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48화
“인사하세요. 막내입니다.”
“오!”
유영민을 백화 매니지먼트 사옥으로 데려온 유현은 곧바로 식구들에게 그를 소개시켜 줬다. 마침 강혜림도 백서련도 전부 모여 있던 차였다.
유영민은 미인들이 가득한 환경에 눈을 크게 뜨더니, 황급히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유영민이라고 합니다!”
그런 유영민을 본 매니지먼트 식구 중 백서련이 제일 먼저 놀라며 외쳤다.
“유현씨가 남자를 데려왔다!”
웃고 있는 유현의 눈꼬리가 살짝이지만 떨렸다.
“……서련 씨? 갑자기 그렇게 외치는 이유가 뭐죠?”
“네? 그야 당연하잖아요. 유현 씨 맨날 여자만, 그것도 다 예쁜 사람만 데려왔으니까. 만약 네 번째 컬렉터도 데려온다면 여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네요.”
노골적이기까지 한 말에 유현의 웃는 얼굴에 쩌적 금이 갔다.
여기서 눈치 없는 강혜림이 백서련의 말에 동조하며 나섰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네 번째도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하고, 그냥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역시 세상일은 모르는 거였네요!”
“혜림 씨. 이리 컴.”
“네? 왜요?”
유현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하지 못하고 순수한 얼굴로 다가오는 강혜림의 머리를 양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꺄아아악!”
한차례 비명이 오갔고, 강혜림은 소파 위에 축 늘어졌다. 어느 정도 짜증을 해소한 유현이 백서련을 힐끔 곁눈질했다. 백서련은 곧바로 어깨를 움츠리며 서수민의 뒤에 가서 섰다.
“서련 씨는 이번만 봐줍니다.”
“네, 네.”
“자, 잠깐만요! 왜 저만 혼내고 서련이는 내버려 두는데요!”
쓰러진 강혜림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네? 그야 서련 씨는 우리 매니지먼트 대표잖아요. 대표님께 일개 사원인 제가 그럴 수는 없죠.”
“제가 대표라는 인식은 있었군요……?”
이제 알았다는 듯 어이없이 되묻는 백서련.
때마침 한차례 소란을 느끼던 성유찬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왔다가, 새로 들어온 유영민을 보며 누구냐는 시선을 보냈다.
“어? 누구에요? 새로운 직원?”
“아, 유찬 씨. 인사하세요. 저희 매니지먼트에서 새로 영입한 네 번째 컬렉터, 유영민 씨입니다.”
“오. 이번엔 남자네요?”
“……유찬 씨?”
성유찬이 눈치 없이 꺼낸 말에 유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그 모습을 본 성유찬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이내 쓰린 위장을 부여잡고 도망치듯 방에서 나갔다.
등장과 함께 곧바로 퇴장하는 성유찬의 뒷모습을 보며 유영민은 내가 정말로 잘 온 게 맞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성유찬을 쫓아낸 유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에 대한 여러분들의 인식이 어떤지, 방금 이 시간부로 아주 잘 알았습니다.”
“나한테는 묻지 않는 것이냐?”
“수민 씨는…… 말을 말죠.”
이쪽을 보며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 서수민의 반응을 보자니, 물으나 마나 돌아올 대답은 뻔해 보였다.
유현이 강혜림과 백서련을 따끔한 시선으로 노려보자, 둘은 유현의 시선을 피했다.
상당히 개방적이면서도, 어딘가 혼란스러운 곳이구나.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유영민이 백화 매니지먼트에 내린 평가였다.
‘그런데,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거 같지는 않은데?’
일단 검후 강혜림은 워낙 유명하니까 잘 알겠는데, 저 백발의 소녀는 또 뭐란 말인가?
유영민의 그런 시선을 느낀 건지, 서수민이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유영민이라고 했지? 만나서 반갑다. 나는 서수민이다.”
이제 같은 식구라는 말에 굳이 내숭을 떨 필요가 없었다.
정작 나이 먹은 사람 같은 서수민의 말투에 유영민은 당황했다.
‘중2병인가? 얼굴은 예쁜데 어쩌다가, 쯧쯧.’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서수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불온한 시선이로군. 잊지 마라. 나는 너보다 먼저 들어온 세 번째 컬렉터. 이곳에서 네 선배라는 걸.”
