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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06화 (30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06화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의 검을 뽑아 휘두르려고 했지만, 상대가 괴물이 아닌 인간임을 깨닫고 곧바로 손을 멈췄다.

입을 두건으로 가리고 머리에 털모를 깊이 눌러 썼지만, 분명 인간이 맞았다.

“쉿.”

남자는 유현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이내 유현의 입을 막았던 손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동굴의 입구 쪽을 가리켰다.

유현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 언제 왔는지 그 거인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

유현은 눈을 부릅떴다. 거인은 자신의 몸을 입구에 들이밀면서 이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거인의 크기를 생각하면 입구에 머리 하나만 집어넣을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거인은 몸 자체가 빙벽의 입구와 동화되며 천천히 통과하고 있었다.

‘평범한 거인이 아니야?’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녀석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유현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라 생각했던 것은 전부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새하얀 얼음을 투박하게 조각해서 대충 뭉뚱그려 놓은 것처럼 생긴 얼음 거인은 어느덧 상반신을 벽에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때 옆의 남자가 유현의 소매를 당겼다. 이때 어서 도망치자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벽을 통과하는 거인의 움직임이 아주 느려졌어.’

얼음을 통과할 수는 있지만, 속도는 느리다는 걸 깨달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얼음 동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길이 나 있어서 상당히 복잡한 미로처럼 느껴졌지만, 선두에 선 남자는 이곳의 지리를 전부 다 알고 있는지 움직임에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움직이고, 얼음 거인을 따돌렸다고 생각한 남자가 자리에 멈춰 섰다.

“이쯤이면 됐겠네.”

후아.

남자는 입의 두건을 내리며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두건 속에 가려진 그는 상당히 앳된 얼굴을 한 곱슬거리는 갈색머리 청년이었다. 나이를 높게 쳐도 20대 초반 정도?

“이제 말해도 돼. 녀석은 따돌린 거 같으니까.”

“……일단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엇?”

남자, 링우그는 설마 유현이 감사의 말부터 전할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응에 오히려 의아한 것은 유현이었다.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한 것이 뭐가 그렇게 놀라운 일이지?

‘그보다 이 남자, 내 모습에 대해서 뭔가 아는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이쪽을 구해 준 것도 그렇고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유현은 그러다 매끈한 얼음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겨울에 막 내린 것처럼 잡티 없이 하얀 피부. 그런 피부와 완전하게 대조되는 검고 긴 생머리. 마치 밤하늘을 비단으로 짜 올려 그대로 흘러내리게 만든 것 같은 그 아름다움에,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게 내 의체의 모습이라고?’

외모에서 느껴지는 신비한 느낌은 이 의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유현이 얼음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살필 때, 가만히 기다리던 남자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기, 그래서 어쩔래?”

“아. 이런. 실례를. 그보다 어쩌다뇨?”

“나는 일단 도시로 복귀할 생각이거든. 그래서 묻는 거야. 같이 갈 거지?”

“……물어서 뭘 하겠어요. 갈 곳도 없으니 일단 따라가겠습니다.”

“그런가……. 아 참 내 정신 좀 봐. 내 이름은 링우그야. 그쪽은?”

“저는…….”

유현은 자신의 소개를 하려고 했다.

“케이라입니다.”

입이 멋대로 다른 이름을 내뱉지 않았다면.

유현은 자신이 말해 놓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작 그 이름을 들은 링우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몰라볼 유현이 아니었다.

“링우그 씨는, 뭔가 알고 계시군요?”

“알다마다. 이미 몇 번이나 있던 일이었으니까.”

“몇 번……?”

유현은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이 처음이 아님을 떠올렸다. 유현의 전, 그리고 그 전전에도 유배지에 온 텔러들은 여럿 있었다.

그들이 만약 의체를 갖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들 또한 이 모습으로 이곳에 떨어졌던 거였군.’

그리고, 링우그는 그런 전임자들을 만나 본 적이 있다는 소리다.

유현의 표정을 본 링우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어차피 아직 잘 모를 테니까, 움직이기나 하자고. 대충 설명은 가면서 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유현은 링우그의 뒤를 따르며 얼음 동굴 안을 걸었다.

링우그는 걸으면서 유현에게 자신이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 줬다. 유현의 이전에 그와 같은 전임자들이 몇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 생존자들이 모여서 도시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유현은 링우그의 말을 들으며 간혹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호응을 해 줬다.

일단 설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링우그라는 남자는 상당히 말이 많다는 것.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도 딱히 듣기 거북하거나 하지 않은 걸 보면 의외로 타고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이 세상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어느 날 갑자기 터진 [동토의 저주]로 인해, 이 세상은 얼음으로 뒤덮이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저주가 형상화 된 얼음 거인들이 튀어나와 세상을 배회하고, 인간들이 보이는 족족 그들을 죽인다는 것까지.

