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97화
“자, 오늘은 일단 즐거운 견학의 시간입니다.”
유현은 네 사람을 이끌고 자유 시장의 이곳저곳을 데려갔다. 지리를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자유 시장은 친절하게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곳곳에 이정표를 설치해 뒀다.
유현을 포함한 다섯은 자유 시장을 구경하고, 또 거대한 쥐며느리 같은 탈것을 타고 움직였다.
처음에는 나름 긴장하던 일행들도 순수하게 자유 시장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이번 천체 시장의 방문은 기존에 품고 있던 틀을 허물고 견문을 훨씬 더 넓혀 주는 계기가 됐다.
“와, 유현 씨. 저거 봐요. 신기해 보이는 과자가 있어요.”
“안 됩니다.”
“네? 저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알겠습니다. 3개까지만 허락하죠.”
“5개는 안 되나요?”
“3개입니다.”
“3개 같은 5개는?”
“3대 같은 5대 맞기 전에 조용하십시오.”
“히잉.”
간혹 식탐이 폭발하는 강혜림을 말려야 한다거나, 팔짱을 낀 채 자신은 이런 것이 전혀 즐겁지 않다고 전신으로 말하면서도 곁눈질로는 은근슬쩍 좌판을 향하는 권지아를 달랜다거나.
그밖에 멋대로 움직이려는 유영민을 제어하고, 서수민의 온갖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답해 주는 등, 유현은 매 시간 열심히 행동했다.
‘무슨 유치원생들을 소풍으로 끌고 나온 선생님 같군.’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슬슬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유현은 일행을 이끌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여기인가?’
유현이 찾아온 곳은 자유 시장에서도 ‘심층’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자유 시장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자유 시장의 심층은 그 산을 안쪽부터 깎아서 만든 곳이었다.
자유 시장의 다른 곳은 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어서 매우 밝았지만, 이곳은 입구부터 어둡고 음습했다. 공기부터가 새벽녘의 안개처럼 피부에 끈적거리듯 달라붙었다.
‘심층. 어지간한 건 전부 거래가 가능한 자유 시장에서도, 거래를 꺼리는 물건들이 돌아다니는 곳.’
굳이 표현하자면 블랙마켓 정도 되겠지만, 정말로 위험한 물건들은 이보다 훨씬 더 아래층인 8층의 [슬럼가] 근방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쪽은 조금 걸리는 수준의 물건이나 이야기를 판매하는 곳일 뿐.
이곳이 그 정체불명의 약속 상대와 만나기로 한 곳이었다.
“심층은, 처음 와 보는군.”
권지아는 심층 내부의 어두운 풍경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심층 내부는 거대한 동굴의 안쪽처럼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기둥들이 가득했다. 그런 기둥들의 외부에 온갖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조심해야 합니다. 이쪽은 사람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보니 소매치기는 물론이거니와 대놓고 강도질을 하는 놈들도 있으니까요.”
심층은 바깥의 자유 시장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돌아다니는 손님이나, 좌판에 물건을 깔고 파는 자들도 모두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기 힘들었다.
허공에는 미약한 불빛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공중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 유령 같은 녀석의 몸 중앙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미약한 빛이었지만, 숫자가 꽤 되다 보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심층을 조금이나마 밝게 비춰 주고 있었다. 모두가 그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어둑호롱불입니다. 생긴 것은 마스코트 캐릭터처럼 귀엽지만, 어둠 속에서 저 빛으로 먹잇감을 꾀어내어 한입에 삼키는 무서운 놈들이죠. 어차피 내려올 일이 없는 놈들이지만 조심하십시오.”
“어, 그런데 저희 여기서는 뭐 하나요?”
바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심층에 약간이지만, 주눅이 든 유영민이 조심히 물었다.
굳이 이런 위험한 곳까지 올 필요는 없어 보였는데, 유현은 꼭 필요한 일인 것마냥 왔으니까.
“약속이 잡혀 있어서.”
“약속이요? 누구요?”
“누군지는 몰라. 다만, 시간이 곧 다 되 가니 그쪽에서 우리를 찾아오겠지.”
약속을 한 대상은 시간과 대략적인 장소만 알려 줬을 뿐이다. 그렇다는 것은 즉, 그자가 따로 이쪽을 데리러 오겠다는 소리였다.
일부러 심층 주변을 느긋하게 구경하듯 돌아다닌 것도 그런 의미였다.
이쪽은 준비가 됐으니 올 거면 어서 오라는 일종의 도발도 담겨 있었다.
“강유현 텔러, 맞지?”
