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83화
“농담이지? 저 덩치에 무술을?”
“그냥 흉내만 내는 거 아니야?”
전투원들은 기묘한 자세를 취하는 다윈의 악마를 보며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저 덩치에 무술을 사용한다고? 그것도 상반신만 이상하게 거대한 주제에? 신체의 균형 자체가 맞지 않지 않은가.
전투원들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놈이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저런 몸집으로 뭘 할 수 있겠냐고.
자세를 잡은 다윈의 악마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슈슉.
다윈의 형체가 물에 녹아내리듯 무너져 내렸다. 정확히는 잔상을 남기며 자리에서 사라진 것에 가까웠다.
누구도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어? 어디로 간 거야?”
퍼엉!
등 뒤에서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대체 언제 움직였는지 모를 다윈의 악마가 정권을 뻗은 자세로 멈춰 있었다.
그 앞에는 후열의 마법사 하나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머리는 없이 몸통만 남아 있었다.
“뭐, 뭐야.”
“방금 움직임을 보지 못했…….”
다윈의 악마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 재차 움직였다. 이번엔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리쉬드 전투원들도 반응을 했다.
하지만.
퍼엉!
정 반대편, 이번에는 선두에 서 있던 남자의 머리가 터졌다.
이번에도 그의 앞에 다윈의 악마가 주먹을 내지른 자세로 서 있었다.
조금 전 마법사의 경우에는 근접전이 주력이 아니라 채 반응하지 못했다 해도, 이번에 죽은 자는 최전열에서 싸우는 검사였다. 그런 검사조차 반응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이, 이 괴물 자식이!”
누군가 발작하듯 다윈의 악마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푸른 오러가 서린 창날이 명치를 노리고 빠르게 찔러 들어갔다.
동시에 동상처럼 멈춰 있던 다윈의 악마가 움직였다.
다윈의 악마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오직 한 손만 가볍게 움직였다. 그것마저 너무 느려서 저걸로 대체 뭘 할 수 있겠냐는 의문만 들었다.
툭.
솥뚜껑처럼 거대한 손날이 가볍게 창대를 옆에서 쳤고, 그 순간 일직선으로 나아가던 창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마주한 조각배처럼 한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덧 다윈의 악마의 손에는 신속으로 내지른 창이 잡혀 있었다.
그것을 붙잡았다고?
놀라는 것보다 먼저 창을 내질렀던 컬렉터가 발작하듯 외쳤다.
“뭐 해! 동시에 덮쳐!”
전투원들이 이를 악물고, 다윈의 악마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어둠 속에서 각자 무기에 실린 오러가 흉흉하게 빛났다.
빈틈을 노리고 무수한 참격이 다윈의 악마를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다윈의 악마가 손에 쥔 창을 놓고, 양팔을 움직였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오러의 궤적들이 다윈의 손에 이끌리더니 이내 하나로 뭉치며 한쪽으로 날아갔다.
“컥!”
오러의 흐름이 향하는 곳은 창을 내지른 전투원의 복부였다. 그는 자신이 왜 공격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죽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눈을 찢어져라 떴다. 그들도 제대로 반응하기 힘든 공격을, 저 거대한 덩치가 너무나도 부드럽게 흘려내는 것도 모자라 방향까지 바꾼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무수한 오러의 궤적이 그들의 의지를 벗어나 상대방의 손에 실뜨기마냥 놀아나는 모습을.
자신의 공격이 어떠한 저항감도 없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겪은 전투원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 순간, 다윈의 악마가 움직였다.
커다란 두 손으로 주먹을 쥔 채, 자신의 덩치보다 더 큰 카이트 쉴드를 든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거기에 더해 전신에 힘을 끌어올려 오러를 씌우고 강체술로 몸을 강화시켰다.
포탄처럼 쏘아지던 다윈의 주먹이 방패에 닿기 직전.
방패를 반으로 쪼갤 듯 내질러진 주먹의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현저히 느려지더니.
툭.
방패에 주먹을 아주 살짝만 가져다 댔다.
“지금 뭐 하자는…… 푸헉!”
방패를 든 남자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내장은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전부 터져 곤죽이 되어 있었다.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다윈의 악마는 배워도 펼치기 어렵다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너무나도 쉽게 구사했다.
