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82화
“뭐,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누군가의 외침을 듣는 순간,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던 언리쉬드 전투원들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등장했을 때의 기백에 압도되었다지만, 상대는 그래 봤자 5명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이쪽은 그 10배인 50명. 그것도 10중 사상세계가 성공적으로 폭주했을 때, 양동 작전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전투에 특화된 조원들이었다.
협회나 클랜의 컬렉터들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자들만 모아 놓았기에 그들의 자만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이 겁에 질렸다는 사실을 곧바로 망각하고, 무기를 쥐며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겁도 없이 5명이서 오다니!”
“꼴에 뭐가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자기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오히려 순간이지만 겁먹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에, 그들은 분노의 불길에 더더욱 부채질을 가하며 살심을 끌어올렸다.
유현은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자신의 양옆으로 도열한 네 악마를 불렀다.
“라플라스. 맥스웰. 데카르트. 다윈.”
[예. 주인이시여.]
[무엇을 바라십니까.]
[하명하시옵소서.]
[주인. 명령을.]
“전부 쓸어 버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네 악마가 유현을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뭐야 이놈들은? 아까부터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고. 무슨 무도회장이라도 온 줄 아나?”
“다 죽여 버려!”
언리쉬드 전투원들은 네 악마를 보며 비웃음을 일삼을 때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였다.
[이 노부가 그래도 최연장자니 먼저 움직이도록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전투원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 여유로운 발걸음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언리쉬드 전투원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수적 열세가 명확한데, 이렇게 당당히 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뭣들 하고 있어! 그냥 죽여!”
누군가 그렇게 외치며 라플라스의 등 뒤에서 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기습 공격이었다.
하지만, 라플라스는 마치 그 공격을 읽었다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검을 피했다.
“어? 이걸 피해?”
자신의 공격이 빗나간 것에 분노를 느낀 상대가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라플라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검격을 전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피했다.
“뭐, 뭐야.”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모든 공격을 다 피하니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러웠다.
뒤에 눈이라도 달린 걸까?
[으음? 끝난 건가? 설마, 그게 자네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의 전부인고?]
이쪽을 슬쩍 돌아보는 가면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항거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이, 이익! 뭣들 하는 거야! 한꺼번에 덮쳐!”
발작적으로 외치자 그제야 다른 동료들이 라플라스를 향해 각자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라플라스는 그 광경을 묵묵히 주시했다.
그는 이 모습을 ‘이미 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너희들은 항상 어리석은 실수만을 반복하는구나.]
그걸 깨닫지 못하니 보여 줄 수밖에.
스르릉.
라플라스가 허리춤에 매달린 쌍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이 얇고, 긴 레이피어였다.
라플라스는 곧바로 허공을 검으로 툭 찔렀다.
“어?”
먼저 달려오던 언리쉬드 전투원 하나가 그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그의 미간에는 대체 언제 뚫렸는지 모를 구멍이 나 있었다.
라플라스는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차근차근 검을 휘두르거나 찌르며 손쉽게 쓰러뜨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 공격이 그렇게 빠른 것도, 그렇다고 강력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마치, 상대방이 공격을 피하는 미래마저 알고 있는 것처럼.
“으아아아아!”
누군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라플라스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지만, 가른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전부 보인다네. 간단한 기습도, 그대들의 공포도.]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라플라스의 가면을 쓴 얼굴이 코앞에 당도했다.
[죽음까지도.]
“아아아악!”
라플라스는 뛰어난 검술을 지닌 것도, 대단한 신체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가 지닌 가장 큰 힘은 바로 ‘눈’
미래를 보는 눈이야말로 그의 근간이며 전부였다.
상대방이 언제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검을 내지를지, 이쪽이 공격을 가하면 어떤 반응을 취할지, 피하려고 하면 어디로 피하려고 하는지.
라플라스는 전부 내다봤다.
그에게 있어서 검을 내지른다는 의미는, 이미 정해진 미래를 그대로 현실에 옮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라플라스 영감님이 너무 신나신 것 같군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사복을 차려입은 멕스웰의 악마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주위에 언리쉬드 전투원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저는 그래도 신사적이니, 검을 휘두르는 건 삼가도록 하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지웠다. 그 대신 양 손목에서 튀어나온 무언가를 쥐었다.
그것은 흑색 리볼버였다.
총을 알아본 언리쉬드 전투원들이 멕스웰의 악마를 비웃었다.
지금 각성한 컬렉터를 상대로 리볼버 총을 쏘겠다는 건가? 총알을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자들을 보고?
하지만, 맥스웰의 악마는 그들의 조소에도 개의치 않았다.
[너무 리볼버를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될 테니까요.]
탕!
그는 방아쇠를 담기며 한 명에게 총을 쐈다. 상반신보다 훨씬 더 큰 방패를 쥔 대상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방패를 든 컬렉터에게 총을 쏘려고 하다니.’
