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19화
소란스럽게 변한 광장은 또다시 찬물을 끼얹은 것마냥 조용해졌다.
광장의 중심에서 강렬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모닥불이 내는 소리만이 장내에 뜨겁게 울려 퍼졌다.
“지금, 우리가 신과 싸워야 한다고?”
“그보다 라히얀이 배신자였다고? 대체 왜? 그는, 탐색꾼들이 아니었던 거야?”
“게오른이라니. 그가 우릴 죽이려고 든다고?”
절망. 불신. 좌절.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광장에 짙게 퍼졌다.
절망은 곧 전염병이었다. 그리고 전염병은 쉽게 전파된다.
“하, 하하. 레안님. 아니죠?”
수염을 길게 기른 뚱뚱한 중년인 하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레안에게 물었다.
“아니죠? 농담이죠? 그냥 오늘이 특별한 날이니까, 저희를 놀라게 하려고…….”
“…….”
“레안님. 제발 농담이라고 해 주십시오. 그냥 착각한 거라고. 배신자도 없고, 저희를 죽이려는 신도 없다고.”
“…….”
남자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부디,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주십시오. 레안님!”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
레안의 무책임한 발언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그게 대체……!”
“내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야. 배신자를 처리했고, 이 세상에 저주를 뿌린 진짜 원인도 찾았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알려 줬지. 그래. 전부 다 말해 줬어.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진실을 말했지.”
그렇게 말하는 레안은,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워 보였다.
“내가, 대체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 줘야 하지?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쥐고, 게오른의 목을 베러 가야 하나? 배신자 라히얀의 시체를 가지고 와, 너희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욕보여야 하나?”
“그건…….”
“그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
그 부정적인 말에 유현은 레안을 말리고자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우악스러운 손이 유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프리첸. 이거 놔요.”
“진정하고 가만히 있어. 이건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게다가 레안 저 녀석,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어.”
프리첸의 말 대로였다.
레안은 여전히 증폭된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이제 어쩔 거지?”
“네?”
“이제 어쩔 거냐고 물었다.”
“가, 갑자기 그걸 물으신 들.”
“나는 진실을 말해 줬다. 그리고 우리에겐 길이 있지.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지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걸고서 게오른에게 맞서 싸울 것인지.”
“그, 그냥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
“이런 멍청한 놈들.”
곤둘보르가 눈을 시퍼렇게 뜨며 사람들을 노려봤다.
“이 마법진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줄 알아?! 이 멍청한 것들아!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이 마법진의 수명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60년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다!”
“하, 하지만 60년이면 그래도 긴 시간…….”
“그러면 그 이후는 어쩔 거냐? 60년이 지나고, 마법진이 사라져 식량도 구할 수 없고 추위가 여기를 집어삼킬 텐데. 그때는 어쩔 건데?! 아니면 뭐, 지금 당장 나와는 관련 없으니까 상관없다 이거냐?”
곤둘보르의 말에 일부 사람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 광경에 곤둘보르는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하! 진짜 내가 이딴 것들을 살리기 위해서 마법진을 계속 보수하고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어, 어찌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그러면 뭐! 지금 자네 나한테 따지는 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귓구멍 씻고 잘 들어라! 이 마법진은 60년이 끝이다. 그런데 그거만 듣고 60년을 가만히 앉아서 버티려는 놈들아!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냐?! 언젠가 태어날지 모를 후손들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주름지고 비쩍 마른 몸의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일까.
곤둘보르는 음성 증폭을 사용하지 않고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청을 때렸다.
“그러고도 너희가 위대한 가르드인이야?! 눈앞의 적을 두고도, 겁에 질려서 조아리는 것이 너희의 방식이냐?! 내 비록 전사도 아니고,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마법이나 만지는 늙은이라 하더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반드시 말해야겠다! 적이 누구라 하더라도, 너희가 가드르인이라면 용감하게 싸워!”
“…….”
“…….”
누구도 곤둘보르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일부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곤둘보르는 그 모습에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내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음성 증폭 룬마법은 그대로 걸어 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계속해.”
“곤둘보르님. 당신은?”
“나는 다시 공방으로 돌아가련다. 이 자리에 있으면 분통이 터져서 내가 먼저 죽을 거 같으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곤둘보르가 떠났다.
레안은 상황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곤둘보르님의 말씀대로 60년이 지나면 결국 가르디안은 멸망한다. 인류 최후의 도시는, 결국 붕괴하고 말겠지.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그래도 60년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거 하나 묻지. 이 안쪽에서 60년간 썩어 있으면, 그것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죽음만을 유예하며 미루고 미루며 이 안쪽에서 가만히 살아가는 것.
과연, 그것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의지를 상실하고, 희망을 잃은 자들은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인 고깃덩이였다.
