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61화
부하는 진청운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그 모습에 진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를 못 할 것도 없었다. 누구라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말하자면, 그 남자는 나와 닮았다는 거다.”
“강유현 텔러가 말입니까? 그 인간도 아닌, 우릴 우습게 보는 그 빌어먹을 놈이요?”
“나는 비록 컬렉터들을 중시하는 주의지만, 그렇다고 모든 텔러가 다 무능하고 성격이 괴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아, 아무리 그래도 저희의 적인데…….”
“인간 중에서도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텔러 중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텔러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그리고 적이라고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로브 속에서 진청운의 눈빛은 앞으로 벌어질 기대감과 흥미로 뜨겁게 타올랐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인정해야만, 그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지.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상대를 대할지 알게 된다. 잊지 마. 내가 남들보다 반드시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우린 언제나 부족하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알고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저히 컬렉터 우월주의 슬로건을 내건 조직의 리더가 할 소리가 아니었다.
“진청운님…….”
“이런. 아무래도 실언이 좀 지나쳤군. 방금 말은 잊어라. 나도 작전이 가까워지니 긴장을 해 버린 모양이야.”
어차피 자신의 생각을 백날 설명을 해 줘도 부하들은 그 뜻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일부러 극단적인 사상을 내세우며 부하들을 모은 것은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였지만, 막상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순간을 겪다 보면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야 그렇겠지. 사람들은 각자 보는 것조차 다르니까.’
진청운은 황금빛을 얻은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본 세상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이 거대한 혼성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됐다.
‘태초의 서여. 너는 내게 대체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건가?’
본래 평범한 사람이 이 황금빛을 받아들이고 진청운과 같은 것을 보았다면 그 사람은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진청운도 그 순간 마음이 몇 번이나 꺾일 뻔했었다.
그를 따라 주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또 그에게 반드시 이뤄야 할 목적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자 고통은 사그라졌고,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그 남자. 강유현 텔러.’
그에 대해서 듣는 순간, 진청운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야말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며 이 세상의 흐름을 뒤틀고 거역하는 자라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자신과 같은 것을 보는 자라고.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가 어찌 됐든 좋아.’
진청운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 정도 얼마든지 던져 줄 각오는 이미 끝마쳤다.
이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적수가 될지 모르는 자를 쓰러뜨려야 했다.
‘와라. 진짜 태초의 서 주인이 누구인지 자웅을 겨뤄 보자.’
진청운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하늘의 높은 곳에서, 새하얀 부엉이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유현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집에서 나오려고 했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움직이는 유현을 보며 백련이 따지듯 물었다.
[야. 왜 혼자 가려고 하는데? 얘들 안 데려가?]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우리 컬렉터들을 어떻게 데려가냐?’
[그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을 넌 지금 혼자서 가려고 하는 거고?]
‘네가 있잖아.’
[흥! 그렇게 말해도 안 통하거든? 가면 어떻게 될 줄 알고 혼자서 뭘 하려고 해? 너 가만히 보면 가끔 너무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는 거 같아.]
‘그건…….’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반박하려다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피식 웃었다.
‘맞아. 그럴지도 모르지.’
[너 혼자서는 모든 걸 할 수 없으니까 컬렉터들을 고른 거 아니었어? 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네 사람을 모은 거잖아.]
‘맞아. 그랬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혼자 하려고 하는 건데?]
‘그건…….’
분명,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했기에 영입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어느 순간부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를 구한다는 대의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굳이 그녀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걸까?
노력의 끝에 지구가 멸망하는 미래를 피했다고 한다면.
멸망이 찾아오지 않는 평화로운 미래에, 과연 이 아이들이 설 자리가 있을까?
분명 미래란 불확실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지나친 설레발이지만.
그래도 유현은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람은 반드시 노력에 보답을 받아야 해. 누구도 내 사람들의 희생을 모른다면, 그걸 알고 있는 나라도 보답받게 만들어 줘야지.’
[그러면 너는? 네 노력의 보답은 누가 해 주는데?]
‘나는 사람이 아닌데?’
[말장난하지 마!]
‘그만. 어차피 그렇게 따져도 내가 할 일은 바뀌지 않아.’
[너……!]
백련은 씩씩거렸지만, 그 이상 유현에게 소리 지르지 못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유현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너 알아서 하라고, 백련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유현은 백련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 준 백련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해 버린 걸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백화 매니지먼트 사옥의 대문 밖으로 나간 순간.
