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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53화 (25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53화

“이거 죄송합니다. 김학장 소장님이 워낙 제멋대로인 성격이라서.”

“아뇨. 아닙니다. 저희도 뭐, 잘한 건 없는데요.”

“아무쪼록 오늘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보상도 해 드리죠.”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유현은 최중모와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유영민만은 조금 전부터 떠나간 김학장의 표정이 걸리는지 어딘가 의기소침해 있었다.

최중모와의 대화가 끝나고.

유영민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컬렉터로서의 등록을 끝마치고 협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유영민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영민은 유현을 불러 세웠다.

조금 전 김학장의 일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평소에 자신만만하던 유영민의 목소리가 유난히 힘이 없었다.

“왜.”

“제가 잘한 건지 모르겠어요.”

“뭐가?”

“그냥, 그 할아버지께 조금 못된 짓을 한 게 아닐까 해서…….”

유영민은 아직도 자신이 능력을 보여 줬을 때 김학장이 짓던 표정을 잊지 못했다.

그는 김학장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빙의자가 되기 전 웹소설 작가였던 유영민 또한 김학장과 같은 기분을 겪어 본 적이 있으니까.

“그 할아버지는 몇 년 동안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 거잖아요. 아니, 몇 년이 아니죠. 몇십 년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런데 저는, 단지 빙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특혜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노력을 손쉽게 따라잡았어요.”

“그러면 기뻐해야지.”

“대체 어떻게요?”

유영민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협회의 높은 사람에게 능력을 선보여서 뽐냈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김학장의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이 녀석.’

유현은 그런 유영민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마냥 눈치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보통 사람은 자신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그 힘을 남발한다.

난데없이 주어진 능력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통해 이룩한 모든 업적이 마치 자신이 이룬 것 마냥 자랑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오히려 주어진 힘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멍청하다고 비웃는다.

“형. 이건 제 힘이 아니에요.”

유영민은 그게 싫었다.

이 힘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 세상에 넘어오면서 누군가 억지로 쥐어 준 특전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이걸 사용해서 모두의 경외심을 받는다 해서 그 결과물이 온연히 자신의 것인가?

“영민아. 그건 배부른 소리야.”

“알아요. 누군 이런 능력도 없어서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도요. 그런데 알아도…… 제 마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네요.”

무엇보다 유영민의 이런 감정을 가장 격화시킨 것은, 최중모가 협회의 차원에서 그에게 준 돈 때문이었다.

“……세계를 뒤흔들 발명품을 만드는 것에 지대한 도움을 줘서, 그에 따른 감사의 보상이라고 했었지?”

보상금 30억.

그것도 김학장의 명의로 준 금액이었다. 그 막대한 돈이 순식간에 유영민의 계좌로 꽂혔다.

유영민으로서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30억은 그로서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거금이었다.

유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볼일이 일찍 끝난 덕분에, 아직 여유 시간은 꽤나 있었다.

“영민아.”

“네, 형.”

“산책이나 좀 하자.”

유현은 유영민을 이끌고 한강 둔치공원으로 향했다.

유영민은 한강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벤치에 멍하니 앉았다.

유현이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유영민에게 건넸다.

“마셔.”

“아, 감사합니다.”

유현은 유영민의 옆에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앉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캔을 홀짝이며 평화로운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제 좀 진정됐어?”

“고마워요 형. 덕분에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유영민은 김학장의 경악에 서린 표정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웹소설 작가였을 때 말이에요.”

“어.”

“글을 써서 돈을 벌었을 때, 저는 되게 기뻤어요. 그야 그렇잖아요? 가족도 없고 변변한 스펙도 없는 제가, 남들이 취업에 열을 올릴 때 저 자신만의 돈을 번 거에요. 저는 거기에 자부심을 느꼈죠. 평범한 회사원으로서는 만질 수 없는 금액을 벌었으니까요.”

“잘 됐나 보네.”

“그랬었죠. 그런데 뭐, 막상 하다 보니 힘든 일도 많았어요. 생각 이상으로 성적이 나오지 않거나, 혹은 차기작 준비 한다고 몇 번이나 갈아엎어서 몇 달 동안 죽 쑤거나. 그렇게 고생해도 대박 작품 하나 없이 그저 그런 작가로 연명했죠. 그렇게 10년 동안 꾸준히 썼어요.”

유영민은 다 마신 캔을 손으로 구겼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진 쓰레기통을 향해 가볍게 집어던졌다.

말도 안 되는 손재주 덕분에 빈 캔은 쓰레기통 안쪽에 깔끔하게 들어갔다.

유영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렇게 돈을 벌고 뭐 열심히 하려다 보니, 저도 은근 자존심이라는 게 생기더라고요. 나중에는 더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 더 많은 돈을 벌겠다. 더 높이 올라가겠다. 뭐 이런 거요.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썩 좋지 않았죠.”