“나는 싸울 거다.”
“……!”
“검을 쥐고, 게오른에게 맞서 싸울 거다. 어차피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나는 끝까지 싸우다 죽을 거다. 위대한 가르드인으로.”
위대한 가르드인이라니.
이미 세상이 멸망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싸운단 말인가.
사람들은 생각했다. 싸우지 말고 도망치자고. 차라리 그게 더 낫다고.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어디 한번 싸워 봅시다!”
처음 그 말을 내뱉은 것은 놀랍게도 프리첸의 추종자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가르디안에서 제멋대로 활동하던 프리첸의 부하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 시민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에 질세라 다른 탐색꾼이 외쳤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똑같아!”
“맞아! 게다가 지금까지 서리 거인에게 죽은 내 동료들! 그 원수를 갚지 않으면, 편하게 눈을 감을 수도 없다고!”
“위대한 가르드를 위하여!”
파도가 밀려오듯.
호응은 동심원을 그리며 광장 전역에 퍼져 나가고, 다시 이윽고 안쪽으로 빨려 들어오듯 사라진다.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이지만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눈에 조금이지만 희망이 맺혔다. 싸워 볼 만한가? 이거, 이렇게만 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싸우자.”
“그래. 싸워야지. 어차피 죽는다잖아.”
“차라리 죽을 거면, 싸우다 죽자.”
“이렇게 사는 것도 지쳐.”
하나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 시발 웃기지 마!”
누군가 발작하듯 외쳤다.
유현도 아는 얼굴, 링우그의 소꿉친구였던 헨더였다.
“싸우자고?!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상대는 게오른이라고! 그 게오른! 위대한 전사들의 신!”
“겁쟁이!”
누군가가 헨더에게 그렇게 외쳤지만, 헨더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겁쟁이여도 좋아! 그래도 살 수만 있다면! 너희들이야말로, 어떻게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데?! 왜 죽을 걸 알면서도 가는 건데!”
“헨더!”
링우그가 참지 못하고 헨더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닥쳐!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링우그 너야말로 잘난 듯이 말하지 말라고!”
“헨더……! 겁쟁이처럼 굴지 마!”
“시발! 그래. 나 겁쟁이다!”
헨더는 악에 받친 듯이 소리 질렀다.
“이 나이 먹고, 링우그 저 새끼가 탐색대에 들어가 열심히 밖에 돌아다니면서 싸울 때도, 나는 도시에 틀어박혀서 가만히 있었다! 겁쟁이니까! 왜냐하면 죽기 싫으니까! 위대한 가르드인? 죽으면 가는 영광의 땅?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의미야! 죽는다고! 전부 다!”
그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손뿐만이 아니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입술은, 당장이라도 울분을 토해 내고 싶어 했다.
“다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거냐고! 탐색대고 자시고! 그게 뭐가 영광인데!”
“헨더! 탐색대를 모독하지 마라! 그들은 숭고하게……!”
“숭고하게! 그놈의 숭고! 그놈의 명예!”
헨더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아니, 그것은 거의 오열하는 것에 가까웠다.
“우리 부모님은! 탐색대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우리 엄마 아빠는!”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명예롭다고?! 숭고하게 가셨다고?! 시체도 없이, 얼어붙은 땅 너머에서 그 괴물 같은 서리 거인에게 돌아가신 두 분이? 그러면, 그러면 새끼들아! 나는 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나는 뭐냐고!”
“헨더, 너…….”
“그렇게 숭고하게 가셨으면! 왜 돌아오지 않는 건데! 명예롭다면서! 명예롭게 가셨는데, 왜 나는 남겨진 건데! 왜 나만 괴로워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건데! 왜! 왜!”
헨더는 링우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었다.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 이게 명예롭고, 인간으로서 응당 해야 한다고?! 링우그! 대답해 봐! 그게 명예냐? 그렇게 죽고, 소중한 가족을 남기면서 괴로움과 슬픔에 잠기게 하는 게, 그게 옳은 일이냐?! 대답해 봐 링우그!”
“헨더…….”
“대답해!”
분노는 답답함으로.
답답함은 이윽고 슬픔으로.
헨더는 두 눈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가 위대한 가르드야. 뭐가 위대한 전사냐고. 나는, 나는 그냥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는데.”
“…….”
“…….”
헨더를 탓하려던 사람들도, 그를 말리려던 사람들도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헨더 뿐만이 아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 말고도 더 있었다.
그들의 고통은,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떠나간 사람은 명예롭다고 하지만, 그러면 남겨진 사람들은 뭐가 되지?
이상의 뒤에 감춰진 이 잔혹한 현실은 누가 어루만져 준단 말인가.
“헨더…….”
