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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41화 (24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41화

집채만 한 주먹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유현은 황급히 몸을 뒤로 날려 그것을 피했다.

맞지도, 심지어 스치지도 않았는데. 공기를 타고 흐르는 힘에 피부가 아릿했다. 카라쿨리암브로의 주먹은 그 정도로 거대하고 강했다.

그런 주먹이 4개의 팔에서 엄청난 속도로 쏘아진다.

하나의 주먹을 피한 유현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잔상을 그리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무수한 주먹을 세례였다.

“미친.”

콰콰콰콰콰콰쾅!

주먹이 찍은 지면이 산산 조각났다. 땅이 울리며 갈라지고, 거미줄 같은 금이 가며 사방에 파편을 흩뿌렸다. 먼지구름이 무수히 솟아오르고, 주먹을 내지르는 충격파가 그것을 걷어 내는 과정이 반복됐다.

수십의 거인들이 동시에 바위를 집어던져도 이렇게는 안 될 것이다. 그야말로 좁은 범위에 운석이 집중적으로 떨어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카라쿨리암브로는 단신으로 자연재해에 맞먹는 괴물이었다.

“그걸 살았다고?”

먼지구름이 걷히고 보인 풍경 속에서, 유현이 방패를 들고 일어섰다.

인간이라면 육체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분쇄됐어야 할 힘의 폭풍 속에서 저 인간은 입고 있는 의복의 곳곳이 살짝 찢어졌지만, 상처 없이 멀쩡했다.

“후우. 이거 참.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다만, 겉보기와 다르게 유현의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격의 상승과 함께 강화된 백련의 방어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몸에 무훈기사의 이야기를 두르고 각인을 새기지 않았다면.

쓰러지는 것은 유현이 됐을 것이다.

[괜찮아?]

‘전혀.’

유현은 백련에게 대답하며 자신이 입고 있는 겉옷을 벗어 던졌다. 산초로서 입고 있는 여행복은 그야말로 걸레짝이었으니, 더는 걸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제법이구나, 인간. 방금 그 공격 속에서 살아남다니.”

유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백련을 검의 형태로 되돌리며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백경골작을 쥐었다. 전의가 가라앉지 않는 눈동자를 마주한 카라쿨리암브로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법 기개가 있다만.”

카라쿨리암브로가 자신의 뒤에 도열한 거인들에게 눈짓했다. 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유현을 포위했다.

“이쪽은 정정당당하게 싸워 줄 생각이 없거든.”

단순히 카라쿨리암브로 혼자 싸우는 것만으로도, 유현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부하 거인들까지 추가되니, 상황은 그야말로 전입가경의 지경에 도달했다.

‘기사님은…….’

유현의 시선이 카라쿨리암브로의 어깨너머, 저 높은 곳의 첨탑을 향했다.

그곳에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와 대마법사 프리스톤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법을 피하고 깨부수며 마법사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의 눈빛에, 포기의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유현은 왼손의 검으로 카라쿨리암브로를 가리켰다.

쓰읍. 후우.

한 차례 숨을 들이쉬었다 내민 유현이 도발하듯 웃었다.

“덤벼.”

빠직!

카라쿨리암브로의 머리 위로 힘줄이 솟아올랐다.

“그래.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쳐라.”

크와아아아아아아!!

카라쿨리암브로의 명령과 함께 유현을 포위한 거인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체고 10m가 넘는 거인들이 떼 지어서 달려드는 그 모습은 살덩어리의 해일 그 자체였다.

유현은 자세를 낮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텍스트를 끌어올렸다.

검은 활자가 몸의 위로 떠오르며 그의 얼굴에 이내 하나의 가면을 완성했다.

뿔이 달린 검은 악마 형상의 가면. 그 위로 붉은 안광 한 쌍이 폭사했다.

‘거인이 들이닥치는 방향은 전후좌우 전부다. 피할 공간은 없다.’

단순하게 정면에서 부딪치는 순간, 밀리는 것은 이쪽이 될 것이다. 놈들은 숫자만으로도 이쪽을 깔아뭉개기 충분했으니까.

‘그러니, 놈들이 포위하기 전에 내가 먼저 친다.’

유현이 움직였다. 지면을 박차고, 가장 먼저 달려오는 거인을 향해 마주 보며 달린다.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지척까지 가까워지고.

유현의 왼손이 정면으로 출수했다.

새하얀 빛을 내뿜던 백련의 검신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 형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유현과 마주하던 거인의 상반신이 조각나 흩어졌다.

무너지는 거인의 시체 사이로, 뒤따라오던 거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그 커다란 동공 안쪽에는 검은 기운을 전신에 두른 채 붉은 눈빛을 흘리는 악마가 있었다.

‘집중해. 집중하는 거야.’

