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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31화 (33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31화

데미알로스는 황급히 복도를 달렸다.

평소 그의 행실을 아는 텔러라면 그 광경을 보고 놀라 나자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데미알로스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다급해하고 있었으니까.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고, 분위기도 흉흉한 탓에 누구도 그의 앞길을 막아서지 못했다.

데미알로스는 곧바로 어느 한 문 앞에 서더니 그것을 쾅 소리를 내며 열었다.

“이거 참.”

안쪽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대기하고 있던 유현은 난데없는 손님의 방문에 난색을 표했다.

“들어오실 거면 노크라도 하시지 그러십니까.”

“……강유현 차장. 정말로 돌아왔군.”

“네. 뭐,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이렇게 보란 듯이 돌아왔습니다.”

유현은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 여유가 가득한 행동에 데미알로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곁눈질로 주위를 살폈다.

지금 이 공간에 유현과 그, 단둘 뿐이었다. 유현은 이제 막 유배지에서 복귀한 상태라 기존에 지닌 이야기가 없었다.

‘지금 내가 손을 쓴다면, 녀석을 죽일 수 있다.’

데미알로스가 문어발로 이루어진 오른손 촉수를 말아 쥐었다가 폈다.

데미알로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여기서 유현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데미알로스가 처벌받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녀석은 유배지에서 돌아왔지만, 아직 우리가 그곳에 한 짓을 알지 못할 거다.’

유일하게 걸리는 것은 새롭게 글라칼리스에 등극한 성령인 레안이었지만, 그가 전대 성령인 게오른과 관련된 일을 천체주식회사에 따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막 성령이 됐으니 시스템의 인식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망가진 본인의 행성을 다시 예전처럼 가꿔야 하니까. 그러는 사이 이쪽에서 손을 쓰면 그만이었다.

‘반면, 강유현 차장의 저 여유로운 태도가 걸린단 말이지.’

데미알로스는 유현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장에 이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던가. 유배지는 같은 이사급 텔러가 가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그런데 유현은 거기서 큰 성공을 거두고, 다시 본사로 돌아왔다.

그가 이제까지 펼친 시화가 단순히 이야기 조작으로 벌어진 것이 아닌, 순수한 실력으로 이룩했음을 증명한 것이다.

심지어 회장님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성공하고 돌아오겠다고 공표하고, 그것을 실제로 이뤄 냈다.

데미알로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모두의 앞에서 유현을 그렇게 몰아세우고,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으니 이제 그 후폭풍이 본인에게 다가올 차례였다.

“그런데 부장님.”

“음?”

“왜 여기에 계신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데미알로스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묻자, 유현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으로 조금 전 그가 들어온 문을 가리켰다.

“데미알로스 부장님이 지금 가셔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바로 저기…… 모두가 기다리는 법정이 아닙니까?”

“뭣이?”

데미알로스는 유현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법정에? 그래. 그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찌르려고 했는데 실패하면, 찔릴 각오 정도는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유현이 천체주식회사에 복귀한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다. 데미알로스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찾아왔다.

그의 죄를 물으려는 법정을 다시 열려면, 이사급 임원들에게도 연락을 보내고 시간을 맞춰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당장에 자신만 해도 이사급의 도움을 받아서 유현을 몰아세우기까지 최소 1달이 걸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서야 한다고?

그것도 복귀한 바로 당일에?

“허세라면 정말로 웃긴 말이로군. 그런 겁박이 내게 통할 줄 알았나?”

데미알로스는 유현이 자신을 겁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오늘 막 복귀한 녀석이, 준비를 해 봤자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유현은 데미알로스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며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이거 참. 부장님은 아무래도 제가 농담이나 혹은 과장으로 그런 말을 한 줄 아시나 봅니다.”

“그럼, 내가 틀렸다는 건가? 강유현 차장. 그런 허장성세는 상대를 봐 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거라네.”

“허장성세로 보였다면 어쩔 수 없군요. 뭐, 그런 마음도 이해는 합니다.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으니 애써 부정을 하시려는 거겠죠.”