“그 얼음 거인들은 대체 뭡니까?”

“자세한 건 몰라. 저주와 함께 나타났으니 그와 관련된 무언가겠지. 우리는 그 괴물들은 야른호림이라 불러. 우리 언어로 하면 서리 거인 정도 되겠지.”

“아주 위험한 녀석들 같던데요.”

“맞아. 야른호림, 그러니까 그 서리 거인은 보통 위험한 게 아니야. 방금 너도 봐서 알고는 있지? 얼음벽을 천천히 통과하는 그 모습을.”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질로 이루어진 얼음을 통과하는 모습은 무슨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놈들은 전신이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러다 보니 자칫 잘못 접촉하면 그대로 동상을 입고 말지. 우리 가르드인들조차도 말이야.”

가르드인은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태생적으로 근골이 뛰어나고 강력한 힘을 지녔으며, 추위를 타지 않는 일족들.

지구로 치면 스코틀랜드, 혹은 게르만족에 가깝지만 가르드인은 그들보다 훨씬 더 우월했다.

유현은 자신의 육체도 그런 가르드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서리 거인은 물론 죽일 수 있지만, 나 혼자서는 힘들어. 목을 확실하게 베거나 핵을 노리지 못하면 절대 안 죽거든. 애초에 나는 전투 담당보다는 척후 및 탐색 쪽이거든.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그쪽을 발견하게 됐는데 운이 좋았어. 조금만 늦었어도 서리 거인한테 당할 뻔했으니까.”

어느덧 두 사람은 얼음 동굴에서 벗어나 넓고 새하얀 평지를 걷게 됐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해서 우중충했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바닥에 쌓인 눈을 쓸어 냈다.

눈보라에 깎여서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산들이 멀리서 흐릿하게 보였는데, 마치 지면에 세워진 거대한 비석 같았다.

“음. 지금은 날씨가 조금 가라앉아서 눈보라가 몰아치지는 않는군.”

“반응을 보니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맞아. 동토의 저주 이후로 날씨가 아주 지랄 맞게 변해서, 이렇게 바람이 잘 불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지. 운이 좋았어. 이 기회에 어서 빨리 움직이자고.”

두 사람은 광활한 얼음 땅을 건너 이윽고 거대한 산 하나를 목전에 뒀다.

“저기야.”

“저기요?”

“저곳에 우리 도시가 있어.”

산의 입구라 할 수 있는 곳에는 사람 하나가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링우그가 먼저 들어갔고, 유현이 뒤를 따랐다.

조금 전 서리 거인을 피해 도망쳤던 얼음 동굴과 비슷했지만, 얼음 동굴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인 반면 지금 이곳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통로였다.

계속 들어가다 보니 통로가 확장됐다. 좁아졌던 시야가 순식간에 넓어지더니, 유현의 눈앞에 거대한 얼음 성벽이 보였다.

얼음을 깎아서 만든 웅장한 성벽, 그리고 그 안쪽에 보이는 것은 충분히 도시라고 부를 만한 건축물들이 도열해 있었다.

성벽만 얼음이고, 집 자체는 나무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 우뚝 선 높은 첨탑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서 와. 생존자들의 도시, 가르디안에.”

거대한 얼음산의 내부를 깎아서 만든 생존자들의 대피소.

이곳이 동토의 저주에서 살아남은 가르드 인들이 모여서 만든 최후의 도시 가르디안이었다.

* * *

링우그를 따라 성문을 지나자 피부에 닿는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성벽을 경계로 해서 안쪽은 따스한 봄날처럼 온도 자체가 포근했다.

유현은 성벽 안쪽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상당히 우울한 분위기.’

분명 사람 사는 냄새는 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표정이 우울과 불안감에 찌들어 있었다. 메마른 도보를 걷던 사람들은 유현을 보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개중 일부는 유현에게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기까지 했다.

유현으로서는 초면인데 저런 적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링우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네가 이해해 줘. 다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거든. 최근에 탐색꾼 중에서 희생자가 많이 나와서.”

“그런 것치고는…….”

“널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지? 그건 당연해.”

“제 전임자, 혹은 그 전임자가 좀 심한 짓을 저질렀나 보군요.”

링우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쓴웃음으로 대신했다.

물건이 별로 있지도 않은 시장 거리를 지나 좁아터진 광장에 도달하자 일련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와서 유현과 링우드를 막아섰다.

그중에서 비열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눈을 찢어지게 뜨며 링우그와 유현을 노려봤다.

“링우그.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뭘?”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나 알아?! 지금, 지금 그 마녀를 데려왔잖아!”