“힘들었겠네.”

“힘들었었죠. 눈이 높아서 그랬을까. 막상 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비루한 결과물을 보면, 내가 왜 이런가 싶더라고요. 객관적으로 보면 그래도 나쁜 게 아닌데, 그래도 저는 만족하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있었어요. 남들이 다 대학 가서 술판 벌이고 놀고먹을 때, 저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겨우 고시원 구석에서 글을 썼으니까요.”

부모 없는 고아로 지내면서,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서 대학교도 가지 못한 채 남들이 다들 누리는 기본적인 삶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것에 괴로워할지언정 불만을 품지 않았다.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렇게 그는 작가로서 성공했다.

그런 자신에게 자부심을 품을 만도 했지만, 유영민은 달랐다.

그가 품은 감정은 분노였다.

“나름 잘 나가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그런 사람을 봤어요. 저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어린데, 멋진 외제 차랑 자기 명의로 된 집을 가진 사람을요. 제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했어도 절대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 나이에.”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겠지.”

“네. 맞아요. 그리고 그 인간이 흥청망청 노는 것도 봤죠.”

유영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했어요.”

“…….”

“저는 이렇게나 노력하고 열심히 했는데도, 누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타고난’ 것만으로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니까요. 과연, 그 애가 자신이 가진 것을 얻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직접 봤을 때,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 뻔했던가?

유영민은 자신이 하는 것이 꼴사나운 질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세상이 원래 그렇고, 거기에 불만을 품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알고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푸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김학장에게 한 짓이, 그토록 본인이 괴로워했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

“1억이라는 돈은 크죠. 그거 하나 모으려면 평범한 사람들은 몇 년이나 저축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해요. 그래도 작가인 저는, 작품이 잘 나가면 1년 안에는 벌 수 있죠. 그런데 그 1억이라는 돈은, 그 부잣집 애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10억도, 20억도 마찬가지겠죠.”

“그렇지.”

“그런데, 지금의 절 봐요. 30억이에요. 그것도, 제 능력도 아닌 스킬 하나를 발동해서 얻은 돈이.”

순수하게 30억이라는 금액에 기뻐하기엔 유영민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괴로워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 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지난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짓이었으니까.

“제가 작가로 10년이나 글을 쓰면서 번 돈보다, 아주 순간 스킬 발동해서 얻은 돈이 더 큰 거예요.”

그 잔혹한 현실을, 유영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스킬을 발동한 건 고작 3분. 제 것도 아닌 능력을 사용한 그 3분이, 제 지난 10년 이상의 노력보다 대단한 걸까요?”

“…….”

네가 하는 것은 배부른 고민이다.

하지만, 유영민에게 과연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보다 더 심각한 사람 많다. 오히려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에 고마워해라.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

과연, 이걸로 유영민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까?

세상이 이러니까 그냥 참고 넘어가라는 말로?

‘그럴 리가.’

유현이라고 어찌 유영민의 마음을 모를까.

그도 간혹 같은 생각을 하고는 했다.

만약 이 황금빛이 없었다면, 과연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사실 회귀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들보다 더 잘난 듯이 지내고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온 것이 순전히 나 자신의 노력이었다고

그렇게 확신할 수 없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기엔 그들의 향상심과 자존심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래도.

“영민아. 내가 너한테 뭘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다. 네가 어떤 기분인지는 나도 아니까.”

“형도요?”

“그래. 하지만 이거 하나만 확실히 하자.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컬렉터를 관두고 싶어? 그런 이유로 멈출 거야? 그러면 다른 걸 묻자. 그 김학장 소장님이 네 재능을 보고 좌절하셨던?”

“그건…….”

아니다.

김학장은 비록 유영민이 보여 준 가공할 재능에 놀라기는 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오히려 의욕을 더욱 불태웠다.

유현은 봤다.

그 남자의 가능성이 내뿜던 황금빛이, 그 순간 훨씬 더 밝게 빛났던 것을.

“김학장 소장님은 오히려 더 각오를 다지셨어. 그런데 널 봐. 너는 오히려 그분을 동정했지. 과연 김학장 소장님이 정말로 그걸 원했을까? 네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풀리셨을까?”

“…….”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그 사람을 더 화나게 하면 했겠지. 그러면 영민이 너는? 너는 이런 거로 미안하다고 전부 포기하고 싶어? 가진 거 싹 다 버리고, 남들처럼 공정하게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거야?”

“……아뇨. 해야죠. 그래도 해야죠. 어떻게 멈추겠어요.”

이미 하겠다고 결심을 내렸는데, 이런 이유로 멈출 수도 없었다.

“그거면 된 거다. 네가 분에 넘치는 능력 때문에 괴롭다면, 그러면 더 열심히 해. 이보다 더 안 될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

“정말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건 없지. 능력만 믿지 말고, 계속 노력하면 된다. 뭐, 이제 와서 노력이라는 이상적인 말로만 뭉뚱그리는 것도 웃기기는 한데, 사실 나도 이것 말고는 해 줄 말이 없다.”

