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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34화 (23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34화

나민혁은 플래시를 비추며 교단 본부를 열심히 뛰어다녔다.

“다들 어서 나오세요! 빨리요! 지금이 도망칠 기회에요!”

그는 평생 이렇게 목소리를 크게 내서 외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마저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지금 이 상황에 몰입하고 있었다.

박문철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자들을 독방에 가둬 놨다. 이 안쪽에 강제로 갇혀서 바깥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만, 거의 30여 명이 넘었다. 나민혁은 바닥에 발견한 열쇠로 그들을 모두 풀어 줬다. 그의 연인 김예은도 옆에서 도왔다.

그렇게 마지막 독방의 문을 열기 전 그 앞에 허탈하게 주저앉은 중년인을 발견한 김예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어? 아빠!”

“아, 아빠라고?”

나민혁은 저 남자가 자신의 여자 친구가 애타게 찾던 아버지임을 깨달았다.

“예, 예은아?”

“아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세상에, 얼굴 헬쑥한 거 봐. 그러니까 내가 말 했잖아. 이런 곳에 오지 말라고. 어서 나가자.”

“대행자님이, 신의 대행자님이 날 버렸어…….”

“대행자가 아니라 순 사이코패스에 사이비인데 무슨! 어서 일어나. 빨리 나가자니까.”

“나는, 나는…….”

“아버님. 어서 가시죠.”

보다 못한 나민혁이 끼어들었다. 아저씨의 공허한 눈빛이 이쪽을 향하자, 나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괜히 아버님이라고 말했나?

“자네는 누군가?”

“어, 저는, 음. 그러니까…….”

“내 남자 친구.”

김예은이 먼저 나서며 선수를 쳤다. 김예은의 아버지인 김철주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옆에서 가만히 있던 나민혁도 마찬가지였다.

김철주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나민혁이 황급히 선수를 쳤다.

“아, 아무튼 어서 이곳에서 빠져 나가죠!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또 위험한 사람들이 쫓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 그러니까 빨리 움직여 아빠!”

“그, 그러자꾸나.”

그렇게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교단의 본부에서 빠져나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져서 안전해졌기 때문일까, 숨을 헐떡이던 김예은이 나민혁에게 조심히 물었다.

“그보다 괜찮아? 아까 누구 한 명이 도와주러 왔었다며. 이대로 두고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건 괜찮을 거야.”

정작 나민혁의 경우에는 걱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탄한 목소리였다.

김예은은 사귄 지 1년이나 된 자신의 남자 친구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 처음 깨달았다.

소심하고 말도 길게 못 하고, 항상 의욕 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던 그였는데.

“그분은, 엄청 강하거든.”

지금은 어딘가, 훨씬 듬직하게 느껴졌다.

* * *

“크윽! 컥!”

박문철은 숨이 조여 오는 고통에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두 손으로 하염없이 목 부분을 잡고 견디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목을 감은 은사는 끊어지지 않고 그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그렇게 눈을 뒤집고 기절이라도 하면 편할 텐데, 저 악마는 그에게 순간의 안식조차 안겨 줄 생각이 없었다.

“벌써부터 도망치려고 하면 안 되지.”

유현은 박문철을 단순히 죽이는 것에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때로는 죽음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유현은 그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너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어.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위해서 타인을 짓밟는 데 꺼림이 없었지. 네 행동에는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신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그저 순간순간의 그 저열한 쾌감을 충족하며 살 뿐이지.”

이대로 그를 놔뒀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새로이 얻은 힘을 이용해서 신도들을 각성시키고, 지나친 광신으로 세뇌된 그들을 테러에 이용했을 거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컬렉터를 향한 세간의 인식은 훨씬 더 위험하게 흘러갔으리라.

겨우 숨통이 트인 박문철은 거칠게 기침을 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콜록콜록! 그, 그만! 나를 죽이면, 너도 똑같은 놈이 되는 거야!”

“허접하고, 뻔한 논리를 펼치는군.”

“끄아아아악!!!”

이번엔 실이 송곳으로 변해 그의 오른 손목을 관통했다. 박문철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입에 침을 질질 흘렸다.