그때 정면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자그마한 체구의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유현의 시선이 눈앞의 존재를 가볍게 살폈다.
‘이건 의외인데?’
상대방은 책이 별것 아닐 정도로 작았지만, 유현은 그것을 펼치거나 읽을 수가 없었다.
작지만 눈부시게 밝은 책.
그렇다는 것은 상대방이 격이 아주 높은 초월적인 존재라는 뜻이었다. 책이 작은 것은 본체가 아닌 그 분신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고.
보통 아랫사람을 시켜서 부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본인이 직접 올 줄이야.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답했다.
“다행이군. 그렇다 해도 설마 컬렉터들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는데.”
“일종의 견학이 필요하다 생각했거든요.”
“뭐, 혼자만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어. 일단 따라와.”
로브를 뒤집어쓴 자가 움직이고 유현이 그 뒤를 따랐다.
일행들도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하면서도 잠자코 유현을 따라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심층의 깊은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심층의 바깥, 빛이 찬란하게 내려오는 커다란 건물 단지였다.
로브를 뒤집어쓴 자는 그중 가장 세련돼 보이는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야.”
“심층이 아니었군요.”
유현은 이럴 거면 왜 심층에서 만나자고 했냐며 눈빛으로 물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상대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거? 그냥. 바로 여기로 오라고 하면 재미없잖아? 원래라면 혼자 올 줄 알고 그냥 적당히 분위기 잡으면서 등장할 생각이었는데, 그쪽이 여러 명을 끌고 와서 그냥 바로 데려온 거야.”
“원래라면 더 귀찮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는 걸 숨기지 않으시군요.”
“난 그래도 되니까.”
엄청난 자의식과 오만함이었다.
로브를 벗은 자는 자그마한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금발을 지닌 벽안의 소년. 인간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본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소년은 유현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자. 위로 올라가자고.”
“여긴 어딥니까?”
“이야기를 만드는 일종의 자그마한 공장.”
소년은 위로 향하는 계단에 오르며 해당 층의 문 너머의 풍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온갖 다양한 종족들이 주어진 책상에 앉아 손으로 조심히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
그것은 새하얀 텍스트였다.
기묘한 도구들이 움직이며 텍스트를 세밀하게 분해하고, 조립하며 문장을 이루고 있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여러 이야기를 제작하는 걸 하지. 그러고 보니 너, 각인사 칭호가 있었지? 저 녀석들이 알면 눈이 뒤집어지겠군.”
“제 시화를 꽤나 예전부터 꾸준히 봐 오신 분이였군요. 그보다 공장치고는 꽤나 소박한 곳인데요.”
“맞아. 확실히 지구에 있는 공장과 비교하면 이건 공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겠지. 전부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드는 수제식이니까. 반면 지구의 공장은, 컨베이어 벨트라고 했었나? 최단 시간의 최다 생산을 할 수 있다니. 놀랍긴 해.”
“의외로 지구의 지식에 대해 해박하시군요?”
“아무렴. 해박할 수밖에. 그 세상은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그럴 가치가 있다?
유현은 그 말 어딘가에서 지구에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질문을 하려는 순간, 그보다 먼저 소년이 말을 가로채는 것이 더 빨랐다.
“일단, 올라가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누지.”
“…….”
유현은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건물의 꼭대기 층.
사방이 훤히 트여 있어서 빛이 잘 들어오고, 또 자유 시장의 정경이 멀리까지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새하얀 쿠션 같은 것에 소년이 몸을 던지듯 앉았다.
“뭐해? 다들 앉아. 아, 비서? 이쪽으로 맛있는 다과 좀 가져와 줘.”
소년이 어딘가에 대고 중얼거리자 방문이 열리며 새하얀 로봇이 과자와 음료수를 담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빈 테이블에 그것을 놓은 로봇은 나타났을 때와 같이 조용히 사라졌다.
“자, 그래서 슬슬 대화를 나누러 찾아온 건 알겠는데.”
소년의 시선이 유현과 함께 온 4명의 컬렉터들을 향했다.
“저들까지 끼어들 만한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제가 판단했습니다.”
“난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어.”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유현과 일행을 가로막는 투명한 벽이 생성됐다.
모두가 당황하며 무언가 행동을 취하는 것보다 먼저, 소년이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알겠지만, 이건 거래란다. 그리고 그 거래의 대상은 강유현, 너와 나 단둘 뿐이야.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면 안 되지 안 돼. 그건 거래가 아니잖아. 내게 기부라도 바랄 셈인가?”
“……뭐, 그쪽이 바라신다면야.”
유현은 적당히 손동작으로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저 벽은 위험하지는 않을 거다. 끽 해 봐야 소리를 차단할 뿐.
