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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95화 (29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95화

황혼의 장막 클랜은 클랜장의 사망과 함께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몇몇 기자들은 갑작스러운 도강준의 행방불명 사태에 대해서 열심히 파헤쳐 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진실의 편린조차 붙잡지 못했다.

누군가는 죽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해외로 도주했다고 한다.

뉴스에서도 몇 번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도강준에 대한 소식은 단지 그것이 전부.

증거도 증인도 없으며 도강준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랜장이 자리를 완전히 비웠기 때문에, 이전부터 위태롭던 황혼의 장막은 이걸로 완전히 망해 버렸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진실도 있는 법이지.’

유현이 용의 선상에 오를 일은 없었다. 도강준은 본인의 정체를 숨겼으며, 유현 또한 데카르트의 힘을 이용해서 그의 뒤를 밟았다.

한국 최강자라 일컬어지던 위무혁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데카르트의 힘인데, 그것을 기자들이나 방송국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본래라면 협회에서도 나서면서 파악할 일이었지만, 도강준은 협회와 완전히 척을 진 인물이었기에 공식적으로 수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상급 컬렉터 하나의 행방불명 사태는 온갖 도시 전설을 만들며 그대로 묻히듯 사라졌다.

유현은 그동안 나머지 파편 회수에 열과 성을 다했고, 몇 개의 파편을 더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강준 이후로 새로 회수한 파편은 4개.’

도강준의 것을 포함하면 유현은 현재 11개나 되는 파편을 지닌 셈이었다.

‘그리고, 파편의 소유자가 타인에게 자신의 힘을 양도할 의향이 있으면 넘겨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고.’

최근에 회수한 파편 4개는 모두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회수할 수 있었다.

전부 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이쪽에서 가져간 것이다.

‘물론, 동의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긴 했지. 사실상 무력 행사였으니까.’

파편을 지닌 자들은 각자 저마다의 특이한 힘을 얻었고, 본인들도 갑자기 얻은 힘을 쉽게 놓으려고 들지 않았지만, 단지 그뿐.

유현이 적당히 힘을 개방하며 손봐 주자 전부 다 알아서 고개를 숙이며 유현에게 파편을 넘겼다.

힘을 얻은 자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언제나 더 큰 힘이다.

힘의 논리란 이렇게나 명확하고 간단했다.

유현은 그렇게 4명에게서 파편을 회수했고, 더불어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파편을 얻었던 자가 파편을 소실했을 때, 그들은 파편과 관련된 기억을 잃는다.’

태초의 서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파편과 연관이 된 자들뿐이다.

파편의 힘을 잃어도 기억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파편을 소실하는 순간 그들은 해당하는 기억을 전부 잃었다.

세계 자체가 파편의 정보를 은폐하려고 하니 파편을 잃는 순간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비밀로 하라고 반쯤 협박까지 생각하고 있던 유현에게는 의도치 않은 횡재였다.

이렇게 유현은 도강준을 포함해 벌써 5개나 되는 파편을 회수했고, 이번에 6번째를 회수하러 가는 중이었다.

‘이번 녀석은 좀 심각하군.’

그래도 앞의 녀석들은 대부분 힘을 얻은 것 치고는 몸을 사리거나 소심하게 움직여서 큰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힘을 얻은 시점에서 보통 사람과는 다르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불러올 수 있는 파장을 고려할 수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유현이 찾아갈 대상은 그 반대였다.

‘그야말로 미쳐 날뛰는 원숭이 같군.’

최근 녀석의 거주지 근처에서 벌어진 미확인 살인 사건만 벌써 3건이다.

사건이 3건이지 사망자는 15명이 넘었다.

피해자들의 사인은 전부 산채로 찢겨 죽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미성년자인데, 담배를 피며 길가에 침을 찍찍 뱉고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동급생들을 삥 뜯는 양아치였다는 점.

살인 방법도 잔혹한데, 그 대상이 전부 다 학교 일진들이다.

