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39화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며 땅을 울렸다.
비처럼 쏟아지는 바윗덩어리는 지면과 부딪치며 산산 조각나 사방에 파편을 날카로운 가시처럼 뿌렸다.
공간 자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과 그 뒤를 이어 날아오는 파편의 무리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중상을 입을 정도로 위험했다.
그 자연재해와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현장에 유현과 돈키호테가 있었다.
“산초! 보아라! 저 비겁한 거인 녀석들이 우릴 계속 괴롭히는구나!”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조용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오오, 로시난테여. 어서 달리거라. 내 정의로운 창이 지금 저 간악한 거인들의 목을 꿰뚫을 때까지!”
두 사람은 지금 절벽 위에서 바위를 던지는 거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본래 처음부터 이렇게 됐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절벽 위에 있던 것은 그저 평범한 바위들이었으니까.
다만, 돈키호테가 바위를 보고 ‘간악한 마법사 프리스톤이 날 죽이기 위해 거인 암살자들을 보냈다!’라고 외치게 됐고, 그러자 바위가 거인이 되어 이쪽을 공격한 것이었다.
절벽 위에서 아래로 무수한 바위를 집어 던지는 공격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조금 우회해서 가자니까요.”
유현은 거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곧바로 위험하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돈키호테를 말렸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유현의 말에 오히려 역정을 내며 이렇게 외쳤다.
“어찌 진정한 기사로서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일 수 있겠는가!”
“등을 보이자는 것이 아니라 두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라는 걸로…….”
“하물며 저들은 사악한 마법사의 피조물이며 썩은 냄새를 풍기는 거인이다! 정의로운 편력기사로서 저들을 도저히 두고만 볼 수는 없는바, 지금 당장 놈들을 내 창으로 꿰뚫으리라!”
그리고는, 곧바로 로시난테를 몰고 우랴돌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유현도 그를 혼자 보낼 수는 없던 나머지 황급히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하고.
상황은 지금으로 치닫게 된다.
계속 떨어지는 바위를 가볍게 피하며 유현이 따지듯 말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사 나리?”
“으음.”
날아오는 바위를 창으로 분쇄시킨 돈키호테가 고민에 찬 신음을 흘렸다. 막상 기세 좋게 달려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이후에 저 절벽을 어떻게 오를지가 문제였다.
‘혜림 씨가 있었으면,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유현에게 원거리 공격인 작살투척이 있지만, 그걸로 한 마리의 거인을 날린 이후, 놈들도 조심해졌는지 유현을 집중적으로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들키지만 않았다면, 백련을 이용해 갈고리처럼 절벽 위를 타고 올라갔을 텐데.
이게 다 무식하게 일자 돌진을 한 돈키호테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잖습니까. 적이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멀리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일 수도 있다고요.”
“생각해 보니, 산초 자네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아니, 그걸 지금 와서요?”
“미안허이.”
어휴.
유현은 답답함을 느꼈지만, 지금 와서 그걸 따지기엔 너무 늦고 말았다. 어떻게든 높이만 30m가 넘는 저 절벽의 위로 올라야 거인들을 막거나 할 텐데.
‘이래서 원거리 공격이 많이 필요한 거였지.’
유현은 만약 4번째 컬렉터를 뽑는다면, 반드시 원거리 지원형 특성을 가진 자를 뽑겠다는 각오를 하며 날아오는 바위를 재차 피했다.
“이제 어쩌죠?”
“으음. 옳지! 방법이 떠올랐다!”
[성령들이 돈키호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성령들이 돈키호테가 말한 방법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그게 대체 뭡니까?”
돈키호테는 곧바로 로시난테의 안장에서 내려오더니, 유현의 앞에 섰다.
“산초. 내 방금 자네가 창을 던지는 힘을 봤는데, 상당히 강한 거 같더군. 정확도도 있고 말이야.”
“예, 뭐. 기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 덕분입니다. 그런데 그건 왜요?”
“방법은 바로 하나. 산초. 나를 집어 던지게.”
“네?”
[성령들이 돈키호테의 말에 당황해합니다.]
[???????????]
메시지 창을 가득 메우는 무수한 갈고리의 향연.
유현도 순간 이게 무슨 발상인가 따지고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단순히 사람이 사람을 집어 던진다는 이미지가 이상하게 박혀서 그렇지, 둘 다 이미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었는데 굳이 못 할 것은 없었던 것이다.
“……자. 그러면 갑니다.”
유현은 일단 주위에 먼지구름을 일으켜 거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래봤자 금방 들통나겠지만, 그 짧은 시간을 번다는 것이 중요했다.
“준비는 됐네! 신호하고 날 멋지게 던져 주기만 하면 된다네!”