“……듣자 듣자 하니 말이 지나치군. 강유현 과장. 나와 자네는 부서가 다를지언정, 나는 자네보다 직급이 하나 더 높은 부장일세. 발언에 주의하도록.”

“부장님……이었죠.”

“뭐라고?”

“정 궁금하면 뒤를 보시죠.”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지만, 데미알로스는 유현의 말을 불신하는 것과 다르게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이성과는 반대로 그의 본능이 자꾸 상황이 나쁘게 흘러간다며 시끄럽게 떠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뒤에 있어도 뭐가 있겠냐고 생각한 데미알로스의 예상과 다르게, 언제 도착했는지 이쪽을 노려보듯 도열한 감찰실 소속 텔러들을 본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화실 소속, 펜타그램 부서의 데미알로스 부장님.”

“이건……?”

“당신을 시화 조작 혐의로 체포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하얀 고리가 데미알로스의 몸을 속박했다. 부장급 힘을 지닌 그로서도 반항조차 못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저항조차 하지 못한 데미알로스가 무릎을 꿇었다.

당황하는 데미알로스의 정면에, 새하얀 정장을 차려입은 텔러 하나가 앞에 섰다.

“우타타 부장…….”

“여. 데미알로스. 신수가 훤하네.”

데미알로스를 바라보는 감찰실의 우타타 부장은 약간은 붉은 기운이 맴도는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어쩌고 자시고, 방금 말한 대로야. 데미알로스. 너는 시화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거지.”

그 말에 데미알로스의 고개가 유현을 향했다.

시화 조작과 관련된 혐의는, 그가 모두의 앞에서 유현의 죄를 물을 때 주장하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지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뭐 해? 어서 끌고 가.”

감찰실 텔러들이 데미알로스를 포박한 채 운송했다. 데미알로스는 끌려가는 와중에도 유현을 계속 노려봤다.

우타타가 다가오자 유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귀를 환영하네. 강유현 차장.”

“감사합니다. 우타타 부장님.”

“돌아온 당일에 당사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나와 함께 동행해 줄 수 있겠나? 아무리 그래도 증거를 제출한 증인이 자리에 없으면 안 되거든.”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함께 가시죠.”

유현은 우타타와 함께 법정으로 이동했다.

일전에 기억에 있는 그곳에는 이미 많은 텔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타타와 함께 들어온 유현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돌아왔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은 이윽고 법정의 중심에 새하얀 빛의 고리에 속박되어 있는 데미알로스를 내려다봤다.

그때는 분명 데미알로스가 의혹을 제시하는 쪽이고, 유현이 피의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둘의 관계는 완전히 반대가 됐다.

아니, 오히려 강제로 제압당한 데미알로스의 상황을 보면 이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었다.

“회장님께서 오십니다.”

누군가의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롯피우트가 하타 전무 이사를 대동한 채 지팡이를 짚으며 나타났다.

롯피우트는 또다시 펼쳐진 비슷한 상황에 지루할 법도 했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훨씬 더 선명했다.

롯피우트의 시선은 조금 전부터 유현에게 박혀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자. 아무래도 이제 다들 모이신 거 같으니까 시작해 볼까요?”

유현은 법정의 중심에 섰다. 모두의 시선이 유현을 향했다.

이전에 의혹과 적대적인 시선은 이제 담겨 있지 않았다. 유현은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유배지로 떠나서, 보란 듯이 돌아왔다.

유배지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텔러들이기에, 유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유현 텔러는 이야기를 거짓으로 짜 올리고, 자신의 성공을 부풀리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는 진짜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열렸죠. 그리고 여러분들은 갑자기 왜 이런 자리가 또 열렸는지 궁금해하실 겁니다.”

누구도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전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데미알로스가 저렇게 포박을 당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사태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소리.

“여기 있는 데미알로스 부장님은, 아주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네. 아주 끔찍하고말고요. 다름이 아니라, 이야기를 조작하는 것 이상의 짓을 저질렀죠.”

“이야기를 멋대로 바꾼 것 말고도 더 있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웃기지 마라! 이건 모함이야!”