‘본인이 무슨 다크 히어로라도 되는 줄 알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가? 게다가 보아하니 본인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자신과 생판 남인 녀석들을 죽였군.’

단순히 정의감으로 행동했다고 보기에는 손속이 지나치다.

더욱 마음에 걸리는 점은, 녀석은 주도면밀하게 상대방을 살피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거다.

그래 놓고, 학교는 멀쩡하게 다니는 중이라니.

15명을 찢어 죽이고도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까지 보면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어울렸다.

‘힘을 얻는 순간부터 그런 짓을 벌이려는 걸 생각하면 그냥 떡잎부터 노란 녀석이었다는 거지. 그리고 저런 녀석일수록 갱생의 여지는 한없이 줄어들고.’

유현은 저런 인간상을 종말에서 몇번 본 적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종말이 막 시작되고 1~3년 차에 자주 볼 수 있는 인간상이었다.

자신이 지닌 힘이 최고라 생각하면서도, 스스로가 정의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거라며 살인을 이상하게 정당화 하는 놈들.

그러면서 자신에게 뭐라고 하면, 그런 사람들도 나쁜 놈이라고 싸잡으며 죽이려는 내로남불의 화신.

단순히 성인도 아니고 미성년자가 이 정도라면, 놔뒀을 경우 나중에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이미 뒤틀린 가치관을 지닌 녀석일수록 자라면 더욱 이상해질 가능성이 크니까.

‘잭 더 리퍼의 이야기를 지닌 김한중은 이 녀석과 비교하면 애송이였군.’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쓰레기라 굳이 우열을 나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미쳤다고 인정한 녀석보다 평범한 척하면서 밤중에 몰래 밖에 나가 사람을 찢어 죽이는 것이 더 악질이다.

[우와아. 좀 심각하긴 하네. 아무리 그래도 자기랑 관련 없는 얘들을 찢어 죽여?]

‘차라리 자신을 왕따시키던 녀석에게 복수라도 한 거라면 이해라도 하지. 이건 아무리 봐도 힘 좀 얻었다고 꼴 같지도 않은 정의심에 휘둘리는 애새끼지.’

[설마하니, 이전까지 얌전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움직일 줄은 몰랐네.]

‘용의주도한 녀석이야. 3군데에서 하룻밤 만에 사건을 일으키고 다시 조용히 지내니까. 안 그래도 이거 때문에 또 컬렉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려 하고 있어. 뭐, 세간에서는 양아치들이 죽을 만해서 죽었다고는 하지만.’

[딱히 옹호할 생각은 안 드네.]

‘바로 그거야. 죽은 녀석들이 뭐 나쁜 놈인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15명을 죽인 것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여기서 그치면 모를까, 앞일을 생각하면 더 저지를 테고.’

첫 시작부터 공을 들여서 일진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하루 만에 놈들을 다 죽인 놈이다.

그런 녀석이 이제 충분히 만족하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까?

‘이미 살인에 맛 들인 녀석이야. 지금이야 수사망을 피하려고 가만히 있겠지만, 잠잠해지면 또 움직이겠지.’

[그러면 어쩌게?]

‘어쩌긴 뭘 어째.’

유현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갱생의 여지는 없어.’

녀석은 선을 넘어도 너무 심하게 넘었다.

무릎을 꿇고 이쪽을 향해 울고불고 빈다고 해서 선처해 줄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본인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글쎄…….’

유현은 적당한 길목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도 그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현실에 있되, 이미 인지를 넘어선 세계를 유랑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을까?

이윽고 저 멀리서 목표물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왔군.’

상대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바가지머리를 한 안경 소년이었다.

녀석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누가 보면 그냥 소심해 보이는 학생이겠구나 하고 넘길 모습이지만, 유현은 그 내면에 꿈틀거리는 살인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쟤야?]

‘그래.’

시작해야겠지.

유현은 곧바로 데카르트의 힘을 이용해 소년을 유랑세계로 끌고 왔다.

저 정도 되는 녀석은 단순히 눈을 마주할 필요도 없었다.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아서 이쪽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강제로 끌고 올 수 있었다.

