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03화
침묵이 새벽의 안개처럼 좌중에 퍼져 나갔다.
경악하거나 놀라거나 격한 반응을 보이는 텔러들은 없었다.
이 법정에 모인 텔러들은 다들 이곳에 오기 충분한 자격을 지닌 자들이다. 어지간한 일에 크게 놀랄 일도 없으며 오히려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자들.
다만, 놀라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데미알로스의 발언에 흥미가 갔다.
“데미알로스 부장. 그게 정말인가?”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셀레스티나 부장이었다.
그녀는 잔뜩 힘을 준 시선으로 데미알로스를 노려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만약 그 말을 어떠한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내뱉은 거라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우리 사이에서 무고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 건 알고 있지?”
“근거가 없으면 이 자리에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네.”
확신이 없으면 승부를 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법정에는 본사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회장님까지 와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데미알로스가 단지 허세에 찌들어 헛소문을 퍼뜨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추악한 민낯이라는 것은 무엇이지? 그리고 그 근거는?”
그다음에 물어본 것은 감찰실의 우타타 부장이었다. 그는 샤마트를 놓친 것 때문에 이 전부터 데미알로스를 어떻게든 손을 봐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새하얗던 그의 머리가 은은하게 붉게 물든 것부터 그가 여전히 분노의 불씨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타타 부장의 질문에 대신 대답한 것은 다른 텔러였다.
“일단 들어나 보자고. 분명 충분한 근거가 있으니까 모두를 부른 거 아니겠어?”
“가라스.”
우타타는 노골적으로 이쪽을 조롱하듯 말하는 가라스 부장을 주시했다.
악어와 인간을 반쯤 섞은 가라스는 우타타와 같은 감찰실 소속 부장으로, 다른 부서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전부터 자주 우타타와 충돌하던 정적이었다.
가라스는 데미알로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자. 데미알로스 부장. 어디 한번 말해 보게. 그 대단한 소식이 뭔지.”
가라스 부장 말고도 다른 몇몇 부장이 데미알로스에 호응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셀레스티나와 갈리아츠, 우타타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데미알로스에게 동조하는 텔러들의 숫자가 범상치 않았다.
‘전부 강유현 차장을 경계하는 거야.’
셀레스티나는 이 법정에 모인 고위 간부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그녀가 부장의 자리에 올라가기 전에 당한 일들이 바로 저것들이었는데.
최연소 차장이 된 강유현의 재능은 자신들을 위협하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유현은, 누군가의 줄을 잡을 필요도 없이 새로운 줄이 될 가능성을 지녔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유현은 고착화된 천체주식회사 내부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위험 분자였다.
‘그리고, 회장님은 그것을 막을 생각이 없으시다.’
애초에 롯피우트의 방식은 언제나 그랬다. 살아남고 자신을 증명한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하지만, 그러지 못한 자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그는 절대로 누군가를 두둔하거나 싸고도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롯피우트 회장이야말로 지금 상황을 가장 흥미롭게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힘을 입은 데미알로스의 기세가 순풍을 탔다.
“강유현 텔러는, 이야기를 조작했습니다.”
시작부터 날아가는 묵직한 한 방.
그것에 누군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데미알로스가 설명을 이었다.
“이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강유현 텔러가 벌인 모든 시화는 모두가 입을 모아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들이었습니다.”
데미알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증거 자료들을 띄웠다.
거기에는 유현이 지금까지 넘어온 온갖 사상세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압니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걸. 처음은, 어쩌면 그다음도 운, 혹은 실력이 받쳐 줬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것도 결국 한두 번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걸 보십시오. 강유현 텔러가 몇 번이나 이런 짓을 벌였는지.”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남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화, 모두가 실패할 거라고 주장했던 시련들.
유현은 그것을 보란 듯이 뛰어넘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보통 이런 광경을 보면 유현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여기에 모인 자들은 전부 저 정도나 되는 시화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음. 저게, 연속으로 5번 이상 할 수 있다고?”