유현의 양 손위에, 차렷 자세로 꼿꼿이 선 채로 고개만 치켜들어 정면을 향한 돈키호테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기대감마저 서려 있었다.
돈키호테는 지금 자신이 멋지게 하늘을 날아서 저 거인들의 위에 멋지게 착지하고, 멋지게 검을 휘둘러서 멋지게 거인들을 쓰러뜨릴 생각이 가득했다.
아니, 이미 자신은 그것을 성공한 미래를 확신하던 차였다.
“던지게!”
“안 되도 모릅니다!”
유현은 그대로 힘을 줘 돈키호테를 절벽의 위로 집어 던졌다.
절벽 위에서 바위를 계속 집어 던지던 거인들은 순간, 저들이 먼지구름 속에 모습을 숨긴 찰나를 놓쳐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먼지구름을 뚫고 한 노인이 수염을 휘날리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니, 간이 큰 거인들조차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어? 뭐지?”
“뭔가 날아온다?”
“기사다. 기사는 죽인다!”
돈키호테는 어느덧 포물선을 그리며 거인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양손에 창과 방패를 쥐고서 멋지게 착지할 준비를 끝내려던 찰나.
떨어지던 돈키호테와 집어던진 유현은 순간 깨닫고 말았다.
‘어, 거리가 좀 부족한데?’
그 말마따나 돈키호테는 절벽의 끝에 발을 걸치기에 아주 살짝 부족한 상태로 떨어졌던 것이다.
“으허억?!”
돈키호테는 황급히 창을 내질러 절벽의 벽에 꽂았다. 그 덕분에 그의 몸은 꼴사납게 떨어지는 것을 면하고, 절벽에 매달릴 수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기사. 여기 있다.”
“기사. 멍청하다.”
“멍청한 기사. 바위로 맞춘다.”
그 위를 거인들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무방비한 돈키호테에게 바위를 집어 던지기 직전이라는 점이었다.
“산초! 도와다오!”
“……로시난테. 잠시 등 좀 빌린다.”
히히힝!
로시난테는 유현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 영민한 백마도 제 주인의 위기를 읽어 내고, 유현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달려!”
유현을 등에 태운 로시난테가 투레질을 한 차례 하고는 절벽을 향해 내달렸다. 어떻게 보면 절벽에 부딪히러 가는 멍청한 행동이었지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백련!”
[알았어!]
유현의 오른손에서 튀어나온 백련이 줄 달린 갈고리로 변했다. 유현은 즉시 갈고리를 절벽의 위로 집어 던졌다.
날카롭게 변한 백련은 절벽 위에 안착하며 그대로 땅에 박혀 강하게 고정됐고, 밧줄의 반대쪽 끝은 쐐기처럼 지면에 박아 넣었다.
장력을 머금어 팽팽하게 당겨진 한 줄기의 밧줄이 절벽의 아래와 위를 하나로 이었다.
로시난테가 그 위를 달렸다.
[성령들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부릅뜹니다.]
등 뒤에 사람 하나를 태운 말 한 마리가, 밧줄 위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기이하다 못해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사람도 줄 하나 타는 걸 힘들어하는데, 네발 달린 짐승이야 무얼 말할까.
그런데, 로시난테는 그걸 해냈다. 실시간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로시난테가 지금 보여 준 기예(技藝)는 다른 신화나 전설 속의 명마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오히려 어떤 의미로는 그마저도 초월한 신수(神獸)에 버금갈 정도였다.
바위를 던지려던 거인들도 그걸 알아보고는 관심을 로시난테와 유현에게로 돌렸다.
이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삐쩍 마른 기사보다는 지금 달려들려는 저 말과 인간이 더 위험하게 비쳤다.
“말이 절벽으로 올라온다.”
“말 탄 인간도 있다.”
“죽인다.”
바위를 들고 그대로 유현과 로시난테에게 집어 던지려는 순간, 절벽에 창을 꽂은 채 매달린 돈키호테가 창대를 밟고 그대로 절벽 위로 뛰어올랐다.
“이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그는 허리춤의 검을 뽑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거인의 머리를 잘랐다. 거인들이 당황하는 사이 로시난테와 유현은 절벽 위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절벽 아래에 있을 때야 위치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같은 땅을 딛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초인과 한 명마의 앞에서, 아무리 거인이라 하더라도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끝났네요.”
“음. 오늘도 멋진 승리를 따냈군!”
히힝.
조금은 지쳤다는 듯 중얼거리는 유현과 자신의 멋진 승리를 자축하는 돈키호테. 그리고 이제는 적응이 됐다는 듯 작게 우는 로시난테까지.
이 기이하기까지 한 삼총사는 오늘도 그렇게 새로운 적들을 상대로 멋진 승리를 따냈다.
