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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84화 (28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84화

로고스.

진청운은 태초의 서를 만든 것이 그라고 주장했다.

정확히 그인지 그녀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진청운은 로고스라는 이름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그 정보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유현도 처음 들었다는 것.

이 순간만큼은 누가 유리한 정보를 차지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로고스는 누구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성령은 아닐 테고.”

“잠시. 그 전에 우리 아가씨부터 이쪽으로 보내 주겠어?”

진청운은 정보를 무기로 삼아 셰나 린치를 이쪽으로 보내라고 주장했다.

유현은 자리에 주저앉은 셰나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목숨을 인질로 협박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진청운의 성격상 셰나를 인질로 삼는다고 해서 크게 동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있으면 있는 대로 좋지만, 굳이 구하겠다고 손해를 감수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진청운이 유현을 만나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타난 것은, 그 또한 유현과 나름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미였다.

유현은 셰나에게 턱짓하며 저쪽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셰나는 떨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며 진청운의 곁으로 도망쳤다.

“……미안해. 대장.”

“아니, 상대가 나빴으니까. 먼저 가 있어.”

“대장은?”

“나는 잠시 볼 일이 있거든. 그리고……여기에 머물면 그 이후는 장담 못 해. 셰나.”

“……알았어.”

셰나는 괜한 오기를 부리지 않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기척이 이윽고 더 이상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걸 확인한 순간 진청운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태초의 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로고스가 우선이지.”

“아, 그래. 로고스. 그랬었지.”

진청운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그가 강한 것은 분명하지만, 유현과의 실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유현이 손을 뻗어 목을 쥐기만 해도 진청운은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고 죽을 게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나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역시, 옆에 있는 저 정체불명의 존재를 믿는 건가?’

진청운의 조심스러운 성격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오만과 허세에 찌들어 별것도 아닌 녀석을 대단한 전력이랍시고 데려왔을 리가 없었다.

정말로 저 로브를 뒤집어쓴 녀석이 이쪽과 호각을 이룰 수 있다는 걸 확신했기에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이미 무신 위무혁을 뛰어넘은 무력을 지닌 유현에게 말이다.

아니면 이길 생각은 없어도, 적어도 시간은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유현은 그런 진청운의 속내를 짐작하고 코웃음을 쳤다.

일단은 로고스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먼저다.

“그래. 어디부터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나도 로고스의 이름만 들어 봤을 뿐이지 제대로 아는 건 없거든.”

“제대로 모른다고? 그러면서 로고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내가 지닌 황금빛, 태초의 서가 알려 준 거야. 자신의 창조주이자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만.”

“그렇다면 로고스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거의 없는 셈인데?”

“딱 하나 있지. 로고스가 제네시스 재단과 아주 큰 연관이 있다는 것.”

“재단…….”

아직도 밝혀진 것이 없으며 대성군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곳이 제네시스 재단이다.

혼성계를 아우르는 제네시스 시스템을 만들어 낸 곳이며, 3대 텔러 조직 모두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미지의 조직.

태초의 서를 만들었다는 로고스와 제네시스 재단이 관련이 있다는 말이 신빙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현도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확실히 재단도 아주 수상하지.’

대체 어떻게 된 곳이기에 1세대 성령들도 함부로 굴지 못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만들고, 대성군들도 눈치를 본단 말인가.

성령들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그들이 힘을 합쳐서 재단을 차지할 시도를 할 가능성도 있음에도 그렇다.

오히려 성령들은 이상할 정도로 재단의 앞에서 설설 기었다.

“많은 걸 고민하는 눈치인데, 더 설명해도 될까?”

유현은 대충 턱을 까닥이며 그러라고 했다.

“태초의 서는 이 우주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 온 물건이야. 로고스가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얻은 파편에 의한 추측이 맞다면 로고스는 이 세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을 생각이었겠지.”

“이야기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어떻게 세상의 기본 구조가 활자가 될 수 있지? 그 자그마한 글자와 글자가 엮이는 과정이 어떻게 그렇게 복잡하고 신비하며, 그렇게 강력할 수가 있겠어? 마치, 이 세상이 하나의 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

“누군가가 픽션으로 지어 낸 이야기가 실제 세계로 나타나질 않나, 그저 과거의 허황된 전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질 않나. 물론 어쩌면, 과거엔 우리가 모르는 시대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본인도 느껴 본 적 없어? 모비딕 세계를 갔던 너라면 알 텐데?”

