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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88화 (28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88화

유랑세계에서 유현과 마주 보는 서수민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대는 기술을 펼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기교 같은 단순한 건 빼고.”

“그야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육체겠죠.”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 줄 내공, 즉 ‘기’겠네요.”

“그 말이 맞다. 보통은 내공과 그걸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육체, 이 2개를 꼽지. 보통은 그걸로도 충분한 것도 맞고. 하지만 결정적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수민 씨가 말했던 그 의념이라는 것 말입니까?”

서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념이라는 것은 말했듯 마음이다. 즉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치고 싶다면 몸과 기운, 그리고 마음까지 동행해야 한다는 거겠지.”

“저도 얼핏 들어본 것 같기는 하네요. 심기체(心氣體)라고 했던가?”

“그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편하게 설명하고자 바꾼 말에 지나지 않지. 본래는 정기신(精氣神)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이해를 빠르게 돕는다면 심기체로 설명해도 나쁘진 않겠지.”

“제게 있어서 부족한 것이 이 심(心)이라는 겁니까?”

“그래. 모든 무인은 강해질수록 더욱 거대한 벽을 마주하게 되지.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힘이 강하다고 해서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벽을 깨기 위해서는 마음의 경지를 이룩해야 하지.”

서수민이 설명을 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精)과 기(氣)를 완전한 균형을 이루며 지닌 자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신(神)이지. 이것은 땅에서 밝게 되므로 지이생화(地二生火)라고 부른다. 그리고 신이 밝아지는 것을 신명(神明)이라 부르는데, 가장 밝게 마음이 밝아지는 걸 의미하지. 이것이야말로 모든 깨달음의 이치와도 같다.”

“흠. 신묘하군요.”

“몸에 정이 충만하면 기가 강해지고, 기가 강해지면 신이 밝아진다. 정이 부족하면 그 반대가 되지. 바꿔 말하면 이 신이라는 것, 너의 입장에서 쉽게 풀이하면 이 마음이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더 길게 설명하면 상, 중, 하로 나는 삼단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대는 이미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것 같으니 넘어가도록 하지.”

“그건 다행이네요.”

“하지만, 열려 있는 것과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는 것은 별개지. 내가 그때 말했지. 어째서 내가 만들어낸 이 무공이 무기에 구애받지 않는 것인지.”

“그럴 필요가 없어서요?”

“그것도 맞지만, 정확한 의미는 바로 이걸 뜻한 거다.”

서수민은 자세히 보라며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올곧게 세운 수도의 끝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이 흘러나온다 싶더니 날카로운 검의 형태를 취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기를 이용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손에는 검이 존재했다.

“느껴지는가?”

“……네. 신기하네요. 분명 내공은 아닌데.”

“이것을 바로 심검(心劍)이라 부른다. 의념을 통해 형상을 취하게 됐을 때 가능한 경지지.”

절삭력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서수민의 손에 쥐어진 이 심검은 일반적인 검은 우습게 볼 정도로 예리함을 지니고 있었다.

마음의 검은 곧 상대방을 반드시 베어 내겠다는 ‘의지’나 마찬가지였다.

초월자에 버금가는 자의 ‘의지’는 어지간한 물질보다 훨씬 더 상위의 것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심검조차 의념(意念)으로 할 수 있는 것의 극히 기초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념을 깨우치게 된다면 기운을 다루는 데 더욱 큰 효율을 발휘하게 될 거다. 이 의념 자체가 뛰어난 제어 능력으로 변환하는 거지.”

서수민이 미숙한 몸으로 출라판타카를 상대할 때, 그 거대한 내공을 이끌어 낸 것도 결국, 이 의념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유현이 그것을 보고 따라 한다 하더라도, 결국 겉보기만 따라 할 수 있을 뿐. 그 안에 담긴 의념까지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부족하게 느껴졌던 거고.

“무공에 의념을 담으면, 그때는 위력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리고 이런 의념을 더욱 발전시킨다면 의념기(意念技)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거나 혹은 자연의 법칙을 간섭할 수도 있지.”

“이거 참…….”

유현으로서는 상당히 따라가기 힘든 분야의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듣는 것이라 당황했을 뿐, 유현의 머리는 차곡차곡 정보를 저장하며 그것을 이해하고자 맹렬히 돌아갔다.