물론 싸움의 과정은 멋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도 힘들었고, 어딘가 나사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승리를 따냈으니, 된 게 아니겠는가?”
“네네. 그렇겠죠.”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유현과 돈키호테는 험준한 산맥의 절벽 꼭대기에서 하룻밤 머무르기로 했다.
절벽의 위라고 하지만, 거인 십 수 명이 동시에 서 있을 정도로 넓어서 두 사람이 쓰기에는 차고 넘쳤다.
“뭔가 가면 갈수록 길이 험해지고, 적들이 많아지는 기분이네요.”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에 장작을 집어 던졌다.
당장 절벽 위의 거인들을 마주하기 전에도 위험한 산적, 마법에 걸린 짐승, 몽둥이를 쥔 거인들과 싸웠었다.
유현은 그때를 떠올리며 이번 사상세계가 입장 인원이 1명인 것 치고는 난이도가 참 높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돈키호테 자체가 적들을 충분히 정리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지만.
‘단순히 그의 말에 맞장구쳐 주면서 호응만 한다고, 이 세계를 클리어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점점 마주치는 적들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말한 그 나쁜 마법사는 아직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사상세계 클리어 조건은 돈키호테가 꿈에서 깨게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됐다. 저 정도의 인물이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주하는 적들이 강해지는 걸 생각하면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산초. 적이 강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세상은 넓고 거기에 도사리는 괴물들은 얼마나 많겠느냐? 하지만 이걸 알아 둬라. 우리 편력기사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사 나리는 참 편해서 좋으시겠네요.”
“그대도 편력기사가 되려면, 이런 상황에서 편해질 줄 알아야 하는 법.”
조금 비꼬듯 말한 건데, 돈키호테는 진지하게 답했다.
돈키호테의 제멋대로 구는 행동 때문에 유현은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고생했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조금만 머리를 쓰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차분하게만 굴면 되는 것을, 돈키호테는 오로지 돌격, 돌격, 또 돌격으로만 대처했으니까.
그렇게 이를 악물고 승리를 재취하고는 항상 이렇게 외쳤다.
“나 돈키호테가 또 정정당당하게 승리했노라!”
이쯤 되면 이제 화내는 것도 지치는 일이라, 유현은 그러려니 하게 됐다.
‘아니, 사실은 나도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나뭇가지로 적당히 모닥불의 재를 헤집었다.
겉으로는 돈키호테의 기행에 놀라고 투덜대고 짜증을 내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이 편력기사를 따라가며 겪는 모험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정말로 싫고 짜증이 났으면, 때려 치웠을 테니까.
누군가를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종말에서는 경외심으로 따라잡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뒤를 쫓았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사상세계를 헤쳐 나갔다.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이렇게 돈키호테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은 유현의 삶에서 난생처음 겪는 일.
힘들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적으로 지쳐도 홀로 모든 것을 떠맡고 앞장설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늙은 기사는 총명한 것 같으면서도 바보 같고, 미덥지 못한 것 같으면서도 듬직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현은 자신이 강유현이 아닌, 정말로 그의 종자인 산초 판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뭐. 모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유현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언제나 누군가의 앞에서 강한 모습만 보여 줘야 하고, 속마음을 숨기기만 했었지만.
지금만큼은 솔직해져도 괜찮을 거 같았다.
“즐거운 모험이죠.”
“물론이지, 산초. 이 위대한 돈키호테의 모험이 저급할 리가 없지 않겠느냐.”
“하지만, 이 모험도 언젠가 끝나겠죠.”
이 사상세계도 클리어 하게 된다면, 결국에 한때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가 될 뿐이다.
이렇게 밤하늘 아래에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도.
함께했다는 기억도.
전부다.
“아쉬운가?”
“조금은요.”
돈키호테와의 모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워서.
문득, 유현은 이 모험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지.’
이건 바라서는 안 될 욕심이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그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고, 바깥에는 그에게 주어진 삶이 있었으니까.
“뭐, 지금의 모험이 끝난다면 나도 아쉬울 것 같다네.”
의외로 돈키호테는 유현의 말에 쉽게 동조해 줬다.
이 남자가 이런 말도 내뱉을 줄 알았던가? 유현이 의외라는 시선으로 돈키호테를 바라봤다.
“세상에 무수한 모험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중요한 모험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는 끝을 고하게 된다는 것에 허무함과 걱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듯 우리의 삶, 우리의 모험도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지.”
“그렇겠죠.”
“산초.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모험이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더욱 멋지고 재밌게 즐기면 되는 거라네. 비록 그 이야기가 끝날지언정, 나중에 돌이키고 되돌려 봤을 때 그래도 즐거웠다고, 후회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가 된다면.”
돈키호테가 씨익 웃었다.
“그거면 충분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