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33화
머리가 사라진 롯피우트의 빈 몸통이 천천히 옆으로 기울었다.
그의 커다란 육신이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앙상한 손이 쥐고 있던 지팡이가 튕겨져 나가 법원 중앙까지 굴러 떨어졌다.
“회, 회장님!”
“하타 전무 이사! 이게 대체……!”
경악 어린 시선이 하타 전무 이사를 향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회장님을 죽인 하타 전무 이사는 혀를 끌끌 차며 유현을 내려다봤다.
“별 같잖은 녀석이 내 계획을 방해했구나.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유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하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오히려 유현보다 당황한 것은 갈리아츠였다.
그는 유현이 돌아온 것에 마냥 기뻐했지만, 하타가 벌인 짓을 보고는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했다.
“하타, 자네……. 대체 왜 그런 짓을…….”
갈리아츠와 하타는 동기였다. 같은 날 태어나고, 같은 날 테스트를 치르며 천체주식회사의 텔러로 활동했다.
서로의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있었지만, 이제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하타뿐이었다.
비록 하타는 중앙실의 전무 이사 자리까지 오르고, 자신은 중간에 일을 그만둬서 뒷골방에만 틀어박히게 됐지만.
그래도 갈리아츠는 하타가 아직도 좋은 친구이며 훌륭한 텔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체, 대체 왜 그랬는가.”
“갈리아츠.”
하타는 복잡한 시선으로 갈리아츠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모를 걸세. 내가 말을 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게 대체 뭔데 그런가.”
“단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세.”
이 세상을 위해 필요했다고? 그런데 대체 왜 회장을 죽인 건가. 회장이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정당하게 이사회를 소집해서 안건을 올리면 그만인 것을.
하타에게 따지는 텔러는 없었다. 그가 롯피우트의 머리를 날리는 순간부터 분위기의 주도권은 하타가 쥐고 있었다.
“당황하지 않는군.”
갈리아츠에게 시선을 거둔 하타는 유현에게 그렇게 말했다.
“제가 왜 당황합니까?”
“회장님이 죽은 것이 놀랍지도 않은가?”
“본인이 죽였는데, 왜 제가 놀랍니까? 아니면 뭐, 회장님이 무적의 존재라고 제가 착각이라도 하길 바랐던 겁니까?”
“아니. 아니지. 내가 실수를 했군그래. 네놈 또한,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이나마 망각해 버렸으니.”
같은 것을 본다.
유현은 하타의 말에 그 또한 코덱스의 파편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긴, 파편을 알고 있었으니까 게오른의 몸에 그런 걸 박아 넣을 수 있던 것이겠지.
거기서 더 나아가, 하타는 단순히 파편을 보고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파편을 쥐고 소유할 수 있는 권한까지 지닌 것이다.
곧이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보아하니 오래 전부터 파편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왜 그것을 모으지 않았을까 하는.
‘그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단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한 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뭐가 어찌됐든, 하타 전무 이사는 천체주식회사를 배신하고 회장님을 시해한 끔찍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다들 뭣하고 있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셀레스티나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부장급 텔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타 전무 이사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중앙실을 제외한 각 실의 머리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
그들이 쌓아 온 이야기와 격은 이사급에 뒤지지 않았다.
“이 나에게 덤비겠다고?”
하타는 그런 텔러들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얼마나 숭고한 의지로 움직이는 건지도 모를 녀석들이, 감히 나를 붙잡겠다고?”
“회장님을 살해한 주제에 그게 무슨 소리냐!”
“멍청한 녀석들. 회장은, 애초에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짓을 저지르고 있었단 말이다!”
하타가 그렇게 외쳤지만, 그 말을 믿는 텔러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오직 유현만이 그 말의 진위를 곰곰이 생각했을 뿐.
“……뭐, 됐다.”
하타 또한 상황이 너무 틀어져서 짜증을 냈을 뿐,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해해 줄 거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어차피 회장이 죽은 시점에서 천체주식회사는 끝이다.
머리를 잃은 몸통은 혼자서 뭘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타는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의 형태로 끝맺었다.
“어차피 회장은 죽었으니 더는 따질 것도 없지. 그래도 네놈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겠구나.”
하타는 자신의 이 모든 것을 방해한 강유현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다.
녀석 또한 파편의 존재를 아는 자라면, 그리고 지금까지 선보였던 모든 능력들이 파편의 힘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유현은 이 자리에서 필시 사라져야만 했다.
