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316화 (31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16화

일단 배신자가 누구인지부터 먼저 확인을 해 보고 싶다.

유현을 보자마자 레안이 내뱉은 말이었다.

유현과 레안은 다시금 팀을 짜서 얼음의 절벽으로 향했다.

생각을 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 거고, 일단 표면상으로 탐색대의 일은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얼음 절벽 주위에서 배신자의 흔적을 찾기 위한 잠복을 시작한 지 어언 5일째.

오늘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을 보며 유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셨나요?”

“……아직.”

“아직? 아지익? 그때로부터 벌써 며칠 지났죠?”

“5일이 흘렀지.”

“그런데, 아직도 안 했다고요?”

“재촉하지 마라. 안 그래도 슬슬 결론을 내릴 생각이었으니까.”

지난 5일 동안 두 사람은 3번이나 이 장소에 찾아왔고, 이번이 4번째 방문이었다.

둘은 이곳에 올 때마다 근처만 배회했을 뿐, 이전처럼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배신자가 다시 이 근처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구가 열린 것을 보면, 배신자가 몸을 숨길지도 모르니까.

“프리첸 황제는 어떻죠?”

“어쩌고 자시고 평소와 똑같다. 제멋대로 움직이고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듣자 하니 프리첸이 이 근처를 가장 많이 돌아다녔다고 하던데요. 이 근방의 탐색도 그쪽이 맡았다고 하고.”

“그랬지.”

“황제가, 범인일까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은 것도 맞아.”

유현은 주위를 살폈다. 이 근방에 오가는 사람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프리첸은 예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자주 보였다고 하는데, 왜 막지 않았죠?”

“막으려고 했으면 더욱 거칠게 반항했을 테니까.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다?”

“막아 봤자 득이 될 게 없었거든. 오히려 해가 되면 됐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았어. 몇 명, 발이 빠르고 입이 무거운 사람을 추려서 프리첸 파벌의 흔적을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니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말이야.”

“그게 누구였죠?”

“라히얀.”

“당신의 오른팔이고 했던 남자군요.”

“오른팔……이라고는 하기는 그렇군. 애초에 내가 멋대로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라히얀이 스스로 그걸 자처했으면 자처했지.”

라히얀은 유현도 지난 며칠 동안 대화를 나눠 봐서 알고 있다.

냉철하고 이지적이며, 스스로가 탐색꾼으로 활동하는 데 자부심을 가진 남자였다.

위대한 가르드의 전사는 싸움을 피하지 않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명예롭게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투철한 희생정신을 지닌 만큼, 프리첸을 몰래 조사하게 하는데 이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그래도 5일 동안 몇 차례 잠복을 하면 꼬리를 잡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허탕이네요.”

그들이 탐색을 빌미로 숨겨진 입구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혹시 모를 배신자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협곡의 출구 쪽에 누군가 머무른 흔적이 있는 것만으로는 증거로서 빈약했다.

정확히 누가 온 거라고 확신할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 타고 남은 룬석의 흔적 같은 것에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프리첸이 배신자로 의심이 가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를 범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탐색대 본부에는 언제 누가 어디로 갔는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죠?”

“그래. 32년간 탐색대가 돌아다닌 루트에 관해서 세세하게 기입되어 있지. 그것을 정리해서 지도에 옮겼고.”

“그것을 이용해서 프리첸의 배신을 입증할 가능성은? 프리첸의 움직임을 확인하면, 이 근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텐데요.”

“생각은 해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리첸의 입지가 견고한 것도 있지만, 단순히 근처를 배회한 것만으로는 몰아붙일 수 없어.”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골머리를 싸맸다.

차라리 시원하게 목을 쳐서 배신자라고 외치면 편하겠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은 법이었다.

고민을 해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으니 이 근처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오늘도 허탕인 것 같네요.”

“그렇겠지. 이런 날에 나오는 것이 더 수상하기도 하고.”

오늘은 가르디안에 축제가 있다.

위령제(慰靈祭). 1년에 한 번,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생존자들의 의욕을 북돋아 주기 위한 연례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만큼은 탐색꾼들도 그날의 탐사는 쉬고, 음식과 술을 마시며 지친 몸을 쉬게 한다는 취지로, 쉽게 말하면 놀고먹는 날이라는 소리였다.

가르디안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레안이 위령제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냥 빠져도 되는 거 아니에요?”