그 모습을 보며 유현은 심상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된 칠마흑천신공의 기운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짐승이었다. 그것을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극한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새까만 내기를 오른손의 백경골작에 흘려 넣었다.

작살의 끝에 기운을 압축한다. 한계까지, 무기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바르르 떨릴 때까지.

그렇게 새하얗던 작살의 머리가 까맣게 물들고 거인들의 2차 웨이브가 가까워지는 순간.

‘해방한다.’

촤아아악!

내뻗은 백경골작의 날을 타고 묵빛 기운이 폭발했다.

부채꼴로 뿜어져 나오는 무수한 실선.

한계까지 압축된 기운은 거인의 거대한 몸을 손쉽게 관통하고, 그 뒤의 거인까지 쭈욱 뚫고 나갔다. 기운이 모두 지나간 뒤, 유현의 정면에 선 거인들은 전부 조각처럼 흩어졌다.

“하하!!”

유현은 기쁨에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않던 기운이, 이 순간 처음으로 제대로 된 힘을 내비쳤다.

후방에서 거인 하나가 유현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옆으로 살짝 움직이며 피한 뒤, 바닥에 꽂힌 검을 밟고 올라가 녀석의 머리 위에 작살을 꽂아 넣는다.

뒤이어 유현을 노리고 거검이 날아왔다. 유현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조금 전까지 유현이 서 있던 거인의 머리를 날리는 다른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허공에 떠오른 유현은 백련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백련이 사복검이 되어 손길이 닿는 범위 내의 모든 거인의 머리를 벴다.

순식간에 10마리나 되는 거인들이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는 쉴 법도 한데, 지면에 착지하는 순간 허공에서 무수한 창이 떨어졌다.

거인들이 사용하는 창이라 숫제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찌르기보다는 뭉갠다는 것에 가까운 물건이다.

유현이 몸을 낮게 낮추며 옆으로 달렸다. 그 뒤를 따라 창이 계속 날아와 땅에 박혔다. 몸을 휘감는 칠마흑천신공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순간, 가속한 유현은 유성처럼 쏘아져 날아가 멀리서 창을 던지는 거인들의 후열을 덮쳤다.

“어어?”

“어,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그 말을 기다리지 않고 검으로 바꾼 백련으로 머리를 날리고, 백경골작으로 심장을 꿰뚫는다.

거인들의 비명과 함께 피와 살점이 튀었다.

쓰러지는 거인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유현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정확해졌다. 잔가지를 모두 쳐 내고, 군더더기를 싹 다 제거한 가장 최적의 움직임이 동작들 사이에서 언뜻 드러났다.

‘그래.’

극한의 상황에 도달하는 순간, 몸이 저절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어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비딕 때도 그랬지만, 유현은 지금 이 순간 재차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거야.’

숨통을 조여 오는 무수한 위기.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작열하는 위험.

쉼 없이 몰아치는 거인들의 공격.

‘이 지옥이야말로, 나를 진짜 강하게 만들어 주는 거야.’

좌측에서 거대한 기척과 함께 몸이 튕겨 나갔다. 거인이 휘두른 몽둥이였다. 가까스로 백련으로 막았지만, 힘을 제대로 흘리지 못해 내부가 살짝 진탕됐다.

그래도,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질 수 없었다.

‘멈추지 마.’

지옥 속에서 살아 숨 쉬는 1분 1초가.

내딛는 그 한걸음이.

휘두르는 무기의 궤도가.

육체에 녹아들어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더. 더. 더 많이.’

더 많은 위기를.

더 많은 전투를.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순간, 그의 격은 이전보다 높아지리라.

“으, 으으으!”

“괴, 괴물이다!”

싸워도 싸워도 죽어 나가는 것은 같은 거인들이었다. 어느 순간 거인들은 유현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벌린 채 노려보고만 있었다.

거인들은 유현의 기세에 압도됐다. 지치지 않고 동족을 학살하는 그의 모습에 두려움마저 품었다.

다가가기만 해도, 근육이 베이고 뼈가 끊어질 것만 같은 공포.

악몽의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거인들이, 우스꽝스럽게도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는 더 작은 유현 하나를 두고 밀리고 있었다.

“이 멍청한 놈들! 뭣 하는 거야! 녀석은 혼자다! 숫자로 밀어붙여!”

카라쿨리암브로가 그 답답한 모습을 보며 호통을 쳤다. 말만 하지 않고 직접 거인들을 밀어내며 본인이 끝장을 내겠다는 듯 유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왕이 먼저 나서는 모습을 본 거인들이 다시 용기를 되찾았다. 카라쿨리암브로의 뒤를 따르는 거인들이 재차 함성을 내질렀다.

“죽여 주마!”