“어, 어?”

안경을 쓴 소년, 정혜성은 갑자기 바뀐 풍경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분명 하교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색채를 잃더니 처음 보는 공간으로 와 있었으니까.

유현은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채 정혜성의 앞에 섰다.

“정혜성.”

“누, 누구세요?”

“사람 15명 찢어 죽이니까 기분 좋냐?”

“……!”

정혜성이 안경 너머에서 눈을 크게 떴다. 마치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반응에, 유현은 역시 애송이는 애송이라고 생각했다.

안경 너머 정혜성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당신 누구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안 거지?”

“어떻게 알고 자시고, 내가 무엇 때문에 너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정혜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윽고 목격자가 없다는 걸 깨닫고 등에 멘 가방을 벗어 던졌다.

순식간에 동공이 수축되며 이쪽을 향하는 시선에 살기가 담긴다. 입이 기괴하게 비틀린 녀석은 정확히 살인을 바라고 있었다.

유현은 가면 속에서 그를 비웃었다.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정말로 싹수가 노랗군. 바로 증거 인멸에 들어가려고 하다니. 대화의 여지도 없다 이건가?”

“지랄. 너 말고는 더 아는 사람은??”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

정혜성의 입이 쭈욱 찢어지며 미소가 귀 아래까지 걸렸다.

“목격자는 다 찢어 죽여야 하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 이쪽이 고맙군.”

망설이지 않을 수 있게 해 줘서.

유현은 정혜성에게 시간을 더 쓰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바로 정혜성의 뒤에 섰다.

“어딜!”

정혜성의 전신에 검은 기운이 모이더니, 이윽고 흉악한 모습으로 변했다. 검은 복장에 검은 망토, 그것은 마치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다크 히어로의 모습 같았다.

정혜성이 몸을 회전시키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유현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정혜성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유현은 그의 몰골을 비웃었다.

“변하는 모습도 웃기는군. 본인이 무슨 슈퍼 히어로라도 되는 줄 아나? 영화를 봐도 너무 봤어.”

“닥쳐!”

정혜성이 유현의 목소리를 쫓아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검은 망토가 허공에 그림자를 흔적처럼 남겼다.

달리는 속도가 짐승처럼 빠르고, 날카로운 손끝에 담긴 기운은 불꽃처럼 매섭다.

저 손에 걸리기만 하면 강철도 종이처럼 찢길 것이다.

그럼에도 유현은 여유를 잃지 않은 채, 오히려 저 애송이의 거만함을 비웃었다.

“너한테는 기술을 쓰는 것도 아깝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휘둘러지는 날카로운 손톱을 피하고, 유현은 그대로 정혜성의 머리를 부여잡은 뒤 지면에 내리찍었다.

콰앙!

정혜성의 머리가 맨땅에 박혔다. 강렬한 충격에 정혜성의 정신이 순간 하얗게 점멸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의 변신은 어느덧 풀리고, 깨진 안경이 유랑세계 바닥을 뒹굴었다.

유현은 정혜성을 다시 꺼내 옆으로 휙 던졌다.

“뭐, 뭐야. 대체 왜……?”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을 뒹군 정혜성은 왜 자신이 당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유현의 움직임조차 눈으로 보지 못했다.

유현은 친절하게 이해하는 걸 도와줄 생각도 없었다. 유현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이윽고 정혜성의 코앞에 나타났다.

퍼억!

유현이 배를 걷어차자 정혜성이 복부를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녀석은 콜록거리며 거칠게 기침했다.

“크에엑. 켈록, 켈록!”

“일어나. 힘 조절은 했으니까.”

“배, 배가…… 숨이 안 쉬어져…….”

“내가 제대로 걷어찼으면 넌 그대로 몸이 터져 죽었을 거다. 아니면, 약한 척하면서 기회를 엿보기라도 하나?”

유현의 생각과 다르게 정혜성은 정말로 고통스러운지 침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유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정혜성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부여잡고 고개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

“고작 2대 맞았다고 벌써부터 아파하면 안 되지. 15명은 찢어 죽였는데, 왜 이러실까?”

