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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10화 (31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10화

“오. 있었네요.”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것은 유현을 여기까지 안내하게 도와준 링우그였다.

링우그는 유현과 더불어 벨라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벨라 아줌마도 오랜만!”

“링우그. 설마 네가 온 거니?”

“네. 레안 형님이 저한테 가 보라고 시켜서요.”

“레안은 형님인데 왜 나는 아줌마냐! 어! 이렇게 정정한 아줌마 본 적 있어?!”

벨라가 짜증 난다는 듯 소리쳤지만, 링우그는 그저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분노를 가볍게 흘려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링우그도 왔겠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벌써 가시게요?”

“안내하러 왔다면서요? 여기서 죽치고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게 낫겠죠. 벨라 아주머니. 나갔다 올게요.”

“……그래. 조심해라.”

유현은 링우그와 함께 여관을 나와, 도시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링우그는 다시 수다를 떨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기쁜지, 이때다 싶어서 입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야. 설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보다 누나는 제법이네요?”

“누……나?”

“아. 속은 남자라고 했나? 그러면 형이라 불러야 하나요? 하지만 겉모습은 누나인데. 이거, 부르기 되게 껄끄럽네요. 그렇다고 이름으로 부르자니, 본인의 진짜 이름은 말해 줄 수 없고요.”

“……그냥 편하게 불러. 나도 편하게 말할 테니까.”

“그러면 누나로 할게요.”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누나라 부르는 남동생이 생겼군.

유현은 굳이 그것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면 어떻고, 형이면 어떤가. 호칭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를 어디로 안내하는 거야?”

“아, 일단은 탐색대에 들어온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러면 바로 탐색대 본부로 가서 장비를 지급받아야 해요. 본부는 저기, 처음 들어왔을 때 봤던 첨탑 있죠? 거기에 있어요.”

“너는 딱히 말리거나 하지 않나 보네? 내가 탐색대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네? 그야 당연하죠. 그 프리첸 황제에게 펀치를 먹였는데, 그 정도면 자격이 이미 충분하고 남은 거 아니에요?”

링우그는 유현이 프리첸의 턱을 후려친 부분을 언급했다.

단지 누구에게 한 방 제대로 먹였다는 거로 고평가를 받는 것은 의아한 일이지만, 그만큼 프리첸의 인식이 이곳에서도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성격이나 행동은 문제가 있더라도, 대부분 사람이 그의 실력만큼은 인정했다는 거겠지.

그 실력자에게 한 방 먹였으니, 유현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대부분 인지했을 것이다.

“엇?”

“어.”

그때 길을 걷다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 링우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헨더? 네가 왜 여기 있어?”

오다가 마주친 사람은 처음 링우그가 유현을 데려왔을 때 어떻게든 유현을 쫓아내려고 한 헨더였다. 그는 링우그와 그 옆에 함께 걷고 있는 유현을 발견하더니 이내 대놓고 얼굴을 구겼다.

“왜? 나는 뭐 돌아다니면 안 되냐?”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됐어. 난 바쁘다.”

헨더는 그 말만 남기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껄렁한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이전에도 느낀 건데, 아는 사이야?”

“아. 헨더요? 네. 뭐, 아는 사이라고 할 수는 있겠죠. 저랑 쟤는 동갑이니까요. 나이가 같다 보니까 어릴 적에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도 했고요. 애초에 이곳은 또래 아이들의 숫자가 많이 적거든요.”

“친했었어?”

“그때는요? 아마.”

지금은 아니지만요.

링우그는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웃으며 넘겼다.

“저는 탐색대가 되어 돌아다니지만, 헨더는 그렇지 않거든요. 겁쟁이라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젊은 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곳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있어요.”

“그건 첫 만남 때도 봐서 알겠더라.”

“그러다 보니 헨더 입장에서는, 제가 되게 불편하겠죠.”

“질투……인가.”

“네. 맞아요. 그래도 같이 놀던 때가 있었는데, 저는 탐색꾼으로서 바깥에 돌아다니며 활동하고, 나름 영웅 취급 받는 것에 비해서 헨더는 그러지 않으니까요. 주변 사람들의 눈칫밥도 많이 먹고. 그럴수록 제게 더 적대적으로 대하고요.”

따지고 보면 헨더라는 인간이 한심하기 짝이 없기에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것에 가까웠지만, 링우그는 그 부분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마냥 미운 친구는 아니에요. 가끔 욱해서 저도 좀 쓴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저게 미운 친구는 아니라니. 오히려 관대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네.”

“하하. 어쩌면, 헨더 말고는 제 또래가 더는 없어서 제가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죠. 친구기도 했고요.”

“그러고 보니 너, 나이가 몇이었지?”

“저 올해로 22살이요.”

그렇다는 것은 링우그는 동토의 저주가 벌어지고, 10년이 지난 뒤에 태어났다는 말이 된다.

그와 같은 또래가 헨더 하나라는 걸 생각하면, 태어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탐색꾼은, 조금만 방심하면 죽고 말아.’