“똑같은 놈이 된다? 지금 그걸 네가 할 소리인가? 그러면 말해봐. 너와 내가 대체 어디가 똑같지?”

“크흐으으으.”

“말해봐. 어디가, 똑같냐고.”

이번엔 왼쪽 손목을 꿰뚫었다. 방안에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퍼지고, 박문철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이대로 기절하려던 박문철의 몸에 기이한 힘이 스며들었다. 유현이 지니고 있는 청록의 형상이라는 이야기의 힘이었다.

푸른 초목과도 같은 생명력이 육신에 깃들자 고통이 잦아들고, 겨우 끊기려던 이성이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박문철은 이것이 자신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오히려 기절하지 못했으니, 다음 이어지는 고문도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제발, 제발…….”

“오. 이제 빌 줄도 아나?”

“제발……살려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신처럼 군림하던 거만한 사기꾼은 이제 없었다. 단지 몇 번의 고통으로 박문철은 마음이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유현에게 애원했다. 제발 살려 달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유현은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모습인가? 자신이 종말에서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그 100분의 1조차 되지 않는 육체적 고통 하나로, 그는 마치 모든 걸 다 뉘우쳤다는 듯 굴고 있었다.

“신의 대행자라며?”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나는 악마라면서. 신의 대행자가 악마에게 빌어도 되나? 마귀 따위에게 무릎을 꿇어도 되는 건가?”

“저는, 신의 대행자 따위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잠시 미쳤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진짜 나쁜 놈입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그 모습에 유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정말로 잘못했다고?”

“네, 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디 자비를…….”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유현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그러면, 돈을 내.”

“네?”

“네가 자주 했잖아. 신앙심을 확인하려면, 그만한 헌금을 하라고. 나도 같은 의견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려면, 그리고 자비를 구하고 싶으면 그만한 돈을 내야지. 알잖아? 내가 친히 너에게 면죄부를 내리지.”

“그, 그건…….”

박문철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애초에 그가 진짜 잘못을 저질렀다 생각해서 비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면서 그저 이 상황만 어떻게든 넘길 생각만 가득했다.

그 추악한 속내를, 유현은 처음부터 꿰뚫고 있었다.

아무렴 수십 년 동안 이런 짓을 계속 저질러 온 사람이 단지 순간의 고통에 못 이겨서 그 모든 걸 뉘우쳤다면, 세상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왜. 못하겠나?”

“어, 얼마를……?”

“본인의 죗값이 얼마라고 생각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박문철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아득바득 긁어모은 재산을 지켜야 했으니까.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지도?”

“그, 그게…….”

“좋아. 그러면 내가 도움을 주지. 그대의 죗값에 대해서 말이야.”

“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걸어간 곳은 종교 관련 서적이 가득 꽂힌 책장이었다.

저기에는 대체 왜? 설, 설마 그건 아니겠지? 박문철의 불안한 시선이 유현에게 떠날 줄 몰랐다.

그러는 사이 유현은 책장에 꽂힌 책 중 몇 개를 툭툭 건드렸다.

드르르륵.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책장이 옆으로 밀리듯 이동하고, 그 뒤편에 숨겨진 금고를 드러낸 것이었다.

박문철은 눈을 부릅떴다. 저것은 자신이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쌓아 온 비밀 재산이었다. 계좌로 남기는 것은 괜히 세금 추적이 걸릴 수 있어서 일부러 현물들 위주로 챙겨 놨던 건데, 그걸 이렇게 쉽게 들킬 줄 몰랐다.

“대, 대체 어떻게?”

저 비밀 금고의 위치는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오직 그만의 것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찾아온 이 남자는 자신의 치부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절대로 들키면 안 되는 금고의 위치까지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디지털 금고의 비밀번호에 대해서 아는 것도 놀라울 것이 없었다.

유현은 열린 금고의 내용물을 한 움큼 쥐며 박문철에게 보였다.

“많이도 챙겼네. 이 안쪽에 있는 금액이면 충분하겠어. 네가 지금까지 등쳐 먹던 사람들에게 이자를 포함해서 돌려줄 수 있을 테니까.”

뚜둑!