이대로 방어한 이후 그대로 돌진해서 머리를 내리찍겠다고 생각하던 컬렉터는, 갑자기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피?”
그것도 자신의 심장이 있어야 할 부근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명, 총알은 막았을 텐데?’
그의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심장이 뚫리고도 살아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암전되는 시야.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고, 그 광경을 본 다른 언리쉬드 전투원들은 당황했다.
분명 동료가 방패를 들어 올린 것을 봤고, 날아가는 총알이 방패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방패에 닿는 순간, 총알이 마치 녹아내리듯 사라지더니 이내 심장을 꿰뚫은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무슨, 무슨 사술을 부린 거냐!”
[사술이 아닙니다. 명백한 가능성 중 하나죠.]
“가능성이라고? 뭔 개소리야!”
[총을 쏜다. 방패를 들어 총알을 막는다. 하지만 모두가 모르죠. 방패가 반드시 총알을 막는다는 경우는 없습니다. 뚫릴 수도 있고, 혹은 어떤 모종의 작용에 의해 총알이 휘어져 나갈 수도 있죠. 갑자기 공간을 뛰어넘어 심장에 적중할 수도 있습니다.]
맥스웰은 양팔을 교차시켰다.
[전 그중 하나를 골랐을 뿐.]
미래를 향한 가능성이란 무궁무진하다.
절대라는 명제가 없듯, 어느 일이 벌어질 확률이 완전히 100퍼센트도 아니고 0퍼센트도 아니다.
맥스웰의 악마는 그것을 아주 약간만 건드렸다.
총을 쐈을 때 총알이 심장을 꿰뚫을 그 미약한 가능성.
그것을 그저 현실로 불러왔을 뿐이다.
[자, 아직 총알은 많이 있습니다.]
맥스웰의 악마는 양손의 리볼버를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아직 주인의 격이 부족하기에 그가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가능성뿐이었지만.
지금은 그걸로 족했다.
언리쉬드 전투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저쪽도 열심히 하니, 나도 놀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데카르트의 악마는 이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언리쉬드 전투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다른 악마들처럼 데카르트의 악마 또한 무슨 사술을 부릴지 모르니, 그 전에 미리 쓰러뜨리겠다는 생각이었다.
푸욱!
무수한 무기가 데카르트의 악마를 꿰뚫었다. 그의 전신은 온갖 병장기에 꿰뚫려 넝마가 됐다.
“뭐야!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별거 없잖아!”
“긴장하게 만들고 있어! 퉤!”
쓰러진 데카르트의 악마 시체에 침을 내뱉는 순간, 그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히 있어야 할 놈의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
[재미있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로 뒤. 전투원들은 놀라는 것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그들이 뒤를 돌며 무기를 휘두르는 순간, 등 뒤에 서 있던 데카르트의 악마의 목이 잘려 나갔다.
이번엔 진짜다. 손맛이 있었다.
“꼴에 뭐 특이한 능력 하나는 있다는 소린가?”
전투원 중 하나 박철규는 놈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믿는 구석 하나는 있다고 해도 별거 아니었다.
박철규는 이후 동료들을 도우며 나머지 적들을 모두 정리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싱거운 놈들이었다. 죽은 동료들이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싸움은 손쉽게 끝났고, 그대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그때 조직의 간부 하나가 찾아왔다.
“박철규. 훌륭하군. 대단한 성과를 보여 줬어. 너를 간부의 자리에 추천할 수 있도록 진청운님께 말씀을 드려 보지.”
“헉! 감사합니다!”
박철규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더욱 열심히 활동했다. 언리쉬드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고, 어느덧 조직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박철규는 간부가 되었고,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진청운의 오른팔이 됐다.
세계 각국의 정부도 이제 언리쉬드의 눈치를 봤다. 일반인들은 모두 그들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이젠 네가 내 뒤를 이어라.”
진청운은 그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은퇴했다.
그 순간, 그는 절대자로 군림했다.
언리쉬드를 세계적인 조직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고, 역사에 발자취를 새겼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정말로 힘들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그는 결국 성공했고, 모든 목적을 이뤘다.
모두가 박철규의 이름을 칭송했다.
각성조차 하지 못한 저열한 일반인들은 무릎을 꿇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그토록 바라는 힘을 지닌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박철규는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꼭대기에서 지난 삶을 돌이켰다.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이제 내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편히 가면 되는 거야.’
박철규는 사랑스러운 가족들의 사이에서 편히 눈을 감았다.
[꿈은 즐거웠나?]
그가 눈을 뜨고 본 것은, 적을 쓰러뜨리려고 무기를 감싸 쥔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 어? 뭐지? 이건 대체…….”
박철규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직의 정상까지 올라간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건가. 그리고 자식들의 사이에서 편하게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과거로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지난 수십 년의 삶과 지금 현실의 괴리감에 뇌가 과부하를 일으켰다.
