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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33화 (23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33화

“너, 너 뭐야?”

박문철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녀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검은 정장에 검은 면장갑. 그리고 붉은 눈동자까지. 마치, 이쪽을 노골적으로 놀리려는 게 아닐까 싶은 차림이었다.

하지만, 박문철은 동시에 그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여기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바깥에 경비가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중간마다 순찰을 도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숫자는 어림잡아도 100명은 될 거다. 그게 일반인이냐면, 또 그렇지 않다.

그가 최근 얻은 기적이라는 힘으로 직접 각성시킨 녀석들의 숫자만 50명이 넘는다. 그런데 저 침입자가 이곳에 올 때까지 어떤 소란도 없었다고?

박문철은 겨우 답을 내고는 피식 웃었다.

“아하. 그래. 지금 정전을 일으킨 것도 네 짓이었군. 안 보이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왔나 본데. 너 이 새끼 이거, 잘 걸렸다. 지금 남의 사유지에 멋대로 들어온 거 책임질 수 있겠어?”

유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조금 전보다 더 강렬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앉으라고.

박문철은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그의 두꺼운 입술이 분노로 바르르 떨렸다.

“이 건방진 놈의 새끼가, 감히 신의 대행자인 나한테 덤비려고 들어? 야! 밖에 누구 없어?! 김 비서! 김 비서!!!”

보통 한 번만 불러도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비서가 황급히 들어왔어야 상황이 맞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뭐야. 이 자식들 다 어디 갔어? 야! 거기 아무도 없어?!”

“불러도 소용없어.”

“뭐?”

“어차피 들어도 못 움직이거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이었다.

‘어?’

박문철은 그제야 유현의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혼자서 너무 강렬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어서 몰랐는데 어둠 속 그의 주위에 흐릿하지만, 여러 개의 형상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게 조금 전 짜증 담긴 목소리로 애타게 찾던 김 비서이며, 그가 이끄는 다른 경호원들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1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무실 바닥에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느새? 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박문철은 갑자기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

“뭐, 뭐야. 이 새끼 이거 뭐냐고! 바, 밖에! 밖에 누구 없어?! 아무나 빨리 와! 이단, 이단이다! 여기 이단이 있다고!”

지금까지 몰랐는데, 눈앞의 저 미친놈은 단순히 미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가 친히 힘을 내려 각성시킨 인간들까지 조용하고 은밀하게 쓰러뜨린 자다.

컬렉터, 그것도 실력만 놓고 보면 추정 거의 상급 컬렉터다.

손아귀 하나로 사람의 목을 벌레처럼 비틀어 버릴 수 있는 강자였다.

* * *

나민혁은 조금 전 벌어진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도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유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유현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유현이 한 부탁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지금 시간으로부터 5분 뒤 발전기의 전원을 내린 후, 안쪽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서 이곳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그, 그럼 당신은요?”

“박문철은 제가 상대합니다.”

“하지만, 안쪽에는 경호원들이 있는걸요. 게다가 숫자도 많아요. 그 축복을 받았다는 인간들만 50명은 넘을 텐데.”

“50명이라.”

그 말을 듣고도, 그 남자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작게 웃었었다.

“그 정도면 적당하겠네요.”

대체 뭐가 적당하다는 걸까 묻지 못했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순식간에 검은 무언가에 휘감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꽃 같기도 했고, 아지랑이 같기도 했다. 안 그래도 거의 올 블랙에 가까운 패션인데, 거기에 검은 무언가까지 더해지니 진짜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칠마흑천신공의 기운임을 모르는 나민혁은, 유현이 그 기운을 두른 채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내 도움이 사실상 거의 필요 없는 거 아니야?’

문득 그런 나약한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올랐지만, 나민혁은 그것을 애써 부정했다.

유현은 그에게 직접 말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그것이 아주 작은 선행부터 해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라도 상관없다고.

-자신이 컬렉터가 아니라고, 대단한 힘을 지닌 각성자가 아니라고 낙담하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고 있고요. 그 작은 것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바뀔 겁니다.

나민혁은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내며, 유현과 약속한 대로 전원을 차단했다.

그는 곧바로 건물 안쪽으로 돌입했다. 손에는 조금 전까지 추적대가 사용하던 플래시가 들려 있었다.

빛이 이어 주는 길을 따라 달리던 나민혁은 바닥에 하나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비명을 집어삼켰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누가 봐도 전부 다 유현이 가는 길에 쓰러뜨린 게 분명해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사람을 정리하는 데 그 어떠한 소요도 없었다는 것.

유현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진짜 아득히 강하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도, 그런 그가 자신에게 할 일을 하라며 믿고 맡겨 준 일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맞은편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거기 누구세요?”

“예은? 예은이?”

