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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04화 (30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04화

아무리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안건의 결정자는 회장인 롯피우트였다.

이 자리의 모두가 반대를 해도, 롯피우트가 하겠다고 하면 결국 하게 되는 것이 본사의 순리였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치열하게 떠들던 모든 텔러는 회장님이 무슨 말을 할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롯피우트가 지팡이를 쥔 채 입을 열었다.

“본래라면 본사의 지엄한 법에 의거해, 이야기를 거짓으로 만들어 낸 자는 폐기함에 집어넣어야겠지.”

“그건……!”

셀레스티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롯피우트는 그녀에게 가볍게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그녀의 입을 다물게 했다.

셀레스티나가 쓰러지듯 좌석에 앉았다. 회장님의 시선을 순간 마주쳤을 뿐인데도 심장이 옥죄이는 줄 알았다.

“끝까지 들어라. 분명 폐기함에 넣어도 모자라지 않을 사안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군. 강유현 차장이 지금까지 이룩해 온 모든 성공의 신화가, 과연 조작을 통해 만들어 낸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

“…….”

누구도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회장님의 말씀은 이 자리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하기에, 그의 말을 반박할 생각조차 없었다.

“의심은 있다. 라플라스의 힘을 이용했다는 정황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 부족하지. 단지 그것만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이건 강유현 차장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테니까.”

“회, 회장님…….”

“처음부터 라플라스를 금지시키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제한을 둬야 했지. 아니면 다른 성령들에게 선물 받는 것 자체를 금지하거나 여러 조항을 추가해야 했다. 애초에 라플라스의 힘으로 성공을 한 것도, 어떻게 보면 강유현 차장 본인의 능력에 가깝겠지.”

“…….”

“그러니 들어라. 나 롯피우트가, 이 자리에서 고한다.”

분위기가 일변한다.

유현을 향했던 모든 언어의 화살이 공간이 뒤틀리듯 한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든 것이 향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를 지닌 자.

말과 언어, 그 모든 힘이 단 한 명에 의해서 휘둘리고, 움직이고.

그 본질이 바뀐다.

“강유현 차장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그 말에 일부 텔러들이 숨을 삼켰다. 기회를 준다는 것은 사실상 그를 용서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데미알로스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지려는 순간, 뒤이은 회장의 말에 그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의 성공이 과연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것인지. 그것을 증명해야 할 거다. 바로 행성 ‘글라칼리스’에서 말이지.”

글라칼리스가 회장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한번 휘몰아치던 폭풍이 그 방향을 바꿨다.

데미알로스는 찡그리던 표정을 풀고 웃었고, 가만히 지켜보던 갈리아츠가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님! 그건 사실상 유배가 아닙니까!”

이 자리에서 글라칼리스의 이름이 갖는 무게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롯피우트는 유현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글라칼리스는 기회의 땅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천체주식회사에서 글라칼리스를 부르는 다른 이름은 바로 유배지.

이야기마저 얼어붙어, 시화를 절대로 보일 수 없는 차가운 극빙의 세계.

그곳이 바로 유현이 향해야 할 곳이었다.

그냥 가는 것도 아니고, 글라칼리스에 가려면 해당 텔러는 가지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을 내려놓고 가야 했다. 유현의 자랑이었던 라플라스의 힘도 그곳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주 극히 일부의 이야기와, 그리고 그곳에 가면서 주어지는 일부 이야기뿐.

갈리아츠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글라칼리스는, 사실상 죽으라고 보내는 곳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폐기함에서 빠르게 죽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 얼어붙은 세상에서 서서히 말라 죽는 거야말로 진정한 고통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결정에 번복은 없다.”

롯피우트의 시선이 유현을 향했다.

“정말로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과정이 본인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거라면, 분명 글라칼리스에서도 제대로 성공할 수 있겠지. 그러니 이것은 벌이 아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지. 강유현 차장. 그대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가?”

모두의 시선이 유현을 향했다.

갈리아츠는 제발 대답하지 말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차라리 무릎을 꿇고 빌라고, 글라칼리스에 가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고.

유현은 갈리아츠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을 읽었다.

그렇기에.

“하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곳곳에서 탄성이 튀어나온다. 거기에 섞인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허어. 그래도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성공에 도취라도 된 것인가? 그 유배지에서 뭘 할 수 있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쯧쯧. 결국, 이것밖에 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모두가 유현의 선택을 비웃었다. 호기롭게 하겠다고 외쳤지만, 글라칼리스는 절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당장에 이 자리에 모인 이사급 텔러를 그곳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그자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곳에서 명을 달리 할 거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닌 것은 모두 놓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단검 한 자루와 최소한의 비상식량만 주어진 채 무인도 중심에 뚝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아이스팩 하나 던져 주고 초열지옥 깊은 곳에 떨어뜨리는 꼴이었다.

