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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49화 (24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49화

“기억을 일부러 봉인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그건…… 윽!”

권지아는 대답하려다 말고, 뇌를 찌르는 통증에 잠시 숨을 고르며 상태를 추슬렀다.

억지로 봉인을 깨고 기억을 상기시키는 짓을 한 탓에, 그녀는 실시간으로 머리를 헤집어 대는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권지아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말했다.

“나는 내 기억을 봉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이것이 깨어나면, 역으로 이 세상에 위험이 찾아오니까.”

“위험이 찾아온다면…….”

“기억의 물을 마시기 전 네가 했던 말 기억나나? 바로 그거와 같다. 이 혼성계에서 기억과 추억 같은 것은, 좋으나 싫으나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야.”

그것은 유현도 익히 아는 바였다. 당장에 지난날 찾아온 자밀라와 구서윤도 그가 지닌 기억의 파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유현이 알던 미래가 또 바뀌었었다.

권지아는 유현의 그 추측이 맞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녀가 떠올린 기억이 그것과 관련이 있어서였다.

“강렬한 기억은 많으면 많을수록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유현. 너는 내가 얼마나 많은 회차를 반복했는지 알고 있나?”

“그건…….”

권지아가 반복한 회차는 600회 이상.

심지어, 그녀가 지니고 있는 기억의 진짜 알짜배기는 2~10회차의 것이었다.

“아직은…… 아직은 혼성계의 영향력이 적어서 크지 않지만, 내 기억이 모두 깨어나게 된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진다. 내가 기억을 봉인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바보같이. 왜 이런 걸 바로 떠올리지 못했던 거지?”

권지아는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는 아직 지금의 기억이 풀리면 안 된다. 이것 때문에 나는 몇 번이나…… 몇 번 …… 몇 번이었지?”

“지아 씨?”

“물질계는 혼성계에 먹힌다. 그것은 당연한 흐름이야. 지구는 결국, 정해진 미래를 피할 수 없어. 그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는지만 바꿀 수 있을 뿐. 우리는 대비를 해야 해. 대비. 미래를 위한 대비…….”

권지아의 상태가 이상했다. 몸의 떨림이 더욱 심해지는 것도 그렇지만, 유현을 향하는 그녀의 시선은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권지아는 휘몰아치는 기억의 흔적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거대한 존재가 우릴 지켜봐. 재단이 우리를 보고 있어.”

키이이잉!

권지아의 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억의 물로 봉인을 풀었던 그녀의 책의 빛이 서서히 약해지더니, 이내 부서졌던 쇠사슬이 복구되며 책을 다시 봉인하기 시작했다.

3회차까지 해제되었던 봉인이 시간을 되돌리듯 복구됐다.

갑자기 사슬이 다시 재생된다고?

‘이건 대체……!’

유현은 다급해졌다.

“지아 씨! 혹시 지금 당장 알아야 할 것들은, 뭐가 있죠?!”

“재단. 재단을 조심해. 그리고…… 황금빛.”

‘황금빛?’

황금빛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유현은 눈을 크게 떴다. 황금빛은 그가 최근에 인지하게 된 기이한 힘이었다.

눈부신 종이로 이루어진 그것은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그걸 권지아가 알고 있다는 말인가?

유현이 권지아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지아 씨! 조금 전 그 황금빛, 그게 대체 뭐죠?”

“황금빛. 그건…… 파편. 태초의 서의…….”

“태초의 서? 태초의 서가 대체 뭡니까!”

“파편은, 파편을 부른다. 더 큰 파편은 작은 것들을. 그것이 태초의 서. 코ㄷ…….”

뚝.

권지아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어느덧 권지아의 기억을 상징하는 책들이 모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두껍게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나도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라 그 또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으윽.”

축 늘어졌던 권지아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여긴……?”

“지아 씨! 정신이 드십니까?”

“어, 응.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기억? 무슨 기억?”

“지아 씨가 기억의 물을 마시고…….”

유현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권지아는 유현의 반응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유현. 무슨 일이지? 말을 하다 말고. 기억의 물? 맞아. 분명 그걸 마셨던 것 같기도…….”