“……민혁아? 정말 너야?”

나민혁은 드디어 자신이 애타게 찾던 연인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다가갔다. 김예은도 나민혁을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민혁아! 진짜 구하러 와 줬구나!”

“어, 어. 예은아. 무사,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모르겠어. 갑자기 나를 가둔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고 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변하는 순간 다 쓰러졌거든. 그리고 갑자기 불이 꺼져서 혹시 몰라서 가만히 있었는데…….”

“일단 알았어.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니까, 어서 움직이자.”

“어?”

김예은은 나민혁의 태도를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그녀를 찾아온 남자 친구는 그녀가 알던 나민혁이 아니었다. 어딘가 이전보다 훨씬 더 듬직하고, 남자다워진 것 같은 건 착각일까?

김예은의 그런 속도 모른 채, 나민혁은 진중한 표정으로 주위를 확인했다.

“예은아. 너 말고도 여기 갇힌 사람들 많지?”

“응! 오는 길에 봤었어.”

“좋았어. 그 사람들도 데리고 빠져나가자.”

“괜찮은 거야? 혹시라도 그 사이비들이 쫓아오면 어떡해?”

“그건 괜찮을 거야.”

나민혁은 믿음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그분이 있으니까.”

* * *

박문철은 잔뜩 얼어붙은 채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위기를 겪어 본 게 얼마나 됐던가? 이 자리까지 오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수틀리면 죽을지도 모르는 그 공포가 그를 잠식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등진 악마가 말했다.

“내 말 안 들리나? 앉아.”

박문철은 일단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사무실의 중앙에 준비된 의자. 박문철은 거기에 앉았다.

촤르륵!

“으윽!”

자리에 앉는 순간,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들이 그의 몸을 묶으며 의자에 고정시켰다.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이 피부에 파고드는 감촉이 아프고 섬뜩해서 박문철은 벗어나는 걸 포기했다.

악마는 즐겁다는 듯 양 손가락을 맞댔다.

“드디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왔군.”

“뭘, 뭘 원하는 거냐!”

“갑자기 그걸 물어보는 건가? 그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뭐, 뭐가!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러는 너야말로, 협박에 무단 침입에. 이렇게까지 했으니, 감당할 자신은 있어?”

걸리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박문철은 모르쇠로 잡아뗐다.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건 유현이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컬렉터 아카데미 생도를 상대로 테러를 지시한 인간이 참 뻔뻔하게 지껄이는군.”

“테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아카데미 생도 운운한 거 보면, 설마 협회 쪽이냐? 지금 협회에서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설마 전국의 모든 종교인을 척 질 생각은 아니겠지?”

박문철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기세를 등에 업었다.

눈앞의 상대가 아카데미를 운운한 것을 보면, 분명 컬렉터가 맞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본부까지 몰래 쳐들어온 걸 보건대 협회의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잘 생각해야 할 거야.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박문철은 그렇게 화제를 전환하면서 유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는 기적이라는 힘을 얻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을 컬렉터와 유사하게 각성시킬 수 있으며 행운을 불러 모으고, 믿기 힘든 일들을 연달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과 흡사했다.

그 기적 중 하나, 최측근인 김 비서에게도 밝히지 않은 또 한 가지 능력이 있었다.

바로 세뇌다.

‘멍청한 놈. 바로 네놈의 정신을 지배해서 탈탈 털어 주마.’

발동의 조건은 자신과 눈을 5초 이상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 그는 이걸로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일부 사람들을 종으로 만들어 노예처럼 부렸다. 그는 저 가면을 쓴 녀석도 그렇게 만들겠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우드득.

“끄으윽!”

유현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박문철을 묶던 실이 몸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박문철은 전신을 으스러뜨리는 고통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은 가면 속에서 그를 비웃었다.

“‘대체 어떻게?’라는 표정인데. 자신의 알량한 힘이 뭐라도 된 것마냥 굴어서 재미를 많이 봤나 봐. 고작 세뇌 가지고 뭘 할 속셈이었다니 말이야.”

“마,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신의 힘인데. 고, 고작 컬렉터 따위가 내 기적의 힘을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없어!”

박문철은 자신이 믿고 있던 진실이 흔들리자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유현은 그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를 묶은 순간부터, 그가 지니고 있는 저 은색 책을 꼼꼼히 살펴봤으니까.

“댁처럼 추레한 인간이 신을 입에 담을 처지가 된다고 생각하나?”

“닥쳐! 나는 신의 사도다! 그분의 대행자야! 네까짓 이단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신의 사도라……. 재미없는 농담이야.”

“네놈.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마귀로구나! 사악한 악의 피조물이었어! 이노옴! 나는 신의 사도다! 신께서 나를 굽어살피신다고! 이 기적의 힘이야말로 그것의 증거다! 날 건드리고도 멀쩡할 거라 생각한 거냐!”