일행들도 당황한 건 당황한 거지만, 유현이 침착하게 행동하니 곧 자리에 가만히 앉았다.
소년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다들 대단한 재목이로군.”
“그런 것도 볼 줄 아십니까?”
“오랫동안 살아 오면 보이지 않던 것도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거든.”
유현의 예상대로 소년은 역시나 오랫동안 살아온 초월적인 존재가 틀림없었다. 책조차 읽을 수 없다는 것은 그 격이 1세대 성령과 맞먹는다는 소리.
하지만, 유현은 아무리 봐도 저 소년이 성령 같다고는 느낄 수가 없었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자기소개부터 하죠. 천체주식회사 소속 강유현 과장이라고 합니다.”
“그래. 이미 이전부터 꾸준히 봐 와서 알고 있었어.”
“당신은 누굽니까?”
“나? 이거 좀 섭섭한데. 한번 맞춰 보지 그래?”
소년은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오히려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지금은 장난할 기분이 아닙니다.”
“흐음. 뭐, 알았어. 그쪽이 그렇게까지 바라면 이쪽도 조금은 진지하게 나가 주지.”
소년은 로봇 비서가 가져온 정체불명의 과자 하나를 집어 들더니 입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래도 조금 아쉽단 말이야. 이렇게 보여도 네 서재가 처음 열었을 때부터 꾸준히 시청을 해 온 개국 공신인데.”
“개국 공신이라고요?”
“뭐, 혹시 말투에서 짐작 가는 거라도 없어?”
“……설마, [선술집의 취객]이십니까?”
“오, 맞췄어.”
소년, 선술집의 취객은 유현이 자신을 알아보자 기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유현은 그 모습에 더 수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 놀랐어?”
“놀라다마다. 초창기부터 지켜보시던 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 라플라스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아서?”
“…….”
이쪽의 능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말에 유현은 놀랐다거나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다만, 그 침묵이 눈앞의 상대에게 꽤나 많은 감정을 전달해 줬다.
선술집의 취객은 유현의 서재 초창기부터 있던 시청령이었지만, 그를 직접 마주한 순간 유현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 정말 성령이 맞는 건가?
“성령은 아니야.”
그 속내를 읽어낸 걸까.
소년은 자신이 성령이 아니라고 먼저 밝혔다.
“다만, 그들처럼 오래 살았지. 대성군의 터줏대감들, 우주의 시작과 함께했다는 1세대 성령 녀석들처럼 말이야.”
“성령이 아니면서 성령과 같은 역사와 격을 지녔다니.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은 하지. 그런 존재가 나 빼고 없는 것도 아니고. 왜. 있잖아. 네가 일하는 곳에도.”
“제가 일하는 곳이라면…… 아.”
유현은 이윽고 소년이 누굴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회장님.”
“오. 롯피우트 그 친구가 회장님이라 불리긴 했지. 참 대단한 친구야.”
“친구……라고요?”
“그럼, 친구지. 아니, 굳이 따지자면 우린 형제 사이라고 해야 하나?”
유현은 소년이 하는 말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천체주식회사의 진정한 주인이자 텔러들의 정점인 롯피우트와 형제 사이라니.
“세상에 잘 알려진 태초의 텔러, 이야기의 왕은 셋뿐이지. 그 네 번째는 워낙 자유롭게 떠돌기를 좋아해서 호사가들의 입에도 별로 오르내리지 않거든.”
혼성계에서 가장 유명한 텔러, 이야기의 왕들을 꼽으면 항상 나오는 3명이 있다.
천체주식회사(天體株式會社)의 회장 준의왕(噂議王) 롯피우트.
희극단패(喜劇團牌)의 총대장 연유왕(讌遊王) 담천.
엑소도스(exodos)의 교황 비극왕(悲劇王) 카타르시스.
그들은 모두 최초의 텔러라고 불리며 혼성계에서 거대한 텔러들의 세력을 규합한 자들.
이들과 같은 급수로 불리는 자는, 유현이 아는 한 단 1명뿐이었다.
“설마, 당신이…….”
“그래 맞아. 내가 바로 태초의 텔러 중 네 번째. 왕의 칭호는 없지만, 굳이 다른 녀석들처럼 낯 뜨겁게 나를 칭하면 딱 이거겠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을 가리켰다.
“편력왕(遍歷王) 오엘로. 그게 바로 나다.”
그는 곧바로 손가락으로 유현을 가리켰다.
“그리고, 네가 지니고 있는 태초의 서의 흩어진 파편을 애타게 찾고 있는 자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