유현이 처음으로 당혹스럽다는 기색을 보이자, 서수민은 그래도 자신이 더 잘난 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는지 뿌듯한 기색으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어떠냐. 이제 이 스승님을 공경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가?”

“음. 의념을 제대로 다루시는 수민 씨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거치고는 은근 멘탈이 유리처럼 약한 거 아니셨는지…….”

“씁!”

서수민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역린을 건드린 탓에 유현은 난처하게 미소 지었다.

서수민이 쀼루퉁하게 투덜거렸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더군. 이런 의념을 완전히 깨우쳤으면 어떤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거 아니냐고. 그건 꼭 머리가 좋다고 해서 공부를 반드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공부의 머리와 다른 머리는 엄연히 다른 법. 의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리고?”

“아직 나는 의념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

“네? 수민 씨가요?”

인간의 몸으로 격의 상승을 꾀하며 성령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면서, 의념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니?

“의념이라는 개념은 매우 방대하다. 나는 비록 심검이라는 의념기까지 가능하지만, 아직 의지만으로 자연의 법칙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초월 지경의 경지일 테니까.”

“법칙에 개입하다니, 그런 경지가 있기는 합니까?”

“있다.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분명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계속 이어져 있고 내 눈에는 그 길이 보인다. 아마 법칙에 개입하는 것조차 내가 가는 길의 과정에 지나지 않겠지.”

“허.”

유현은 자신이 이미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경지가 까마득히 남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다윈의 힘으로 무공을 배우는 것에 나름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서수민의 말을 들어 보면 자신이 이룩한 경지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놓고 보면 아직 한참 모자란 것이라고 한다.

유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조금 거만해진 제가 부끄럽네요.”

“너무 그렇게 침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단언컨대 단 1명도 없을 테니까.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이쪽이다.”

주먹으로 유현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서수민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구결을 알려 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의념을 가르쳐야 하다니. 심지어 의념은 나로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게 당황스럽나요?”

“당연하지. 모처럼 스승으로서 위엄을 제대로 세울 기회였는데, 이래서야 내가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은 별로 없는 게 아닌가.”

“딱히 그러진 않은데. 그래도 수민 씨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고. 수민 씨가 보여 준 기술 덕분에, 그걸 보고 따라올 수 있던 겁니다. 제게는 이미 훌륭한 스승님이에요.”

유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서수민이 보여 줬던 그 신공 절학의 무공 덕분에, 유현은 자신의 목적지를 제대로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제대로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그 경지는, 아직 자신이 도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그렇기에 더더욱 서수민의 능력에 감탄하게 됐다.

의념을 저렇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단순히 그녀를 제외하고 여러 무림 세계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크, 크흠. 그런가?”

“네. 정말요.”

“뭐, 정 그러면…….”

서수민은 슬쩍 얼굴을 붉히며 유현을 곁눈질했다.

“이 스승님을 칭송하는 것 정도는,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다만?”

“네?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요?”

“뭐라?!”

“농담입니다. 그렇게 세상 무너지는 표정 짓지는 말아 주세요. 저야 당연히 수민 씨를 존경하죠.”

“흥. 뭐, 그러면 됐다.”

“아무튼, 의지를 기에 접목시켜야 한다라. 확실히 이 의념이라는 걸 깨닫는 건 어렵겠네요. 시간도 걸릴 테고.”

다윈의 악마가 지닌 힘은 육체에 국한되는 것이다. 육체를 벗어난 정신적인 부분은 유현이 지닌 네 악마 중 어떤 것도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유현의 아쉬움을 느낀 것일까, 주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걸 느낀 네 악마가 죄송함에 몸을 떨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유현은 우선 이 의념이라는 걸 어떻게 깨우칠지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뭐,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대라면 분명 금방 깨닫게 될 거다.”

“제가요?”

“이 의념을 다루는 경지까지 가는 지름길은 없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지.”

“그게 뭐죠?”

“그대처럼 강한 정신력과 신념을 지닌 자라면, 금세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수민이 봐 온 유현은 터무니없는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거기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남자였다.

지금까지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다음에도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대감과는 별개로 이 남자라면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강렬한 의지. 그것이 의념을 다루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벽을 넘게 도와줄 테지. 그걸 깨닫는다면 그때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일단, 지금 당장은 의념이라는 것에 대해 깨닫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로군요.”