유현도 그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는 것도, 그 안에 존재하는 환상체에게 저마다의 삶이 있다는 것도.

단지 이 세상이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라고 넘어가기에는 이상한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이 세상의 특이성이,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혼성계의 그 특별함이 바로 태초의 서로부터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 태초의 서를 만들었다는 로고스는,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아닌가?”

세상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라면 창조주라는 말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령들은 대체 뭘까. 그들도 그 로고스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

진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정말로 전지전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 그러지 않고서야 태초의 서가 이렇게 조각조각 났을 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지닌 것은 파편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태초의 서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태초의 서가 이렇게 된 건 나도 몰라. 다만 모종의 사건이 벌어졌고, 그 때문에 책은 갈기갈기 찢겨 우주 전역으로 흩어졌다는 것이 전부야. 네가 지닌 것도, 내가 지닌 것도 그 흩어진 파편이고.”

유현은 자신이 지닌 파편은 전생에서 얻은 거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전생과 현생에는 막대한 시간의 격차가 존재했다.

‘파편은, 공간을 비롯해 시간마저 뛰어넘는다는 소린데.’

그걸 만들어 낸 로고스는 또 얼마나 대단한 존재란 말인가.

“그러면, 이 파편은 왜 우리에게 온 거지?”

“그거야 우리가 특별하니까.”

“특별?”

“파편은 원래부터 태초의 서였어. 세상을 이야기로 엮기 위한 매개체. 당연히 그 파편도 이야기에 크게 반응을 할 수밖에 없지.”

무슨 말인지 유현도 이해가 갔다.

권지아와 예전 술을 마시면서 나눴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특별한 사람에게는 마치 이 세상 자체가 매몰되듯 온갖 사건들이 벌어진다고.

태초의 서, 그 파편을 얻은 것도 그와 비슷한 일이었다.

파편을 얻었기에 일이 벌어지는가, 그런 특이함을 타고났기에 파편을 얻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접어 두고.

일단 파편 자체에 의지가 있으며, 무엇보다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겠다.

“파편은 그 자체만으로 힘과 의지를 품고 있지. 그러다 보니 파편들은 각자 자신이 마음에 들거나, 혹은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으면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쏠리게 돼. 거기에 선악의 경계는 없지.”

진청운은 어떤 이야기가 우월하고, 어떤 이야기가 가장 올바른가에 대해 말했다.

동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저급하고 유치한 이야기고, 고찰적인 철학서는 대단하고 우월한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이야기의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파편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유현의 손에 죽었던 사이비 교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기적이고 욕심이 가득하며 사람들을 속이는 쓰레기였지만, 파편은 그를 선택했다.

그가 보여 주는 그런 악독한 행동 자체도 결국 이야기였으니까.

“강유현 텔러. 네가 지니고 있는 그 기묘한 가면의 힘. 결국, 그것도 파편이야. 그것도 4개나 되는 파편이 하나로 모인, 아주 거대한 조각이지.”

“알고 있어.”

그건 유현도 추측하고 있던 바였다.

사탄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던 라플라스의 힘. 그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흡수했던 것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넌 파편을 알아보는 힘을 가지고 있군.”

“남들에게는 예언이라고 넘겼지만, 사실 정확히 내 능력이 지닌 것은 예언이 아니야. 오히려 그보다 더 추상적이고 훨씬 더 거대한 거지.”

“그걸 나한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고? 여기까지 오니 컬렉터의 우월주의니 뭐니 하는 주장도 의심스럽군. 진청운, 너는 대체 뭘 바라는 거지?”

진청운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저 행동으로 보건대 그는 자신을 정말로 믿고 따르는 언리쉬드의 간부들마저 속이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들을 후원해 주는 엑소도스의 텔러들까지 함께.

“나한테 그걸 전부 다 설명해 주는 이유는?”

“앞으로 있을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앞으로 있을 일?”

“파편은 파편을 알아봐. 그리고 파편은 파편을 부르지. 너는 이미 6개나 되는 파편을 지니고 있고.”

4대 악마의 힘, 상대방의 책을 보는 힘, 그리고 사이비 교주에게 흡수한 힘.

그걸 전부 놓고 보면 정확히 6개였다.