“나 말고도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레안은 이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마녀라고 불리며 배척만 받았는데, 처음으로 인정받은 거니까.”

“어쩐지 본인이 제일 기뻐 보이는데요?”

“……그건 부정할 수 없겠군. 그래도 그녀의 모습을 한 사람이 욕을 듣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보다 위령제라면…… 동토의 저주가 발생한 이후에 생긴 건가요?”

“아니. 위령제는 동토의 저주가 시작되고 나서 생긴 것이 아니야. 훨씬 전부터, 가르드인들은 매년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축제를 열었다. 동토의 저주가 퍼지기 전 세상은 평화로웠지만, 그 평화를 이룩한 것도 그렇게 오래전이 아니거든. 오히려 그전에는 전쟁이 더욱 심하고, 부족 간의 갈등이나 약탈이 한창이었다. 위령제는 그때도 있었어.”

“오랜 전통이었군요.”

“그래.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이후에는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서로 놀고 즐기자는 축제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야.”

레안은 어딘가 아련한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동토의 저주가 퍼지기 훨씬도 전에, 내가 막 후보자로 간택을 받아 수련을 받을 때였지. 나는 케이라의 손에 이끌려 위령제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분위기를 탄 것일까.

갑작스러운 옛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유현은 잠자코 레안의 말을 경청했다.

“후보자들은 모두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 수련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커다란 도시나 왕국 같은 곳은 발을 디딜 수 없었지. 그래서 조금 답답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내가 걱정돼서 그런 건지 그녀가 나를 가까운 소수 민족 마을로 데려왔다.”

제국의 그것에는 비할 수 없는 초라한 축제였지만.

그렇다고 레안은 그것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아직 싸울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저 마냥 축제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지. 하지만 그보다도 좋았던 것은, 그녀의 손을 잡고 온종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었어.”

밤이 되자 마을의 중심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가르드인들은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싸움이 싫었던 나는, 놀고 즐기는 것은 좋아했지. 그래서 나는 케이라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춤을 추자고 권했었다. 케이라는 그때 처음으로 나의 이 제안엔 놀랐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었지.”

이윽고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자신은 춤을 출 줄 모른다는 것이었어. 웃기는 일이지. 위대한 전사를 키울 정도의 검술을 지니고,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룬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그녀가, 고작 마을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춤을 추지 못한다니.”

레안은 그것이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결국 춤추는 걸 포기하고 그녀의 옆에 똑같이 무릎을 끌어안은 채 쪼그릴 수밖에 없었다.

레안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했다.

별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하늘과 하늘을 태울 듯이 솟구치던 커다란 모닥불.

그보다도 가까이 느껴지던 그녀의 온기까지.

“그때의 나는 대체 뭐가 그렇게 아쉬웠는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춤을 추자고 말했다. 모르면 내가 가르쳐 주겠다고, 배우면 재밌을 거라고 말했지.”

“케이라가 뭐라고 하던가요?”

“좋다고, 기대하겠다고 하더군.”

후보자로 선택받고 힘들고 괴로운 일들만 가득하던 과거에서도, 몇 없는 추억이라 부를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케이라는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위령제는 결국 내게도 나름 중요한 날이라는 거야. 그래서 빠지지 않았다. 지난 32년 동안에, 오히려 누구보다도 위령제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랬군요.”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한동안 둘은 혹시 모를 배신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더 기다렸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도 끝인가. 애초에 위령제가 있는 날에 배신자가 이곳까지 올 거라 생각하는 게 우스운 거였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게오른을 쓰러뜨리자고 할 수는 없었다. 배신자가 내부에 있는 이상, 중요한 순간에 그자가 무슨 짓을 할 줄 모르니까.

그렇게 오늘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현장을 벗어나려는 순간, 두 사람은 저 눈보라의 장막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발견했다.

“……! 저거 설마.”

“쉿. 속단하지 마라. 서리 거인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몸을 바짝 낮추며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예의주시했다.

처음에는 서리 거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보폭이 일정하고 방향이 정해져 있어.’

서리 거인은 움직임이 제멋대로다. 그들은 이지가 없고,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저 그림자는, 분명 입구가 숨겨져 있는 이곳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즉 저 그림자는 서리 거인이 아니었다.