유현은 자신의 앞에 선 3명을 보며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역시, 나오실 줄 알았어.”
“음. 어쩐지 느낌이 쎄하다 싶더니.”
“언니들. 제 감 틀리지 않았죠?”
강혜림과 권지아, 그리고 서수민.
세 사람은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유현이 몰래 빠져나올 걸 대비해서 입구에서 몰래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 여러분? 대체 어떻게?”
저 셋의 반응을 보면 마치 자신이 이럴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인데, 유현의 입장에서는 퍽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번 일을 알리지 않고, 철저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성유찬에게도 절대 남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었다.
서수민이 유현의 앞에 서며 말했다.
“혹시라도 말하건대, 여기까지 와서 뭐 우유 사러 간다는 핑계 대지 마라.”
“…….”
“하아. 참으로 죄 많은 남자로다. 그대는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뽑은 동료들을 너무 우습게 본 경향이 없잖아 있나 보군.”
서수민의 말에 강혜림과 권지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유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기서 변명을 해야 할까. 아니면, 사과를 해야 할까.
무엇보다 서수민이 한 말이 그의 폐부를 정확히 찔렀다. 사실 그녀의 말마따나 유현은 자신이 직접 뽑은 컬렉터들을 너무 아이들 보듯이 했다.
이 자리에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없었고,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와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 재능을 높이 산 것이 다름 아닌 강유현 본인이 아니었던가?
[깔깔깔! 내 들킬 줄 알았다!]
귓가를 강하게 때리는 백련의 목소리에 유현의 의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유현은 결국, 어깨에 힘을 빼고 백기를 들었다.
“현장에서 검거당했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건 명백히 유현의 실수이자 잘못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감싸고돌면 안 됐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믿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여러분들.”
그러니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하자.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세 사람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서로 훈훈하게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유현은 문득 이 자리에 유영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 저희 막내는요?”
“막내는 아직 반푼이라서 굳이 부르지 않았다. 녀석은 아직 이 자리에 끼기에는 조금 부족하거든.”
“…….”
불쌍한 우리 막내.
심지어 서수민의 말에 강혜림과 권지아도 반박은커녕 오히려 공감하는 눈치라 유현은 이상하게 유영민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물론, 유현도 서수민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 * *
네 사람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상세계 입구의 바로 코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청운은 유현을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위로 뒤집어쓴 로브는 그대로였다. 그는 굳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눈앞의 상대는 자신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혼자 올 줄 알았는데, 아니군.”
유현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 행동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진청운은 어깨를 들썩이며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하긴 뭐, 솔직히 누가 더 와도 상관은 없는 일이지.”
“잠자코 잡혀 줄 생각은?”
“알면서 굳이 물어보는 건가?”
진청운은 그렇게 말하며 뒷걸음질쳤다. 누가 막을 새도 없이 그는 사상세계 안쪽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자. 나를 잡고 싶으면 따라 들어와 봐.”
그 말만 남기며 그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여기서 진청운을 잡으려면 사상세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누구 하나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저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이상 따라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어쩌죠? 딱 봐도 함정 같은데.”
“그걸 알면서도 본인 스스로 미끼가 되다니. 저 사내도 보통 미친 게 아니로군.”
“참으로 위험한 사내로다.”
세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눌 때 유현은 사상세계의 입구로 천천히 다가갔다.
“자, 잠깐만요 유현 씨! 설마 들어가게요?”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잡겠습니까? 함정이어도 가야죠.”
“하, 하지만.”
“괜찮습니다.”
유현은 웃어 보였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잘될 테니까요.”
유현은 여기까지 온 이상 도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진청운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거대한 두근거림을 느꼈으니까.
태초의 서라고 불리는 것의 파편.
유현이 지닌 황금빛과 진청운이 지닌 황금빛이 서로 반응했다.
그 기묘한 공명을 느낀 순간, 유현은 자신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현이 지닌 황금빛은 지금이 기회라며 그에게 나아가길 권장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유현은 거침없이 사상세계에 입장했다. 그 뒤를 따라 강혜림, 권지아, 서수민이 뒤따랐다.
진입하면서 서재를 개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상세계 안쪽에서 진청운을 생포하는 것 또한 성령들에게 재미난 볼거리가 될 테니까.