내가 지금까지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 꿈인 것인가.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박철규는 순간, 결론을 내렸다. 일단 눈앞의 이 녀석을 죽이자고. 그 이후에 생각을 이어 나가자고. 그것은 이성이 한 줌도 담겨 있지 않은 본능에 따른 선택이었다.
박철규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데카르트의 악마는 너무나도 손쉽게 검에 베여 두 동강이 났다. 꿈에서, 혹은 과거에서 봤던 것처럼.
감촉은 확실히 느껴졌다. 이번에야말로 놈은 분명 죽었다.
“허억. 허억. 이제 진짜, 끝이야.”
[진짜 끝이라고? 과연 그게 진짜일까?]
“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녀석이 이쪽을 보며 서 있었다.
박철규는 바닥에 있는 시체와 눈앞에 있는 데카르트의 악마를 번갈아 살폈다.
“대체, 대체 넌 뭐야! 죽었잖아! 내가 죽였잖아!”
[정말? 네가 정말로 나를 죽였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사실 꿈을 꾼 거다. 지금까지 살았던 네 모든 삶이, 전부 거짓이고 환상이었다는 거지.]
“개소리하지 마!”
[내가 진실을 보여 주마.]
데카르트의 악마의 등 뒤로 거대한 까마귀 날개가 펼쳐졌다.
팽창한 날개가 이내 세계를 집어삼켰다.
새까맣게 물든 세계를 보며 박철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거기 누구 없어?!’
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외침은 그저 머릿속에서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뚜. 뚜. 뚜.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심박수를 측정하는 소리와 흡사한 그것은, 지금의 현실과 전혀 걸맞지 않았다.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누가 대답 좀!’
“호오. 실험체 34호의 반응이 신기하군.”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확인컨대 최소 60대가 넘어 보이는 노인으로 추정됐다.
그 순간, 어두웠던 시야가 확 열리며 박철규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어?’
그것은 유리 벽이었다. 기포가 계속 올라오는 녹색 액체가 가득 담긴 유리 벽. 그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 벽 너머에, 새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가 이쪽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몸을 움직이려 해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몸이 존재하는 것이 맞기는 한지부터가 의문이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팔다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이 풍경조차도, 사실 시각이라는 오감이 아닌 전혀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박철규는 지금, 오직 뇌 하나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게 대체 뭐냐고!’
설마, 지금까지 그게 전부 꿈이었단 말인가?
컬렉터로 각성하고,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숭고한 사명을 품고서 언리쉬드에 들어가 적들과 싸우고.
그게 전부? 지금까지 있던 그 모든 것들이 이 과학자가 보여 준 꿈이었다고?
모든 기억이 혼란스럽게 뒤엉켰다.
“오. 34호가 정신을 차린 건가. 이거 참. 자극이 너무 강했던 건가. 이번에는 전압을 7할로 낮춰 보게. 그리고 약의 조제 비율 중 행복 물질을 분비시키는 것은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
“예. 박사님.”
“또 무슨 대단한 꿈을 꾸는지, 지켜보자고.”
그 대화를 듣는 순간, 박철규의 이성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아. 그랬구나. 결국, 이 모든 것이 꿈이었구나.
박철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의식이 현실에서 멀어지고, 어둠 속에 잠겼다.
[그래. 편히 쉬어라.]
박사의 머리 위, 실험실의 어두운 천장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데카르트의 악마가 실을 이용해서 박사를 조종하며 남자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전부, 나쁜 꿈이었을 뿐이니까.]
데카르트의 악마에게 달려든 모든 전투원은 자리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절대로 깨어나지 못할, 꿈조차 존재하지 않는 심연의 잠에.
* * *
“이놈, 덩치가 좀 큰데?”
“걱정하지 마. 저렇게 큰 놈은 그렇게 빠르지 못해.”
다윈의 악마를 포위한 언리쉬드 전투원들은 살짝 경계 어린 목소리로 그런 대화를 나눴다.
녀석은 인간 같지 않은 체형을 지녔다. 상반신은 기이할 정도로 비대하고, 두꺼운 두 팔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얼굴에 쓴 저 가면은 또 어떤가. 멍해 보이는 그 모습을 보면 둔중한 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체형을 보면 근력 하나만큼은 강하겠지만, 그 움직임은 느려터질 것이 분명했다.
전투원들은 적당히 빠르게 치고 빠지며 다윈의 악마를 쓰러뜨릴 준비를 했다.
그때, 가만히 있던 다윈의 악마가 움직였다.
스윽.
“어?”
“뭐, 뭐야?”
다윈의 악마가 두 팔을 들어 올리더니 기묘한 자세를 잡았다.
한쪽 발은 앞으로, 다른 한쪽은 뒤로.
허리는 곧게 편 채로 왼손은 가슴께에 가져오고, 오른손은 정면을 향해 내뻗는다.
둔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기행에 언리쉬드 전투원들의 등 뒤로 소름이 쫘악 타고 흘렀다.
다윈의 악마가 취한 자세는 마치.
무술가의 모습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