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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08화 (30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08화

쿠웅.

프리첸의 거구가 살짝 떠오른다 싶더니 이내 그의 몸이 뒤로 무너졌다.

방심한 순간 제대로 턱을 맞은 충격 때문에, 프리첸은 기절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헉!”

“미친!”

설마하니 유현이 프리첸의 턱을 주먹으로 날려 버릴 줄은 몰랐다는 듯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시종일관 인형처럼 가만히 있던 레안조차도, 지금 유현이 보여 준 행동에 굳게 다물던 입을 벌렸을 정도.

놀란 것은 프리첸과 더불어 그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녀가!”

“감히 황제님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프리첸의 병사들이 칼을 뽑으며 유현을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자신의 주군이 모욕당했다는 생각에 그들은 그야말로 눈이 뒤집혔다.

동시에 레안의 뒤에 선 자들도 각자 칼을 뽑았다. 아무리 그래도 유현이 가만히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던 것이었다.

두 집단 사이의 긴장감이 극한까지 도달했을 때.

“그만!!!”

쓰러졌던 프리첸이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그 거대한 외침이 얼음산 내부 공동을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넘실거리던 살기를 모조리 씻어 냈다.

유현은 그 외침에 나지막이 감탄했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흔히들 공력이라 말할 것이 담겨 있었다.

주변 상황이 적당히 정리되자 프리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욱신거리는 턱을 매만졌다.

“으음.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군그래.”

“한 방 먹으라고 때린 거야.”

“하하. 그래. 그랬겠지.”

프리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현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그는 도발을 한 것이 맞다. 그리고 대부분 케이라의 모습을 한 텔러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입으로만 소리치거나, 혹은 엉성한 손짓 발짓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싸움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놈들. 그러면서 말로만 잘난 척하는 놈들.

프리첸은 내심 그런 텔러들을 비웃고 경멸했다.

그런데, 이건 뭐란 말인가?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주먹이 턱을 후려치는 순간, 프리첸은 뒤늦게 맞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가 아무리 방심하고 있다 하더라도 등 뒤에서 누군가가 암습을 하듯 칼을 찔러도 눈치를 채는 사람이다. 그는 가르드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혈통을 타고났으며, 그가 지금까지 강해지기 위해 한 노력은 빛을 잃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유현이 주먹을 내질렀을 때, 피하지 못하고 맞았다.

그리고, 그냥 때린 것도 아니다. 순간 턱을 맞는 순간 뇌가 흔들리며 거친 충격이 두개골을 타고 흘렀다.

‘강해. 몸을 사용할 줄 아는 녀석이다.’

위력은 크지 않아서 곧바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프리첸은 눈앞의 케이라의 탈을 쓴 유현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막상 손맛을 느껴보니 정말로 다르군.”

“그렇게 알면 됐고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곳은 여전히 편한 곳은 아닐 거다.”

프리첸은 그 말만 남기고,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며 떠났다. 사라지는 것도 워낙 일사불란하고 빨라서 그야말로 폭풍 같은 남자였다.

프리첸 일당이 사라지자 남은 레안 쪽은 어쩌면 좋을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가지.”

딱 한마디만 한 레안 또한 자리를 떴다. 레안을 추종하는 자들은 이도저도 못하다가 그가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사태가 정리되자 모였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갔다.

유현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보통 이런 생존자 집단에서 파벌이 갈리면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인데, 사람들의 표정은 이미 적응 한 것마냥 가벼웠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게 아니라는 건가?’

확실히, 프리첸이 유현을 보며 도발을 했을 때부터 무언가가 있다고는 짐작했다.

“아주머니. 저희도 가요.”

“어, 어. 그러자꾸나.”

유현은 벨라 아주머니와 함께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 돌아온 벨라는 조금 전 일을 떠올렸는지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이거, 생각해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네!”

“뭐가요?”

“뭐라니, 네가 그 프리첸의 턱주가리를 후려친 거 말이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프리첸 그 자식도 제대로 자존심이 상했겠지!”

평소에 프리첸에게 악감정이 쌓였는지 벨라는 숨이 넘어가라 웃었다.

정작 유현은 그녀의 말에 별로 공감해 줄 수 없었다.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프리첸이 황제라 불리는 것, 그리고 그의 추종자와 그가 평소에 벌이는 행동을 보면 아무래도 폭군이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실제로 보여 주는 행동도 어딘가 제멋대로에 단순무식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프리첸은 일부러 그렇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나한테 맞고도 바로 화를 내지 않고, 무엇보다 그때 그 눈빛. 웃는 얼굴과 다르게 상당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어.’