무엇보다 탐색꾼은 이 생존자들의 도시 가르디안에서도 고급 인력이다.

그런 인구가 천천히 줄어들고 있다. 68년 내로 전부 다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마법진이 영구적으로 돌아간다 해도 가르디안의 멸망은 사실상 필연적인 일이라는 소리였다.

링우그는 조금 전 헨더가 사라진 방향을 곁눈질했다.

“헨더는, 부모님이 두 분 다 탐색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누나를 보고 과하게 반응한 거예요. 헨더의 부모님은 누나의 전전, 그쪽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다가 죽었으니까요.”

“……그랬구나.”

이미 충분히 들어서 알고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불완전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이 세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 지어진 성이었다.

그리고, 지면의 금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마법진의 남은 가동 기간인 68년보다도, 이 세계는 더 빨리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 레안은 어때?”

“레안 형님이요? 뭐가요?”

“보니까 여기 지도자처럼 보이는 거 같던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네요. 레안 형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제대로 살아남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이 도시에 황제는 있어도 왕은 없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레안 형님이 왕이나 다름없어요. 아, 물론 본인은 그렇게 말하면 싫어할 걸요?”

“그렇게 보이더라. 그런 거에 욕심도 없어 보이고.”

“그런 레안 형님이 누나를 탐색대에 넣으라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솔직히 누나가 저 초면인데도 고맙다고 말했을 때부터 다르다고 느끼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 의외였다니까요.”

“그 정도야?”

“네. 형님이 그렇게까지 구는 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저는 그래도 편견이 없다 보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탐색대에는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건 유현도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두 사람은 이윽고 도시의 가장 안쪽, 높이 솟아 있는 첨탑에 도착했다.

유현은 첨탑 주위에 펼쳐진 넓은 밭과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들을 기르는 사육장을 발견했다.

‘마법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동물들을 키우고 있었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거로 봐서는 당장에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링우그는 밭과 밭 사이에 난 커다란 길로 유현을 안내했다. 첨탑은 높게 솟아 있었는데 1층과 2층에 해당되는 공간은 첨탑의 실제 크기보다 훨씬 더 넓었다.

유현은 그제야 저 첨탑은 실제 건축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법진의 핵을 저 첨탑이 유지하는 거였어.’

실제로 건축물, 탐색대 본부의 역할을 하는 것은 1층과 2층이 전부였다.

그곳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눈을 털어 내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오늘 일을 마치고 복귀한 탐색꾼들이었다.

그들은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링우그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주려다가, 이내 옆에 서 있는 유현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링우그. 그, 뭐시냐…….”

“레안 형님의 지시에요.”

그들이 뭐라고 묻기도 전에 링우그가 선수를 쳤다.

레안의 이름이 나오자 링우그에게, 그리고 유현에게 무언가를 따지려고 하던 탐색꾼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레안님이 그러셨다면 뭐…….”

“그분도 무언가 생각하는 게 있으실 테니까.”

조금 미덥지 못하지만, 그들이 유현의 의체인 케이라에게 얼마나 불신의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레안이라는 이름은 탐색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자리에서 레안의 도움을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도 시선은 어쩔 수 없나.’

일단 직접적으로 건드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탐색꾼들의 시선은 여전히 유현을 못 미더워하거나, 일부는 죽일 듯이 노려보기도 했다.

“다들 그만. 복귀했으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라. 다음은 2일 뒤니까.”

“대, 대장.”

‘대장?’

달아오르려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장발의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보였으며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그는 눈빛이 날카롭고 어딘가 날이 선 칼날 같았다.

그가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도 주위에 있던 탐색꾼들은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부하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그제야 그는 유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본부를 떠났다.

‘저 사람이 탐색대를 이끄는 대장인가.’

유현이 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때, 링우그가 조용히 유현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라히얀 아저씨예요. 조금 전 팀을 이끄는 대장이고, 레안 형님과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죠. 사실상 형님의 오른팔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능하신 분이에요. 냉철하고 이지적이죠. 게다가 검술 실력도 대단해서 가르디안의 3인자라 불리기도 해요.’

‘그런데, 왜 귓속말로 하는 건데?’

‘라히얀 아저씨는 귀가 되게 밝거든요. 물론 그걸 안다고 아저씨 성격상 뭐라고 하지 않고 넘어가겠지만, 좀 그러잖아요?’

‘되게 날카로워 보이던데.’

‘그렇죠. 하지만 그만큼 팀원들을 끔찍하게 아끼고, 레안 형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어요. 듣기로는 동토의 저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형님과 알던 사이라고 했던가. 나이를 생각하면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왜 레안은 형님이고 저 사람은 아저씨야?’

‘레안 형님은 젊어 보이잖아요.’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었다.

“자. 일단 안쪽에서 장비를 지급해 드릴게요.”

“장비도 있어?”