유현과 레안이 시선을 교환하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꼬리는 이곳에 두 사람이나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아니, 천천히는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를 조심히 살피듯 그 움직임은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혹시,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그렇게 다가오던 꼬리는 눈보라 때문에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다만 허리춤에는 한손도끼를 매고 있고, 머리에는 뿔 달린 투구를 깊게 썼다는 것만 보일 뿐.

서리 거인이 아니라 사람인 건 확실했다. 그것도 탐색꾼이었다.

그렇게 다가오던 꼬리가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저쪽이 뭔가 눈치챘어요!’

‘알고 있다!’

그 순간 레안이 움직였다.

눈밭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레안은 상대방을 제압할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앙!

“흠?”

그런데 상대방은 곧바로 도끼를 뽑아내서 레안의 참격을 받아쳤다. 그 모습에 레안은 살짝 놀랐다. 힘을 빼서 내지른 일격이지만 설마 이것을 받아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

꼬리는 레안과 그 뒤에 유현까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도끼를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지면의 눈이 뒤집어지며 거대한 파도처럼 유현과 레안을 향했다.

레안이 검을 휘두르며 눈의 파도를 갈랐을 때, 꼬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중이었다.

“놓치면 안 돼요!”

“나도 안다!”

레안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점점 거칠어지는 눈보라 속에서 꼬리를 쉽게 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꼬리라고 생각했던 녀석은 평범한 가르드 전사가 아니었다. 전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힘을 자랑하는, 최소 상급 전사라 불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상급 전사는 지구로 치면 상급 컬렉터에 버금간다.

힘도 힘이지만, 들키기도 전에 몸을 빼려고 할 정도로 감이 귀신같이 날카로운 녀석이었다.

유현과 레안은 최대한 꼬리가 눈밭에 남긴 흔적을 살피며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흔적이, 둘?’

하나라고 생각했던 흔적은 2개로 겹쳐져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흔적은 어느덧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올 때의 발자국이 아니야. 향하는 방향이 일정하다는 건, 한 명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유현과 레안은 발자국을 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배신자가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보면 최소 둘은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이대로 찢어져서 따라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일단 돌아가지.”

“……그래야겠어요.”

눈보라는 마치 그들을 우롱하기라도 하듯 더욱 거칠어졌다. 세상이 하얗게 보여서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유현과 레안은 일단 녀석과 한 차례 충돌이 일어났던 곳으로 돌아왔다.

“잠깐. 이걸 봐요.”

“이건?”

유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금속의 파편이었다.

조금 전 레안이 검을 내질렀을 때, 도끼로 받아치던 와중에 도끼의 날의 일부가 잘려 나간 것이었다.

“이거라면, 무기를 대조해서 녀석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어.”

“무기를 버렸다면?”

“탐색꾼들 사이에서 자신의 무기를 바꾸거나 버리면 바로 티가 난다. 무기의 숫자는 한정적이고, 전사는 자신의 무기를 애용하는 법이니까.”

“흔적은 2개였는데, 설마 다른 사람이 더 있는 거겠죠?”

“……한 명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 정도의 실력자인 데다가 사람이 여럿이라면 의심 가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지.”

“프리첸. 역시 그가 배신자였군요.”

드디어 확실한 단서를 얻게 됐다. 두 사람은 빠르게 가르디안으로 복귀했다.

혹시라도 들켰다고 생각한 배신자들이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으니까.

“어라? 두 분 이제 오셨어요?”

가르디안으로 돌아오자 링우그가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이해 줬다.

“안 그래도 라히얀 아저씨가 두 분 찾는다고 근처 돌아다니다가 방금 돌아왔거든요. 혹시 멀리 가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바로 왔네요. 이제 곧 위령제가 시작되는데, 어서 준비하셔야죠. 주인공이 빠져서 되나.”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프리첸은? 프리첸은 못 봤어?”

“프리첸 황제요? 어? 그러고 보니 오늘 자기 부하들 이끌고 밖에 나갔었다고 들었는데. 듣기로는 위령제 시작하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데요.”

“……그래?”

과연, 이 타이밍이 우연일까?

유현과 레안은 더더욱 확신이 섰다.

“레안. 저는 먼저 탐사대 본부에 가서 혹시 오늘 따로 출입을 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게요.”

“그래. 나는 일단 탐색꾼들을 모으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거의 80%는 프리첸이 범인인 것이 확실했지만, 아직 100%는 아니었다.