가만히 기회를 노리던 박문철의 이성이 거기서 끊어졌다. 욕망이 빠져 추악하게 뒤틀린 이 중년인은 자신의 재산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런데 유현이 그것을 건드리며 심지어 저 미천한 신도들에게 모조리 돌려준다고 하니,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건 내 거야! 내 재산이라고! 누구도 그걸 빼앗을 수는 없어!”

눈을 뒤집은 박문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유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양팔이 송곳에 뚫린 고통은 이 순간 완전히 잊었다. 그는 저 지독한 악마 녀석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유현은 손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가느다란 실로 변한 백련이 그의 몸을 재차 속박했다. 박문철이 광인마냥 발광했다.

“으아아아아!! 안 돼! 안 된다고!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마저 다 빼앗긴다면, 그는 더 이상 지닌 것이 없는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박문철은 유현이 증오스러웠다. 그가 유독 자신만 집요하게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왜!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정말 추하네.]

‘이게 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유현은 저게 그의 본모습임을 알았다. 잘못을 저질러도 그게 죄인 줄 모른다. 오히려 왜 그러지 않냐고 뻔뻔하게 나오기까지 한다.

가르쳐 줘도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저런 부류의 머리는 더 이상 변화를 거부해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저렇게 억울해하며 분노를 터뜨리고, 결국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현실의 절망에 빠져드는 사람의 모습은.

정말 최고였으니까.

“허억. 허억. 나한테,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

스스로 발악하다 지쳐 숨을 헐떡이는 박문철을 보며 유현은 붉은 안광을 터뜨렸다.

“말해 줘도 듣지 않을 녀석에게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는 없지.”

“나는…….”

“그러니 알아 둬. 나는 네 모든 전 재산을 처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환원할 거다. 너의 견고한 성인 이곳은 곧 이단자들의 군화에 짓밟혀 협회에 빼앗기겠지. 너를 믿고 따르는 신도들? 그들은 너를 손가락질하며 욕할 거다. 너는 신의 대행자가 아니라 한낱 사이비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겠지.”

“나는, 나는…….”

“인간 박문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않고,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잊혀질 거다. 이 나라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존재의 영원한 죽음을 뜻하지.”

“끄르르륵!”

박문철의 몸을 감았던 실이 어느덧 밧줄이 되어 그의 목을 조였다. 그의 두 다리가 지면에서 벗어나 허공에 떴다.

박문철은 환각을 봤다.

하늘의 빛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르던 자신의 모습이, 이윽고 등 뒤에 달린 황금빛 날개가 꺾이고, 찢기면서 저 깊은 무저갱의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자신이 지금까지 밟고 올라갔던 사람들보다 아래로.

그보다 훨씬 더 아래로.

쭈욱.

터엉!

그리고, 그의 발은 지면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멈췄다.

허공에 고정된 박문철의 몸은 한 줄기의 밧줄 하나로만 지탱된 채 허공에서 진자 운동을 반복했다.

“끝이군.”

유현은 죽어 버린 박문철의 시체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비밀 금고 안에 있는 모든 패물을 긁어모았다. 이것들을 나중에 돈으로 환산한 뒤, 성유찬에게 부탁해 피해자들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한 사이비 단체 수장의 죽음은 사람들의 입에서 순간 오르내리겠지만, 이후에는 그마저도 사라질 거다.

박문철이 비밀리에 저지른 비리의 증거 자료까지 모두 챙기고, 이제 슬슬 자리를 뜨려는 순간이었다.

화아악!

“음?”

어디선가 은은한 황금빛이 흘러나오는 걸 느낀 유현이 빛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빛이 흘러나오는 곳은 바로 박문철의 시체였다. 고정해 주는 줄이 사라지고 바닥에 떨어진 그의 시체에서 빛이 나오는가 싶더니, 서서히 하나의 형상이 되어 허공에 떠올랐다.

‘저건…….’

유현은 그 빛에 거대한 기시감을 느꼈다.

단순히 눈으로 본 것만이 아니다. 그의 모든 감각이 저 빛이 범상치 않은 것이며 그와 큰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유현은 저 황금빛이 무엇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분명, 그가 종말의 마지막에 죽기 직전 봤던 그 황금빛의 무언가가, 눈앞에 있는 저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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