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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51화 (25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51화

“어? 여기에 왜 사상세계가…….”

골목길 사이에 놓인 자그마한 입구의 사상세계. 그것을 알아본 유영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그것은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사상세계가 있다고?’

최근에 새로 생긴 건가? 아니면, 이전부터 있던 걸까?

생각이 기우는 것은 전자였다. 사상세계가 오래 있었다면 이미 침식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최근 2차 판타즘 쇼크의 이후에 정부는 사상세계의 개수와 위치를 확실하게 알아 두기 위해 미확인 사상세계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아무리 골목길에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협회에 가까운 건물 사이에 이렇게 사상세계가 무방비하게 방치돼 있을 리가 없었다.

“형. 어쩔까요? 일단 협회에 신고할까요?”

“잠깐만 있어 봐.”

유영민의 말을 끊으며 유현은 눈에 힘을 줬다. 그의 오른쪽 눈이 순간 붉게 물들더니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보를 읽었다.

돈키호테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고 나서 그의 힘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된 상태였다.

덕분에 가면을 쓰지 않고도 라플라스 악마의 파편을 훨씬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상세계 ‘배신당한 사람의 악몽’]

‘배신당한 사람의 악몽이라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해당 사상세계의 이름.

이름만 들으면 마치 대단한 것처럼 비치겠지만, 유현은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았다.

직감과도 같은 본능이 눈앞의 사상세계가 비록 특이할지언정, 절대로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유현은 오른쪽 눈에 더욱 힘을 줬다. 호박색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물드는 순간, 새로운 정보들이 떠올랐다.

[사상세계의 입장 조건은 없음.]

[사상세계 난이도는 최하급.]

[현재 생성 된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음.]

‘뭐?’

그것을 확인한 유현은 해당 사상세계가 갖는 특이함에 더욱 의문이 들었다.

‘난이도가 최하급이라 할 정도로 낮은데, 입장 조건은 없다고?’

보통 난이도가 낮고, 쉬운 사상세계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등급과 질 자체가 떨어지다 보니 막대한 이야기를 품은 중견급 컬렉터나 상급 컬렉터의 출입이 불가능해진다.

해당 사상세계 자체가 컬렉터의 용량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상세계마다 최소부터 최대치의 제한이 붙게 되는 것이었는데.

‘최하급이면서 제한이 없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현은 문득, 해당 사상세계를 확인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사상세계에 접근하려던 유현은 겨우 이성을 되찾고 발걸음을 멈췄다.

“형? 괜찮아요?”

“……어.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유영민에게 그렇게 답하면서 유현은 조금 전 자신의 태도를 되새겼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가 저 세계에 이끌렸어. 이유는…… 짐작이 가는군.’

황금빛.

그것을 떠올린 유현은 저 사상세계가 황금빛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이끌리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이나 그런 것은 아니다. 라플라스의 파편조차 저 사상세계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현이 슬쩍 유영민을 바라봤다.

“영민아.”

“네, 형.”

“들어가자.”

“네?”

“잔말 말고.”

“어, 어어?”

유현은 유영민을 잡아끌어 사상세계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몸이 무언가를 통과하는 기이한 느낌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확 변했다.

어둡고 축축한 골목길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회사의 사무실로 추정되는 공간.

“일 처리 똑바로 안 해?! 너, 자꾸 그따위로 할 거면 회사 때려 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거친 호통소리.

허름한 옷을 챙겨 입은 한 거지가 머리가 반쯤 벗겨진 상사의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주위 회사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형. 여기 사상세계 맞죠?”

“어. 아마도.”

유현과 유영민은 지금 현실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사상세계 안쪽에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상세계는 하나의 명확한 이야기가 혼성계의 힘을 빌어 구현된 세계다. 당연히 아무리 난이도가 낮은 사상세계라 하더라도, 그 최소한의 기준점이라는 것이 있었다.

앙바르 산맥의 코볼트 광산처럼.

그런데,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배신당한 사람의 악몽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과장이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굳이 객관적으로 이름을 짓는다면 직장인 김씨의 트라우마 정도가 적합하지 않을까?

유현의 가늘어진 시선이 연신 고개를 숙이는 남자를 향했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이번 사상세계와 관련이 있는 인물 같은데.”

주변 환상체들은 전부 다 회사원이었지만, 저 남자만 기차역 노숙자의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죄송…… 어?”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누, 누구?”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러 온 사람.”

