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37화
당혹스러운 건 유현뿐만이 아니라 성령들도 마찬가지였다. 메시지 창이 순식간에 물음표로 도배가 됐다.
[100TP 후원!]
[이 왜 진?]
[100TP 후원!]
[아니, 망상이 아니라 진짜 악마였다고?]
[찬란한 빛을 닮은 자는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1000TP 후원!]
[이제 와서 아닌 척하기는.]
순식간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성령들의 메시지 창을 무시하며 유현은 눈앞의 악마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기사님. 악마들이, 음. 본색을 드러냈는데요?”
“잘했다, 산초! 저 가증스러운 놈들은 감히 내게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추잡한 가면만 들이댔었지.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껏 놈들을 함부로 처벌하지 못했다. 아무리 위대한 기사라 하더라도, 세간의 명성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거든.”
돈키호테는 저 사제의 탈을 쓴 악마들이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 참을 수 없이 기쁘고, 또 손이 근질거려서 견디기 힘든지, 랜스를 앞으로 세우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유현이 말릴 틈도 없었다. 안장을 박차고, 로시난테와 한 몸이 된 돈키호테는 그야말로 질주하는 돌풍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가는 것을 옆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을 뿐임에도, 유현은 피부를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정체를 드러낸 두 악마가 거대한 근육을 팽창시키며 돈키호테의 공격을 막으려는 순간, 로시난테가 한차례 더욱 가속했다.
이제는 잔상조차 보이지 않는 초신속의 차징은 한 줄기 빛이 되어 오른쪽의 악마를 꿰뚫었다.
퍼엉!
공기가 폭발하며 악마의 상반신이 도려내듯 사라졌다. 동료가 당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황망하게 지켜본 다른 악마가 위기감을 느끼고 날개를 펼쳐 도망치려고 했지만.
“감히 기사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돈키호테의 노성과 함께 순식간에 방향을 튼 로시난테가 악마를 향해 짓쳐 들었다. 악마는 사술을 부리거나 혹은 날카로운 손톱을 세울 틈도 없었다.
그대로 날개와 함께 등을 찔려 심장을 관통당한 악마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검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두 악마를 모두 정리한 돈키호테는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현에게 돌아왔다.
“봤느냐 산초? 이것이 바로 편력기사가 싸워야 할 적이며, 우리 모험을 방해하는 악의 무리다. 언젠가 너도 자신의 무기를 쥐고 싸워야 할 때가 오겠지. 그러니 언제나 긴장을 풀지 않고 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기사 나리.”
“좋아. 그러면 다시 움직이도록 해 볼까?”
조금 전 치열한 전투는 전혀 없었다는 듯, 두 사람은 다시 모험의 길에 올랐다.
다만 미지를 향한 용감한 탐험으로 기쁨에 흥얼거리는 돈키호테와 달리, 유현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일단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법을 취하려고 호응을 하긴 했는데, 설마 그게 진짜였다고?’
원작 소설부터 돈키호테가 벌이는 짓은 전부 다 착각에 빠진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
지나가는 상인들을 자신에 대적하는 기사들이라 한 것도 착각이었고, 평범한 여인을 귀부인이라 부르고, 조금 전처럼 사제들을 악마라 외친 것도 전부 돈키호테의 착각이었다.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풍차를 향한 돌진이었다.
돈키호테.
그는 현실을 살며 꿈에 빠진 괴짜였다.
꿈을 꾸었고, 이상을 품었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벽을 넘지 못한 희극이자 비극의 이물.
‘그게 원래 돈키호테의 이야기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를 설득하려고 했었어.’
그리고,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도 돈키호테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스템도 현실을 외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모두 착각이라고 치부했던 돈키호테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면?
그 증거가 바로 조금 전에 있었던 사제의 탈을 쓴 악마들이었다. 이제는 존재를 증명할 시체조차 사라졌지만, 유현은 그걸 환상이라 치부하지 않았다.
방법을 찾았다. 라플라스의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 보인 적이 없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부터, 유현은 미래를 향한 확신을 느꼈다.
단서와 함께 도출된 답.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이 편력기사의 모험에 진심을 다해 함께 할 필요가 있었다.
“가시죠. 기사 나리. 저도 어서 둘시네아 공주님의 존안을 뵙고 싶습니다.”
“오오, 산초. 역시 너도 알고 있는 거로구나. 그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사 나리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다른 무뢰배들은 그녀의 존재조차 의심할 뿐. 불경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야.”
“그들은 기사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오히려 기사님의 위대함을 질투하고 있죠.”
만약에.
