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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29화 (22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9화

유현이 나중에 받게 될 보상에 기대감을 잔뜩 품을 때, 천체주식회사의 각 시화실의 부서에서는 향후 지구의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여러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펜타그램 부서의 빈 공백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전까지 상해 버린 과일 취급을 받던 지구였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이번 대규모 패치 이후로는 지구야 말로 시화실 텔러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다.

셀레스티나도 지구에 관심을 갖는 텔러 중 하나였다.

“내가 여기에 널 부른 이유는 소문을 들어서 이미 알 거라고 생각한다.”

셀레스티나의 개인 사무실에서 두 텔러가 회동을 가졌다. 한 명은 당연히 사무실의 주인인 붉은 머리의 미녀 셀레스티나 부장이었고, 맞은편에 서있는 텔러는 그녀의 직속 부하였다.

머리에 검은 빌헬름 투구를 썼으며 몸에 딱 맞는 검은 제복을 입은 텔러였다.

등 뒤에 펄럭이는 붉은 망토까지 더해, 마치 근대 유럽의 귀족과 기사를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다.

셀레스트리얼 빙 부서의 로믈락시스 과장.

셀레스티나가 이번 지구에 파견 보낼 부서원이었다.

“네에?!”

하지만 묵묵히 셀레스티나의 말을 경청하던 로믈락시스는, 근엄해 보이는 외형과는 별개로 경박하기 짝이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저 그런 건 처음 듣는뎁쇼?!”

“야! 내가 이미 말했었잖아!”

분위기를 잡으려던 셀레스티나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탁자를 두 손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로믈락시스는 그제야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부장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셨던 거 같기도 하고?”

“하고?”

“아, 아아아아뇨! 했습니다! 했어요! 그러니, 주먹 쥔 손 좀 펴 주세요!”

“후우.”

셀레스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꽉 쥔 주먹에 힘을 풀었다. 이 녀석과 대화를 하면 항상 이렇다. 로믈락시스 과장은 겉모습과 괴리감이 심각한 경박한 행동과 말투를 일삼는 녀석이었고,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열이 뻗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실력은 또 그거대로 진짜고.’

그런 로믈락시스가 재미있어서 부서로 영입했던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즉 로믈락시스로 인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전부 자초한 죄업이라는 소리였다.

괴짜 중 괴짜라 할 수 있는 이 녀석에게 대체 뭐라 말해야 상황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셀레스티나가 고민하던 차에 로믈락시스가 손가락을 펼치며 선수를 쳤다.

“뭐, 지구에 가야 한다는 이유는 저도 알 거 같아요. 아무래도 최근 주가 최고치를 달리는 세계다 보니까, 어떻게든 빈자리 파고들어서 선점 효과를 누려야 하니까요.”

“그래. 잘 아네. 다만, 선점 효과는 틀려. 이미 들어간 녀석들이 있으니까.”

“다만, 아직 소속이 없는 녀석들이죠. 지구는 버려질 뻔한 세계였잖아요? 그나마 거기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펜타그램은 이번 일로 완전 나가리가 돼 버렸고.”

“그렇다 해도, 놈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어. 일부가 철수했지, 알짜배기 녀석들은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이빨이 빠진 건 마찬가지죠. 그래서 거기에 저를 보내시려는 거고요?”

“왜? 무슨 문제 있어?”

“네? 아니, 그냥…….”

“솔직하게 말해. 뭐, 내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귀찮아서…….”

“다시 한번 말해 줄래?”

“아, 아니 솔직하게 말하라면서요. 아악!”

결국, 로믈락시스는 머리에 주먹을 한 대 맞고 말았다.

찌그러진 머리(?)를 매만지는 로믈락시스를 보며 셀레스티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휴. 어쩌다 이런 녀석을 내가 뽑아 가지고.”

“다 부장님의 실수입니다. 안고 가세요.”

“지금 그 말을 네 입으로 하는 거냐?”

셀레스티나는 이젠 또 때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이 녀석을 빨리 지구로 보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테니까.

“이미 다른 부서는 인선까지 다 끝내고, 보내기 직전이다. 우리가 마지막이야.”

“역시, 다른 곳도 눈독을 들이는군요?”

“당연한 소릴.”

시화실에는 총 8개의 부서가 있다.

