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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45화 (24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45화

권지아는 보는 입장에서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침없이 물을 들이켰다.

유현은 기억의 물을 모두 마신 권지아의 상태를 살폈다. 마시자마자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권지아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없어 보였다.

“지아 씨? 괜찮아요?”

“으음.”

물을 전부 다 마신 권지아도 자신을 내려다보며 혹시 달라진 부분이 없는지 점검했다.

“뭔가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 것 같은……!”

말을 하다 권지아의 몸이 고장 난 로봇처럼 덜컥 멈췄다. 그녀의 동공이 작게 축소되더니,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권지아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기울었다.

“지아 씨? 지아 씨!”

유현은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권지아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니,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숨소리가 고른 것을 보면 기절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 일단 이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자.’

유현은 권지아를 안아 든 채 그녀가 거주하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옮기면서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을 해 봤는데,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다친 곳은 없이 멀쩡했다.

잠에 빠져든 건가?

유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권지아의 방문에 도달했다. 권지아가 거주하는 방의 도어락은 아무런 암호도 없이 유현의 출입을 손쉽게 허락했다.

얼마 전에 느낀 익숙한 데자뷰.

강혜림도 그렇고, 권지아도 그렇고. 두 사람은 기껏 달아 놓은 도어락의 비밀번호조차 설정하지 않았다.

유현은 이 두 아가씨의 안일한 보안 대책에 대해 나중에 반드시 쓴소리를 한 번 해 주겠다고 다짐하며 권지아의 집으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와…….]

권지아의 방을 확인한 백련은 어딘가 못 볼 것을 봤다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은 유현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다만, 유현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권지아의 방은 삭막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상당히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과 그곳에 가득 꽂힌 책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부 벽지가 전부 분홍색에, 그녀의 침대 근처에는 작고 귀여운 인형들이 가득했다.

‘뭔가 혜림 씨와 반대인 거 같은데?’

가장 이런 걸 밝힐 것 같던 강혜림의 방은 오히려 삭막했고, 제일 안 그럴 것 같았던 권지아가 이런 잡다한 것들을 구비해 놨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유현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권지아가 최근 방을 이렇게 예쁘게 꾸민 것은 유현과 만나고 나서부터 얻은 자신만의 소소한 취미였다.

이 방을 꾸몄다는 사실 자체가, 권지아에게 있어서 잊고 지내던 여유를 되찾았다는 증거였다.

[갑자기 기절한 거 같은데, 별일 없겠지?]

“아마도.”

기억의 물을 마시고 나서 잠시 후 반응이 왔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권지아가 잊고 있는 기억이 생각했던 것보다 방대한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권지아가 지금 죽은 듯 누워 있는 것도,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일 가능성이 컸다.

상태를 보건데 곧바로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유현은 1시간가량 권지아의 상태를 살피다가 조용히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당장에 무언가를 할 수 없으니, 일단은 이번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면서 얻은 보상과 정산된 포인트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띵동.

그때 백화 매니지먼트 입구의 벨이 울렸다. 지금 대부분이 자리를 비운 참이었기에 유현은 본인이 내려가기로 했다.

“네. 누구세요.”

그렇게 물으며 대문을 연 유현은 손님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 * *

서수민은 쉬는 시간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그녀의 옆자리에 있어야 할 강유라는 없었다. 아직 완전히 퇴원을 하지 못해서 서수민은 지금 혼자였다.

그리고, 서수민이 혼자라는 상황은 지금까지 눈치만 살피던 다른 생도들에게 기회로 돌아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 쉬워졌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생도들은 여전히 서수민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녀가 여전히 함부로 다가가기 힘든 까마득한 위치에 있는 것도 그랬지만, 강유라가 다친 이후로 다가오지 말라는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풍기고 있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철벽.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최소 그녀와 동급이라 평가받는 A랭크 생도밖에 없었다.

“저기.”

그리고, 정말로 한 A랭크 생도가 서수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붉은 기가 맴도는 머리카락에 고양이 같은 눈매.

구서윤이었다.

“헐. 구서윤 쟤 뭐야?”

“지금 서수민한테 말 건 거지? 설마 영입 제안인가?”

