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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01화 (30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01화

셀린이 가져온 승진 소식은, 유현이 차장으로 진급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추가적으로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었으니 셀린 또한 정사원 딱지를 벗고 대리로 진급하게 됐다.

유현과 셀린, 둘이 동시에 승진하게 된 것이다.

셀린은 일단 자신이 미리 소식을 들은 것은 이게 전부고, 자세한 것은 나중에 공문이 내려오면 그때 말해 주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어쩌다 보니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된 권지아는 유현이 벌써 차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 것에 나지막이 감탄했다.

“축하한다. 벌써 차장이라니. 이제 부장급 텔러가 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차장은 부장의 바로 아래다. 그리고 모든 텔러 중에서도 상위 1% 이내에 드는 자들만이 차장이라는 칭호를 달 수 있다.

분명, 이것은 축하해 줄 일이었다.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연회를 열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경사였으니까.

권지아는 유현의 반응을 살피고는 살짝 당황했다.

‘뭐지?’

차장으로 승진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인데, 정작 당사자인 유현의 반응은 그렇게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반응은 차장 진급이 확실시된 사실 자체를 즐거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에 발생할 일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유현?”

“아, 이런. 제 정신 좀 봐.”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아뇨. 너무 갑자기 승진이 정해지다 보니, 조금 저도 모르게 몰입한 거 같네요. 이야. 차장이라니. 사실 차장급부터는 사내 정치를 하면서 줄을 잘 골라야 올라가는 거라 했는데, 조금 의외긴 하네요.”

유현은 아직 제대로 된 줄을 잡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중앙실의 이사급 라인과 만남 자체가 거의 없었다. 굳이 친분을 꼽는다 해도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난 갈리아츠와 셀레스트리얼 빙 부장인 셀레스티나가 전부였다.

오히려 적대적인 펜타그램과 그를 경계하고 질투하는 다른 시화실 텔러들을 생각하면 차장으로 진급하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

물론, 유현은 굳이 이 사실까지 말해 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좋은 일은 좋은 일이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에 벌어질 일이었으니까.

“지아 씨. 뭐가 어찌 됐든, 제가 부탁드린 일…… 믿고 맡기겠습니다.”

“응. 아, 그래. 얼마든지.”

권지아는 유현의 미묘한 행동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다음날.

유현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파편을 이용해 팔찌를 만들어 배부했다.

강혜림과 서수민, 유영민은 팔찌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권지아도 묵묵히 따르기로 했다는 걸 듣는 순간, 세 사람도 눈치껏 그러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이윽고 현실에 새로운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귀환자’의 등장이었다.

‘역시, 이전 역사보다도 더 빠르군.’

유현은 관조자의 방에 앉아, 바깥에 벌어진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지구와 혼성계의 장벽이 이전보다 많이 허물어졌기 때문일까. 베니싱으로 사라졌던 귀환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 또한 완전히 인간과 같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성도 있고,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됐다. 그래서 협회는 최대한 인력을 쏟아부으며 귀환자들을 찾고, 그들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다른 차원에서 강해져서 돌아온 귀환자들은 차후 국가의 큰 전력이 될 인재들.

그걸 눈뜨고 놓칠 수 없었다.

‘귀환자들에 대한 처우도, 전생에 비하면 훨씬 더 나아.’

진청운을 따르고 유현의 손에 죽은 김명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세상은 지금 귀환자 열풍에 휩쓸렸다.

‘뭐, 이성이 있는 귀환자들이라 지구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겠지.’

그들이 어떤 세상에 넘어가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고 얼마나 다양한 종족들이 존재하는지.

이전까지만 해도 판타지나 SF소설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겪은 사람들에게 듣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다.

유현은 혹시라도 귀환자 중에서 최도윤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폈지만, 여전히 그는 오리무중이었다.

‘귀환자들의 등장이 생각보다 빨라졌다 하더라도, 녀석의 복귀는 아직은 아니라 이건가.’

애초에 최도윤이 다른 차원에서 무슨 일을 겪었고, 무슨 이유로 다시 지구에 돌아오게 됐는지는 유현도 모른다.