이 남자의 꿈을 진심으로 믿어 주며 곁에서 함께해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 말대로다 산초. 하지만 나는 그들을 용서하노라. 그자들의 질투란 곧 당연한 감정이며, 그것이 내가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증명하는 바이니까. 진정한 기사란 자비를 베풀 줄 알아야 하며 약자들을 위해 싸울 줄 알아야지.”
어쩌면 이 이야기는 다른 끝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유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모험은 별 소란 없이 평탄했다. 사제의 탈을 쓴 악마들을 쓰러뜨린 이후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니까.
두 사람은 넓은 들판을 넘어서고, 맑은 냇가가 흐르는 숲을 지났다.
저 멀리 무수한 알갱이를 흩뿌리는 폭포의 정경을 잠시 멈춰 서서 구경하기도 하고, 숲을 노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음미하기도 했다.
[100TP 후원!]
[갑자기 분위기 힐링방송]
[100TP 후원!]
[근데 뭔가 되게 빠져드는 기분이다. 이런 고전적인 모험도 볼 만하네.]
실제로 유현과 돈키호테의 모험은 정말 판에 박힌 고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험난한 산길을 걷기도 하고, 평야를 넘고, 숲을 가로지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하늘의 해는 서쪽의 지평선으로 저물어 이윽고 별빛이 찬란한 밤이 찾아왔다.
“오늘은 길에서 노숙을 해야겠습니다. 기사 나리.”
“음. 그러지. 편력기사에게 사실, 이 대자연이야말로 진정한 요람이니까.”
유현은 신속하게 자리를 깔고 불을 지폈다. 그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성령들은 유현이 진짜 산초가 아닐까 생각했다. 종말에서 10년 동안 키워 온 버릇이었다.
정작 대접을 받는 돈키호테는 이게 당연하다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뿐.
어느덧 두 사람은 모포를 두르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아쉽도다.”
돈키호테는 갑자기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사특한 무리를 고작 둘밖에 해치우지 못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도사리는 적들은 그야말로 산더미인데, 둘은 너무 적다.”
“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적다.”
“걱정이 되시는 건가요?”
“그럴리가!”
돈키호테가 기함하며 말했다.
“편력기사로서 내 한평생 걱정과 두려움을 품어 본 적이 없거늘. 내가 갖는 두려움이란 오로지, 나의 귀부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가 어서 하루라도 일찍 그 간악한 마법사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라네.”
“걱정 마십시오. 기사 나리라면,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아무렴. 당연히 가능하지. 이 돈키호테에게 불가능이란 없으니 말이야!”
단순히 자신에게 의욕을 돋우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늙은 기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또 마음이 내린 길을 따르려고 있었다.
둘시네아라는 존재가 실존할 리도 없거니와, 사실상 돈키호테의 상상 속에 구현된 존재일 뿐임에도 말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성령들은 모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대다수의 성령이 돈키호테의 이상에 한숨을 쉽니다.]
[대다수의 성령이 꿈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령들의 입장에서 돈키호테는 결국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이상을 품더라도, 결국 이것은 사상세계 안쪽에서 구현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사상세계의 끝과 함께 덧없이 사라질 존재에게, 대체 이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가소롭고 또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기사 나리는 분하지 않으십니까?”
“뭐가 말인가?”
“주위에서 기사님을 무시하고 우습게 보고 또 손가락질을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나리가 정신착란에 빠졌다고 말하며 비웃기 바쁩니다. 이상은 인간에게 해롭다고, 다들 그러죠.”
“뭐, 그런 말을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군.”
“기사님은 어떠십니까?”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산초, 자네는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나?”
“네?”
“이상이 사람에게 해롭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묻는 돈키호테의 얼굴은 이전에 보지 못한 진중함으로 가득했다. 전투에 돌입했을 때와는 다른 무게감에 유현은 떨떠름하게 답했다.
“저는, 음…… 잘 모르겠습니다.”
“흠. 확실히 종자인 그대에게는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군.”
“기사님은 다릅니까?”
“난 이미 답을 내렸다네. 나뿐만이 아니지. 모든 편력기사는 다 같은 답을 내렸지. 우리가 품는 이상이야말로 누구보다도 고귀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라고.”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뒷말을 덧붙였다.
“물론, 내게 가장 멋지지만.”
“……아, 예.”
“그리고 보아라, 산초.”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까맣게 물든 밤하늘은 도시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무수한 가루를 품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별빛의 향연.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유현에게도 처음 느끼는 정취였다.
“저 찬란한 별 무리를.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시선을.”