“그래도 탐색꾼이면 최소한 자기 몸을 지켜 줄 장비는 필요하니까요. 마법사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이 유용한 장비를 만들어 주시죠.”

탐색꾼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무력을 지녀야 했지만, 바깥의 험악한 환경은 무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에 빠지지 않기 위한 신발과 추위를 막아 주는 외피, 식량을 담은 주머니, 서리 거인을 상대로 얼어붙지 않을 무기까지.

준비해야 할 물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이 남아?”

“아뇨. 하지만 기존에 물건을 사용하던 전임자의 것들이 많이 남거든요.”

“아.”

귀한 아티팩트 같은 물건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정된 수량보다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빨리 줄어들면.

물건이 남아돌 수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이 썼던 물건을 써야 한다는 건가.”

“저희 가르드인들은 그러지 않아요. 죽은 사람이 사용했던 물건이기에, 그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죠. 싸움에서 패배해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을 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승리를 되찾고 구원의 땅으로 간다고 믿으니까요.”

“구원의 땅은 또 뭐람.”

링우그는 이참에 가르드인의 신앙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자 했다.

“구원의 땅은 저희가 죽은 이후에 가는 세계에요.”

“사후세계 같은 건가. 그래서 싸우다 죽으려는 거고?”

“모두가 아니지만, 대부분 가르드인들은 싸움을 피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란 언제나 당연한 거였고, 많이 이길수록 죽은 뒤에 영광의 땅으로 갈 수 있다고 했거든요. 물론 패배하면 그러지 못하고 사용하던 물건에 영혼이 남는다지만, 자신의 뒤를 이어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승리하면 함께 구원의 땅으로 올라간다고 하죠.”

“그렇구나.”

“그래서 고인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은 불길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사람을 향한 예우에 가깝죠. 그리고 고통받는 영혼을 구제하는 일이기도 해요. 패배의 원한에 사로잡힌 자들을 위해서, 저희가 대신 싸워 주고 그들의 염원을 풀어 주는 거니까요.”

“그러다 다음 사람까지 죽으면?”

“그러면 그다음 사람들이 뒤를 잇는 거죠.”

너무나도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또 너무나도 당당하고 뚜렷했다.

“의지는 이어져요. 우리들의 영혼도 이어지죠. 물론, 동토의 저주 이후로는 그마저도 거의 없는 말이 됐지만…… 저는 아직도 믿고 있어요. 언젠가 이 지옥 같은 눈보라가 끝나면, 우리 모두가 구원의 땅을 밟을 수 있다고요.”

구원의 땅.

북쪽의 바다, 그 너머에 존재한다는 고통도 배고픔도 없는 풍요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

링우그는 진심으로 그곳이 있다고 믿으며 눈을 빛냈다.

“그래서 제가 탐색대에 지원해서 탐색꾼이 된 거예요. 도망만 치면서 숨어있으면 명예롭지 못하니까. 싸울 수도, 이길 수도 없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바깥을 탐험한다.

분명, 죽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명예로운 승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죽어도 분명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이어서 의지를 계승해 줄 거다.

의지는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져, 결국 어느 순간에 목표로 했던 길에 닿을 것이다.

링우그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레안을 동경했고, 탐색꾼들을 동경해 탐색대에 들어왔다.

“너는…….”

유현은 그런 링우그의 모습에, 이런 절망의 시대가 와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이곳에도 꿀리지 않는 그 끔찍한 지옥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타올랐는데.

“하하. 설명이 길어졌네요. 어서 장비 지급받으러 가죠.”

“마법사한테 가는 거지?”

“네. 일단 기존에 사용하던 장비들을 수리 보수까지 겸하시니까요. 조금만 늦으면 그분이 집에 가서 쉴 시간이니 어서 서둘러요. 좋으신 분이기는 한데, 성격이 되게 까다롭거든요.”

“그래.”

유현은 마법사가 머무는 공방에 도착했다.

링우그가 가볍게 문들 두드리자 안쪽에서 히스테릭한 노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누구냐!”

“할아버지. 저에요. 링우그.”

링우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링우그. 지금이 몇 시인데 귀찮게 날 찾아온 거냐! 내가 일과 이후에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노인은 빈말로도 인자하다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씻지도 않고 길게 자란 하얀 수염과 머리는 정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길거리 노숙자를 방불케 했다.

복장도 로브가 아닌 짐승의 가죽 털로 만들어진 간단한 복장이었고, 부리부리한 눈매와 상당히 큰 코는 이 마법사가 매우 깐깐한 성격임을 과장 없이 드러냈다.

‘음. 뭔가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피곤해질 거 같은데.’

실제로 노인은 링우그를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내일 오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래도 새로 온 손님이 있는데.”

“손님은 무슨 손님! 누군데! 누가 내 휴식을 방해하는데! 어디 낯짝 좀 보자!”

그렇게 말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링우그의 뒤에 서 있던 유현이 살짝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노인은 눈을 부릅뜨며 숨을 집어삼켰다.

“허억! 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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