언제나 해맑게 웃던 링우그는 슬픔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헨더를 내려다봤다.
링우그는 헨더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겁쟁이인 스스로와 다르게 탐색대에 들어가 바깥을 활보하는 자신을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헨더가 탐색대를 깔보는 것도,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전부 겁쟁이인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착각했다.
부모님은 훌륭한 탐색대인데, 왜 헨더는 저런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사실 자신의 교만이었다는 걸, 링우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헨더는 처음부터 탐색대를 깔보지도, 우습게 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밉고, 싫었을 뿐이다.
진정으로 그를 깔보고 있던 것은, 결국 링우그 자신이었다.
“미안해.”
“동정 따윈 집어치워!”
헨더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링우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죽으러 갈 거면 너희들이나 가! 나는 끝까지 살아남을 거야!”
헨더는 그렇게 외치며 붉게 상기된 눈동자로 레안을 노려봤다.
한때는 레안을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 도시를 세우고, 생존자들을 규합하며, 바깥의 위험과 맞서 싸운 그 모습을 영웅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그저 모두를 싸움의 구렁텅이로 밀고 가는 역겨운 위선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명예니 영광이니! 그딴 건 집어치워! 나는 그냥 추해도 살 거니까!”
헨더는 이를 빠득 갈고는 도망치듯 광장을 벗어났다.
누구도 헨더를 붙잡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헨더의 행동에 눈치를 살살 보더니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유현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링우그에게 다가갔다.
“링우그. 괜찮아?”
“……제 잘못이에요.”
링우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제가, 제가 헨더를 조금만 더 신경 써 줬더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그냥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그렇겠죠. 하지만 전 분명 헨더에게 사과를 해야 해요. 멋대로 헨더를 평가하고, 아닌 척해도 헨더를 깔본 건 결국 저였으니까요.”
“하지만 헨더는, 널 만나 주지 않을 거야.”
“알아요. 그래도 사과해야 해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이 전쟁이 끝난 뒤에라도.”
그때 살아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지만, 유현은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시 사과할 기회가 분명히 생길 거라고 링우그를 위로해줬다.
“그래서, 더 싸우고 싶지 않은 사람 있나? 있으면 솔직하게 대답해도 된다. 이건 강요가 아니니까.”
레안의 말에 모두가 눈치를 살폈다.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싸울 마음이 가득했지만, 헨더의 외침을 듣고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탓이었다.
그렇게 이도 저도 못하고 있을 때, 프리첸이 나섰다.
“아아! 진짜 못 해 먹겠네! 이렇게 겁쟁이들이 가득한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한번 시원하게 갈아엎을 걸 그랬어!”
“……프리첸.”
“왜? 내가 못할 말을 했나? 방금 그 청년이야 뭐, 그러려니 해도. 여기 남은 사람들. 이거 웃기는 놈들이야. 자기가 싸울지 말지부터 눈치를 보다니. 대체 누가 자기 선택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쓴단 말이야?”
프리첸은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다.
“차라리 게오른 앞에서 무릎 꿇고 살살 빌면 살아남을 확률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프리첸. 말조심해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아무리 탐색대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가르드인이었다.
가르드인은 전통적으로 싸움과 명예를 중시했다. 가르디안에서 32년 동안 가만히 썩으면서 그런 전통은 많이 희석됐지만, 면전에서 대놓고 겁쟁이라는 말까지 웃으면서 넘길 정도는 아니었다.
“누가 안 싸운데? 차라리 잘 됐어.”
지금까지 벨라가 팔을 걷어붙이며 나오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벨라?”
“당신, 정말로……?”
사실, 이 자리에서 벨라만큼 큰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도 자신이 사랑하던 남편을 잃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죽는 건 같다며? 그러면 나는 최소한 우리 남편을 데려간 서리 거인 한 놈이라도 골통을 더 부숴 주겠어. 그게 맞잖아?”
“하하하! 아줌마! 제법 멋진 말을 할 줄 알잖아?”
“시끄러워! 한 번만 더 아줌마라고 하면, 황제고 자시고 네 엉덩이를 흠씬 때려 줄 테다!”
벨라가 으름장을 놓자 프리첸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래서, 어쩌시려나? 아녀자 혼자 싸우게 놔두게? 뭐, 치마폭 뒤에 숨어서 웅크리고 있을 거면 안 말리고.”
“누가 할 소릴!”
“됐어! 어차피 싸우는 것 말고는, 미래도 없다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퍼졌다.
조금 전까지 겁에 질려있던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의 본능.
몸속에 뜨겁게 흐르는 피에 각인된, 가르드인으로서의 유전자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싸우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광장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윽고 모두의 시선이 레안을 향했다.
그들의 지도자이자, 최후의 희망을 향해.
레안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전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최후의 전쟁을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