유현은 본부에 들러서 오늘 탐색꾼 중에 바깥에 나간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할 생각이었다.

배신자가 전부 프리첸의 파벌이면 모를까, 탐색꾼들 사이에도 간자가 숨어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지?”

유현이 황급히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는지, 광장에 막 녹은 눈을 말리던 레이햔이 그렇게 물었다.

“아, 라히얀 씨. 그러니까 지금…… 좀 바쁜데…….”

“……무슨 일이 생겼군. 안 그래도 방금 레안님이 다른 탐색꾼들을 모으는 것을 봤다. 중요한 일이지?”

“맞아요.”

“그렇다면 도와주지. 그분의 일은 곳 나의 일이니까.”

레안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라히얀까지 나선다면야 더욱 든든할 따름이었다.

유현은 라히얀과 함께 탐색대 본부로 향했다.

* * *

링우그는 레안의 부탁에 가까운 명령을 받았다. 축제를 준비하는 탐색꾼들을 한 장소에 모아 달라는 것이었다.

레안이 너무 바빠 보여서 그 이유는 묻지 못했지만, 링우그는 일단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그때, 저 성벽의 입구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은 새하얀 갈기 같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른 프리첸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싶어서 프리첸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가 링우그를 발견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링우그 탐색꾼. 맞지?”

“어, 어. 네. 그런데요.”

“레안과 케이라. 봤나?”

“네, 네?”

“레안과 케이라. 둘은 지금 어디 있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링우그는 난데없이 레안과 케이라의 행방을 묻는 프리첸의 행동을 경계했다.

그가 슬쩍 뒤로 물러나자 프리첸은 얼굴을 더욱 무섭게 일그러뜨렸다.

“어서 말해. 그럴 시간 없으니까.”

* * *

본부에 도착하자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내부에서 업무를 봐야 할 사람들까지 전부 다 위령제의 준비 때문에 도시의 광장에 모여 있었다.

유현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괜한 설명으로 시간을 잡아먹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곧바로 탐색 기록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무수한 양피지가 무분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라히얀은 문 근처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그래서, 뭘 찾고 있는 거지?”

“오늘 자 외부 출입 명부를 확인하고 있어요. 어디 보자, 이번 주 정리본이 여기 있네.”

“오늘 바깥으로 나간 사람은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프리첸 일당은 그렇지 않죠.”

그래도 혹시 모를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유현의 눈이 빠르게 양피지를 훑었다.

“프리첸? 그가 뭘 했나?”

“그쪽의 수상한 행적을 발견했어요.”

“수상한 행적?”

“네. 오늘 프리첸이 바깥에 또 일행을 이끌고 나갔다고 했는데, 그중에서 한 명이 이미 탐색이 끝난 구역으로 다가왔죠.”

“탐색이 끝난 구역? 그런 곳이 너무 많다 보니 헷갈리는군.”

“북대륙을 가로지르는 산맥 아시죠? 이제는 얼음 절벽이 된 거기요. 그 근방에서 흔적을 발견했어요. 아니, 흔적이 아니라 증거겠죠. 최소 2명의 것을.”

“2명? 2명이 확실한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물어보는…….”

유현은 말을 하려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라히얀 아저씨가 두 분 찾는다고 근처 돌아다니다가 방금 돌아왔거든요.

복귀했을 때 링우그가 바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현은 잔뜩 몸을 긴장시킨 채, 눈동자를 굴렸다.

‘잠깐만. 내가 왜 이걸 놓치고 있었지?’

처음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꼬리의 행동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녀석은 조심스럽고 또 조용히 움직였다. 입구를 확인하러 오는 거였다면, 그런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그 행동은 마치 다른 무언가를 쫓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2개의 흔적.

만약에.

꼬리라고 착각했던 것이, 사실 아니었다면?

꼬리의 동료라고 생각했던 또 하나의 흔적이, 사실은 꼬리가 역으로 쫓고 있던 자였다면?

레안은 말했다. 프리첸이 혹시라도 수상한 짓을 벌이는 게 아닌지 그를 몰래 감시할 사람을 보냈다고.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 감시자는 프리첸 일행 다음으로 얼음 절벽 근방을 가장 많이 돌아다닌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갑자기 손이 멈췄군. 왜 그러지? 뭐라도 발견한 건가?”

그 사람이, 지금 유현의 바로 뒤에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