주위에서 생도들이 웅성거리며 저들끼리 멋대로 추측하고 떠들었지만, 구서윤은 그런 생도들의 말을 무시하며 서수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멍하니 창밖을 보던 서수민은 그녀가 다가오는 기척을 읽고 고개를 돌려 구서윤을 향했다.

“무슨 일인데?”

신비로운 백발과 어딘가 나른한 눈동자,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명백한 귀찮음이었다.

구서윤도 그것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닌지라 자존심이 퍽이나 상했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생도였기에 꾹 참았다.

“일단, 네 친구 유라에 대한 일은…… 안타까운 사고였어. 그러니 거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마.”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야?”

“아니. 본론은 따로 있어.”

무엇을 숨기랴, 구서윤은 서수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수민. 너 지금 백화 매니지먼트에 소속되어 있지?”

“아직 정식은 아니지만. 뭐, 곧 그렇게 되겠지.”

미성년자인 그녀는 현재 간이 계약으로 백화 매니지먼트에 묶여 있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백화 매니지먼트 소속 컬렉터가 되는 것은, 사상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끔 출입 허가가 난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건 왜?”

“그러니까…….”

구서윤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손끝을 꼼지락거리는 그 태도에 서수민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조금 망설이던 구서윤이 마음을 다잡았는지 입을 열었다.

“너희 매니지먼트의 그, 강유현 텔러님을 만나뵙고 싶어.”

“강유현 텔러님을?”

서수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은 아니겠지?

구서윤을 경계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서수민은 이윽고 구서윤의 행동에서 자신이 걱정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곧바로 기세가 누그러졌다.

“만날 수야 있겠는데, 그건 갑자기 왜?”

“그건 그러니까…….”

구서윤은 대답을 망설였다. 꿈에서 그 남자를 본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상대가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꿈을 그냥 넘기기엔 뭔가 찝찝했다. 그 남자를 직접 만나면, 이 기분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만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그…….”

“하아. 됐어. 굳이 이유를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면?”

“만나게 해 줄게. 뭐, 그게 국가 보안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나한테 물어봐서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잖니.”

“아.”

서수민의 대답에 구서윤은 자신이 너무 딱딱하게 나섰음을 깨닫고,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나,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생도들은 구서윤이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고 착각했다.

두 사람 설마 싸우나?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구서윤이 1위의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먼저 선포를 하는 건가? 입학 테스트에 이어 2차 매치가 성사되나?

생도들의 머릿속에서 착각의 나래가 펼쳐졌다.

정작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별것 아닌 것을 알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서수민도 구서윤도, 굳이 제삼자들의 오해를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 *

아카데미의 하교 시간. 구서윤은 서수민을 따라서 백화 매니지먼트로 향했다.

“뭐야. 버스? 설마, 자가용 같은 거 안 타?”

“그런 걸 왜 타는데?”

서수민의 의아한 시선에 구서윤은 문화 충격을 느꼈다. 그녀는 항상 등교를 할 때마다 집안에서 운전수와 함께 비싼 차를 대령해서 모셨기 때문이었다.

구서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자신보다 강한 서수민이라면 더하면 더 했지 덜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하교할 때 서수민의 모습은, 아카데미 내에서 보이는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이 너무나도 소탈했다.

“뭐야. 너 교통 카드 없어?”

“그게 뭔데?”

“하아. 네 거도 대신 찍어 줄 테니, 나중에 갚아.”

“…….”

삑. 학생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구서윤은 표정 관리를 실패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수민의 뒤를 따랐다.

버스에는 이런 기능이 있었구나.

두 사람은 적당히 빈자리에 앉았다.

아카데미 생도복을 입은 두 학생은 버스 안의 모든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다. 구서윤은 괜한 불안감이 들어서 옆자리에 앉은 서수민에게 조심히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지?”

“뭐가?”

“갑자기 막 폭발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

서수민은 구서윤의 황당한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전생에 무림에서 살던 자신보다 일반적인 상식이 떨어지는 구서윤이 못내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때부터 서수민 특유의 아이 돌보듯 말하는 행동이 발동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저기 있는 벨을 누르면 돼. 그러면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가 멈춰.”