‘그래도’라며 유현이 말을 이었다.

“멈출 수는 없잖아. 계속 가야지. 할 게 이것밖에 없는데 여기서 궁상떨어 봤자 뭐가 바뀌겠냐. 그런다고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지도 않는데.”

“……그렇죠.”

오히려 누군가 이런 불만을 들었으면 배가 불렀다고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길 가다 돌을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유영민도 그걸 알기에 유현에게만 투정을 부린 거고.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거야. 고작 힘이나 능력 따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절반 이상은 우리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고 자부할 수는 있게끔.”

세상에 ‘전부’니 ‘완벽’이니 하는 것은 없다.

일부라도 좋으니

자신이 이룩한 이 업적에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깃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유현의 말을 들은 유영민은 벙찐 표정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형 말이 맞아요. 이 힘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휘둘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죠. 오히려 이 힘이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아요.”

“힘들 거다. 하다 보면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고, 자기도 모르게 타협하고 싶을 때도 올 거야.”

유현은 피식 웃으며 유영민의 등짝을 두드려줬다.

“그때는 참지 말고 형한테 힘들다고 말해.”

“어, 그래도 돼요?”

“계약한 컬렉터들이 힘들면 멘탈 케어를 해 주는 게 내 업무니까. 응당 해야 할 일일 뿐이야.”

유현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유영민도 마음이 놓였다.

사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괜찮다고. 그래도 정 괴로우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고.

받은 30억이 자신의 10년의 가치를 웃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렇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리라.

그래서 자신이 번 돈의 가치가 고작 능력 따위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가치임을 증명하리라.

의지를 다잡은 유영민의 표정을 본 유현은, 이거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지?”

“네. 고마워요. 형 덕분이에요.”

“그러면 어서 돌아가자. 수민 씨가 잔소리하겠다.”

“네? 왜요?”

“내가 무공을 전수받고 있거든. 그래서 매일 최소 몇 시간씩은 시간을 내고 있어.”

천마의 무공이라고 하니 유영민도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진짜요? 혹시 저도 배울 수 있어요?”

“그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보통 사람은 못 배우는 거거든. 뭐, 네가 스킬 창조로 몸을 엄청 강화시킨다면 모를까. 그러면 가능은 하겠다. 할래?”

“아뇨. 그냥 물어본 거예요.”

“독문 무공 말고도 수민 씨가 아는 무공은 많을 테니까, 나름 호신용으로 배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오.”

그렇게 말하니 유영민은 기대감이 들었다.

실제로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데, 어찌 남자로서 마다할 수 있을까.

“무공이 궁금하기는 했는데. 뭔가 기대되네요.”

“너무 만만하게 보지는 마. 수민 씨는 대신 가르칠 때 엄청 엄격하니까.”

“엄격……?”

유영민은 백화 매니지먼트에 온 첫날 서수민에게 입단 테스트라고 대련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어린 소녀라고 무시했다가 무자비하게 얻어터졌던 기억을.

잠깐만. 배운다면 걔한테 배워야 하는데, 설마 그래도 패지는 않겠지?

유영민은 그런 걱정이 들었다.

“왜 그래?”

“어, 그…… 그러니까.”

유영민은 어색하게 웃었다.

“좀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어. 안 돼. 늦었어. 낙장불입이야.”

“……아.”

* * *

아가엘은 최근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단 거의 칩거하듯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답답했지만, 그 이상으로 최근 한국 쪽 서재에 ‘엑소도스’의 텔러들이 자주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이 미친 광신도 놈들은 뭐 먹을 게 있다고 기웃거리는 거람?’

그래도 펜타그램 부서와 엑소도스는 협엽 관계라고 하지만, 아가엘은 그들을 동료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사업상의 동맹 관계지, 굳이 호불호를 따진다면 상종도 하기 싫은 게 엑소도스의 텔러들이었으니까.

절망과 멸망을 찬미하는 놈들은, 아무리 성격이 일그러진 아가엘이라 하더라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근 언리쉬드라고 자칭하는 컬렉터들이 한국에 많아진 거 같은데.’

아가엘의 눈가에 주름이 졌다.

언리쉬드는 펜타그램에서도 눈독을 들여서 제안을 했다가 까인 적이 있었다.

컬렉터들치고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놈들. 그런 녀석들이 엑소도스와 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이는 것은, 단순한 그녀의 착각일까?

‘후우. 일단은 계속 가만히 있어야지.’

아직 아가엘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머지않으리라.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겠지만, 기회가 오는 순간 득달같이 그것을 낚아채 다시 옛날의 위용을 되찾을 것이다.

“히히히히.”

아가엘은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음습하게 웃었다.

물론, 현실은 늘 그렇듯 시궁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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