“네? 유현이 형. 그게 진짜예요?”
“형?”
갑자기 형이라고 부르자, 유현이 살짝 당황해 되물었다.
“어, 그냥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해서요. 혹시 불편했어요?”
“아뇨. 편하게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됩니다. 형이라, 그렇게 불리는 것도 처음이네요.”
“아, 형도 그러면 저한테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그럴까?”
유현이 곧바로 말을 놓는 순간, 강혜림이 들고일어났다.
“너무해요! 저희한테는 아무리 편하게 하라고 해도 안 그러시더니!”
“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나라도 함부로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구나.”
“아니, 여러분들은 또 갑자기 왜 이런 거로 꼬투리 잡으시는 건데요.”
유현이 어처구니없이 되물었지만, 그녀들의 뜨거운 반응은 쉽사리 꺼질 것 같지 않았다. 유현은 이대로 가면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아서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자자. 일단, 여기 네 번째로 들어온 영민이를 반갑게 맞이해 주자고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유영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끄응. 만나서 반가워요. 강혜림이에요. 이명은 검후. 여기 첫 번째죠.”
“서수민이다. 세 번째지.”
“전 백서련이에요. 여기 대표죠.”
각자 자기소개를 하자, 유영민이 의아해서 되물었다.
“어, 그러면 두 번째 선배님은 어디 있어요?”
“지아 씨는 지금 일이 있어서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유현은 일단 그녀가 잠든 것에 대해서 에둘러서 표했다. 유영민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보다 소수 정예라 하는데, 자신이 갑자기 들어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 건가?
‘처음에는 그래도 텃세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클리셰가 있지 않던가? F랭크 주인공이 어디 팀에 들어가면, B랭크가 나는 인정 못 한다고 텃세 부리는 에피소드가.
막상 주변 반응을 보니까, 딱히 자신을 경계하거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영민은 왜 그런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전부 다 유현이 형을 믿고 있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에 담긴 것은 유현을 향한 무한한 신뢰였다. 이 남자가 데려오고, 뽑은 사람이 모자랄 리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
분명 이곳에 처음 오는 유영민인데도, 그러한 기류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유영민에 대한 기존 멤버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유현이 데려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유영민은 이미 자신이 얼마나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지 이미 증명을 한 셈이었다.
“흐음. 그래도 막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조금 그렇겠지.”
상황을 보던 서수민이 나서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 네?”
유영민은 자기도 모르게 존대하며 그렇게 물었다. 분명 어린 소녀인데, 왜 존댓말이 나오는지는 본인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서수민은 그런 유영민을 보며 살포시 웃었다.
“테스트다. 그래도 이전까지 막내였던 나이니까, 새로 들어온 막내의 수준을 파악할 필요는 있겠지. 괜찮겠지?”
“적당히만 하면, 상관없어요.”
유현까지 그렇게 말하니, 유영민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에이, 형. 제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애한테 테스트를 받아요.”
그 말을 꺼낸 순간, 주변 분위기가 확 변했다.
백서련과 강혜림은 미친 거 아니냐는 시선으로 유영민을 바라봤고, 유현은 저질렀군 하고 고개를 저었다.
오직, 서수민만이 더욱 재밌다는 듯 미소가 짙어졌다.
유영민은 변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어, 어? 다들 왜 그래요?”
“영민이 네가 뭘 모르니까, 일단 알려 줄게.”
유현은 유영민에게만 들리게끔 작게 말했다.
“우리 매니지먼트 세 번째 멤버 수민 씨 있지.”
“네.”
“전생에 천마였어.”
“네?”
유영민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소녀가 전생에 천마였다고?
웹소설 작가인 유영민이 천마를 모를 리가 없었다.
천마가 누구인가? 무협의 트랜드를 주도하는 존재이며, 기본적으로 나왔다 하면 세계관 최강자의 포지션을 지닌 자가 아닌가.
그런 천마와 서수민의 모습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농담이죠?”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강요는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일단 겪고 와 봐.”
“자. 우리 텔러님 허락도 떨어졌겠다. 훈련실로 가지. 막내.”
“어어?”
유영민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서수민에게 이끌려 훈련실로 향했다. 현장에 남은 사람들은 유영민의 그런 모습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 겹쳐 보였다.
으아아아악!!!