그 말에 유현은 화들짝 놀랐다. 설마, 성령들의 시선을 느끼는 건가?
“그들조차 나의 이 위대함에 질투를 하며 눈을 내리깔지.”
다행히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성령들이 돈키호테의 발언에 분노를 터뜨립니다.]
[대다수의 성령이 어서 저 노망난 기사를 죽이라고 외칩니다.]
다만 돈키호테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령들의 분노를 일깨우고 말았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돈키호테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일장 연설을 쉬지 않고 있었다.
별이 자신을 찬양한다고 착각하는 늙은 기사와 뭘 멋대로 해석하냐고 분노를 터뜨리는 별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으며, 그 둘의 모습을 다 지켜보는 유현으로서는 기막힌 희극이 따로 없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재미있어서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왜 웃느냐? 산초.”
“그냥 지금 상황이 웃음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절대 기사 나리를 비웃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음. 웃는 것은 좋지. 웃음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는 보약이니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나도 한번 웃어 볼까? 흐하하하하하!!”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미치광이의 온상이었다.
그런데, 유현은 그런 돈키호테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성령들도 짜증을 내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신기한 일이었다.
제멋대로에 답답하고 항상 헛소리만 한다. 조금만 눈을 떼면 사고를 치고, 자신의 상상을 부풀리며 쉬지 않고 떠들기까지 한다.
평소라면 짜증을 내기는커녕 그저 무시로 일관하거나 눈을 돌렸어야 할 성령들이었지만.
그들은 화를 내면서, 그 모습을 비웃으면서 돈키호테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매력에 저 하늘의 별들마저도 휘말린 셈이었다.
그러니, 어찌 웃기지 않겠는가?
저 고귀한 천상의 관객들이, 일개 노기사 하나와 같은 수준으로 눈을 낮춘 것이다.
“갑자기 웃으니, 분위기가 들끓는구나. 내 이 흥을 이어서 로만세 하나 읊어 보마.”
멋대로 웃고 떠들던 돈키호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목청을 더듬으며 노래를 읊었다.
아니, 그걸 노래라 할 수 있을까? 음정도, 박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그야말로 음치가 내뱉는 괴성 같았다.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장난스럽기까지 한 외침을 듣고 있다면, 마치 직접 겪었던 일처럼 그에게 감화되는 것 같았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을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어느덧 돈키호테를 손가락질하던 성령들마저 그의 영혼 어린 로만세를 경청했다.
실수를 고칠 줄 알고.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고.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며.
“믿음을 갖고, 저 하늘의 별에 닿는 것.”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는 돈키호테의 눈동자에는 전에는 볼 수 없던 우수가 가득 차 있었다.
유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그 흔들림 없는 시선,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굳은 의지.
그것이야말로 유현이 인간에게 본 가장 위대한 모습이자, 본인이 가자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어떠냐? 산초.”
로만세를 끝낸 돈키호테는 기대감이 찬 눈동자로 유현에게 물었다.
“어, 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유현은 살짝 고민했다. 지금 기분으로는 도저히 이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막말로 그렇게 잘 부른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지만, 거기에 담긴 감정은 영혼을 절절히 울렸다.
“그냥, 잠이나 자죠.”
결국, 답을 뒤로 미루는 게 최선이었다.
은근히 기대했던 돈키호테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두 사람은 모포를 덮고 누웠다. 유현은 곧바로 잠에 들고자 했지만, 돈키호테가 잠들기 전 아쉬움에 질문을 던졌다.
“산초. 자는가?”
“왜 그러십니까? 기사 나리.”
“그래도, 내 로만세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
“네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서 주무십시오.”
“그러지.”
그렇게 잠에 들려고 하는데, 돈키호테가 또 물었다.
“산초. 자는가?”
“또 왜 부르십니까? 기사 나리.”
“막상 다시 생각해 보니, 로만세를 불렀을 때 어딘가 부족 했던 거 같기도 하더군. 역시 그때 목소리를 확 꺾었어야 했겠지?”
“기사 나리께서는 이미 위대한 기사의 의지를 보여 주셨으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네.”
“그렇군.”
이제 겨우 다시 잠에 들려는 순간, 돈키호테가 막 떠올렸다는 듯 고개만 퍼뜩 들어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그때…….”
결국, 참다 참다 유현이 폭발했다.
“기사 나리. 제발 좀 주무십시오. 기사 나리께선 안 주무셔도 상관없겠지만, 저 같은 미천한 종자는 잠을 취해야 한단 말입니다.”
돈키호테가 시무룩하게 답했다.
“미안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