지구가 바뀐다 하더라도 최도윤이 지금 살고 있는 그쪽 세상이 그대로라면, 그가 돌아오는 시기가 늦춰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때마침 셀린이 관조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진급식이 결정되고 며칠이 지난 지금, 누가 진급을 하고 진급식이 언제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공문이 내려왔다.

“선배님. 한번 확인해 주세요. 여기 저와 선배의 진급 결정서입니다.”

“음. 정말이네. 축하해 셀린. 너도 이제 본격적으로 텔러라고 부를 수 있게 됐구나.”

“전부 선배님 덕분입니다.”

셀린은 희미하게 웃었다. 유현에게는 조금 신선한 미소였는데, 그만큼 셀린은 지금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승진이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쫓겨나고 밀려난 끝에 도달한 곳이 그녀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흠. 그러고 보니 이제 대리가 되면, 다시 부서를 옮길 수 있는 건가?”

“아. 선배. 그것 때문에 잠시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옮길 거지?”

“……네.”

셀린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지원실 소속으로 유현을 뒤에서 열심히 백업해 주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셀린의 목적은 시화실 텔러가 되는 것이었다.

아직 정사원이었을 때는 능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 대리로 승진하게 되면서 그녀도 나름 인지도라는 것을 갖게 됐다.

그럼에도 대답을 망설이게 되는 것은 유현 때문이었다.

유현도 그걸 알기에 장난스럽게 웃었다.

“왜. 이제 와서 헤어지려고 하니까 아쉬워?”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러면 뭐, 그렇게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어? 승진에, 원하는 시화실로 갈 수 있는 기회도 얻었잖아. 그러면 당연히 기뻐해야지.”

“……선배님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내가?”

“……아닙니다.”

셀린은 고개를 픽 돌렸다. 그 모습에 유현은 속내가 훤히 보이는 그녀의 태도가 귀엽다며 미소 지었다.

“뭐, 아쉽기는 하지. 그래도 유능한 후배 덕분에 내가 할 일이 편해졌는데. 이제 그게 안 되는 거잖아. 이제 와서 새로운 지원실 소속 텔러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도 일이고.”

“……선배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남지 못할 건 없습니다.”

“어?”

유현이 되묻자 셀린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며 답했다.

“선배님은 차장으로 오르시지 않았습니까. 어떤 부서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차장의 자리에 오른 것은, 사실상 선배님이 최초입니다. 그런 분의 아래에서 일을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제게 커리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 그러니까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셀린.”

“애초에 저 아니면 선배님의 그 업무를 대신 할 수 있는 텔러는 없을 겁니다. 네. 저는 유능하니까요. 그러니 제가 시화실에 들어가고 싶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뒤로 미룰 수도 있는 거죠.”

“아니.”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뒤로 미루지 않아도 돼. 아니, 그럴수록 더욱 미루지 마.”

“미루지 말라뇨.”

“네가 열심히 해서 얻게 된 기회야. 네가 노력해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거고. 그것을 고작 나 때문에 포기하면 안 돼. 셀린. 너는 뭘 위해서 천체주식회사에 들어왔지?”

“……시화를, 멋진 시화를 보여 주고 싶어서.”

“그래. 그렇다면 거기에 열중해. 나한테 휘둘리지 말고 네 꿈을 저울질하지 마라.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거기로 밀고 나가. 네가 원하는 이야기를 보여 줘.”

“선배님…….”

셀린의 표정에 죄스러움이 담기자 유현은 걱정 말라며 손을 저었다.

“야야. 네가 미안해하면 어쩌자는 거야.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네가 잘해서 승진하는 거고, 네가 처음부터 원하는 길을 가라고 하는 건데, 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그리고 뭐, 너 시화실 가면 나랑 평생 안 볼 거야?”

“네? 아, 아뇨. 그건 아닌데요.”

“시화실에 오면, 오히려 나한테 더 도움을 받아야지. 너 시화는 어떻게 하고, 계약할 컬렉터는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는 알아?”

“……아직 모르죠.”

“그래. 너는 이제 본격적으로 텔러로서 시작 지점에 선거야. 그런 녀석이 뭐 벌써부터 다 된 것마냥 그렇게 굴면 안 되지.”

그 지적에 셀린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평소의 냉철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말이 맞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너무 앞서 나갔나 보군요.”

“알면 됐다.”