거기서 버티면서 이야기를 보이라고.

그런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도 급급한데, 시화를 어떻게 보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외진 세계의 시화를 보기 위한 성령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유현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기다렸다며 하겠다고 답했다.

다른 텔러들은 모르겠지만, 롯피우트는 느낄 수 있었다.

‘자만? 아니야. 단순히 자신의 능력에 도취된 머저리들과는 다르다.’

단순한 허세인가. 아니면, 정말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건가.

롯피우트는 유현의 생각을 읽어 내려고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그는 선택을 내렸고, 이제 글라칼리스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려진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 * *

강유현 차장의 유배 소식에 천체주식회사는 시끄럽게 변했다.

“뭐? 그 자식이 왜 유배지로 간 건데! 웃기지 마!”

유현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아리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 준 동기에게 소리 질렀다.

그녀는 오늘 유현이 차장으로 진급을 한다는 소리만 들었지,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무슨 문제가 있어? 그런데 모두가 기피하는 유배지인 글라칼리스로 향했다고?

이건 누명이다. 누명일 수밖에 없다.

그 녀석이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인정한 라이벌이니까. 반드시 뛰어넘기로 한 목표였으니까.

‘젠장. 강유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아리샤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온갖 터무니없는 소문을 마주하며,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 * *

“네?! 유, 유현 씨가!”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셀린이 가져온 소식에 백화 매니지먼트가 발칵 뒤집혔다. 서수민은 눈을 부릅뜬 채 셀린을 노려봤다. 그녀의 몸에서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흘러넘쳤다.

셀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선배님. 강유현 차장님께서 본사 회의 이후 유배가 결정됐습니다.”

“대체 왜!”

“저는 모릅니다. 그곳에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듣지 못했으니까요. 알 수도 없습니다. 최소 부장급 인사들만 모인 회의장이었습니다. 이사님도 여럿 있었고, 심지어 회장님까지 나타나셨다고 하더군요.”

회장까지 나타났다는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회장님은 회사의 절대자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결정을 내렸고, 차장님은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는 건가.”

“이번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추측만 할 뿐, 진실은 현장에 있던 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거겠죠.”

“대체, 대체 왜…….”

강혜림의 눈동자에 빛이 사라졌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그녀의 처량한 모습에 권지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아줬다.

“도, 돌아올 수 있겠죠? 유현 씨라면, 돌아오겠죠?”

“그건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대체 왜? 왜 못 온다는 거죠?”

“여러분들은 글라칼리스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권지아 또한 글라칼리스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텔러가 아닌 이상 그녀와는 접점이 없는 세계였으니까.

서수민이나 유영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글라칼리스는 얼어붙은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차가운 눈 아래에 깔린 세계죠. 설사 이야기마저도.”

“그런 세계가 있다고?”

“원래는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져서 세상이 말 그대로 얼음으로 뒤덮였다고 하더군요. 그 세계에서 살아가던 생명체들도 거의 다 죽었다고 하고요. 그럼에도 아직 명맥은 끊이지 않아서, 소수의 생존자가 남아 있죠.”

“그런 세계에, 천체주식회사는 대체 뭘 바라는 거지……?”

“저희 텔러들이 그곳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이야기를 보여 주는 시화입니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시화를 선보이라는 거죠. 본래라면 회사에서 손해를 보고 손을 뗐어야 하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회장님께서 어쩐 일이신지 계속 붙잡고 계셔서…….”

“그런 곳에서 시화라니. 그게 가능한가?”

“그럴 리가요. 그래서 유배지라 불리는 겁니다. 그곳에 가서 돌아온 텔러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단순히 시화가 힘든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본사는 애초에 글라칼리스라는 세계를 포기했습니다. 그곳에 넘어가려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두고 몸만 가야 하죠.”

그래서 유배지라 불리는 것이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맨몸으로 가서 그곳에서 살아남아 시화를 선보여야 하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보이지 못하면, 결국 생존에 필요한 이야기를 소실한 대가로 텔러는 죽고 만다.

유배지라는 말도 결국 좋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은 사실상 지옥에 가까웠다.

“그, 그런 곳에 유현 씨가…….”

“그걸 우리에게 굳이 알려 주려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우릴 놀리려고 하는 건 아닐 테고 말이야.”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권지아만이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아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 또한 거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저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

무엇보다 권지아는 일전 자신에게 팔찌를 건네준 유현의 태도에서 어렴풋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남자가 보여 준 모든 기적은 단순히 운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강유현은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혹시 모를 일의 안배를 준비하며 철저하게 행동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 몰랐다.

