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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28화 (22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8화

“…….”

악의의 관심에 유현은 침묵했다. 정확히는 일부러 대꾸하지 않고, 보고도 못 본 척을 한 것에 가까웠다.

상대는 존재의 근원마저 타락시키는 괴물이다. 본인의 이명을 악동이라고 지은 것부터 그의 행동의 기저에 얼마나 많은 장난기가 깔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관심을 주지 않는다. 철저히 무시로 일관한다. 그것이 유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차라리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게 더 마음 편하겠군.’

유현은 욕심 끝자락의 악동 말고도, 다른 유명한 방문객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연천(延天)의 금신조(金神鳥)가 매서운 눈을 부라리며 당신을 뜯어봅니다.]

대성군 리그베다(ऋग्वेद)에 소속된 2세대 성령으로서, 그 본래 이름은 가루다.

태양을 등에 업고 뱀을 집어 삼키는 이 금시조야 말로 리그베다가 자랑하는 발 빠른 파수꾼이며 뛰어난 전사였다.

팔부신중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 불리기에 비록 2세대라고 하지만, 그 힘은 1세대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다.

‘리그베다에서도 큰 손님을 보냈어. 만물의 수호자, 비슈누가 직접 타고 다니는 가루다를 보내다니.’

대성군의 입장에서도 처음으로 보낸 성령이 명성이 낮고 알려지지 않으면, 체면이 상하기 마련이다. 고작 시화의 서재에 방문하는 것이 뭐 그게 문제냐고 하겠지만, 대성군쯤 되면 그런 사소해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법이다.

‘올림포스도 그걸 생각해서 하나를 보낸 것 같고.’

[날개 달린 전령의 이정표가 당신을 재밌다는 듯 살핍니다.]

대성군 올림포스 소속이자, 그중에서 1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판테온(Pantheon) 출신의 1세대 성령이다.

챙이 넓은 날개 달린 모자와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두 마리의 뱀이 꼬인 지팡이를 쥔 장난꾸러기 목동.

모두가 익히 아는 헤르메스였다.

이쪽도 퍽이나 발 빠른 성령을 보냈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유현은 나머지 성령들을 잔잔히 살폈다.

눈에 차지 않는 성령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벌써 12,000명이나 되는 성령이 모였다. 당연히 성령들의 사이에서도 급은 나뉘고 있었고. 유현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이 유별난, 대성군 출신의 성령들일 수밖에 없었다.

신화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마저도 지나가다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자들이 존재감을 내뿜었다. 자연스럽게 3세대 이하의 성령들은 그들이 내뿜는 분위기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울 때는 1세대 성령 한 명이 분위기를 어느 정도 휘어잡아서 괜찮았는데, 1세대 성령들이 많아지니, 이번엔 분위기 자체가 확 죽어 버리는군.’

유현이 이 분위기를 어떻게 풀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하던 순간, 한 성령이 직접 메시지를 올렸다.

[하늘을 울리는 투신이 1,000TP 후원!]

[뭐야. 이 방 분위기 왜 이래? 누가 뭐 잡아먹기라도 해? 그냥 편하게 해 편하게.]

새로운 성령의 등장에 메시지 창이 한 차례 술렁였다. 그것은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울리는 투신, 그 거만한 이명을 지닌 이 성령은 유현이 일전에 백련에게도 설명을 해 준 적이 있는 성령이었다.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

극소수로 이루어진 마왕연합의 창시자이자 실질적인 리더. 스스로 지어낸 거만한 이명에 걸맞은 악명과 위명을 동시에 지녔으며, 충분히 그럴 자격을 지닌 자이기도 했다.

설마하니 마왕연합까지 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는지, 성령들은 더욱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편하게 하라니까? 숫자도 하도 많으니 재밌어 보여서 왔는데, 뭐 이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어?]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자가 1,000TP 후원!]

[어차피 이 방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시청령입니다. 서로 눈치 보고 그럴 필요 없으니, 저분 말대로 순수하게 즐겨 주시길. 혹시라도 여기서 눈치를 주거나 그런 짓을 하려는 자가 있다면, 제가 직접 나설 테니 안심하세요.]

[하늘을 울리는 투신이 1,000TP 후원!]

[나도 보태지.]

무려, 사탄과 제천대성이 나서서 자유롭게 즐기라는 말을 꺼냈다. 하라고 해서 정말로 불이익을 당할 경우에 보호해 준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그제야 눈치를 보고 있던 3세대 성령들이 메시지를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네임드들의 등장으로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서서히 풀리며 이전과 같은 활기를 띠었다. 시청령들 끼리 알아서 자정 작용을 보여 줬기에 유현은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아무리 마라라고 하더라도, 이만한 성령들이 있는 곳에서 난동을 피우지는 않겠지.’