카라쿨리암브로가 주먹을 내질렀다. 동시에 유현의 찌르기가 펼쳐졌다.

주먹과 작살, 그 둘이 부딪치는 순간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오며 거대한 충격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충격파와 함께 공기가 돔 형태로 밀려나고, 진공이 된 자리를 다시 바람이 휘몰아치듯 몰려와 찰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카라쿨리암브로는 내지른 주먹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주먹에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이 정도 위력은 아니었을 텐데.

설마, 싸우는 도중에 더 강해졌다는 건가?

“감히!”

카라쿨리암브로가 두 개의 팔로 깍지를 낀 뒤 그대로 내리쳤다.

쿠와아앙!

카라쿨리암브로를 중심으로 반경 100m의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불안정한 지반이 가라앉거나 솟구쳤다.

먼지구름이 높기 치솟았다.

그야말로 대형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광경 속에서 유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카라쿨리암브로의 눈동자가 유현의 흔적을 쫓았다. 허공에 그어진 붉은 선. 그것이 유현이 이동한 궤적이 분명했다.

‘어디지? 어디냐!’

그 흔적만 쫓게 된다면, 유현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눈을 빠르게 굴리며 붉은 잔영을 쫓을수록 카라쿨리암브로는 이상함을 느꼈다.

카라쿨리암브로는 뒤늦게 자신의 주위가 붉은 실선으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어느새?’

궤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녀석은 가면을 쓰고 나서 더 강해졌다. 아니, 그 이후로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유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카라쿨리암브로는 느낄 수 있었다. 놈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주위를 배회하며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촤악!

카라쿨리암브로는 자신의 뺨에 새겨진 상처에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보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꺾지 않았다면, 얼굴 전체에 거대한 상처가 가로지르듯 그어졌을 것이다.

“프리스톤님!”

이대로 싸우면 불리하다.

그렇게 판단한 카라쿨리암브로가 몸을 뒤로 빼며 마법사 프리스톤의 이름을 외쳤다. 그 순간 하늘의 번개가 떨어지며 주변 일대를 마구 휩쓸었다.

‘이런.’

유현은 번개의 위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뒤로 물러났다. 카라쿨리암브로가 화색이 되어 외쳤다.

“프리스톤님! 도우러 오셨군요!”

“시끄럽다. 카라쿨리암브로.”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온 프리스톤은 돈키호테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을 텐데도, 멀쩡해 보였다.

‘아니, 멀쩡한 게 아니야.’

프리스톤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의 로브 곳곳은 베인 흔적이 나 있었고, 심지어 어깻죽지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보다 기사님은?’

유현이 황급히 돈키호테를 찾는 순간, 프리스톤의 뒤를 이어 새하얀 섬광이 허공을 박차고 날아와 유현의 곁에 섰다.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였다. 그의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갑옷 곳곳은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파손됐고 헐떡이는 호흡은 상당히 가빠보였다.

“산초. 자네 괜찮나?”

“예. 저는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만, 기사님은 어떠십니까?”

“허. 나 위대한 돈키호테에게 이 정도 시련은 아무것도 아닐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보다 저 마법사와 거인을 어떻게 쓰러뜨려야 하련지.”

“하지만 분명, 처음과 비교하면 나쁘지 않다. 거인들의 숫자도 줄었고, 귀찮은 병사들은 모두 처리했지. 이제 저 두 녀석만 해치우면 끝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과 한 마리의 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거인의 왕과 대마법사도 꽤나 힘을 많이 소모해서 이쪽과 비슷하다는 거려나.

결국, 이 싸움은 서로의 힘이 누가 먼저 다할지가 승부수를 가르는 태그매치였다.

“힘내실 수 있겠죠?”

“산초. 나를 뭐로 보는 거지? 나는 불멸의 기사, 이달고 돈키호테다. 저 사특한 마법사와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한 자이기도 하지. 그리고 저 첨탑 속에서 고통받는 나의 아름답고 또 신비로운 여인,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

“그냥 좀 짧게 짧게 말하면 안 됩니까?”

“이제 슬슬 막바지니까, 말을 그리 막 하는 건가?”

“말을 막 하려고 했으면, 진작에 했습니다. 아시죠?”

“미안허이.”

두 사람의 실없는 대화를 듣던 로시난테가 눈을 흘기며 작게 히힝 하고 울었다.

“그렇군. 로시난테도 눈앞의 적에 집중하라 하는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 두 괴물만 쓰러뜨리면 되는 거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갑시다. 이 모험을 끝내러.”

비록 끝내고 싶지 않았던 모험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남자와 함께 싸웠다는 진실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먼 미래가 되어 이때의 기억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하더라도, 잊지 않겠다고.

새하얀 빛에 휩싸인 돈키호테와 검은 기운을 두른 유현이 거인과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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