그 말에 연신 구겨져 있던 노숙자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드, 드디어 와 주셨군요! 도, 도와주세요! 제발!”

유현의 앞에 무릎을 꿇은 노숙자가 유현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 한창 노숙자에게 잔소리를 퍼붓던 배불뚝이 아저씨가 유현을 노려봤다.

“넌 뭐야?! 엉? 죽고 싶어?”

“하아.”

유현은 거기에 대답을 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유현은 곧바로 손을 휘둘렀고,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산산이 찢어버렸다.

순식간에 회사 안쪽에 폭풍이 몰아치며 모든 환상체들이 텍스트로 변해 흩어졌다.

유영민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뒤이어 유현이 만들어 낸 참상을 보며 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와, 뭐야. 무슨 팔 한 번 휘둘렀는데, 위력이…….’

직접 싸우는 텔러라고는 들었지만, 강함의 수준이 엄청났다. 굳이 비교하면 최소 상급 컬렉터에 견줄 정도.

유영민의 분석은 정확했다.

[사상세계 ‘배신당한 사람의 악몽’을 클리어 했습니다.]

[너무나도 미비한 이야기라 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상세계가 사라지고 세 사람은 다시 골목길 바깥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끔찍한 세계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하는 노숙자에게 유현이 물었다.

“자. 대충 주변도 정리 했으니,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네, 네! 얼마든지요!”

“조금 전 사상세계와 당신,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노숙자는 자신의 은인인 유현에게 직접 겪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줬다.

“저, 저는 보시다시피 노숙자입니다. 직장도 잃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방금 전 그 사상세계는, 제 악몽이 현실화 된 것입니다. 저도 원래 번듯한 직장이 있었는데, 회사 내에서 서부장 그 망할 것이 제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크흑!”

노숙자의 이름은 최우진이라고 했다. 상당히 삭은 것과 다르게, 나이는 아직 30대 중반이라는 것까지.

그는 본래 촉망받는 인재였지만, 그를 질투하던 서부장이 누명을 씌우고 사내 정치를 시전해 그를 회사에서 내쫓아 버렸다.

최우진은 배신당한 충격에 공황 장애가 왔었고, 의욕을 잃은 채 길거리를 전전하며 살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사상세계에, 그것도 당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거죠?”

“그, 그건 제가 최근에 주운 씨앗 때문입니다.”

“씨앗?”

유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그 씨앗이라는 것이 검게 생긴 걸 말하는 겁니까?”

“네, 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제가 그걸 줍는 순간, 갑자기 씨앗에서 빛이 나오더니 글자가 튀어나와 저를 집어 삼켰습니다. 안쪽에 있던 것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과거였죠. 저는 거기서 어쩔 줄 모르고 갇혀 있었습니다.”

“그 씨앗은 어디서 났습니까?”

유현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유영민도,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사상세계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인공적으로 생성되다니!

그가 집필했던 내용 중 그런 것은 없던 거로 기억했다.

“이상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렸던 거였습니다. 누, 누구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어둡기도 했고, 전부 다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딱 봐도 위험하고 수상해서 저도 피해 있었습니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드는지 최우진이 몸을 떨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 사람들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그 씨앗이 하나 떨어져 있던 거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주웠는데, 갑자기, 갑자기……!”

“잘 알겠습니다.”

유현은 그 이상 물어봐도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기에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단서는 이미 확보했으니까.

‘이야기의 씨앗. 그건 펜타그램 부서가 수민 씨를 죽이려고 사용했던 거였는데.’

유현은 가장 먼저 펜타그램 부서를 의심했다. 전적이 있는 만큼 그들이 인공 사상세계에 대한 유력한 후보였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펜타그램 부서는 지금 몸을 잔뜩 사리고 있어. 중국을 지배하던 샤마트가 사라지고 그쪽에 대량의 채널이 붕 떴고, 그 빈자리를 다른 부서의 텔러들이 와서 차지했지.’

게다가 극락정토의 출라판타카 사태 때문에 펜타그램의 입지는 한없이 좁아진 상황이었다.

펜타그램이 수족처럼 사용하는 황혼의 장막 클랜도, 과거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어 오늘내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런 놈들이 이 상황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래. 어떻게든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무슨 꿍꿍이를 벌이려는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런 필사적인 녀석들치고는 어딘가 일 처리가 엉성해.’

당장 이 귀중한 이야기의 씨앗을 흘렸다는 것도 그랬다.