“예리하시군요. 권지아 컬렉터님의 말씀대로 제가 찾아온 건, 단순히 상황을 나쁘게만 보지 않아서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전부터 선배님이 보였던 모습을 곱씹어 보니 무언가가 걸리더군요.”

“뭐가 걸린다는 거지?”

“저는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그리고 시화실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실제로 선배님은 그런 저를 응원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원실에 있을 때부터 일부 양도받은 서재의 권한을 돌려받는 걸 한사코 거부하셨죠. 마치 이런 상황이 터질 것처럼 말이죠.”

“뭐?”

“선배님은 이번 일로 서재의 권한과 가지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없어진 이야기와 서재의 권한은, 본사의 규정하에 회수하죠. 네. 주인이 없으면, 말이죠.”

셀린은 지금 유현의 서재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즉 유현이 사라진 지금, 서재의 제2 소유자는 바로 셀린이었다.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서재는 그렇다 치지만, 이야기는?”

“선배님이 서재의 권한을 제게 넘겼는데, 이야기를 가만히 놔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군요.”

“설마……!”

권지아는 자신의 오른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살폈다. 강혜림과 서수민, 유영민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네 사람의 팔찌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오며 새하얀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세상에.”

강혜림이 그 이야기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유현은 모두에게 파편으로 만들어진 팔찌를 건넸을 때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야기도 함께 넘겼던 것이다.

이 상황을 위해 안배하듯.

* * *

“정말로 회수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고?”

“보시다시피.”

유현은 양팔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빈털터리임을 주장했다. 유현을 유배지까지 인도하는 감찰실 텔러들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현장 책임자인 감찰실 소속 가라스 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악어의 머리를 한 그가 유현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거짓말하지 마라! 네놈이 보유한 이야기와 포인트가 지금 없다고? 그 말을 믿으라고?”

“정 그러면 확인을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 이놈……그걸 빼돌릴 수 있을 리가.”

“빼돌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소유권을 양도했을 뿐이죠.”

“양도……했다고? 설마, 컬렉터들에게 다 넘겼다는 거냐?”

가라스는 믿을 수 없는지 주먹을 까득 말아 쥐었다. 본래라면 유배지로 보내기 전 유현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와 포인트를 회수해야 했다.

그 일부를 ‘재량껏’ 챙겨 가는 것은 현장 책임자인 자신의 소관이었다.

그런데, 유현은 지금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였다.

아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닌 것은 의지집중 같은 별거 아닌 이야기 하나? 지금 장난해?’

억만장자로 불리는 사람이 지갑에 고작 10원짜리 동전을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단순히 다른 곳에 몰래 빼돌린 거라면 시스템의 추적을 통해 회수가 가능하지만, 이처럼 소유권 자체를 넘긴 거라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유현이 지니고 있는 저 보잘것없는 이야기라도 가져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오히려 가져가면 자신의 이미지만 더 나빠질 뿐이었다.

“……그래. 어차피 상관없겠지. 넌 거기서 죽을 테니까.”

유현은 미소로만 답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라스는 그것이 허세라고 판단했다. 실제 속마음은 죽고 싶지 않아서 울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현이 지닌 이야기를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꼴도 보기 싫은 녀석이 죽는 것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어디, 잘 살아 보라고.”

그 말과 동시에, 거대한 시스템의 힘이 유현을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글라칼리스로 이동합니다.]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분석합니다. 여과(濾過)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상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의체’가 부여됩니다. 의체에 걸맞은 이야기가 주어집니다.]

‘의체?’

유현은 몸이 이끌리는 걸 느끼며 의체라는 말에 집중했다.

글라칼리스는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곳에 나름 적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최소한의 혜택은 주어진다고 했다.

그것을 혜택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다만, 이곳에 떠나고 나서 돌아온 텔러가 없다 보니 그 혜택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차피 됐어.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의체가 뭔지가 아니니까.’

[글라칼리스에 도착합니다.]

이윽고 차원을 몇 개나 넘나들며 부유하던 육신이 땅을 밟았다.

‘이건…….’

유현은 주변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시리도록 푸르고 하얀 세상이었다.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는 쉼 없이 서릿발 같은 눈을 쏟아 내고 있었다.

얼어붙은 세상이라 대충 이럴 거라고 예상한 유현은 이윽고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목소리가 가늘고 어깨너머로 흘러넘치는 머리카락이 길다.

오른손을 내려다보자 평소의 투박했던 자신의 손이 아닌, 하얗고 가녀린 섬섬옥수가 보였다.

“의체라는 것이, 여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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