본디 이전까지는 그보다 부서가 훨씬 많았지만, 부서에서 실적을 내지 못해 와해되거나 혹은 다른 부서에 정치적으로 패배해 통합되거나, 기존에 없던 부서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

그 격동의 변화 끝에 8개라는 체제로 굳어지게 된 것이 지금이었다.

천체주식회사 내에서 이를 시화팔부(示話八部)라 불렀다.

제1부 천간지지(天干地支)

제2부 헤일로(Halo)

제3부 펜타그램(Pentagram)

제4부 셀레스트리얼 빙(Celestial Being)

제5부 별관측자(Star Seeker)

제6부 유성광군(流星光群)

제7부 프로미넌스(Prominence)

제8부 오피우쿠스(Ophiuchus)

이 중에서 기존 지구를 차지하고 있던 펜타그램의 위상이 약해졌고, 나머지 7개의 부서가 그 빈자리를 눈독 들이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서로 터치하지 않고 적당히 대리에서 과장급을 하나둘 정도 보내는 거로 합의가 끝났지만, 계약서로 체결하지 않은 구두 계약을 신뢰하는 텔러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널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네가 성격은 그래도 능력 하나는 과장 중에서도 단연코 뛰어나니까. 그래서 거기로 보내는 거야.”

“네? 제 성격이 뭐가 어때서요. 제가 그래도 능력보단 성격이 더 좋은데.”

“지랄.”

부장님의 통렬한 일침에 로믈락시스는 충격을 받았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비운의 여주인공 같은 자세를 취했다.

“흑흑, 너무해.”

“적당히 하고. 아무튼, 너 보내는 건 다른 이유 없으니까. 그리 알아.”

“넵. 알겠습니다. 혹시, 뭐 주의할 점이나 그런 건 있나요? 제가 그래도 시화를 쉰 지 3년은 넘어서 감이 좀 죽었는데.”

“주의할 거는 없어. 그냥 네 뜻대로 해. 애초에 네가 뭘 시킨다고 해서 그걸 따를 녀석도 아니잖냐?”

“아이참. 우리 부장님은 저를 너무 잘 아신다니까?”

“그래도 굳이 한 가지 경고를 한다면, 다른 놈들을 조심해.”

“다른 놈들이라면……?”

“엑소도스와 희극단패. 놈들도 이번 일을 빌미로 지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셀레스티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한쪽 다리를 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놈들과 부딪친 적이 있는 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거라 믿는다.”

“…….”

항상 경박하게 대꾸하던 로믈락시스는 이번만큼은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고수했다.

* * *

사상세계의 폭주로 인한 사망자의 추모식이 거행됐다.

전 세계는 슬픔에 빠졌지만, 거기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제네시스 시스템은 이미 그들에게 충분히 경고를 했다.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전처럼 행동했던 것은 결국 하계의 인간들이었다.

곧바로 정부와 협회는 사상세계 폐쇄에 관한 이야기를 펼쳤다.

“이번 제네시스 시스템의 경고는 말 그대로 이걸 뜻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사상세계가 폭주하고 또 우리 땅을 침식해 나간 거죠. 더 이상 이 전처럼 사상세계를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한 번 벌어진 일입니다. 이다음에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국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사회적 패닉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눈앞의 현실을 보라고 했다.

“갑자기 사상세계의 폐쇄에 열을 올린다 해도 그게 쉽게 될 일이 아닙니다. 잊었습니까? 세계 경제에서 사상세계의 부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거대한지. 저희는 지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겁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컬렉터들이 이제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들겠습니까? 게다가 국내에는 클리어 하지 못한 사상세계가 세 자릿수가 넘습니다. 그것들을 또 언제 다 클리어 하겠습니까?”

거대한 회의실 내에서 의견이 거칠게 충돌했다.

친 협회파와 친 클랜파의 의견은 전부 합당해 보였다. 그러나 합당함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주장은 서로 섞이지 못했다.

“지금 사람이 죽었습니다! 국민이 두려워하고 있단 말입니다!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상세계를 아직도 가만히 놔둬야 한다는 겁니까!”