데미알로스가 유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의 문어발 턱수염이 분노와 함께 푸르르 떨렸다.

유현은 그런 데미알로스를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조용히 해.”

“뭣…….”

“범죄자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지금…… 나한테 그렇게 말하고도 무사할 줄 아나?”

“무사?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오히려 너야말로 곧 있을 일을 감당할 수나 있겠어?”

데미알로스가 무어라 말하는 것보다도 먼저, 유현이 품 안에서 새빨간 보석을 꺼내는 것이 먼저였다.

“여러분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그냥 붉은 보석이 아닌가?”

“모양이 불규칙한 걸 보아, 본래 있던 것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가까워 보이는군.”

“맞습니다. 지금 제가 쥐고 있는 이 보석은 본래 크기에 비해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죠.”

“그런데, 왜 갑자기 그걸 꺼낸 거지?”

“저는 이 붉은 보석을, 데미알로스의 죄를 입증할 증거물로 제출했습니다.”

그 말에 곳곳에서 의뭉스럽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건 그냥 보석이 아닌가?”

“저런 보석에 죄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고? 그것도 시화 조작보다 더 심각한 것을?”

“그만.”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자 법정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결국 회장 롯피우트가 나서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삽시간에 주위가 조용해지자 롯피우트는 턱짓으로 유현을 가리켰다.

“계속하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자, 모두 의아해하실 겁니다. 대체 이 보석이 뭔데, 이 물건에 증거가 담겨 있냐고요. 평범한 보석이라면 물론 그마저도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이 보석이 성령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뭐?”

“저 보석이, 성령의 몸에서 나온 거라고?”

당황스러운 것은 데미알로스도 마찬가지였다. 저 보석, 분명히 기억이 있었다. 타락한 성령 게오른의 심장에 박혀 있던 그것. 거대한 홍옥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었다.

하지만, 저것이 어째서 유현의 손에? 게오른의 모든 파편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었던 것인가?

‘마, 만약 저것이 사실이라면 위험하다!’

데미알로스는 자기도 모르게 도움을 요청할 뻔했다가 필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멈췄다.

만약에, 여기서 그가 진짜 배후를 바라보면 그에게 의심의 화살을 돌리고 만다.

그것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기에 데미알로스는 눈동자만 굴릴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현은 봤다.

아주 순간이지만, 데미알로스늬 저 붉은 시선이 ‘누구’를 향했는지를.

‘과연. 저 녀석이었나.’

샤마트 과장을 풀어 주고, 성령 게오른을 속여서 타락하게 만들며, 코덱스 파편의 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

데미알로스 혼자서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조력자가 있다. 아니, 조력자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비밀리에 숨긴 상대는, 데미알로스보다 훨씬 더 높은 직책을 지닌 텔러였으니까.

유현은 그자 또한 이 법정에 와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올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 낸 유배지가 모두의 앞에서 드러나게 생겼으니, 어찌 얌전히 있을 수 있을까.

“평범한 보석에도 기억은 담겨 있죠. 하지만 그것은 아주 극히 일부의 정보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성령의 파편은 어떨까요. 이 안에,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물론, 어지간한 성령의 파편이라고 하더라도 성령의 과거가 담겨 있는 일은 드물다.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의 정보만 함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대부분 성령은 죽으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말 그대로 별이 사라지듯,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게오른은 자신의 파편을 남겼다. 우연으로 인해 남겨진 것이 아니라 본인이 죽기 전, 최후의 힘을 쥐어 짜내서 이 파편을 남긴 것이다.

부디, 자신의 원통함을 풀어 달라는 염원을 담아서.

“저희 본사에서 유배지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가만히 놔뒀던 세계. 동토의 저주라는 것이 생겨서 이야기마저 얼어붙은 글라칼리스. 그곳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유현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게오른의 염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붉은 보석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허공에 활자로 변해 흩어졌다.

활자는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크기를 키우더니 이윽고 허공에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글라칼리스에 숨겨진 진실을.

“안 돼…….”

데미알로스가 막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현은 그런 데미알로스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경고했잖아.”

그 모습을 본 데미알로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데미알로스는 처음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상대방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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