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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32화 (23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32화

나민혁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악마가 아니라 그저 가면을 쓴 남자라는 것을, 뒤늦게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다.

“그, 일단 구해 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평생 부모님에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부끄러워서 안 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다. 아무렴 목숨을 구해 줬으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 남자는 강하다. 아주 강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저 사이비 추종자들을 쓰러뜨렸다. 믿기지 않는 신체 능력을 보건대 컬렉터, 그것도 상당히 높은 랭크가 분명했다.

‘그만한 사람이 대체 왜 여기에?’

어차피 그와는 관련 없는 별세계의 사람들이라 관심을 끄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심지어 대화를 나누면서, 이 컬렉터 또한 자신과 비슷한 목적으로 사이비 교단의 본부로 찾아왔음을 알게 됐다.

“그, 그래도 위험할 거예요.”

“어떤 거요?”

“그 안쪽에요. 그쪽에도 컬렉터와 비슷한 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컬렉터면 컬렉터지, 비슷한 건 뭔가요?”

“그, 그러니까…….”

나민혁도 자신이 설명에 약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는 정말 이렇게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진짜 컬렉터가 아니에요. 그 교주, 그 교주가…….”

“박문철 말이죠?”

“네? 네. 맞아요. 박문철. 그 사람이 기적을 선사했다고 했어요.”

가면 안쪽의 유현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나민혁의 말도 그렇고, 테러 용의자의 책에서 읽은 내용도 그렇고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박문철이 내렸다는 그 기적. 그것은 일반 사람을 컬렉터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일반 사람을 강제로 각성시킨다? 이건 전생에서도 없던 일인데.’

그게 가능하냐에 대한 걸 굳이 따지자면, 안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당장 종말 이후에는 단 1명도 제외하지 않고, 전부 다 컬렉터와 비슷하게 각성을 했을 정도다. 이번 2차 판타즘 쇼크 이후로 그런 경우가 생겼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런 힘이 극단적인 사이비 교주의 손에 쥐어졌다는 거지. 그리고 그 힘을 얻었다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고.’

[그런데, 어차피 상관없지 않아? 그 인간이 뭘 어찌했든, 네가 할 일은 바뀌지 않잖아.]

‘그래. 바뀌는 건 없지.’

백련의 충고대로였다.

그 어떠한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유현이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유라를 상처 입게 만든 이 사건의 주모자 박문철을 처리한다. 그 강렬한 의지는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자격 없는 힘이 쥐어진 박문철 같은 존재는 이 세상을 좀먹는 해악이다. 그들이 존재하고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괴로워한다.

‘테러를 일으켜 놓고도, 일부러 자신과는 연관이 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는 쪽이 아니라, 머리가 굴러가는 사람이라는 거야.’

영악한 인간일수록 범죄는 은밀해지지만, 규모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 범죄의 온상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은 언제나 힘없는 일반인들의 비명이다.

눈앞의 이 나민혁이라는 청년도,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 교주는 뭘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 쓰레기 같은 놈, 지금쯤이면 아마 자기 신도들 데리고 또 기적이니 뭐니 하면서 연설 끝낸 다음에 성 접대받을 준비를 하고 있을 거예요.”

나민혁이 최선을 다해 여자 친구를 구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나민혁은 실제로 교단 본부 안쪽에 몰래 잠입했을 때 그런 낌새를 느꼈다. 게다가 반항하던 사람들은 독방에 가둬 놓기까지.

자세히 확인하려 하다가 몰래 들어온 것이 적발돼 도망치던 것이 조금 전의 일이었다.

나민혁은 그 일을 다시 떠올리니 다급해졌다.

“제 여자 친구가 저 안쪽에 있어요. 제가, 제가 빨리 가서 박문철을 막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나민혁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유현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한평생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나민혁은 조금 전 두들겨 맞을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그리고 세상을 저주했다.

신은 존재하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악마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줬다.

“제발, 제 소중한 여자 친구를 구해 주세요.”

자기밖에 몰랐던 남자가 처음으로 진실하게 아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 수 있다고, 눈앞 남자의 구두를 핥으라면 핥을 수 있다고.

“부탁드립니다. 제발.”

왜냐하면, 그는 힘이 없으니까.

약하니까.

고개를 숙이고 꼴사납게 비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부탁하는 태도는, 그게 아니죠.”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나민혁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래, 그야 역시 그렇겠지. 저렇게 강한 사람이 대체 뭐가 아쉬워서 자기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간을 도와주겠어.

“일어나세요.”