모두가 깨닫고 말았다. 다윈의 악마가 보여 주는 무술은 단순히 겉보기가 아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진짜라는 것을.
“저 덩치에, 기술까지 완벽하게 구현한다고?”
“……완전 반칙이잖아.”
다윈의 악마는 상대가 전의를 상실해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명령을 받았다. 그의 주인이 저들을 모두 쓸어 버리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행할 뿐.
거기에 자비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윈의 악마가 다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50여 명의 적을 두고 유현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가 부리는 네 악마만으로 적들을 상대하기는커녕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유현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이곳에도 진청운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성격상 이 50명이나 되는 놈들을 생각 없이 보냈을 리가 없다.
녀석이 아니더라도, 분명 어딘가에 있다.
그와 가까운 존재가.
‘시선.’
유현은 그 순간, 얼마 전에 느꼈던 시선을 재차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4개의 눈동자가 어둠 너머를 꿰뚫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산의 우거진 나무의 틈새.
그곳에 당황에 찬 감정의 파동이 느껴졌다.
“거기 있구나.”
유현이 움직였다.
* * *
‘들켰어!’
셰나 린치는 유현이 자신을 알아본 순간, 곧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어두운 밤, 그것도 거리가 상당히 멀기에 들키지 않을 거라고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 그녀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때도 유현이 자신의 시선을 느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하지는 못했었는데.
‘더 강해졌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강유현에게 있어서 강해질 수 있는 변화라고 해 봤자, 가장 최근에 진청운이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괴물은 그 안에서 말도 안 되는 성장을 했다는 건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일단, 도망쳐야 해. 최대한 멀리, 들키지 않는 곳까지.’
셰나 린치는 바람처럼 내달렸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사수는 단순히 눈만 좋고 원거리에서 공격을 가하기만 한다고.
그러나, 사수는 전열에 서는 사람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을 지녀야만 했다.
그들은 멀리까지 활을 쏠 수 있는 근력을 지녀야 했고, 위치가 들통났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야 할 민첩함도 갖춰야 했으며 멀리서 상대방을 저격하기 위한 온갖 요인을 인지하기 위한 두뇌도 타고나야 했다.
셰나 린치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사수였다.
그녀는 상급 컬렉터에 버금가는 민첩한 속도로 숲길을 내달렸다.
우거진 나무들도 그녀의 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바위를 넘고 가지를 가볍게 밟고, 복잡한 길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갔다.
피부를 스치는 것은 오직 바람뿐.
그래도 그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조금 전 포인트로부터 이미 한참이나 멀어졌음에도 셰나는 입에 단내가 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하아. 하아. 이젠, 괜찮겠지?’
부하들이 싸우는 현장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다. 게다가 이쪽을 쫓아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미쳐 그녀는 달리는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이윽고 자리에 멈춰선 그녀는 혹시나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숲길뿐.
“하아. 하아. 휴.”
셰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 시선이 마주쳤을 때는 끝인가 싶었지만, 어떻게든 따돌린 것 같았다.
일단, 진청운에게 돌아가서 그녀가 봤던 것을 보고해야 할 것 같았다. 강유현 그 남자는 못 보던 사이에 훨씬 더 강해졌고,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대적조차 할 수 없다고.
셰나는 다시 몸을 돌려 합류하기로 한 체크 포인트로 이동하려고 했다.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그녀는 코앞에 있는 검은 가면을 마주했다.
“……!”
이쪽을 가만히 주시하는 4개의 붉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만 알았다.
놀라서 소리 지르지 않은 것은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대체, 언제?’
그 먼 거리를 쫓아왔다고? 그것도 타고난 사수인 자신에게 들키지도 않을 정도로?
기척을 감추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속도와 체력에 있었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달려서 아직도 지쳤는지 눈앞의 존재는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공간 이동?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나를 붙잡았어. 이건, 처음부터 나를 그냥 따라왔을 뿐이야.’
셰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쪽의 신체 능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유현에게, 그것도 사수인 그녀가 거리를 내준 시점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유현은 그녀의 모습을 빤히 주시했다.
4개의 붉은 눈동자가 가면 속에서 초승달을 그렸다.