마녀가 누구를 뜻하는지 유현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유현은 눈을 감았다 뜨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온 녀석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쪽에서 대놓고 마녀 운운하는 걸 보면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말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고.’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링우그가 잘해 줘서 잘 못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설마 저렇게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줄이야.

“마녀라니. 헨더.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심하냐고? 심한 건 너의 그 머리 없는 행동이겠지!”

헨더라 불린 남자는 더욱 열이 뻗쳐 소리 질렀다.

“이전에 온 마녀가 어땠는지 잊었어? 무슨 짓을 했는지도?! 이들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 항상 우리를 깔보기나 하지!”

링우그는 그 말에 굳이 반박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리라.

헨더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링우그에게 반쯤 협박하듯 말했다.

“링우그. 어서 그 마녀를 쫓아내. 가르디안을 위해서.”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겠는걸. 헨더. 나는 탐색꾼이자 수색꾼으로서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렸을 뿐이니까. 그리고 헨더.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렇지 않아? 정말 가르디안을 위한다면 너는 이렇게 도시 안쪽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안 되지.”

“너……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러니까 내 말은, 적어도 네가 그런 발언을 할 권리는 없다 이거지.”

“너 이 새끼……!”

헨더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뭐라고 외치려는 순간, 헨더가 이끄는 무리의 뒤에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유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귀를 기울였다.

저 뒤에서부터 ‘레안이야.’ ‘설마 그녀를 만나러 온 건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동시에 헨더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도발하던 링우그의 표정도 굳어졌다.

유현이 대체 누가 오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인파를 가르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찬란한 금발을 지닌 남자였다.

대부분 가르드인이 갈색, 혹은 회색 머리카락을 지닌 것을 비교하면 오히려 희귀하다 싶을 정도였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돼 보였는데, 반쯤 감긴 눈과 우울해 보이는 얼굴은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털가죽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은 그의 퇴폐 어린 시선이 유현을 향했다.

‘뭐지? 저 눈빛은…….’

유현은 아주 순간이지만, 저 레안이라는 청년이 자신을 바라볼 때 눈빛이 변한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아주 순간이었고, 그것을 지적하는 것보다 먼저 레안이라는 남자가 입을 여는 게 빨랐다.

“따라와라.”

레안은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몸을 돌렸다.

유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링우그가 그런 유현의 등을 밀어 줬다.

“일단 따라가. 내 역할은 여기까지니까.”

“…….”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링우그가 괜한 말을 하는 건 아닐 터.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안의 뒤를 따랐다.

레안을 따라갈 때 지나치던 헨더는 유현을 그야말로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가 이끄는 일행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시선.

유현은 그런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레안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약간 허름해 보이는 여관이었다.

이런 도시에 여관이 굳이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레안은 유현을 이끌고 여관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깥의 싸늘한 풍경과는 다르게 안쪽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히려 후끈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앞으로 이곳이 네가 지닐 곳이다.”

레안은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뭐지?”

레안은 자리에서 멈춘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물었다.

이쪽은 신경조차 쓰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행동이었지만, 유현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됐으면 그래도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설명을 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무슨…….”

“나는 바쁘니 붙잡지 마라. 이곳의 주인이 알아서 해 줄 테니.”

레안은 이윽고 유현이 다시 부르기라도 할 새라 빠른 발걸음으로 여관을 떠나 버렸다. 한겨울의 서릿바람과 같은 매정함이었다.

“레안 이 녀석.”

그때 부엌에서 누군가가 짜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람한 팔근육을 자랑하는 풍채가 좋은 40대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멀뚱히 서 있는 유현을 강렬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뭘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 정신 사납게. 저기 적당히 앉아 있기나 해.”

“저기…….”

“방은 대충 2층의 빈방 아무거나 쓰면 돼. 짐은 어차피 없을 테고. 어지간해서는 남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안에서 지내.”

여관의 주인도 유현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 할 말만 하고는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거,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네.’

생존자들의 도시라고 했지만, 정작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면 다들 절망에 찌들어 있다.

게다가 생존자들은 유현, 정확히는 이 케이라라고 하는 의체의 모습에 강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링우그를 보면 아닌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차근차근 알아볼 수밖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레안은 왜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그리고 저 아주머니는 누구일까.

적어도 레안이라는 남자와 어느 정도 아는 사이인 것은 틀림없었다.

“엉? 뭐 하는 거야?”

유현이 부엌으로 들어오자 여관 주인 아주머니는 눈을 부라렸다. 그녀의 두꺼운 팔뚝에 근육이 꿈틀거렸다.

자못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유현은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면서 답했다.

“혹시, 도울 일이 없나 싶어서요.”

일단은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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