“처음 두 번까지는 그러려니 해도. 저렇게까지 승승장구하면 좀 그런데.”
셀레스티나의 귓가에 그런 목소리가 하나둘 들려왔다.
그녀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그녀가 알기로는 유현의 성공은 전부 유현의 실력 덕분이었다. 남들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극악의 확률, 그것을 몇 번이고 성공으로 바꿨다.
그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래.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에,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데미알로스.’
갈리아츠 또한 팔짱을 낀 채로 데미알로스의 주장을 곱씹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게 보였다.
확률 0.0001%의 성공을 진짜로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차라리 무언가 외부의 개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성공이란 일견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성공이 연달아 계속 된다면 그때는 사람들도 순수하게 성공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데미알로스는 그 응당 당연하게 품을 수밖에 없는 의심을 자극한 것이다.
‘유현. 자네는 어떻게 대처를 할 건가?’
갈리아츠는 여기서 유현을 두둔할 수 없었다. 그는 명목상 일선에서 물러난 자이기에, 단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그의 가라앉은 시선이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유현을 향했다.
‘이거 참. 된통 당했군.’
유현은 데미알로스가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와서 나지막이 감탄했다.
데미알로스의 말이 맞다. 유현의 성공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또 실력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
분명 운과 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유현은 미래에서 회귀를 했기에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회귀 전의 지식이야 말로 유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무기였다. 그랬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데미알로스는 유현이 회귀한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 유현이 벌인 일의 의문점을 드러내고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유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알고 있으니까 성공해야 한다’라는 전제는 타인의 입장에서는 똑같이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었다.
“어떤가. 반박할 수 있겠나?”
데미알로스의 얼굴은 문어의 그것과 같아서 유현의 입장에선 그의 사소한 표정의 변화를 잡아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데미알로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유현은 주위를 가볍게 둘러봤다. 모두가 자신을 벌써부터 죄인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죄인이 아니더라도 저들에겐 유현이 죄인이 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아래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새싹은 미리 밟아 놔야 하니까.
‘재밌어.’
천체주식회사가 애초에 이런 곳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직접 마주하니 이건 또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새로 깨달은 것은, 아무리 대단한 텔러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감정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명확한 증거가 아닌, 심증과 더불어 상황을 통해 꺼낸 의심을 벌써부터 확실하듯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이들에게 초월적인 인지 능력이니 대단한 추론 능력이니 그런 건 없었다.
“데미알로스 부장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눈높이에 맞춰서 어울려 줄 수밖에.
“제가 뭐 연달아 대박을 터뜨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또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한 번 복권에 당첨 되는 것은 우연이지만, 그 이후에 몇 번이고 계속 당첨되면 그때는 필연이 되는 거니까요.”
“그렇지.”
“다만,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으신 거로 압니다만. 결국 데미알로스 부장님께서 주장하신 바는, 전부 다 끼워 맞추기 아닙니까? 혹시 데미알로스 부장님은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이, 고작 그런 명확한 증거도 없는 주장에 휘둘릴 분들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유현은 일부러 좌중의 방청객들을 높이 띄워 줬다.
“저분들은 모두 저 따위는 범접하지 못할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오랫동안 살아 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확고한 입지를 쟁취하신 분들이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텔러들 또한 마찬가지다.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유현의 노골적인 칭찬에,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 분들이, ‘명확한 증거’도 없는 주장을 그대로 믿으실 거 같습니까? 그건 오히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유현은 데미알로스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반박을 하려고 할수록 유현은 데미알로스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유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맞불 작전이다.
내 무고를 밝힐 수는 없다. 밝히지도 않겠다. 왜냐하면 너의 주장은 애초에 틀렸으니까.
공격에 방어로 응수하는 것이 아닌, 공격으로 응수를 하는 것.
선동에 대한 확실한 반박은,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자식.’
데미알로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유현의 주장에 몇몇 텔러들이 ‘암, 그렇지’라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겨우 이쪽으로 끌고 왔던 분위기가 다시 저쪽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데미알로스도 이 정도 상황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유현을 얕잡아 보지 않았다. 짓밟는다면 철저하게, 최선을 다해 짓밟을 각오는 진작 마쳤다.
