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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43화 (24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43화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라. -돈키호테-

* * *

으득. 유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이제 와서 꿈에서 깨어난다고? 클리어 조건을 만족한 게 하필 지금이라고?

‘그럴 수는 없어.’

유현은 생각했다.

여기서 돈키호테의 말을 받아들이고 떠나면, 그때는 정말 모든 게 끝난다고.

사상세계의 끝.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

그가 이 남자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고작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싫습니다.”

유현은 돈키호테를 부축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산초?”

“기사님의 고향에 가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돌아간다고 하셨잖습니까. 아니면 지금까지 제게 거짓말이라도 하신 겁니까?”

“그건…….”

“여기까지 왔는데 저보고 그냥 가라고요? 싫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냥.

그냥 짜증이 났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갑시다. 고향으로.”

아직 이 세상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돈키호테를 등에 업은 유현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로시난테를 향해 다가갔다.

이 세상을 집어삼켰던 환상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강철 같은 근육을 자랑하던 로시난테는 늙고 병든 말이 되어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것조차 버거운 로시난테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처량했다.

마지막 기사와 함께 세계를 호령하던 그 명마는 어디로 가고, 병에 걸려 다 죽어 가는 말만 이곳에 남았는가.

그 모습에 슬퍼할 여유조차 없었다.

“로시난테.”

이름을 조용히 부른다.

쓰러져 있던 로시난테는 겨우 몸을 일으키며 유현과 눈을 마주했다.

반쯤 감긴 로시난테의 눈동자가 유현의 등에 업힌 제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가자. 기사님의 고향으로.”

푸르릉.

그러나.

로시난테는 유현의 말을 거부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싸웠던 이 말은, 생명력의 잔재조차 느껴지지 않는 힘없는 목소리로 울며 등을 돌렸다.

자신은 이곳에 남겠다며 갈 거면 둘끼리 가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유현은 더는 로시난테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

돈키호테를 등에 업은 채로 그는 로시난테를 두고 길을 떠났다.

지금까지 함께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휘이잉.

기척이 멀어져 간다.

로시난테는 언덕 너머에서 불어오는 느슨한 바람을 느꼈다. 그 흐릿한 눈동자는 천천히 멀어져 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향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 너머로 사라졌을 때.

털썩.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로시난테는 이윽고 옆으로 쓰러졌다.

죽음이 가까워진다.

이미, 유현과 마주하고 있던 그 순간부터 이 말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걸 애써 드러내지 않고, 그들에게 억지로 등을 돌린 이유는 오로지 주인을 향한 충의(忠義) 하나였다.

비록 말조차 할 수 없는 미물이라 할지라도, 주인의 가는 길에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마지막 남은 힘을 억지로 쥐어짜 내 버텼던 것은 이걸로 끝이다.

유현도 그것을 알았기에 로시난테의 바람대로 그를 두고 떠났다.

푸르릉.

쓰러진 로시난테가 콧김을 내뿜었다.

그 남자와의 모험이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함께 초원을 누비고, 악을 쓰러뜨리고, 멋진 풍경을 구경하고.

그 남자와 세상의 끝까지 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솨아아아.

따스함마저 사라진 고원에 바람이 불었다.

로시난테는 눈을 감으며 꿈을 꿨다.

하얗고 눈부신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등에 돈키호테를 태우고 초원을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 * *

돈키호테를 등에 업은 채 유현은 계속 걸었다.

돈키호테의 고향, 엘 토보소를 향해서.

[위치는 알고 있는 거야?]

‘몰라.’

위치 따윈 모른다. 유현은 자신이 지금 가는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단순한 추측 이런 게 아니었다. 돈키호테를 등에 업은 채 천천히 이 언덕길을 오르면 오를수록, 유현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제대로 이끌리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기다. 여기가 엘 토보소다.

돈키호테가 말했던 아름다운 마을, 그의 고향.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은 돈키호테도 마찬가지인지, 등에 업힌 그의 몸이 움찔 떨렸다.

“기사님. 느껴지십니까?”

“그래. 가까워지고 있구나. 내 고향 엘 토보소에.”

돈키호테는 힘없이 말했다. 고향이 가기 싫다고 말한 사람치고는 오히려 약간이지만, 기대감마저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돈키호테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현실이었다.

꿈을 꾸는 그를 언제나 잔혹하게 속박하고, 그것을 억지로 깨어나게 하려는 현실이었다.

돈키호테는 그런 마을을 사랑했지만, 또 싫어했다.

그래서 마을을 나섰다. 갑옷을 입고, 창과 검, 방패를 차고. 로시난테를 이끌고.

꿈을 이루고자.

“산초. 느껴진다. 내 고향. 엘 토보소의 공기가.”

그 고향이, 그리우면서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이 가까워진다.

결국, 돈키호테는 고향에 다가가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모든 모험이 전부 꿈이었다는 것을.