“더는 도망치지 않는 건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셰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견뎠다.
그녀는 공포에 떠는 몸에 채찍질을 가하듯 두 주먹을 말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유현은 그런 셰나를 보며 여유를 부렸다.
“진청운은 어디 있지?”
“…….”
“대답하지 않겠다는 건가? 뭐, 그것도 상관없겠지.”
셰나 린치는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오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세차게 떨렸다.
‘정신계 공격이야!’
언리쉬드 간부들은 혹시라도 붙잡혀서 심문을 당할 걸 생각해서 정신계 면역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어지간한 최면이나 정신 지배, 인식 변화 같은 것은 통하지 않았다.
간부쯤 되는 자들은 하나같이 다 강렬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들이기도 해서 아주 대단한 정신계 공격에도 충분히 저항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이, 이런 정신계 공격이 있다고?’
셰나는 정신과 함께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대단한 정신력을 지녔다고 해도, 데카르트의 악마가 지닌 힘은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 보여 봐라. 네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아, 안 돼!’
셰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마주하지 않을 속셈이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처음 시선을 마주친 순간 셰나는 데카르트의 힘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유현은 이대로 셰나 린치로부터 진청운의 정보를 뽑아낼 생각이었다.
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놈의 목적이 무엇인지.
단 하나도 남김없이.
그녀의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너무 내 사람을 괴롭혀 주지 말아 주겠어?”
진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셰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유현의 시선 또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그곳에 부하 단 한 명만 이끈 진청운이 달빛을 받으며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납셨군.”
유현은 셰나에게 가하던 힘을 회수했다. 셰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떨리는 시선이 진청운을 향했다.
“대장…….”
“미안. 조금 더 일찍 구하러 왔어야 했는데, 내가 좀 늦었네.”
“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유현이 셰나의 말을 끊으며 진청운을 강하게 노려봤다.
“우리 서로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지?”
“맞아.”
진청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그의 여유 있는 태도가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곁눈질로 진청운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살폈다.
‘누구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둠을 몸에 두르고 있어서 볼 수 없었다.
진청운의 옆에 있어서 그런지 그의 책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평범한 녀석은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진청운이 고작 1명만 대동한 채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으니까.
‘진청운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거겠지.’
예언이라는 힘을 지닌 녀석의 안목이라면 분명 비장의 카드가 되어 줄 확률이 높았다.
유현은 그걸 알면서도 걱정이나 두려움을 품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정도라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거겠지. 어디 말해 봐. 뭘 믿는 거지?”
“알아낼 수 있지 않아?”
“어차피 우리가 지닌 권능은 서로에게 간섭하지 못한다는 걸 너도 알 텐데?”
유현은 진청운에게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라플라스의 힘도 통하지 않는 녀석이다. 맥스웰은 물론이거니와 데카르트로 환상을 보여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나마 다윈의 힘은 상대방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육체에 새겨지는 힘이지만.
진청운의 옆에 있는 비장의 한 수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진청운도 그걸 알기에 이 묘한 타이밍에 부하 하나만 이끌고 나타났을 것이다. 그 이상 되는 전력은 과투자인 데다가 유현의 전의만 더욱 높여 줄 테니까.
“강유현 텔러.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이야기? 무슨 이야기. 우리가 맘 편히 대화를 나눌 사이였나?”
“태초의 서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아?”
“…….”
진청운이 꺼낸 카드는 유현이 가장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숨 막힐 정도로 넘실거리던 유현의 전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좀 특별하거든.”
“특별하다라……. 역시, 너도 가지고 있었군.”
“그래서 어때. 대화를 나눌 맘이 생겼어?”
“대화는 아니지만, 호기심은 들어.”
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말해. 너는 뭘 알고 있지? 전부 다 알고 있나?”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걸 알고 있기는 하지. 네가 지닌 힘, 내가 지닌 힘. 전부 다 여기에서 비롯된 거니까.”
“태초의 서는 대체 뭐지?”
“최초의 이야기가 담긴 책.”
진청운은 자신이 아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말했다.
“로고스의 의지가 담긴 힘이지.”
로고스?
진청운에게서, 유현도 처음 듣는 이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