“히익! 자,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정혜성은 전의를 상실하고 유현에게 싹싹 빌었다.

조금 전까지 증거를 인멸하려고 달려들던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

[뭐야, 이렇게 허무하게 항복하는 거야?]

‘애초에 각오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었으니까.’

자신이 유리하고 강할 때는 누구보다도 잔혹해지지만, 상대가 강하다고 인지하는 순간 싸울 의지를 잃고 무릎을 꿇는다.

기개를 보이라는 말까진 하지는 않겠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뭐, 어차피 이런 녀석은 없는 것이 나으니까.’

“자, 잠깐만요!”

유현의 살기를 읽은 것인지 정혜성이 다급히 외쳤다.

“저, 저는 미성년자예요! 아직 성인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네, 네? 그러니까 저는 아무리 그래도 저를 감옥에 넣지는…….”

“지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무슨 공권력을 수호하는 경찰처럼 보이나?”

이런 기괴한 가면을 쓴 경찰이 있다면 동료들이 가장 먼저 신고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쪽을 죽일 생각으로 달려든 주제에, 못 이길 거 같으니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그리고 미성년자면 뭐. 소년법 때문에 뭐 봐줘야 하고 그러는 건가? 재밌는 말을 하네.”

유현은 정혜성의 머리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아포리아의 가면을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잘 들어. 넌 15명을 산채로 찢어 죽인 살인마야.”

“그, 그 새끼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었어!”

“그걸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지. 그렇다고 바로 15명을 하루 만에 죽인 너는 학살자고.”

“나는 정의를 위해 행동한 거야!”

“정의의 히어로가 자신의 정체가 들켰다고 망설임도 없이 살인 멸구를 시도한다고? 거의 논리가 주먹구구식 퍼즐 끼워 맞추기군.”

논리도 뭣도 없는 반박이었다.

그래도 가기 전에 무슨 말을 할까 기대라도 했는데, 이건 정말 뼛속까지 중2병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나, 나를 죽이면 당신도 살인자가 될걸?”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 내가 어디에서 살고, 어떤 사람이고, 이름은? 애초에 여기가 어떤 곳인지는 알아?”

“그…….”

“그리고, 새끼야. 나는 너처럼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아.”

“…….”

그 한마디에 정혜성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지금 그들이 있는 이 장소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세계다.

여기서는 핵이 터져도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 하나 죽는 걸 누가 알까?

“나, 나는…….”

정혜성이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유현은 더는 들어주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터뜨렸다.

퍼억!

머리를 잃은 육신이 힘없이 무너지고, 성령들은 어린 살인마의 최후를 보며 쌤통이라고 저들끼리 떠들었다.

정혜성의 시체에서 황금빛 종이가 나타나더니 이윽고 유현의 몸에 흡수됐다.

이로써 또 하나의 파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보다 여기까지 보여 줬으면,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됐는데.’

괜히 일부러 혼자 다니면서 이런 파편을 회수한 것이 아니었다.

유현이 이 과정을 모두 시화로 보여 준 것은 파편을 회수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을 혹시 모를 성령들에게 보여 주는 것도 있었다.

나는 태초의 서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아는 자가 있다면 내게 연락을 취해라.

평범한 텔러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미 선각자와 사탄, 미카엘에 온갖 성령들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있기에 유현은 충분히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그 기다림이 빛을 봤다.

띠링.

정혜성의 시체를 남기고 유랑세계를 빠져나온 타이밍에, 유현의 개인 메시지 함에 편지 하나가 날아왔다.

제네시스 네트워크를 통해 날아온 메시지는 신원 미상의 것.

정체를 숨겼다는 것은 아직 유현이 잘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소리고, 사탄이나 미카엘 정도만 사용할 수 있는 개인 메시지 함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저쪽의 정보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

그리고, 이 타이밍에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는 건.

‘드디어 왔군.’

태초의 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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