“파편이 모두 모이게 되면 세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거야.”

“그것이, 네가 지닌 파편의 힘이 알려 준 내용이고?”

“그러지 않으면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알겠어.”

유현은 진청운과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분명 그가 알려 준 정보는 그조차도 모르고 있던 것이 태반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근원과, 그것을 만들어 낸 로고스라는 존재.

그리고 파편이 전부 모여 이윽고 태초의 서로 만들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까지.

그것은 분명 유현에게 있어서 아주 유용한 것들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진청운을 놔둘 수는 없었다.

“그 이상 아는 것도 없어 보이고, 아무래도 대화는 여기서 끝난 것 같네.”

“그래도 기왕 많은 걸 알려 줬는데, 곱게 보내 주면 안 되나? 나는 아무리 발악해도 널 못 이길 텐데. 파편 개수부터 이미 6배나 차이 난다고.”

“그러지 못할 걸 아니까 옆에 이상한 녀석을 대동한 거겠지. 그리고 1개의 파편치고는, 네가 지닌 그 크기가 남들과 확연히 다르기도 하고.”

“이런, 들켰네.”

“어차피 다 알면서 하는 거잖아? 그러면 제대로 짜고 쳐 보자고.”

유현은 안광을 강하게 불태웠다. 진청운은 무난하게 넘어가나 싶었지만, ‘역시나 이렇게 되는구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싶어서 그를 없애려던 함정은 저 남자에게 더 거대한 힘을 안겨줘 버렸다.

진청운은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무신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글쎄.

진정한 괴물, 아니 악마는 이렇게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네. 뒤를 부탁한다.”

지금까지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던 진청운의 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청운은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 도망치려는 것이지만 유현은 진청운에게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진청운의 부하, 조금 전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던 녀석의 존재감이 갑자기 폭발하듯 늘어났으니까.

“대장을 위한 충성심은 대단하지만,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있을까?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

유현은 멀어지는 진청운을 곁눈질로 살피며 눈앞의 상대방을 강하게 노려봤다.

어지간한 컬렉터들도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과 눈을 마주하면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고 겁을 집어먹겠지만, 상대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진청운이 완전히 멀어지고, 그가 지닌 파편의 힘에 가려져 있던 상대방의 책이 자태를 드러냈다.

드러난 책은 은은한 무지갯빛.

그것도 표지의 색과 발광하는 색이 동일했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극한까지 달성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상급 컬렉터를 넘어선 것이라는 것.

유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어디서 저런 녀석이?’

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책의 색이, 어딘가 혼탁해.’

보통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지니고 있는 책 자체가 상당히 밝은 빛을 띠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은은한 무지갯빛 책을 지녔지만, 그 책의 색 자체가 상당히 혼탁했다.

이물질이 섞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유현이 알기로는 먹물에 담근 것처럼 새까맣기만 한 책을 지닌 자는 아직까지 하나뿐이었다.

‘사탄의 책이 딱 그랬지.’

그런데 상대방의 책은 무지갯빛이지만, 어딘가 어둡다. 성향, 혹은 마음가짐에 따라 나름의 영향을 받는 걸까?

그게 어찌 됐든 당장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저쪽이 길을 비켜 주지 않고, 이쪽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려 한다면, 그에 응해 싸울 수밖에.

유현이 자세를 잡으며 싸우려는 순간, 상대방이 뒤집어쓴 로브가 폭발하듯 팽창했다.

로브를 갈기갈기 찢으며 나타난 것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촉수 덩어리들이었다.

“뭐?”

유현은 그것에 의아해하기도 전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유현이 있던 자리에 촉수 다발이 내려앉았다.

[으에엑! 미친! 저게 대체 뭐야!]

백련은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역겨움이 밀려왔다.

조금 전부터 유현과 진청운이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 무슨 말도 안 하더니, 난데없이 진청운은 도망치고 유현은 저 이상한 인간과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인간이 아니라 별개의 괴물이 아닌가?

자신의 몸에 저런 걸 담아 놓은(?) 인간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반면, 놀란 백련과 다르게 유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기이한 부위를 지니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딘가 메마른 감정만 가득해 보이는 저 모습을 본 순간 깨달은 것이다.

“너, 귀환자로군.”

상대방이 베니싱으로 사라지고, 이세계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온 귀환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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