“아.”

“그리고 교통 카드가 있으면, 다른 버스로 환승할 수도 있어. 하나 구비해 놓으면 두고두고 유용하니까, 알아 둬.”

아카데미와 백화 매니지먼트의 거리는 별로 떨어지지 않아서, 두 사람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잘 따라와.”

“알았어. 음. 그래도 여기는 좀 크네?”

“최근에 이사해서 그래. 나도 잘 모르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자, 들어가자.”

“시, 실례합니다.”

구서윤은 잔뜩 긴장한 채 백화 매니지먼트 사옥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미 백화 매니지먼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역대급 별종 텔러 강유현과 그가 직접 골라서 키웠다고 알려진 검후 강혜림, 광랑 권지아가 소속된 매니지먼트.

굳이 숫자를 따지면 고작 셋밖에 되지 않지만, 그 셋이 어지간한 대형 매니지먼트를 우습게 볼 수 있는 전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수 정예인 네메시스 클랜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지닌 이곳은, 아카데미 생도들 사이에서도 나중에 반드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선망의 장소였다.

그런 곳에 자신이 발을 들이민다는 사실이 어딘가 감격스럽게도 해서, 구서윤의 행동은 더더욱 조심해졌다.

“나 왔어요.”

서수민은 안으로 들어가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응? 다들 나가 있는 건가?”

“원래 사람들 많아?”

“그냥 때에 따라 다르지. 오늘 혜림 언니랑 서련 언니만 볼일 있어서 나간다고 들었는데.”

“서련 언니라면?”

“우리 매니지먼트 대표. 몰랐어?”

“아.”

‘분명 그런 이름도 있었지’라며 구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지먼트 대표인 백서련이 들었다면 눈물을 흘릴 법한 반응이었다.

부엉.

현관으로 들어가자, 어디선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구서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드니,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에 새하얀 부엉이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귀엽게 생겼지만,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부엉이였다.

“저, 저거는 뭐야?”

“아. 백효? 강유현 텔러님이 키우는 부엉이야. 백효야 인사해. 여긴 내 아카데미 동기 서수민.”

부엉.

서수민의 말에 백효가 울었다. 그 광경에 구서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사람 말 알아먹어?”

“어. 평범한 부엉이 아니야. 백효가 되게 똑똑하거든.”

부엉.

그 말이 맞다는 듯 백효가 날개를 한 번 파닥이며 답했다. 서수민은 백효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계단을 올랐다. 구서윤은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백효를 보며 황급히 서수민의 뒤를 따랐다.

“손님맞이용 장소는 2층이야. 일단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불러올 테니까.”

“으, 응.”

2층에 도착한 서수민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선객이 먼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뒤를 따라온 구서윤도 마찬가지였다.

“있었어요? 있었으면 말을 하지.”

손님맞이용 소파에는 유현이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못 보던 사람이 있었다.

누구지?

서수민은 상대의 모습을 세밀히 살폈다. 터번을 두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정체를 감추려고 하는 건지 눈을 제외한 다른 부분도 터번으로 둘렀다. 언뜻 보이는 피부는 구릿빛이었고, 여성으로 추정됐다.

유현은 그녀와 마주 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방금요. 그보다 누구예요?”

손님이 있다 보니, 서수민은 평소 말투를 사용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유현을 존대했다.

“저를 보러 온 손님이라고 하더군요.”

“손님이요? 아는 사이에요?”

“모릅니다. 그보다, 수민 씨도 손님을 데려왔네요?”

유현은 서수민의 뒤에 서 있는 구서윤을 알아보고는 그렇게 물었다. 구서윤은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구서윤이라고 합니다!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습니다!”

옛날에 봤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딱딱한 행동에, 유현은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

그때, 유현의 맞은편에 있던 여인이 구서윤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터번을 벗어던졌다. 터번에 가려졌던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다.

고개를 든 구서윤도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어?”

먼저 온 손님, 자밀라를 본 구서윤이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저 사람은 분명…….’

꿈에서 함께 있던 그 소녀였다.

자밀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묘한 시선으로 구서윤을 바라봤다.

유현은 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오직, 서수민만 이 기묘한 상황에 의문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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