“조급해하지 마라. 그대는 남들이 네발로 기어 다닐 때부터 두 다리로 전력 질주를 하게 된 셈이다. 의념은 그보다 훨씬 더 고등한 기술. 하늘을 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지. 사람이 날지 못한다 해서 그것에 아쉬움을 품지는 않을 거 아니더냐.”

“하지만, 날아다니는 것에 뜻을 품고 도전하는 사람은 있었죠.”

“바로 그거다.”

서수민은 해맑게 웃으며 주먹으로 유현의 가슴을 툭 쳤다.

“포기하지 않고 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 *

로믈락시스는 본사에 방문해 셀레스티나 부장과 마주 보며 앉았다.

이전까지는 원거리 통신을 통해 보고하면 되는 거였지만, 최근 터지는 여러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해 정기적으로 대면 보고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바꾼 것이었다.

셀레스티나가 직접 결정한 일이었고, 로믈락시스는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어서 따랐다.

“아무튼, 10중 사상세계 사태는 한국 컬렉터 랭킹 1위 위무혁에 의해서 종식됐습니다.”

“흐음. 10중 사상세계는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발생한 건 아니겠지?”

“에이. 당연하죠 부장님. 이거 딱 봐도 엑소도스 녀석들이 수작 부린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텍스트 슈뢰더라는 것은 희극단패에서 손을 썼을 가능성이 크고.”

“타이밍이나, 그 워커라는 자들에게 희극단패 얘들이 뭐 하지 말라고 한 걸 보면 사실상 확실하죠.”

“그런가.”

셀레스티나는 잠시 손끝으로 턱을 만지다가 슬쩍 로믈락시스를 살폈다. 로믈락시스는 여전히 가만히 앉아 이쪽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너는 좀 괜찮냐?”

“네? 제가요? 뭘요?”

“새로운 계약자 셋이나 구했다면서.”

“새로운 계약자는 아니고, 그냥 재계약 시즌을 노려서 중간에 빼돌린 거죠.”

“그게 계약이지 뭐겠어. 그래도 제대로 한 거 같아서 다행이다. 너 그래도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아, 그거요……?”

“……이런. 미안하다. 내가 말실수를 한 모양이야.”

셀레스티나가 즉각 사과하자 로믈락시스는 양손을 들며 괜찮다고 답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잖아요. 언제까지고 거기에 매몰되어 있을 수는 없죠.”

“그러냐…….”

셀레스티나는 그 이상 말을 아끼기로 했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로믈락시스와 반대로 셀레스티나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부하 직원이 과거에 겪었던 일을 기억했다.

로믈락시스가 이 일을 쉬기 전,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수완을 선보였던 텔러였다. 그리고 그와 계약을 맺은 컬렉터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알았을까. 로믈락시스가 자신의 계약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의 최후가 비극으로 끝났다는 걸.

셀레스티나는 아직까지도 로믈락시스가 그녀의 무덤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뭐, 나라고 남 말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셀레스트리얼 빙 부서는, 그중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독특한 과거를 지닌 자들이 모인 부서였고.

괜히 다른 텔러들에게 괴짜라 불리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유현 텔러는 뭐 괜찮아 보였어?”

“제가 말했잖아요. 도움을 줄 필요가 전혀 없다고.”

“그 정도인가?”

“그나마 이번 10중 사상세계 사태 때 시화 없이 얌전히 있었다는 것 정도만 이상했지만, 뭐 개인적인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더라고요.”

“그렇지. 그 이상 끼어들면 도움은커녕 사생활 침해니까.”

“애초에 강유현 텔러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이거 저는 털끝도 못 비빌 정도던데요? 가호를 포기한 시점에서 위험 부담을 떠안고 있는 데다가 남들보다 소모할 포인트 비용도 막대할 텐데. 그걸 다 충당하고도 더 번다는 소리잖아요.”

“평균 시청령 12,000인데 누가 비비겠냐.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위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오고 있다.”

“무슨 말이요?”

“강유현 텔러, 지금 과장이잖아?”

“네. 과장…… 어, 설마?”

“바로 그 설마다. 아마 조만간, 차장으로 진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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