“네, 네?”

하지만, 나민혁이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악마는 오히려 그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켜 세워 줬다.

“굳이 그렇게까지 빌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부탁이 아니라 애원이죠. 당신은 그저, 도와드릴 테니 함께하자고 말만 하면 됩니다.”

“제가, 제가 함께요?”

“하기 싫습니까?”

“싫은 건 아닌데, 제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만약에 할 수 있다면?”

악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나민혁의 정신을 강하게 일깨웠다.

“당신도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로 하겠습니까?”

할 수 있다면.

나민혁은 그 말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곱씹었다. 할 수 있다면, 누군들 안 하겠는가? 누구는 하기 싫어서 안 했겠는가.

가능하다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서서 저 사이비 종교 단체의 본부로 쳐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은데.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악마는 웃었다. 나민혁은 상대가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그저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안광이 순간이지만, 구름에 가려진 초승달처럼 휘어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으니까.

나민혁의 의지를 읽은 유현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지금의 그는 서재를 개방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온 상황이었다. 하늘의 별조차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고,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만약 성령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그들은 나민혁을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약하고, 찌질하고, 호구 같다고.

소중한 연인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제발 도와달라고 질질 짜기나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로 나민혁이 추한 인간인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체면마저 벗어던지고,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지.’

그만큼 사람은 필사적이고, 간절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을 더욱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을 심어 주니까.

힘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고난과 역경마저 감수해 가며 하겠다는 신념을 품는다는 것.

그 강철 같은 강인한 의지를 보여 주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인가?

“갑시다. 가서 사람들을 구하고, 미치광이 사이비를 처단합시다.”

* * *

박문철의 삶이란 단순했다. 그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남의 것을 갈취하는 삶을 살아왔다.

타고난 머리로 멍청한 사람들을 선동하고 부리기 일쑤였다. 박문철에게 종교란 인간을 부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자 도구였다.

그렇게 사상세계가 등장하고, 신의 존재가 실존함이 증명되었을 때.

박문철은 자신의 손에 쥔 이 도구가 더욱 강건해졌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찬양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웃긴 것은 적장 박문철에겐 신앙도 믿음도 없었다. 그가 믿는 것은 그저 지금 쥐어진 자신의 권력이 전부였다.

그는 이곳에서 왕이었다. 아니, 왕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신의 대행자. 스스로가 제 입에 달라붙을 정도로 자주 부르듯, 이 교단에서만큼 박문철은 자신이 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도망친 쥐새끼를 아직 잡지 못했다고?”

“아, 네. 그래도 금방 잡아 올 겁니다. 어차피 어두운 숲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김 비서. 내가 원하는 말은 그게 아니야. 중요한 건, 나의 이 성스러운 영토에 이단의 간자가 숨어 들었다는 거지.”

박문철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전부터 기자들이나 경찰이 이곳에 조사하러 오는 일은 몇 번 있었지만, 그는 권력으로 그것들을 전부 무마시켰다. 어차피 그들이 조사한 것도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도 했었고, 털어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쥐새끼 하나가 박문철의 치부처럼 숨기던 짓을 봐 버렸다는 것이다.

진짜 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박문철은 어째 그랬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가 그렇다고 했으니, 신도들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단이 여기에 들어왔지?”

“그, 그것이 신도 김씨의 딸이 연락을 취한 거 같습니다.”

“아, 그 여자 말인가?”

박문철은 얼마 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내놓으라고 당돌하게 찾아온 여성을 떠올렸다. 갑자기 면전에다 대놓고, 사이비니 뭐니 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하지만, 박문철은 그녀를 잘 대접해 줬다.

이유는 단 하나, 예뻐서였다.

신도 김씨의 딸이 저렇게 예쁜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알아볼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일단 독방에 가뒀다.

그랬었는데, 설마하니 그녀가 안쪽에서 몰래 외부에 연락을 취했을 줄이야. 그 때문에 쥐새끼가 들어왔다고 생각하자 박문철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기 힘들었다.

성격상 이 모든 일의 근원인 김씨의 딸에게 분노를 표출해야 옳았으나, 박문철은 괜히 그녀를 상하게 하기 싫어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김씨를 불러.”

“그러지 않아도 대기시켜 놨습니다. 어이. 데려와.”

문이 열리며 건장한 남자 둘이 한 추레한 중년인을 끌고 들어왔다. 이름도 모르는, 다른 경호원들조차 김씨라 부르는 신도였다.

“시, 신의 대행자시여.”