“아뇨.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무래도 지아 씨가 마셨던 기억의 물은 그 힘이 부족한 열화 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마시고 지아 씨는 지금 2일 동안 누워 계셨어요.”

“2일이나? 그런데도 아무런 효과도 못 봤다고?”

“아쉽게도. 그래도 다행입니다. 지아 씨가 멀쩡히 일어나서요.”

“그런가…….”

권지아는 기억의 물을 마셨음에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꽤나 분한 기색이었다. 유현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런 권지아를 바라봤다.

“일단 2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으니, 식사부터 하시죠.”

“……그래. 그래야겠다. 간호해 줘서 고맙다.”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죠.”

“……!”

갑자기 권지아가 눈을 크게 뜨더니, 몸을 떨었다. 그 반응에 유현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서 다급히 물었다.

“지아 씨! 괜찮아요? 왜 갑자기…….”

“여, 여기…… 내 방 아닌가?”

“네? 그야 지아 씨가 기절했으니까…….”

아.

유현은 말을 하다말고 뒤늦게 깨달았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 터져서 잊고 있었는데, 이곳은 권지아의 방이었다.

그리고, 권지아는 자신이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권지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꽉 쥔 그녀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나…….”

“나?”

“나가!!!”

권지아는 처음으로 소녀처럼 소리 질렀다.

* * *

씩씩거리는 권지아에게 쫓겨난 유현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유현은 곧바로 조금 전 권지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녀의 기억이 사라진 것은 의도적으로 한 봉인이었고, 그것이 깨어나면 아주 위험하다.’

유현과 권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잠든 시한폭탄의 가동장치를 건드린 꼴이었다.

다행히도 봉인이 복구되어 참사는 막았지만, 다시 떠올리면 참으로 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백련.”

[왜?]

“조금 전 지아 씨가 했던 말 기억나?”

[응? 뭐가? 둘이 무슨 말 했었어?]

“뭐?”

이건 무슨 농담 같지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단순히 백련이 장난을 친다고 보기에는 반응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 조금 전 지아 씨가 기억을 되찾고, 내게 중얼거리듯 말했었잖아.”

[엉? 그랬어? 기억을 되찾았다니. 결국 실패했잖아.]

“그건…….”

유현은 말을 하다 말았다. 분명 상황을 처음부터 함께 지켜봤던 백련과의 대화가 어딘가 계속 헛돌고 있었다.

백련은 권지아가 말했던 정보를 기억하지 못했다. 단순히 권지아의 기억만 봉인된 것이 아닌, 그것을 전부 지켜본 백련의 것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설마, 이건 나만 기억하고 있는 건가?’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황금빛. 태초의 서라고 했었지.’

유현은 방에 구비된 볼펜으로 적당한 종이에 ‘태초의 서’를 적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스스스.

볼펜으로 적은 글자가 가루가 되어 허공에 녹듯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백련. 봤어?”

[뭐가?]

“내가 방금 적은 글자.”

[뭘 봤다는 거야? 유현. 너 아까부터 이상해. 너 볼펜 쥐고 종이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잖아.]

“……과연, 그런가.”

백련의 반응으로 유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권지아가 말했던 태초의 서, 그것은 이 세계에 아직 알려져서는 안 될 금지된 정보였다.

그것은 신화급 아이템인 백련에게도 적용이 될 정도로 엄중한 것.

‘하지만, 나는 왜 그걸 기억하고 있지?’

세계 자체가 거부하는 정보를 유현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유현은 곧바로 답을 냈다.

‘황금빛. 태초의 서 파편이라고 하는 것이 내게 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그 태초의 서란 대체 무엇인가? 박문철을 죽이고 얻었던 그 황금빛은 어디서 온 것인가?

권지아는 말했다. 이 세상의 흐름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지구는 결국, 혼성계에 먹힐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 방향성은 바꿀 수 있다고 했지.’

결국, 지구가 혼성계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은 기정사실. 대신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의 지구가 어엿한 하나의 세계로 존재할지. 아니면, 성령들이 구경하기 위한 종말의 장으로 바뀔지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변해 가는 시간의 흐름.

근원을 알 수 없는 태초의 서.

깨어나서는 안 될 기억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일투성이다.

‘파편은 파편을 부른다고 했었지?’