꿈은 결국, 언젠가 깬다.

“산초, 있느냐?”

감각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고, 이제 냄새조차 잘 맡아지지 않는다. 유현의 등에 업혔지만, 그 감촉마저도 마모되고 문드러져 그가 있는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눈은 이젠 고향조차 볼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느끼면서도 돈키호테는 웃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고향 땅을 밟게 된 것이 너무나도 기뻤기에.

“산초. 옆에 있느냐?”

“네. 기사님.”

“산초. 거기 있는 거 맞느냐?”

“네. 기사님.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산초. 나는 느껴진다. 어떠냐. 네 눈에는 보이느냐? 라 만차의 엘 토보소. 이곳이 엘 토보소다. 나의 고향. 나의 집.”

그렇게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거늘, 막상 돌아오니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신이 났다.

돈키호테는 마른 숨이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은 소년처럼, 이상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산초.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하지만 너는 보이겠지. 무엇이 보이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기사님.”

유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기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에요. 꽃이 가득 피었고, 맑은 냇물이 쉼 없이 흐릅니다. 아이들이 저 멀리 나뭇가지를 쥐고 뛰어놀고 있군요. 서로 멋진 기사가 되려나 봅니다.”

“역시 그렇구나. 지금 우리가 어딜 지나가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입구를 지나 현재 돌담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담벼락 너머에서 아낙네 하나가 손을 흔들어 주는군요.”

“그래, 역시 내 말대로구나. 떠난 지 그렇게 오래됐음에도, 내 고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지금 광장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빵집이 보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문을 열지 않았는지, 빵 굽는 냄새가 나지 않는군요.”

“어쩔 수 없지. 사람이 언제나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멀리 농부들이 보입니다. 다들 풍작이라 그런지 표정이 밝군요.”

“그래. 이곳은 항상 땅이 비옥했지. 나 또한 예전에 저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일을 거들고는 했었다.”

“오르막길입니다. 길 양쪽으로 푸른 나무가 가득하군요. 아름다운 나비들이 날아다닙니다.”

“맞아. 그랬지, 그랬어. 옛 생각이 나는구나.”

“그리고…….”

유현은 그렇게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모두 돈키호테에게 설명해 줬다.

돈키호테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고, 감탄사를 흘리거나 작게 호응을 날렸다.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눈앞에 그 광경이 선하다는 듯, 이 늙은 기사는 소년처럼 기뻐했다.

“이제 마을의 끝인 가장 높은 언덕 위의 집입니다. 기사님의 집에 드디어 도착했군요.”

“그런가. 어느덧 여기까지 도착했구나.”

“조심하십시오. 제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괜찮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서 걸을 수 있어.”

돈키호테는 한사코 유현의 손길을 거부하며 혼자의 힘으로 집안에 들어갔다.

그런 돈키호테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유현은 고개를 돌려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보이는 것은 허름한 폐허.

마을이었던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죽어 버린 마을이었다.

[……유현아.]

백련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유현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성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현이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 그 표정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을 때, 그러면서도 애써 밝은 목소리로 돈키호테에게 마을의 풍경을 설명해 줬을 때도.

묵묵히 지켜만 봤다.

“…….”

돈키호테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자부하던 마을 엘 토보소는 더 이상 없었다.

나무조차 없는 메마른 고원 지대. 한때 마을과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잊혀진 토지였다.

유현은 돈키호테를 따라 그의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돈키호테가 문을 여는 순간,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서 와요.”

웃으면서 자신을 반겨 주는 것은 아름다운 금발의 귀부인.

돈키호테는 몸을 잘게 떨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착각이었구나.

집에는 누구도 없었다. 그의 가족도, 그가 찾던 귀부인도, 고향의 친구들도.

아무도.

손을 더듬으며 천천히 움직이던 돈키호테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의자가 삐걱이며 소음을 자아냈다.

의자에 쌓인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돈키호테는 자기도 모르게 기침을 하면서도 코끝에 아른거리는 감각에 그리움을 느꼈다.

돈키호테의 주름진 손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쓸어 냈다. 이제는 손끝의 감촉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돈키호테는 분명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오직 자신에게만 느껴지는 고향의 정취를.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본 유현은 다른 의자에 앉아 돈키호테를 가만히 주시했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좁은 공간. 깨진 창문의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인 이 허름한 집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돈키호테였다.

“산초.”

“네.”

“산초.”

“네.”

“산초.”

“네.”

돈키호테는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유현을 계속 불렀다.

유현도 부를 때마다 똑같이 답했다.

“산초.”

“네.”

“산초.”

“네. 기사님.”

“고맙다.”

돈키호테가 불쑥 말했다.

“이 고집불통 늙은이를 끝까지 따라 줘서. 나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줘서. 나를 믿어 줘서.”

유현은 떨리는 입술로 가까스로 답했다.