유현은 자신의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기며 혀를 찼다.

‘그런 부류는 되게 까다로운데.’

생긴 것은 호랑이 같지만, 그 속에는 여우가 담겨 있다. 게다가 프리첸은 보아하니 이 생존자들의 도시, 가르디안에서도 독보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어 보였다.

그 레안과 대놓고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런 자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적대하는 것은 더욱 귀찮다.

‘그래도 조금 전의 행동은 내가 해도 나쁘지 않았어.’

유현이 프리첸의 턱을 후려쳤을 때.

프리첸의 부하들은 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유현의 행동이 통쾌한지 웃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유현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일부 시선들도 바뀌었으니까.

프리첸이 유현을 이용하려 했든, 유현 또한 그런 프리첸을 제물로 어느 정도 이미지 개선에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그보다, 너 속내는 남자였냐?”

“네, 뭐…….”

“하하. 그렇군. 하긴, 진짜 케이라가 아니니까. 그게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에이. 어차피 됐어. 그런 어려운 걸 생각하는 건 별로 성미에 맞지도 않고.”

“그보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 봐요? 사람들의 반응이 어딘가 많이 익숙해 보이던데.”

“응? 그야 익숙할 수밖에 없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 거리는 녀석들인데.”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린다라.

유현은 이 가르디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졌다.

“프리첸은 누구고, 또 왜 서로 파벌을 이루는 거죠?”

“으음. 말하자면 긴데.”

벨라는 유현에게 자신이 아는 것들을 설명해 줬다.

“프리첸 그 자식. 말로는 황제니 뭐니 하고 우리도 그거 눈꼴사납기는 한데, 딱히 부정할 수는 없거든.”

“네?”

“그 녀석이 진짜 황제가 맞으니까. 실제로 황가의 피를 이었고, 나머지가 다 죽었으니 황제가 아니면 뭐겠어? 뭐, 이제는 망해 버린 제국의 황제지만.”

망해 버린 제국이라는 말이 유현의 관심을 끌었다.

“응? 아아. 그러고 보니 너는 제국이니 뭐니 잘 모르겠구나.”

“예. 제국은 뭐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아이고야. 이거 설명 좀 하려면 되게 길어지겠네.”

벨라는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웃으면서 말해줬다.

본래 이 세계는 동토의 저주가 걸리기 전까지는 여러 왕국과 제국, 그리고 다양한 소수 부족이 살아가는 세계였다.

그중에서 당연히 프리첸이 소속된 것은 제국의 최북단에 존재하는 프란츠가르트 제국이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대한 힘을 지녔다고 평가된 프란츠가르트 제국. 강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복 전쟁을 자주 일으켜, 주변 국가들이 항상 긴장하고 예의주시한 나라였다.

프리첸은 그 제국에서도 승계 서열이 거의 최하위였던 황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제국이 멸망했다는 건가요?”

“맞아.”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동토의 저주가 터졌다. 어째서 발생했는지 모를 그 저주는 바람에 냉기를 실고 대륙을 넘어 세상을 집어삼켰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동토의 저주와 가까운 곳에 있던 프란츠가르트 제국이었다.

적의 침공도 아니고 대분도 아닌, 말 그대로 자연재해에 가까운 일이라 제국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땅과 하늘, 도시와 사람들까지 모조리 얼어붙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남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프리첸은 그중에서, 프란츠가르트 제국의 유일한 생존자야. 본인의 주장처럼 황제라고 불리기엔 충분하지만, 프란츠가르트가 멸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사실 그만큼 추한 것도 없지.”

“그랬군요. 그런 것치고는 따르는 사람들이 많던데.”

“뭐, 살아남을 때 자신의 휘하 기사단과 함께 살아남았다고 하더라고. 지금 녀석의 옆에서 열심히 분위기 잡는 녀석들은 그 기사단의 생존자라고 보면 돼. 그 밖에 몇몇 나머지는, 괜히 기사니 황제니 뭐니 하는 것에 이끌린 멍청이들이고.”

벨라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유현이 보기에는 단순히 프리첸에게 속아서 그를 따르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프리첸의 행동과 성격을 보면 아마 그는 본연의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휘어잡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이쪽과 자주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던데.”

“그거야 그럴 수밖에 없지. 탐색꾼들 일을 하면 그렇게 되니까.”

“탐색꾼이라. 그러고 보니 저를 여기까지 데려와 준 링우그도 탐색꾼이라고 했었죠.”

“아. 링우그 녀석이 데려온 거였구나. 어쩐지. 녀석은 그래도 남들을 별 차별 없이 대하는 착한 녀석이거든. 사실 오히려 순해 빠졌다는 말이 맞겠지.”