뒤이어 훈련실에서 유영민의 비명이 사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유영민의 첫 신고식은 이렇게 화려하게 치러졌다.
* * *
기절해서 골골대는 유영민을 뒤로하고, 유현은 권지아의 방에 방문했다.
한 번 봤기 때문에 익숙해진 방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유현은 침대에 곤히 자고 있는 권지아의 모습을 살폈다.
그래도 반나절이면 일어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과 다르게 그녀는 지금 하루가 넘게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현은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았다.
[언제쯤 깨어날까?]
‘글쎄.’
막상 깨어나지 않는 권지아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괜한 행동을 했나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컬렉터라서 삼일 밤낮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그렇다고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현으로서는 그녀가 지금 당장이라도 빨리 눈을 뜨고 일어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야야. 누가 보면 한 몇 년은 혼수상태인 줄 알겠다. 이제 막 2일째인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보다 못한 백련이 그렇게 말하자,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아. 그런데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어휴. 진짜. 누가 보면 애 아빠인 줄 알겠다.]
‘그런 마음으로 키웠지.’
[……나머지 얘들이 그 말 들으면, 진짜 까무러치겠네.]
‘왜?’
[몰라 임마!]
백련 얘는 또 왜 이런담?
유현은 백련에게 신경을 끄고, 권지아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그야말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고요히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유현의 시선이 이윽고 권지아의 머리 위를 향했다.
온갖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그것은 권지아가 살아 온 삶의 횟수이자, 그녀가 겪어 온 고행의 흔적이었다.
600권이 넘는 서책. 그중에서는 태반이 쇠사슬로 잠겨서 펼칠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최초의 1권을 더불어 이후 10권 정도.’
해당 책들은 표지부터 눈부신 황금빛이었다. 아마 그녀가 가장 의욕적이고 희망을 잃지 않았을 때,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때였으리라.
결국 실패했기 때문인지, 그 이후의 책들은 두께도 얇아지고, 황금빛은커녕 겨우 은색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유현은 그것이 절대로 못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괴롭게 살아도, 결국 그 또한 삶이었기에.
‘여기서 이렇게 궁상떨어 봤자,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적당히 일어날까 생각하던 그때였다.
챙.
유현의 귓가에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금속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끊어진 것 같은 소리에, 유현은 처음에는 근처에서 무슨 공사를 하면서 낸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챙. 챙.
뒤이은 소리에 유현은 그 소리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있음을 알았다.
‘지아 씨의 책에 있는 사슬이, 끊어지고 있어?’
조금 전 들린 소음은 유현에게만 보이는 책의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그것도 심지어, 유현이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권지아의 10회차 이내의 기억과 관련된 책의 사슬만 말이다.
책장의 10번째 책의 사슬이 완전히 끊어졌다.
변화는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챙. 챙. 챙.
9번째. 8번째. 7번째.
지금까지 답답하게 갇혀 있던 책들이 사슬의 해방과 함께 찬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슬이 풀리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6번째. 5번째. 4번째.
그리고 4번째 책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 권지아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으윽.”
지금까지 죽은 듯 자고 있던 그녀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권지아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고,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권지아에게 다가갔다.
“지아 씨. 괜찮으세요?”
“이, 이건 대체…….”
권지아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오자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는 사이 권지아의 3번째 책의 사슬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기억의 물이 봉인된 기억을 억지로 깨우려 하고 있었고, 사슬은 그것에 저항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3번째 사슬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챙.
청명한 소리와 함께 사슬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3번째 책은 다른 책들과 다르게 찬란한 무지갯빛을 내뿜었다.
동시에 권지아는 드디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황급히 유현에게 다가가 그의 양팔을 쥐었다.
유현이 당황하며 물었다.
“지아 씨?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혹시 기억이 돌아오신 건가요?”
“아,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유현의 양팔을 쥔 그녀의 손끝은 불안감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지아 씨가, 두려워하고 있어?’
자신의 죽음조차 불사하는 회귀자인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고?
뭔가 이상하다.
“지아 씨. 괜찮으니까 대답해 주세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실수였다. 나도 모르던 기억을 되찾는 것은 실수였어.”
“실수라니요?”
“이 기억은, 내가 오랫동안 지내서 잊어버린 것이 아니야.”
권지아는 창백한 표정으로 진실을 입에 담았다.
“나는 일부러 지난 회차의 기억을 봉인했던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