유현은 한시름 놓았지만, 그래도 잔존하는 불안감을 모조리 긁어낼 수는 없었다. 애초에 마라는 처음부터 눈에 띄게 활동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고요히,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피부에 닿는 그 시선은 무겁고 고요했다. 그 고요함에 담긴 의중은 엉킨 실타래처럼 흔적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 * *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상세계의 폭주 사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었다. 이제 곧 TV를 비롯한 온갖 매체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떠들 것이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기 싫어도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무수한 사망자와 재산의 피해를 낳은 이 날, 세계가 제2차 판타즘 쇼크(Phantasm Shock)라 명명을 내린 순간, 운명이 조롱하듯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왔다.

[페이즈 1.5의 패치가 완료됐습니다.]

[상태 창이 바뀝니다.]

[스탯이 더욱 세분화됩니다.]

[칭호 및 이야기, 스킬의 툴팁이 개편됩니다.]

[사상세계의 정보가 새롭게 갱신됩니다.]

[제한된 이야기의 일부가 해금됩니다.]

마치, 게임을 보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알림에 많은 사람이 벙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죽은 이것을 게임처럼 대하는 저 정체불명의 시스템이란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의 죽음이 이렇게도 장난스러운 일이었나?

많은 사람이 제네시스의 메시지에 분노를 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은 향후 바뀐다는 그 메시지의 내역에 집중했다.

집으로 돌아온 강혜림은 소파에 앉은 채 새로 떠오른 메시지들을 살폈다.

“유현 씨. 이거 봐 봐요. 마치, 게임 같지 않나요? 스킬에 대한 설명, 스탯의 세분화. 게다가 상태 창까지 많이 바뀌었어요. 아, 여기 레벨도 추가됐네.”

이름: 강혜림

특성: [고려시대 소드마스터] [신검합일] [창천검로]

칭호: [신성로마제국 무훈기사] [검후]

보유 이야기: [오를레앙의 성녀] [신의 사도] [라비린토스의 생존자] [코볼트 학살자] [제초꾼] (더 보기)

스킬: [삼재검법] [알소르 용병검술] [감각 극대화] [밝은 눈] [대(對)여진검법] [근력강화]……(더 보기)

-스탯-

힘: 중급

민첩: 중급

체력: 중급

지력: 중급

마력(기): 중급

이전 강혜림의 스탯 창이 이랬다면, 새롭게 바뀐 스탯 창은 더욱 세밀해졌다.

이름: 강혜림

추정 레벨: 76

특성: 고려시대 소드마스터(주인공) 신검합일(주인공) 창천검로(주인공)

칭호: 신성로마제국 무훈기사(A) 검후(S) 천뢰검의 후계자(S+)

보유 이야기: 오를레앙의 성녀(전설) 신의 사도(전설) 라비린토스의 생존자(영웅) 코볼트 학살자(희귀) 제초꾼(일반) 수류의 형상(영웅)

주 스킬: 천뢰검(S+) 대(對)여진검법(A+) 전투의 감각(A)

보조 스킬: [삼재검법] [알소르 용병검술] [감각 극대화] [밝은 눈] [대(對)여진검법] [근력강화]……(더 보기)

힘: A(31%)

민첩: A+(67%)

체력: B+(46%)

지력: C-(21%)

이야기의 힘: A(88%)

훨씬 더 세분화된 스탯창은 이전과 비교하면, 뼈대만 유지하고 모든 살을 갈아 치웠다.

특성마다 등급이 매겨졌고, 칭호나 이야기도 마찬가지.

자신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 수준인지 특성과 칭호, 이야기와 스탯을 바탕으로 레벨을 구현해 놨으며 심지어 이전 하·중·상으로만 대충 때우던 스탯은 수십 개의 단계로 분할해서 세세하게 표현했다.

“마치, 게임 같아요.”

“그야 실제로 게임을 바탕으로 바꾼 거니까요.”

“네? 유현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이 아이디어를 건의했거든요.”

“……네?”

강혜림은 지금 이 텔러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유현은 그 반응에 친절하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기로 했다.

“이전 스탯창의 분류가 상당히 불친절했던 것은 알고 있죠?”

“네. 그건 그랬죠.”

“그거 때문에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본사, 그러니까 제가 소속된 천체주식회사에서 새로운 패치와 함께 스탯 창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려고 했죠. 그리고 그걸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공모했었습니다.”

“아, 그러면 이번에 바뀌게 된 게 설마…….”

“네. 제가 제안한 것들입니다. 지구의 게임 시스템과 흡사하게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또 얼마나 성장했는지 세세하게 살필 수 있게 만들었죠.”