하타는 손을 쓰려다가, 유현이 아직도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며 의아해했다.
‘뭐지?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가기도 전에 유현은 하타를 향해 조소를 지어 보였다.
“전무 이사라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봤는데, 별거 없었군.”
“뭐라?”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회장님을 지켜봤으면서,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있는 걸 보니까 말이야.”
하타 전무 이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 것보다도 먼저,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빨랐다.
[이런. 그래도 조금은 시간을 두고 구경하고 싶었는데, 벌써 들켰는가.]
“이, 이 목소리는…….”
“회장님?!”
분명, 머리를 잃고 죽었어야 할 천체주식회사의 회장 롯피우트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하타 전무 이사는 당황했다. 그가 죽인 것은 분명 회장이 맞았다. 지금까지 곁에서 보필하면서 계속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목소리는 대체 뭐지?
[당황하고 있구나. 하타. 자신이 이미 성공했다고 벌써부터 자만하는 모습은 평소의 너에겐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지.]
“롯피우트! 대체 어떻게……?!”
[이젠 나를 회장님이라고 불러 주지도 않는 건가. 뭐, 나를 배신한 부하 직원에게 회장님이라 불리고 싶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니 상관없겠지. 그래도 자그마한 자비를 하나 베풀어서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 주지. 내가 왜 살아 있냐고?]
롯피우트가 웃음을 흘렸다. 전무 이사나 되는 하타의 행동이 귀여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린아이를 보는 어른의 그것과 같은 뉘앙스였다.
[나는 처음부터 죽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너 따위에게 내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뭐라고?”
[잊었느냐. 하타. 내가 왜 이곳의 회장이라 불리는지.]
롯피우트는 천체주식회사의 회장이다.
회장이란 존재는 회사에 있어서 왕으로 군림하는 자. 하계의 인간들은 이사의 존재들이 회장의 자리마저 갈아 치울 수 있게 하는 것 같지만, 롯피우트는 달랐다.
그가 회장이라 불리는 것, 그가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단지 그가 이런 형태를 원했을 뿐.
그의 위치는 언제나 확고히 이곳의 왕이었다.
[고작 업무 처리를 위해 만들어 낸 나의 자그마한 육신을 해한 것으로, 이 나를 죽였다고 자신한 것이냐?]
쿠구구궁!
건물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체주식회사는 우주 한복판에 떠다니는 거대한 부유섬의 위에 지어진 회사 도시다.
지층의 어긋남으로 발생하는 지진이, 이런 곳에서 일어난 적은 지난 회사의 역사에서도 한 번도 없었다.
“처, 천장이!”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모두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법정의 천장이 사라지고 있었다. 건물이 반 토막이라도 난 것처럼 천장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아, 아니야.”
감찰실의 또 다른 부장급 텔러, 가라스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의 눈동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담고 있었다.
“저건, 천장이 아니라……손이야.”
거대한 손.
그들이 지금까지 법정의 천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거대한 손이었다. 그리고 그 손보다 훨씬 더 거대한, 이 도시의 어떤 건물보다도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지고의 존재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만하고, 또 내가 너무 우습게 보였나 보구나.]
그야말로 거대한 별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롯피우트의 진짜 모습을, 천체주식회사에 머무는 모든 텔러가 볼 수 있었다.
[나는 롯피우트. 천체주식회사의 회장.]
그것은 어떠한 과장도 빈말도 들어가 있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선언이었다.
[내가 곧 회사다.]
천체주식회사의 모든 건물과 모든 땅덩어리.
롯피우트의 진짜 육신은 천체주식회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허, 대단하네.’
유현은 롯피우트의 진짜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까마득하게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육체도,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만한 존재감도, 전부 성령이라 불리는 자들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았다.
혼성계 전역에 다섯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초의 텔러이자 이야기의 왕.
그 롯피우트가 하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타. 각오는 충분히 됐겠지?]
“웃기지 마!”
하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기운을 개방했다.
“내가 모를 줄 알고?!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이야기를 모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누가 그렇게 말하더냐?]
“누구? 누구냐고? 당신의 형제라 불리는 자가 그런 말을 했으면 충분하지 않나?”
[형제? 아. 그렇구나. 하타 너…….]
까마득한 상공에 있는 롯피우트의 눈동자에서 안광이 폭사했다.