“그래? 그러면 이렇게 하지.”

유현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박문철을 속박하던 실이 풀어졌다. 박문철이 의자에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그런 그에게 유현이 다가갔다.

“그렇게 신께서 너를 보살피신다면, 어디 한번 보여 줘봐. 네가 신의 사도임을. 그분의 대행자임을. 네가 주로 즐기던 방식으로. 알지?”

“뭐?”

“받아.”

박문철은 유현의 손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를 발견했다.

주사위와 함께 즐기던 방식을 떠올리는 순간, 박문철은 이 악마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방법은 간단해.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보는 거야.”

“지금 신의 대행자인 내게 주사위로 승부를 보겠다고?”

“맞아. 그런데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내가 조금은 봐주도록 하지. 6이다. 주사위의 눈이 6만 안 나오게 하면 돼. 반대로 6이 나오면 내 승리. 그밖에 다른 것들이 나오면 널 살려 주마.”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싫으면 말고. 아니면 뭐, 못 할까 봐 겁이라도 집어먹었나?”

“웃기지 마라! 어리석은 악마 녀석!”

박문철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멍청한 녀석. 감히 신에게 선택받아 기적을 행사하는 내게 이런 거로 승부를 걸다니! 후회하게 해 주마!’

박문철은 주사위를 받아들여 그것을 던졌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박문철이 이길 가능성은 훨씬 더 컸다. 거기에 더해 그가 새로 얻게 된 이 기적의 힘까지 더해지면, 지려야 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톡. 데구르르.

“어?”

주사위의 눈이 6이 나왔다.

“이, 이건.”

“신앙심이 부족했나 보군.”

“아니, 이럴 수가…….”

“반응이 안쓰러울 정도야. 뭐, 좋아.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다시 해봐.”

“후우. 조, 좋아.”

박문철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주사위를 집어 들고 재차 굴렸다.

그다음 숫자도 6이 나왔다.

“뭐, 뭐야.”

“다시.”

박문철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주사위를 굴렸다.

이번에는 제발 다른 숫자가 나오길 간절히 빌었다. 지금까지 그를 신의 대행자로 활동하게 만든 기적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동했다.

그런데, 또 6이 나왔다.

“다시.”

박문철은 마치 홀린 듯 주사위를 굴렸다.

“다시.”

그렇게 또.

“다시.”

굴리고.

“다시.”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던지고 굴려도, 주사위의 눈은 6만 나왔다. 몇 번을 계속해도 그랬다.

왜 이러지?

박문철은 이성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왜?!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뭐 하지? 어서 주사위를 굴려.”

“나, 나는…….”

이미 몇십 번을 굴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전부 다 똑같은 숫자가 나왔다.

사술이다. 이건 사술이야.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박문철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시 굴려.”

이제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은 지긋지긋한 목소리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박문철의 눈이 미래를 그렸다. 환상 속의 박문철은 유현의 말을 따라 주사위를 쥐고 던진다. 아무리 높게 던져도, 낮게 던져도 바닥을 구르는 주사위가 나오는 숫자는 언제나 동일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두렵나?”

퍼뜩.

유현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박문철은 그제야 눈앞의 상대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인지하고 말았다.

악마. 그는 진짜 악마였다.

그가 철석같이 믿던 이 기적이라는 힘은 저 악마의 앞에서 주름조차 잡을 수 없는 알량한 것이었다.

그는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조금 전 보였던 그 모든 확신에 담긴 행동은 잠겨 가는 늪에서 발버둥 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러면 기도해.”

악마가 말했다.

귓가에 속삭이듯, 사람을 타락시키듯, 영혼을 파멸시키듯.

“다른 신도들처럼 신에게 간절히 기도를 해서 굴려. 그러지 못하면 네 패배다.”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신께서 나를 버리실 리가 없어! 나는 신의 사도다! 내가 그분의 대행자야! 고작 악마 따위에게, 이런 주사위 노릇으로……!”

“신은.”

유현은 그의 말을 끊으며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를 주워 들었다.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아.”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어둠 속의 두 눈동자는 허공에 붉은 잔영을 남겼다.

유현은 주사위를 가볍게 던졌다. 높게 떠오른 주사위가 천천히 떨어지더니 바닥을 굴렀다. 박문철의 바로 앞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며 돌아가는 주사위가 잘게 떨며 멈췄다.

6이었다.

이것이 모든 가능성과 확률을 지배하는, 그가 지닌 힘.

기적을 뛰어넘는 하나의 불완전함의 법칙.

“주사위를 굴리는 건 악마가 하지.”

그것이 맥스웰의 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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