[서재가 개방됐습니다.]
[폐허에 피는 꽃이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은의 마녀가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구름 위를 달리는 자가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백모의 짐승이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
[현재 시청령: 7,834명]
엄청난 속도로 오르는 시청령의 숫자를 뒤로하고 유현은 사상세계 안쪽의 풍경을 살폈다.
과연 이쪽을 쓰러뜨리기 위해 어떤 함정을 팠는가 싶었지만, 주위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황야가 전부였다.
몸을 숨길 곳도 여의치 않은 곳이라 그런지 멀지 않는 곳에서 진청운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굳이 안쪽으로 끌어들이기에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 싶었는데, 너무 우릴 우습게 본 거 아닌가?”
유현은 진청운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들이 머무는 지금 사상세계는 이렇다 할 환상체도 없는, 말 그대로 위험도가 한없이 0에 수렴하는 그런 곳이었다.
진청운이 이렇게까지 그들을 끌고 온 것도 굳이 남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 따로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
하지만, 진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아나? 나도 그쪽과 마찬가지로 조금 독특한 힘을 지녔지. 아직 다루기엔 내가 한없이 미숙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좋은 능력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나는 이 힘을 ‘예언’이라고 부르지.”
“예언이라고?”
유현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박문철이 멀쩡한 사람에게 기적을 선사했던 것처럼, 진청운은 황금빛을 통해 자신과 비슷하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얻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설마 이 자리에서 자신이 지닌 황금빛의 능력을 당당하게 떠벌릴 줄이야.
“그런데, 내 예언의 가장 큰 맹점은 나와 비슷한 자의 미래는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지. 너도 마찬가지야. 강유현 텔러. 나는 네 모습을 볼 수가 없어. 그리고 너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또한 그 빛에 가려져서, 너무 흐릿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
그 말에 위화감을 느낀 것은 유현만이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제대로 볼 수 없을 뿐, 완전히 못 보는 것은 아니거든. 나는 생각했지. 너는 동료들과 함께 있으니, 네 동료의 그 흐릿한 흔적을 어떻게든 내다보면 너의 것도 함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것은, 유현이 무신 위무혁을 추적해서 언리쉬드의 흔적을 찾으려는 것과 같은 발상이었다.
“그리고, 너는 결국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자리에 서 있지.”
진청운의 손가락이 일행이 서 있는 바닥 아래를 가리켰다.
“이야기의 씨앗이 심어진, 그 토양 위를.”
“……!”
그 말에 권지아가 칼을 뽑고, 서수민이 손을 쓰는 것보다 먼저.
땅이 뒤집히며 무수한 텍스트의 다발들이 튀어나와 유현을 비롯한 일행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시야가 새하얀 텍스트로 가득 차올랐다.
육신이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강제로 끌려가는 느낌과 함께.
네 사람은 바뀐 풍경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특히, 이미 한 번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서수민의 반응에는 짜증이 서려 있었다.
“또, 이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군.”
“이거 참. 예상도 못 했네요. 설마, 사상세계 안쪽에 사상세계를 만들어 낼 줄이야.”
대체 누가 이중 사상세계라는 발상을 떠올릴까?
심지어 진청운은 이야기의 씨앗까지 지니고 있었다.
언리쉬드의 뒤에 엑소도스의 지원이 있다는 소문은 이로써 기정사실화됐다.
“게다가 이중으로 겹쳐서 그런가, 제네시스 네트워크와 연결이 끊겼습니다.”
서재와 걸린 링크까지 끊겨서 성령들조차 지금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연결을 하려고 해도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권지아는 유현의 여유로운 태도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일부러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냉철하게 이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유현의 저 행동은 마치 이럴 걸 예상을 하고 있는 사람의 반응이 아닌가?
‘이렇게 될 걸 예상이라도 한 건가? 그리고 이 세계는 대체…….’
두 번째로 펼쳐진 사상세계.
그것을 본 권지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바뀐 풍경은 허름한 철골만 남기고 전부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도열한 도시였다.
하늘에서는 쉼 없이 번개가 몰아치는 검은 먹구름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부는 황량한 바람은 붉은 기운을 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음울한 울음소리가 유령의 귀곡성처럼 울려 퍼졌다.
권지아는 이 익숙한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아무래도.”
유현은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그 광경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이곳은 제 악몽의 세계인 것 같습니다.”
멸망 이후의 지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