‘일부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노숙자 하나를 사상세계에 가두자고, 이야기의 씨앗을 소모할 리가 없으니까.

‘사람이 여럿이라고 했으니, 조직 단위로 움직이겠군. 그리고 해당 조직 중 몇 놈의 허술한 일 처리 때문에 조금 전 일이 터진 거고.’

유현은 새로운 가설을 하나 떠올렸다.

‘펜타그램이 아닌, 다른 조직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중 제일 의심 가는 것은 바로 컬렉터들로만 구성된 범세계적인 테러집단 언리쉬드.

언리쉬드는 컬렉터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세상을 컬렉터들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뉴 파시스트들이다.

만약, 인공 사상세계를 만들 수 있는 씨앗의 소재가 그들의 짓이라면.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게 된다.

‘혼자서 생각만 하면 조금 그러니, 최중모 씨에게 일단 언질은 줘야겠군.’

무엇보다 조금 전 사상세계를 봤을 때 일어났던 본능적인 이끌림.

유현은 이번 사건을 주도한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황금빛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확신이 들었다.

* * *

컬렉터들은 사상세계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가져오고, 실제로 그 물건들을 가공해서 사용하는 산업이 사회 곳곳에 발전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컬렉터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나 아이템에 버금가는 물건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컬렉터는 텔러들을 통해 검증된 [차원 상점]을 사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디에나 자신의 넘치는 끼와 재능을 발산하지 못해 안달이 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사상세계에서 획득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손대며 현실에 색다른 방법으로 적용하고자 했다.

혼성계를 대표하는 이야기.

물질계를 대표하는 물질.

그 2개를 조화롭게 섞어서 하나의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수지만, 그것에 성공해서 하나의 직위를 얻은 자가 있었다.

그게 바로 협회에 소속된 발명가 김학장이었다.

나이 60에 다다른 그 또한 컬렉터지만, 사상세계에 들어가서 싸우기 보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템을 만드는 능력을 지닌 자이기도 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특성의 이름은 [조선시대 과학자]

한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장영실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이 바로 김학장이었다.

거대 환상체에게 사용하기 위한 천망, 화포 천자총통, 사상세계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전기까지.

협회에서 사용하는 이 아이템들은 모두 그가 만든 것들이었다.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성공시키는 재능, 그리고 아이템을 만드는 것 외에는 관심조차 없는 끝 없는 집착까지.

제2차 판타즘 쇼크가 터지고 세상이 떠들썩한 지금도, 김학장은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발……!”

그런 김학장은 지금 벌써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한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지금까지 화포나 그물 등, 나름 연식이 오래된 물건들에 이야기를 부여해서 그것을 강화시키듯 사용했다.

그렇게 점점 현대의 물건으로 넘어와 무전기까지 나름의 변화를 넣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만들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막연히 상상으로만 했던 것이었다.

폭탄.

김학장은 현대의 시한폭탄에 이야기를 결합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돼……!”

얼핏 광기마저 서린 목소리.

하지만, 김학장이 만드는 이 폭탄은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폭발할 경우 물질이 아닌 혼성계의 ‘이야기’만 분해시켜 버리는 폭탄.

김학장이 지금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게 제대로 사용화만 된다면, 사상세계를 직접 클리어하지 않고도 없애는 것이 가능하게 될 테니까.

사실 이론만 놓고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이다.

실제로 김학장은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지만, 곧바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물건이라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혼성계의 영향력이 지구에 더욱 강해진 지금. 본래라면 만들 수 없었던 물건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예전이라면 서로 융합도 안 됐을 이야기인데,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이게 바로 판타즘 쇼크의 영향인가? 물질계 지구가 혼성계에 서서히 융화되는 과정이라고?’

김학장은 그래도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가 생각만 했던 여러 아이디어를 실제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물론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광기에 찬 모습과 다르게, 그는 사람들과 컬렉터들의 안전을 위한 매우 훌륭한 아이템밖에 만들지 않는다.

겉모습과 다르게 그는 매우 성실한 남자였던 것이다.

“됐어!”

김학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로운 아이템의 실마리를 잡은 그는 희희낙락하며 자신의 이 결과물을 당장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최중모!’

나름 현장직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안면을 틀어놓은 동료.

최중모 본인은 김학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김학장은 최중모를 훌륭한 친구라 여기고 있었다.

그는 당장 최중모에게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자 했다.

그리고, 최중모는 지금.

유현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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