김씨는 자신이 이곳에 끌려온 것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몸을 조아렸다. 정작 박문철은 이 추레한 자를 본 것만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어딜 감히 신의 대행자에게 눈을 마주하려 하느냐!?”

“죄, 죄송합니다!”

현대에서 보이는 모습이라고는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익숙하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네 딸년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우리 성역에 이단을 불러왔다. 이단을! 그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지는 않겠지!”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요. 제가, 제가 따끔히 가르치겠습니다.”

“아니. 이미 후회한들 늦었다. 자식의 잘못은 그 부모의 잘못이지.”

박문철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맺혔다. 김씨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대, 대행자님! 살려 주십시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잘못했지. 그러니 지금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

박문철이 주머니에서 주사위를 하나 꺼냈다. 그 주사위를 본 김씨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말해. 무슨 눈이 나올지.”

이것은 박문철이 최근 상대방을 괴롭힐 때 가장 애용하는 방식이었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 무슨 숫자가 나올지 미리 말하게 한다. 그게 나오면 무죄고, 다른 눈이 나오면 신을 믿지 않는 이단이 되는 것이다.

박문철은 상관없었다. 그는 항상 틀린 적이 없으니까. 자신에겐 어느 날 갑자기 내린 축복 덕분에 모든 행운은 이제 그의 것이 됐다.

그는 정말로 기적을 선사하는 자가 된 것이다.

“제발, 제발.”

김씨가 애절하게 빌어도 박문철은 동정심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어서 무슨 눈이 나올지 답하라고 재촉했다.

“지금 내 말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어? 믿음이 부족하군. 이거 안 되겠어. 내 손으로 직접 신벌을 내려야 정신 차릴 거야?”

“그, 그게 아니라…….”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어서 말해.”

“……5, 5입니다.”

“5라. 좋아.”

그 말에 떨어지기 무섭게 박문철은 주사위를 굴렸다.

김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회전하는 주사위가 그의 동공에 박혀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박문철은 이 모습이 너무 즐거워서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알량한 확률에 기대서 일희일비하는 저 추레한 꼴들을 봐라.

‘이래서 멍청하고 미개한 놈들은 안 돼. 이렇게 내가 알아서 지배를 해 줘야 한다니까? 그런데 사이비니 뭐니 지껄이고만 있고. 하여튼 고마운 줄 몰라.’

구르던 주사위가 멈췄다.

나온 숫자는 3이었다.

“허허. 이거 참. 우리 김 신도가 믿음이 부족했나 봐.”

“아, 아닙니다 대행자님!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하다니요! 제가 지금까지 낸 돈이 집 한 채 값입니다!”

그걸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 돈을 다 내 버린 김씨는 더 이상 돈이 없었다. 즉 박문철에게 저 남자는 이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끌어내.”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면서 강제로 끌려가는 김씨를 보며 박문철은 짜증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윽고 안색을 폈다. 그래도 저 인간이 예쁜 자식 하나를 남겼으니, 이만한 보상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비서까지 내보낸 박문철이 방 안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어, 난데. 거 이번에 가둔 그 여자 내 침실로 데려와. 저항이 심하면 약 쓰고.”

통화를 끝낸 박문철은 곧바로 사무실 옆에 붙어 있는 자신의 개인 방에 돌아가 샤워부터 했다. 흥헐흥헐 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던 그는 곧 있을 거사를 기대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욕실의 불이 꺼지며 순간 시야가 암전됐다.

“어? 이런 씨. 대체 무슨 일이야?”

급하게 가운을 챙겨 입고 나온 박문철은 단순히 샤워실 말고도, 다른 곳의 불이 전부 다 꺼졌음을 뒤이어 알아차렸다. 설마, 정전이라도 난 건가? 발전기 관리하는 녀석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사무실로 나온 박문철은 전화기로 연락을 취하고자 했다.

그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어? 뭐, 뭐야. 너 누구야?”

자신이 평소에 걸터앉던 고급스러운 가죽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검은 존재를 본 박문철은 조심스러워졌다.

오색으로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사이로 은은하게 내려오는 빛을 등진 그의 흐릿한 형상을 보는 순간, 박문철은 바보같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악마?”

가면의 양쪽 위로 솟은 두 개의 뿔과 날카로운 이빨, 붉은 눈동자. 검은 정장에 검은 면장갑, 그리고 검은 구두까지.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타오르는 지옥의 연옥 같은 두 개의 붉은 안광이 박문철을 향했다.

“앉지.”

방의 중심에는, 언제 놔뒀는지 모를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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