유현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황금빛을 떠올렸다.

타인의 과거와 흔적, 그리고 가능성을 책으로 읽을 수 있게 하는 능력. 그것은 결국 태초의 서 파편을 통해 얻은 힘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런 파편을 지닌 자들은 좋으나 싫으나 다른 파편을 끌어들이게 된다.

운명의 힘이 그렇게 이끄는 것이었다.

‘지아 씨도, 내게도. 여러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역시 이것 때문이었나?’

우선, 상황을 정리하면 이거였다.

유현은 전생에서 죽기 전 황금빛을 봤다. 그것은 태초의 서라고 불리는 것의 파편이었으며, 유현은 이 힘을 얻은 덕분에 텔러로 환생했고, 책을 보는 능력을 얻게 됐다.

그리고 이 힘은 필연적으로 운명의 흐름을 부르고, 사건을 만들어 낸다.

유현이 지금까지 겪었던 여러 인물과 집단 간의 충돌도, 갑자기 벌어지는 사상세계의 문제들도, 이쪽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성령들의 등장도.

‘전부…… 이 힘 때문이었나?’

이제 와서 이 힘을 버릴 수도 없었다. 결국, 유현은 앞으로도 계속 여러 사건을 마주하게 될 운명이었다.

‘뭐가 어찌 됐든 상관없어.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바뀌지 않으니까.’

막 회귀했을 때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과정을 겪은 유현은 이제 이런 일로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동의 본질의 앞에서는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였다.

길을 정한 이상,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오더라도.’

그것을 뛰어넘어 보리라.

유현은 번뜩이는 눈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 * *

“아이고.”

유영민은 전신을 가로지르는 막대한 통증에 자기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서수민과의 대련 이후로 그의 몸은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세상에. 진짜 천마였을 줄이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막연히 자기보다 어린 소녀라고 생각했는데, 전생에 천마였다니. 심지어 최근 아카데미에 입학한 생도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던 그 서수민이었다니!

유영민은 막연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책망했다.

그래도 이 세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서수민을 만나는 순간 보기 좋게 박살 났다.

‘진짜 이게 소설 내용이었으면, 고구마라고 엄청 욕먹었겠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유영민은 자기도 모르게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미 이 연고 없는 세상에 떨어졌는데도, 자신은 직업병마냥 소설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그런데 세 번째가 환생천마면, 두 번째는 또 대체 누구인 거야?’

첫 번째 강혜림은 말 그대로 엄청 강한 사람이었다.

괜히 검후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가 활약한 일부 영상을 보면 전신에 번개를 두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거의 소설의 주인공급이네.’

강혜림의 활약을 본 유영민이 처음으로 떠올린 감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쑤시는 몸을 추스른 유영민은 계단을 올라왔다. 일단 유현에게 찾아가 자신의 방을 배정받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유영민은 내려오던 권지아와 마주쳤다.

“음? 누구지?”

“아.”

유영민은 권지아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며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름답다’라는 생각보다도 먼저 든 것은 ‘무섭다’였다. 권지아가 자연스럽게 흘리는 카리스마와 기세는 이미 세상의 쓴맛을 느꼈다고 자부한 유영민에게 새로운 충격을 선사했다.

“저, 저 그러니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컬렉터입니다. 유영민이라고 합니다.”

“유영민?”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권지아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흠. 그런가? 아무튼, 잘 왔다. 나는 권지아라고 한다.”

“아, 네. 그…… 유현이 형이 말했던 그 두 번째 컬렉터셨군요.”

“뭐, 그렇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래. 나도 반갑다. 그 남자가 데려왔다면, 뭐 재능은 있다는 거겠지. 앞으로 잘해 보자.”

“네, 넵!”

자신을 스윽 스쳐 지나가는 권지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영민은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딱딱한 말투는 뭐야? 나이는 젊어 보이는데. 무슨 회귀자라도 되는 거야?’

세 번째가 환생천마이니, 두 번째가 회귀자라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물론 막연한 추측이었지만 말이다.

에이 설마, 진짜 회귀자려고?

유영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유영민은 왠지 자신이 앞으로 자주 구박받을 것만 같은 불안한 미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인 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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