이전까지 컬렉터들의 힘이란 서로 직접 싸워 보지 않으면, 누가 우위를 점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상대가 무슨 기술을 써도 그게 얼마나 강한지 구분이 힘든 것이었다. 심지어 상성까지 있었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으로 수준을 나눈 것이 정1품부터 종9품까지 18개의 단계나 되는 컬렉터의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컬렉터들의 수준을 전부 나타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중견급 컬렉터는 얼마나 강한가? 초인의 수준이라 불리는 상급 컬렉터는 어떤가?

그 의문은 10년간 끊어지지 않고 쭈욱 이어졌다.

“사람들은 힘이 강해졌다고 말하면, 자세히 모릅니다. 악력으로 돌을 부순다고 해도, 그것이 강한 건 알지만 대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르죠.”

“음. 뭔지 알 거 같아요.”

“하지만 10의 힘이 돌을 부순다고 가정했을 때, 힘이 5만큼 늘어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주 쉽게 생각하죠. 아, 이만큼 강해졌구나. 꽤 강해졌구나. 스탯 창은 그것을 한눈에 보기 쉽고, 일목요연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레벨도요.”

유현이 한 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수치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 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결과물이 지금 바뀐 스탯창이며 새로 생긴 레벨이라는 개념이었다.

레벨의 경우에는 1부터 최대 100까지. 그것도 절대적 관점에서 시스템이 분석해서 수치를 산정한 것이다.

아마, 향후 며칠 동안은 이 레벨 때문에 컬렉터들의 등급의 변화가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보통 컬렉터들이 사용하는 마력이나 기, 차크라 같은 것들도 편하게 이야기의 힘으로 뭉뚱그려 놨습니다. 앞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나을 테니까요.”

“어, 그런데 스탯 옆의 이 퍼센트 게이지는 뭔가요?”

“각 스탯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숙련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A랭크일 경우에 100%를 모두 채우면, A+가 되는 거죠. S+부터 F-까지 전체 21개로 나누었으며 그것을 또 세세하게 쪼갰으니, 누구라도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겠죠.”

“아, 그렇구나. 그보다 여기 지력은…….”

강혜림은 지력에 대해 말을 꺼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다른 스탯은 매우 우월했지만, 유일하게 지력이라는 부분만 C-였던 것이다.

‘이거, 설마 멍청하다는 그런 건 아니겠지?’

강혜림은 괜히 불안감이 들어서 말을 아꼈다.

절대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 봤지만, 보면 볼수록 이 지력이라는 것이 ‘지능’처럼 비쳤다.

강혜림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자, 유현이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 그거요? 약간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낮게 나온다던데.”

“네, 네? 무슨 소리인지?”

“혹시 혜림 씨, 지력이 낮지는 않겠죠?”

“그, 그게…….”

“에이 설마. 그래도 제가 고른 컬렉터인데. 최소 B는 나오겠죠? 맞죠?”

“네?!”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어깨를 크게 움찔거리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강혜림의 모습에, 유현은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이대로 농 몇 마디만 더 던져도 울 것 같았다.

“농담입니다. 지력도 사실 전투와 관련된 스탯 중 하나에요. 정확히는 메이지 계열, 주술, 도술, 저주 등 사법(師法)을 다루는 자들에게 필요한 거죠. 능력의 출력과 조절, 그것을 얼마나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지 알려 주는 거니까요. 혜림 씨처럼 근접 전투 쪽은 낮은 게 당연해요.”

“뭐, 뭐예요 그게! 놀랐잖아요!”

[너 정말 가끔 보다 보면, 정말 못됐다니까.]

백련도 그런 유현을 보며 혀를 찼다. 이제 이런 것도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서 유현은 자연스럽게 귓등으로 흘렸다.

유현은 새로 바뀐 스탯창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며 눈을 빛냈다.

‘내가 제출했던 양식과 똑같군.’

이번에 바뀐 양식은 유현이 종말의 마지막, 지금으로 약 14년 뒤에 최종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당연히 수치를 나타내는 정확도는 이전과 비교할 바가 안 됐다. 유현은 거기에 자신만의 약간의 변화를 줬을 뿐.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지.’

유현은 이게 자신이 한 것이라고 굳이 자랑하며 떠벌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걸 사용하고 말고는 별개의 것이었다. 이 바뀐 스탯창의 양식은 앞으로 컬렉터들이 더욱 열심히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줄 테니까.

무엇보다 유현이 가장 바라는 것은 공모한 아이디어가 채택됐을 때 받는 보상이었다.

시스템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벌인 개편이다.

그것에 대한 보상이 절대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천체주식회사는 능력 없는 자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지만, 자격을 증명한 자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확실한 보상을 해 주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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