.

“자네들도 이만 가 보게.”

롯피우트는 부장급 텔러들에게도 축객령을 내렸다. 애초에 그들이 이 자리에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부장들도 이 불편한 자리를 빨리 파하고 싶은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롯피우트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떠났다.

셀레스티나는 자신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점을 아쉬워하면서도 회장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고생했고,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자.”

“그러죠.”

셀레스티나는 유현에게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마지막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제 이 공간에 남은 것은 유현과 롯피우트, 그리고 새로운 전무 이사가 된 갈리아츠뿐이었다.

더는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기에 롯피우트는 유현의 대답을 종용했다.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사직 말이죠? 분명히 과분한 제안인 건 맞습니다만…… 제게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허. 그래도 나름 큰마음을 먹고 포상을 내리려고 했는데, 이사직도 거절한다? 그렇다면 어디 말해 봐라. 무슨 선물을 원하느냐?”

이제는 포상도 아니고 선물이 됐다. 롯피우트는 그만큼 유현이라는 텔러에게 관심이 갔다.

우리 회사에는 저런 인재가 필요하다. 롯피우트는 유현이 딱 본사에 어울리는 최적의 인재라고 생각했다.

“아, 한 가지 있기는 합니다.”

“그래. 그게 뭐지?”

“사표 내고 싶습니다.”

“음……!”

탄성을 터뜨린 것은 롯피우트가 아닌 갈리아츠였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유현에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시선을 쏘아 보냈다.

롯피우트 또한 턱수염을 쓰다듬는 손길이 약간이지만 빨라졌다.

“농담치고는 재미가 없군.”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사표를 내고 싶어서 한 소립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자네는 지금 차장으로 진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이사진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할 수 있네.”

“예.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 저는 큰 권력을 가지게 되겠죠. 이 천체주식회사 내부에서요.”

“…….”

유현의 말에 갈리아츠는 왜 유현이 저 말을 거부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의 다급한 시선이 이윽고 롯피우트를 향했다. 혹시라도 유현이 회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큭큭. 크하하하하! 그래! 자고로 사고를 하는 존재라면, 꿈을 크게 가져야지. 그래. 네가 아무리 큰 권력을 지니게 되더라도, 결국엔 네 머리 위에 반드시 누군가가 있게 될 거다. 회사란 그런 곳이야.”

“그렇겠죠.”

“정 네가 정말로 무소불위의 권력, 혹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순수한 자유를 원한다면.”

롯피우트는 수염을 쓰다듬은 손을 치우며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석고 가면을 쓴 것 같은 그의 얼굴이 쭈욱 찢어지듯 일그러졌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끼기기긱.

석고와 같은 얼굴이 바스라지며 그런 소리가 났다.

“회장의 자리가 탐나느냐?”

“탐난다면요?”

“가져가 보거라.”

갈리아츠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끼어들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유현과 섬뜩한 광기 어린 미소를 짓는 롯피우트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유현이었다.

“무서워서 싫습니다. 오늘 회장님의 진짜 모습을 봤는데, 무슨 깡으로 덤비겠습니까.”

“에잉. 시시하기는.”

롯피우트는 다시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연기처럼 행동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유현과 갈리아츠는 느낄 수 있었다.

롯피우트는 진심으로 유현이 자신을 즐겁게 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유현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롯피우트와 적대하며 싸울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아주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며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제 취미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굳이 말하자면, 저는 방임주의에 가깝겠군요. 일단 사표에 관한 건은 진심입니다. 지금까지는 제 입장 상 모자란 것이 많아서 활동했지만, 이제는 슬슬 독립할 시기라서.”

“독립이라. 그 말은 즉 프리랜서로 전향하겠다 이건가?”

“그런 셈이죠.”