“하지만 제가 시화실을 간다면, 일단 선배님의 서재 권한은 다시 돌려드려야…….”

“아. 그거 말인데.”

유현은 셀린의 말을 강제로 끊었다.

안 그래도 서재의 권한 관련해서 셀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일단, 그대로 놔둬.”

“예?”

셀린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다.

셀린이 유현의 서재 권한을 일부 양도받은 것은, 지원실 텔러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이었다. 소유권을 일부 양도받았다 하더라도 서재의 주인은 엄연히 강유현이고, 그것을 다시 가져간다고 해서 셀린이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시화실로 넘어가면, 서재 권한은 다시 유현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유현은 셀린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당장은 돌려받지 않아도 돼. 아니, 오히려 네가 더 지니고 있는 게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음. 이유는 말해 줄 수 없어. 당장에는 말이지.”

“당장이라면…… 나중에는 말씀해 주실 수 있다는 겁니까?”

“그때는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너라면 내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바로 깨닫게 될 거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셀린은 유현의 행동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서재의 소유권을 아직 자신에게 더 쥐여주겠다니. 혹시 정이라도 들었기에, 일부러 잘해 주려는 걸까?

‘그럴 리가. 선배님이야말로, 단순히 정 때문에 이런 짓을 하실 리가 없어.’

그녀가 본 강유현 텔러는 분명 정이 넘치고, 매우 인간적인 텔러가 맞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호의를 표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서재의 권한을 줄 리가 없었다.

그것도 기존 시청령이 1만을 아득히 넘는 대형 서재의 권한이다. 그 가치를 유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유현은 누군가에게 잘해 주려면, 단순히 물고기를 잡아 대령하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텔러다.

그런 남자가 아직 서재의 권한을 자신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무언가가 있어.’

셀린은 곧바로 무슨 일이 있고, 유현이 무언가 계획하고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해가 빨라서 좋네. 역시, 내가 후배 하나는 참 잘 뒀어.”

“그러면, 일단 서재의 권한은 아직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뭐, 일단은 기간을 둔 대여 느낌으로 놔둘 생각인데.”

“기간은 어느 정도로?”

“좀 길지도 몰라. 최소 한 달에서 3개월 정도.”

그거라면 생각보다 긴 기간이다. 차장의 진급이 곧 이어지는데도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유현은 그 이후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 그리고 네가 바로 대리로 승진하면 지원실을 나가서 바로 시화실로 가라. 나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단호하게. 알겠지?”

“보여 주기……입니까?”

유현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소가 셀린의 의문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이 바라신다면야, 굳이 못 할 것도 없죠.”

“강요는 아니야.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굳이 아쉬울 건 없어.”

“하지만, 하면 선배님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겠죠? 그러면 하겠습니다.”

셀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유현은 그녀의 올곧은 눈빛을 보는 순간, 말릴 수 없음을 직감했다.

처음에 봤을 때는 겉으로는 단정하게 해도 눈빛이 반항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어디 나도 후배 덕 좀 보자.”

“이미 충분히 보지 않으셨습니까?”

“더 보고 싶다는 소리지.”

“그렇게 칭얼대지 않으셔도 제가 시화실에 가면 충분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선배님의 뒤를 이어서 위대한 텔러가 될 거고, 훌륭한 시화를 선보여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거니까요.”

“뭐야. 너도 명예의 전당을 알고 있었냐?”

“어릴 때 그걸 보고 꿈을 품었습니다.”

그랬구나.

유현은 왜 셀린이 텔러를, 그것도 시화에 목을 매는지 나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찬란한 이야기에서 빛을 봤다. 아름답고, 훌륭한 존재가 자신의 모든 의지를 관철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자체적으로 내뿜는 그 빛을.

그것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또 아름다워서.

그것을 볼 수 있는 자라면 거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의 모습에서도요.’

셀린은 그 뒷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그 말까지 꺼내기엔 그녀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래. 꿈을 품었다면 내가 할 말은 없지.”

“그러니 일단 본사로 가시겠습니까?”

“그래. 가야지. 그래도 승진인데. 진급식에 참여해야 할 거 아니야. 갈 거면 차라리 빨리 가는 게 나아.”

유현은 웃는 얼굴로 말하면서도 그 눈빛은 더욱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차라리 빨리 가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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