“이성적으로 보자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그거 지금 당장 없애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드는 줄 아십니까? 막말로 시행한다고 해 봅시다. 그럼, 컬렉터들은? 컬렉터들이 얼마나 죽어 나갈지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이대로 놔두자는 겁니까? 놔뒀을 때 생길 피해를 생각하세요! 만약 또 폭주가 벌어지면, 그때는 그쪽이 총 들고 나서서 싸우기라도 할 겁니까?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마세요!”

“이보쇼! 우리가 뭐, 그냥 놔두자고 했소?! 지금 당장 시행이 힘들다고 했지! 뭐든 차근차근 밟아 가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니까! 그런 것도 안 지키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그래!”

“그쪽이야 클랜한테 뒷돈 받았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뭐?! 말 다 했어?!”

“다했다! 왜!”

심한 경우에는 멱살까지 잡아가며 싸움판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윗사람들이 탁상공론을 펼칠 때, 다른 사람들은 마냥 놀고만 있지 않았다.

특히, 컬렉터들이 그러했다.

컬렉터들은 그날 벌어진 참사를 현장에서 직접 목도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2가지로 좁혀졌다.

앞으로도 싸울 것인가?

자리에서 멈춰 설 것인가?

“어차피 이대로 가면 무슨 의미가 있어. 컬렉터가 됐는데, 환상체한테 겁먹어서 은퇴하라고?”

“차라리 잘 됐어. 그놈의 경계선 때문에 더 잡고 싶어도 꾹 참고 돌아오는 거랑 비교하면, 그냥 사상세계 끝까지 가는 게 낫지.”

“클리어 해서 사라지면, 뭐? 어차피 나중에 더 새로 생긴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는 건 좀…….”

그들도 싸우는 게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싸움을 겪으면서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컬렉터로 선택받았는지, 그리고 컬렉터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번 제2차 판타즘 쇼크는 컬렉터들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협심(協心)을 품은 컬렉터들은 뜻이 맞는 자들과 함께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루기 시작했다.

클랜도 매니지먼트도 필요 없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그들뿐이고, 그들의 목적은 오직 사상세계의 클리어에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컬렉터로 선택을 받고, 하늘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자들.

이야기를 모으던 그들은 컬렉터라는 이름을 버렸다.

이제 그들은 자신을 워커(Walker)라 불렀다.

그리고.

워커의 출현과 함께 하늘을 비집고, 새로운 텔러들이 지구에 내려왔다.

지구의 파이가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지고, 기존에 알을 박던 펜타그램 인원 반절 이상이 철수한 상황이었다.

시화실의 남은 7개의 부서에서 내려온 텔러들과 어떤 부서에도 소속되지 못한 일부 텔러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어떻게든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다행히도 그들에게 빈자리는 많았다.

빈자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지.

“저건…….”

하늘의 높은 곳에서 하계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로믈락시스는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파장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2부류의 텔러들이 있었다.

한쪽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정체를 숨기고 있는 텔러들.

다른 한쪽은 얼굴이 기이한 탈을 쓴 채 통이 큰 의복을 입은 텔러들.

겉모습만 보면, 도무지 같은 종족이라고 할 수 없는 두 집단은 천체주식회사의 오랜 라이벌인 다른 두 조직에 소속된 텔러들이었다.

엑소도스와 희극단패.

로믈락시스는 정말로 부장님의 말씀이 사실이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처음으로 복귀하게 된 하계의 첫 계약자를 찾아 나섰다.

그들이 주로 눈여겨보는 자들은 누구보다도 싸울 의지가 충만한 자들.

바로, 워커였다.

* * *

황금빛은 우주를 떠돌았다. 그들은 무리 짓지도 않았고 개별적으로 돌아다녔다.

그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을 찾고 있었다.

이야기가 풍부한 곳. 많은 이야기가 모이는 곳. 누구보다도 관객들이 가득한 곳.

무수한 황금빛들은 넓은 우주, 혼성계의 전역을 누볐지만, 그것을 쉽게 찾지 못했다.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지 황금빛들은 몰랐다.

황금빛들에게 의지는 없었다. 그들은 단지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들은 생명체가 아닌 일종의 개념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황금빛들은 이 혼성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흐름을 느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텍스트들이 은하수처럼 거대한 강을 이루며 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가 탄생할 징조였다.

황금빛들은 그 흐름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 끝에 도사리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들과 같은 기운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황금빛이.

지구에 하나둘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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