“그렇다면 묻지. 자네는 어떻게 죽을 뻔하다가 되살아나고, 2세대 성령의 공격을 버티고, 온갖 말 도 안 되는 기행에 기연을 전부 얻을 수 있었지? 대답 못할 거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대체 무엇을 가지고 확신하시는지 전 모르겠군요.”
“사탄.”
데미알로스가 그 이름을 꺼내자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탄.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 복마전의 군주.
혼성계에서 그 이름이 갖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지금까지 속마음을 티 내지 않던 텔러들도 사탄의 이름에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그쪽이 사탄과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건 이 자리의 누구나 알고 있다. 사탄이 개인적으로 선물을 했다는 것도.”
“선물 정도를 받는 것은 문제가 될 건 없는 거로 아는데요?”
“선물 받는 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어떤 선물을 받는지가 중요하고. 나는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데미알로스는 그 선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라플라스의 악마.”
“……!”
“뭐라고?”
그 말에 일부 텔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회장 롯피우트 또한 눈꼬리를 살짝 떨었다.
“과거 현재의 모든 것을 알고, 종국에는 미래마저 알아내는 힘. 그런 대단한 이야기를 선물로 받았지. 내 말이 틀렸나?”
유현은 데미알로스가 저 정보를 대체 어디서 알아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라플라스의 힘을 철저히 감췄다. 누군가의 앞에서 라플라스의 이름을 내뱉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완전히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설마하니 라플라스의 이름을 꺼낼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필 이 상황에서 말이다.
“잠깐. 라플라스의 힘이라면, 결국 모든 걸 알고서 저질렀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럴 수 있나? 그렇게 될 걸 알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이야기를 자기 입맛대로 한 거잖아.”
“안다고 해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별개 아닌가? 그것과 성공이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닐 텐데.”
“애초에 라플라스의 힘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부터가 애매하군. 이건 결국 논쟁이 맞다고 하면 맞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 되니까.”
순식간에 의견이 오갔다.
라플라스의 힘이 있으니 유현이 한 행동은 조작이 맞다는 의견과, 아는 것과 그것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별개라는 의견이 서로 맹렬히 힘을 겨뤘다.
하지만, 이 천칭은 애초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유현이 라플라스를 부정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유현은 상대방에게 물어뜯길 수 있는 ‘빌미’를 안겨 준 셈이었다.
어차피 진실이 무엇이고, 정당한 판결이 무엇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 텔러는 유현이 고꾸라지길 원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흐름이, 한쪽으로 쏠린다.’
유현은 말의 형상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맹렬하게 회전을 하나 싶더니 이윽고 한쪽으로 흘렀다. 말은 다른 말과 합쳐져 화살처럼 변해 유현을 향해 쏘아졌다.
데미알로스는 그런 유현에게 다가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
“언제나 성공만 하는 삶은 저주나 마찬가지지. 뭐든지 해내고 만다는 자신감이 밑에 도사린 실패를 발견하지 못하거든.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달릴수록 넘어졌을 때의 충격은 큰 법이지.”
“제법 준비를 많이 하셨습니다.”
“이 와중에도 허세는 부리겠다는 건가. 그래. 준비를 많이 했지. 자네는 지금까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었는지 모를 거야. 아래를 보지 않았으니까.”
“…….”
“단순히 나뿐만이 아니다. 성령님들과 더불어 다른 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
“대충 예상은 가는군요.”
“하하. 예상이야 가겠지. 하지만 그걸 안다고 달라질 건 없어.”
데미알로스는 뒷걸음질을 치며 유현에게 멀어졌다. 그는 마지막에 유현을 향해 이죽거렸다.
“자네는 이제 끝이야.”
동시에 판결이 내렸다.
“조용.”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회장 롯피우트가 입을 열자, 조금 전까지 실컷 떠들던 것이 거짓인 것마냥 좌중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회장을 향했다.
“판결을 내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