[‘프라이티온’을 만났구나.]
배신자의 왕을 언급하면서 롯피우트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제여. 아버지를 배신하고 어디로 숨어 있나 했더니, 이런 간특한 짓을 물밑에서 저지르고 있었는가.
[녀석이 어디 있는지는, 물어도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군.]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하타의 몸이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 속도는 눈을 어지럽게 할 정도로 빨랐지만, 롯피우트에게 있어서 하타의 발악은 벌레의 날갯짓만도 못했다.
하타는 강했지만, 롯피우트는 그보다 훨씬 더 강했다. 격의 차이는 명백했다.
롯피우트의 거대한 손아귀가 하타의 몸을 강하게 쥐었다. 하타는 기운을 방출하며 거기에 저항하려 했지만, 롯피우트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롯피우트으으으!!!”
[사라져라. 책벌레의 잔재야.]
롯피우트가 힘을 주는 순간, 하타는 그대로 몸이 찌부러졌다. 단순히 신체를 압축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롯피우트가 지닌 거대한 존재감이, 하타라는 텔러를 구성하는 텍스트까지 바스라트리고 있었다.
폐기함, 혹은 텍스트 슈레더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의 힘.
롯피우트는 그것을 단지 오른손을 움켜쥐는 악력만으로 구현시켰다.
“끄아아아아악!”
하타의 비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롯피우트의 손아귀 안에서 하타의 존재는 비명과 함께 가루처럼 사라졌다.
부서진 가루는 이윽고 롯피우트의 손바닥이 흡수됐다. 롯피우트는 자신의 안으로 들어온 하타의 흔적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했다.
[그런가. 그랬던 거로군.]
이사급 텔러를 한 손으로 죽이고, 그 시체의 파편을 흡수해서 그가 과거에 어떤 행적을 걸어왔는지 단번에 분석했다.
롯피우트는 이윽고 다시 진체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거대한 그의 육신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으며 이윽고 천체주식회사와 동화됐다.
사라졌던 법정의 천장 역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모든 광경이 처음의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법정에 모인 모든 텔러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들썩.
법정에 쓰러졌던 롯피우트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이윽고 사라졌던 머리가 재생되며 롯피우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구. 오랜만에 힘 좀 쓰려니 허리가 아프군 그래.”
롯피우트가 허공에 팔을 뻗자 유현의 발치까지 굴러온 지팡이가 저절로 움직였다.
지팡이를 다시 쥔 롯피우트는 그대로 자신의 지정석에 앉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바라만 봤다.
“자. 잠시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그것도 잘 마무리됐으니 하던 일이나 마저 하지.”
“회, 회장님.”
“아 참. 그러고 보니 이제 전무 이사가 사라졌군. 그래도 하타 이 친구가 일은 참 잘했는데, 아쉽게 됐어.”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부하를 망설임 없이 죽이고도 롯피우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당초에 하타가 배신자만 아니었더라면, 롯피우트는 하타를 오랫동안 계속 썼을 것이다. 설마 프라이티온의 손에 닿았을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갈리아츠.”
“네, 회장님.”
“오늘부터 자네가 전무 이사네.”
그 충격적인 발언에 주변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회, 회장님!”
“갈리아츠가 갑자기 전무 이사라니요! 그는 이미 퇴직한 친구입니다!”
복직한 것도 모자라 엄청난 승진까지 더불어 안겨 주니 다른 이사진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정작 롯피우트는 그들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롯피우트의 시선은 방금 전부터 갈리아츠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떻게 하겠나?”
“……하겠습니다.”
갈리아츠가 설마 여기서 승낙할 줄 몰랐는지 주위에 웅성거리는 소란은 더욱 커졌다.
부회장과 사장, 부사장이 없는 천체주식회사의 직급상 전무 이사라는 것은 사실상 회장 다음가는 직책이었다.
“조용!”
롯피우트는 가볍게 지팡이로 바닥을 찍으며 외쳤다. 상무 이사나 평이사가 반발을 하더라도 그의 의견은 절대적이었다.
롯피우트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이사들도 반발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나 조금 전처럼 그 광경을 보고 말았으니, 누구나 몸을 사릴 수밖에.
“드디어 조용해졌군. 그래.”
롯피우트의 시선이 이윽고 유현을 향했다.
“본사에 있는 벌레를 처리하게 도와준 자네에게, 내가 어떤 포상을 내리는 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