“저는…… 종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 너는 종자 이상의 역할을 해 줬어. 네가 없었다면, 나는 그 사악한 마법사를 쓰러뜨릴 수도 없었고, 거인을 이기지도 못했겠지. 그래. 언제까지고, 나는 꿈 안에 갇혀 지내고 있었을 거다.”

“기사님…….”

“나는 이만 쉬려고 한다. 지금까지 너무 먼 길을 걸었어. 정말 많은 모험을 했지. 남부럽지 않을, 그런 모험을. 그러니 이제 끝이다. 산초. 이 검을 받거라.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는 짐까지.”

돈키호테는 떨리는 손으로 유현에게 검을 내밀었다. 자신이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가보이자, 편력기사의 상징을.

“산초. 이젠 네가 라 만차의 기사다. 나와 함께했던 너라면,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너는 이미, 한 명의 훌륭한 기사야.”

“기사님.”

“그러니, 이제 끝이다. 가라. 전부 다 가지고 여기서 떠나.”

“기사님.”

“어서 나가 보거라.”

“기사님!”

“나가래도!”

돈키호테의 고함에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돈키호테의 지친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

“산초. 나는 이만 쉬려고 한다. 이젠 늙고 지친 이런 나를, 이해해 주겠느냐.”

“……알겠습니다.”

유현은 돈키호테의 검을 받아들었다.

유현은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동자로 손에 쥐어진 검을 내려다봤다.

돈키호테가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모든 기사의 염원이 담긴 검이다.

이건 단순한 검이 아닌, 하나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

유현은 돈키호테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몇 번이나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결국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검과 가죽 배낭을 챙겨 든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키호테는 유현을 붙잡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유현은 돈키호테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부디, 좋은 꿈을 꾸시길.”

그렇게 유현이 떠났다.

고요한 새벽과도 같은 정적이 맴돌았다.

색색거리는 호흡을 겨우 유지하며, 돈키호테는 의자에 앉은 채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언제나 밝은 미래를 꿈꾸던 기사는 더는 여기에 없었다.

괴물을 쓰러뜨린 용감함과 기사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리따운 공주님도 없었다.

꿈은 끝났다.

돈키호테는 마지막에 결국 혼자였다.

꿈에서 깨고, 결국 눈앞의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이 늙은 남자의 최후란 응당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자신의 계보를 잇는 유현에게만큼은, 그 남자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마지막까지 늠름한 기사로 남고 싶었다.

새액. 새액.

전신에 탈력감이 맴돌고, 빳빳이 세운 고개가 힘을 잃고 서서히 아래를 향했다.

그때였다.

홀로 죽어 가던 돈키호테의 손을 잡아 주는 손길이 있었다.

“……산초? 언제 다시 돌아온 거냐. 어서 가래도.”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돈키호테는 뒤늦게 상대가 산초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피부에 닿는 손길은 마치, 여성의 손처럼 작고, 따스하고, 또 부드럽다.

그렇다면 이 손길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죽기 전에 느끼는 환각일까? 돈키호테는 이것이 만약에 환각이라면, 부디 자신이 믿고 따르는 귀부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돈키호테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추측을 억눌렀다.

‘꿈이라면, 이미 충분히 꾸었거늘.’

너무 오랫동안 꿈을 꿨다. 질릴 정도로, 몇 번이고 반복해 가며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이것이 죽기 전에 보는 환각이라면, 어서 빨리 깨어나자.

꿈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죽자.

돈키호테가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수고했어요. 나의 기사님.”

귓가에 부드럽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돈키호테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차고 넘치는 것을 느꼈다.

“아.”

돈키호테의 양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꿈에 그리던 공주님의 목소리였다.

“아가씨? 정말로, 아가씨입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더욱 강해졌다.

그 순간, 돈키호테는 깨닫고 말았다.

꿈이고 현실이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암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얼굴로 미소 짓는다.

그거면 됐다. 이걸로 충분했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꿈에서 깼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이지요. 공주님.”

인간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멈출 수 없었다.

비록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면 괴롭고 슬프지만.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니, 이제 다시 꿈을 꾸자.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낙원의 속에서, 눈부신 은색 갑옷을 입고 멋진 말을 타자.

아리따운 공주님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 곳에서 기사도를 외치자.

그런 꿈을 꾸자.

그것은 분명, 가슴 벅찬 모험일 것이다.

“그때도 부디, 저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언제까지나.”

코끝을 간질이는 감미로운 향기.

쓰러져가는 이쪽의 머리를 껴안는 따스한 손길에.

돈키호테는 만족하며 웃었다.

그렇습니까.

“또, 즐거운 꿈을…… 꾸겠군.”

잔잔히 들썩이던 어깨의 움직임이 멈췄다.

새로운 꿈을 꾸러 간 그의 곁에, 흐릿한 여인의 향기만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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