“탐색꾼은 뭡니까? 그리고 뭘 찾는 건가요?”

“우리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갇혀 지낼 수만은 없잖아. 탐색꾼들은, 바깥에 도사리는 거친 환경과 위험을 무릅쓰고 외부를 탐색하는 자들이지. 혹시라도 새롭게 이주할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은 없을까. 우리 말고도 다른 생존자 집단은 없을까. 그리고…….”

말을 하려다 벨라는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손을 저었다.

“아니다. 이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고. 아무튼 탐색꾼들은 매우 위험한 일을 하는 자들이라는 거야. 그리고 아주 용감하고 명예로운 일이고.”

“그 프리첸도 탐색꾼인가요?”

“맞아. 프리첸과 대적하던 녀석들도 다 탐색꾼이지. 사실상 싸울 줄 아는 녀석들은 대부분 탐색꾼이나 다름없어. 그리고 그런 탐색꾼 중에서도 프리첸 파벌과 레안 파벌이 갈리는 거고.”

왜 싸울 줄 알아야 하냐고는 묻지 않았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서리 거인을 생각하면, 어쭙잖은 실력으로 탐색꾼이 될 경우에는 오히려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실제로 탐색꾼들은 한 번 나가고 나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한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딱 하나뿐이다.

서리 거인을 마주쳤을 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케이라 너와 같은 아이들은 네가 오기 전부터 꾸준히 있었어.”

“그건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래. 하지만 케이라의 모습을 한 너희들이, 동토의 저주가 세상을 집어삼킨 이후에 나타난 것이 문제였겠지.”

“……그랬군요.”

유현은 왜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불길하게 여기는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알 거 같았다.

직접적인 이유가 없더라도 이렇게까지 타이밍이 공교로우면, 마치 이쪽이 동토의 저주를 몰고 왔다고밖에 비춰지지 않으니까.

물론 처음에는 이곳 가르디안의 생존자들도 좋게 대하려고 는 했다.

오히려 동토의 저주를 해결해줄지도 모르는 신의 사도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텔러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보다 이런 곳에서 식량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잘 살아남고 있네요.”

실제로 가르디안은 바깥의 끔찍한 추위가 아닌, 초봄의 따스한 날씨와 비슷했다.

태양은 이곳에 빛을 비추지 않았지만, 도시 자체가 빛을 내뿜고 있으며 동시에 온기를 가득 채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마법사들과 주술사들, 그리고 위대한 다섯 자매가 결계를 만들었으니까.”

“그 결계가 온도를 조절하고, 이곳에 식물이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군요.”

“그래. 그리고 바깥의 그 끔찍한 서리 거인들이 이쪽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주지. 사실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놈들이 우릴 찾지 못하게 하는 쪽에 가깝지만.”

“그보다 위대한 다섯 자매는 또 누구죠?”

“아, 그건…….”

벨라는 조금 난처한 기색을 보이다가 딱히 숨길 일도 아닌 것 같아서 말해 주기로 했다.

“위대한 다섯 자매는 신이 직접 보낸 사도야.”

“신의 사도요?”

“그래. 정확히 차기 신의 후보를 뽑기 위해 후보자들을 키우고, 강하게 만들기 위한 존재들이었지.”

존재들이었다.

그 과거형의 말이, 지금은 위대한 다섯 자매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케이라. 그러니까 네가 지니고 있는 그 모습. 그녀 또한 위대한 다섯 자매 중 하나였어.”

“네?”

“케이라는 그중 첫째로 맏언니였지. 아주 어릴 적, 내가 어여쁜 소녀였던 시절에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어. 지금 네가 한 그 모습과 똑같았어. 너무나도 아름답고 눈부셔서, 보고만 있어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지.”

하지만, 이 케이라의 모습을 반기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유현은 문득 레안의 미묘했던 시선을 떠올렸다.

“레안, 말인데요.”

“레안? 어, 레안이 왜?”

“그는 누구죠? 아니, 다른 질문을 할게요. 레안은…… 제가 지금 모습을 하고 있는 케이라와 무슨 사이였죠?”

“어, 그건…….”

벨라는 유현의 질문에 처음으로 난처해했다.

“대답하기 힘든 건가요?”

“그녀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답이 날아온 것은 벨라가 아니라 유현의 뒤였다.

막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온 레안이, 여전히 무심하면서도 싸늘한 시선으로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은 실례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사과하죠.”

유현은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대범하게 웃었다.

“그러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죠. 당신, 이 몸의 주인과 무슨 사이였죠?”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벨라가 기겁하며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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