“허허. 재미있구나. 그래. 그 정도의 인지도를 지니고 있으면, 본사에서 빠져나와 혼자서 활동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는 되겠지. 아니면, 자신만의 그런 새로운 회사라도 꾸릴 생각이느냐?”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사표를 낼 필요는 없을 텐데. 내게 부탁을 하면, 누구도 너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제가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면, 그 무엇에도 방해를 받고 싶지 않거든요.”

유현의 말은 즉, 이 회사 자체가 그의 발목을 붙잡는 장애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그 말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롯피우트는 뭐가 재미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만 했다.

“네가 잊었나 본데, 나는 아주 인재 욕심이 많다. 호사가들은 나를 연유왕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달라. 내게 어울리는 왕의 칭호를 꼽자면 오직 하나뿐이다.”

강욕왕(强慾王).

필요 없는 녀석들은 가차 없이 버리지만, 정말로 필요하다 생각하는 인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성이 차는 천성.

재능도 능력도 없는 녀석은 도태되고,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녀석에게는 온갖 금은보화를 선사한다.

천체주식회사는, 바로 이런 롯피우트의 성향에 맞춰 설립되었다.

“네가 그대로 내 손을 빠져나간다 해서, 누구의 품에도 가지 않겠다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 카타르시스는? 담천은? 그 두 미치광이의 제안을, 네가 과연 거부할 수 있겠느냐?”

“저는 딱히 엑소도스와 희극단패에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지라.”

“그렇다면 그거대로 문제다. 이 내 제안을 거절한 네가 이 험난한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후견자가 필요한 법. 어떠냐. 내 너의 후견자가 되어 주겠다.”

무려, 회장인 롯피우트가 직접 유현을 뒤에서 지원해 주겠다고 약조를 하고 나섰다.

일반적인 텔러라면 그 제안 자체가 황송해서라도 두 무릎을 꿇고서 손을 마주 잡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유현은 그러지 않았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사탄님의 제안도, 미카엘님의 제안마저도 거절한 텔러입니다.”

판데모니엄의 군주인 사탄과 에덴동산의 위대한 대천사 미카엘.

과연 이야기의 왕 롯피우트에겐 그 두 존재에 견줄 만한, 혹은 그 둘을 뛰어넘는 메리트가 있냐는 물음.

그 허황하기까지 한 말에 롯피우트는 처음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윽고 이성을 되찾은 롯피우트가 유현을 다시 설득에 나섰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안다. 태초의 서, 그 파편을 회수하는 것이겠지?”

롯피우트 또한 로고스의 자식으로서 태초의 서에 대해서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만, 그는 파편을 직접적으로 모을 자격이 없기에 하고 있지 않을 뿐. 그 존재 자체는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 일을 너 혼자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누가 혼자라고 했습니까?”

“뭐라?”

“제가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가 되고, 누구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죠. 제게는 이미 약속을 한 동업자가 있습니다.”

“그 동업자가, 이 롯피우트보다 더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이쪽을 능멸하는 말이었다.

롯피우트의 목소리가 서서히 노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재를 향한 뒤틀린 그의 욕망이 이윽고 분노로 승화했다. 롯피우트의 두 눈이 쌍심지를 켜며 유현을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이 롯피우트가, 고작 동업자 하나에게 밀린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고작 동업자가 아닙니다.”

“고작 동업자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그 존재가, 나와 대등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네. 바로 그겁니다.”

너무나도 유쾌한 유현의 말에 롯피우트는 자신이 지금 뭘 잘못들은 게 아닌지 당황했다.

“어디 보자. 방금 불렀으니까, 슬슬 도착하겠네요.”

“무슨…….”

“아아. 이거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구 맘대로 오라 가라야?”

그때였다.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은 법정에 제삼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은 앳된 어린아이의 목소리였지만, 롯피우트는 그 목소리에 담긴 익숙한 기운을 읽어 냈다.

어찌 이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오엘로.”

“여. 롯피우트. 오랜만이다. 안색 좋아 보이네?”

어느새 유현의 곁에 선 금발의 소년이 롯피우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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