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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26화 (22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6화

난데없는 백경의 출몰에 사람들의 동공이 한 점으로 수축했다.

27호를 집어삼킨 거대한 고래는 환상처럼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몸의 절반 이상이 뜯어 먹힌 실험체 27호의 시체와 새하얀 작살만 남았다.

새하얀 작살이 시간을 되감듯 허공을 유영하며 어디론가 날아가자, 컬렉터들의 시선이 모두 작살을 향했다.

되돌아온 작살을 쥔 것은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미남자.

그를 알아본 컬렉터들의 눈이 커졌다.

“어?”

“저, 저 사람은?”

청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컬렉터와 함께 사상세계를 직접 뛰면서도, 컬렉터보다 훨씬 더 잘 싸우는 텔러의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허공에 뜬 채, 혹은 각자 관조자의 방에서 자신의 컬렉터들이 싸우는 것을 보여 주던 다른 텔러들도 유현을 알아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강유현의 등장에 컬렉터들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실험체 27호를 한 번에 쓰러뜨렸다.

그 정도 힘이라면 최소 정4품은 되어 보였고, 그런 자가 현장에 지원을 왔으니 컬렉터들 입장에서는 구원자가 온 셈이었다.

“모두 집중해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휘관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고, 사상세계의 입구에서 무수한 그림자가 쏟아져 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무수한 박쥐 떼를 본 누군가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시, 실험체 11호다!”

“이런 미친! 역시 마지막 층 녀석들도 전부 풀려났잖아!”

실험체 11호는 도마뱀과 박쥐를 섞은 것처럼 생긴 환상체였다. 크기는 20cm밖에 하지 않아 아주 작았지만, 크기가 놈들의 약점이 되지는 않았다.

놈들의 강점은 막대한 물량.

우글거리는 개미 떼처럼 시야를 빽빽하게 채워 버리는 무수한 박쥐 떼는 하나의 군체로 이루어진 실험체였다.

놈들의 이빨은 날카롭고, 그것을 먹잇감에 박아 넣어 피를 빤다. 동시에 독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광역공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절대로 상대해서는 안 될 환상체였다.

“다들 물러나라! 마법사들은 화염계 위주로 사용해!”

“놈들은 갑옷의 틈새에 파고든다! 다들 관절 부위를 집중적으로 방어해라!”

“한 마리라도 놓치면 다시 증식한다! 한꺼번에 잡지 못하면 안 돼!”

“이런 미친 저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한 번에 잡으라는 거야!”

해야 한다고 외치는 컬렉터와 저건 할 수 없다고 반발하는 컬렉터들의 비명이 한데 뒤엉켰다.

순간의 의견 차가 전열에 차질을 빚었다.

컬렉터들이 아차 하는 순간, 실험체 11호가 무수한 날개를 퍼덕이며 서울의 도심으로 퍼져 나가려고 했다. 수천 개의 작은 날갯짓이 겹쳐 울리자 귀가 아팠다.

“어서 막아!”

“아니, 저걸 어떻게 막아!”

컬렉터들이 당황해하는 순간, 유현이 움직였다.

“백련.”

[오케이!]

실험체 11호가 서울 전역으로 퍼지기 전에 유현이 왼손을 뻗었다.

푸화학! 유현의 손목에 팔찌로 있던 백련이 폭발하듯 팽창했다. 그것은 코가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이었다.

얇고 가늘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강사로 이루어진 그물은 거인의 손아귀처럼 실험체 11호들을 집어삼켰다.

끼이이익!

끼익! 끼이익!

실험체 11호는 날개를 퍼덕이며 이빨로 그물을 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백련은 흠집도 나지 않았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물코는 더 집요하게 놈들을 조였다.

[와하하! 간지럽다 이 녀석들아!]

한계 돌파로 인해 형상 변화의 폭이 매우 커진 백련은 이제 이런 식으로 거대한 그물로도 변할 수 있었다.

군체로 이루어진 실험체이며, 한 마리만 놓쳐도 빠르게 증식을 한다고?

그래도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놈들을 한 번에 붙잡으면 그만이니까.

컬렉터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한 명이 외쳤다.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놈들은 위험에 처하는 순간, 융합하는 특성이 있어서……!”

크와아아앙!

경고는 현실이 됐다.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실험체 11호의 몸이 합쳐졌다.

피막 달린 날개와 거대한 도마뱀 머리. 수천 마리의 생명체가 뭉쳐서 만들어진 놈은 거대한 비룡이었다. 녀석은 그물로 된 백련을 힘으로 밀어내며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현이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기도 했다.

“백련. 타이밍 맞춰서 놈을 풀어 줘.”

[알았어.]

유현은 백경골작을 들었다.

융합체 11호의 덩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조금 전 쓰러뜨렸던 27호보다 더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유현은 그것이 너무 반가웠다.

[거수 사냥(Kill The Whale)]

모비딕을 쓰러뜨리면서 얻은 이 스킬은 상대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더 강렬한 피해를 입히는 대(對)괴수용 필살기다. 그리고 융합체 11호는 누가 봐도 ‘거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괴수.

손에 쥔 백경골작이 바르르 떨렸다.

어서 저 녀석을 집어삼키고 싶다고 유현에게 애타게 빌었다.

‘그렇게 해 주지.’

유현은 자세를 잡고 투창의 준비를 끝냈다. 동시에 융합을 완성한 11호가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유현을 노려봤다.

동시에 유현이 작살을 던졌다.

쌔애앵. 대기를 가르며 파공성과 함께 쏜살같이 날아가는 작살은 조금 전 27호를 쓰러뜨렸을 때와 같이 거대한 짐승의 형상으로 변했다.

무오오오오오─────!!!!

바다의 악마 모비딕이 촘촘한 이빨을 드러내며 11호를 향해 날아갔다.

상대가 크면 클수록 모비딕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지금 모비딕은 27호를 삼켰을 때보다 1.5배는 더 거대했다.

거의 100m에 가까운 모비딕이 그대로 융합체의 몸을 물어뜯었다.

─────!!!

융합체 11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 줌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다시 분열할 틈도 없었다. 하나로 합쳐진 육신이 죽음을 맞이했으니, 사실상 모든 실험체 11호가 죽은 셈이었다.

그 광경은 지켜보는 모든 관객에게 감탄을 심어 줬다.

“와. 세상에.”

“저게 가능한 일이었다고?”

컬렉터들은 보기만 해도 암담하게 느껴지던 실험체 11호를, 유현이 너무나도 쉽게 제압하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장에서 지켜보던 한울 클랜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던 매니지먼트 아니었어?’

‘텔러가 뭐 저렇게 강한 건데.’

혹시라도 유현이 자신들을 알아보고 적의를 보이지 않을까, 한울 클랜 컬렉터들은 어깨를 움츠리며 다른 컬렉터들의 인파 사이에 몸을 숨겼다.

[성령들이 당신의 강해진 무위에 감탄합니다.]

[대다수의 성령이 이대로 저 사상세계까지 끝내자고 기세 좋게 외칩니다.]

유현의 압도적인 활약에 시청령들도 환호를 하며 포인트를 쐈다.

더 이상 사상세계 안쪽에서 환상체가 튀어나오지 않자, 컬렉터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겨우 현장을 정리한 책임자가 유현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강유현 텔러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놈들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유현은 손을 마주 잡으며 답했다.

악수를 끝낸 유현이 바로 등을 돌려 사상세계를 향해 다가가려고 하자, 책임자가 당황해하며 유현을 불렀다.

“저, 저기 잠깐만요!”

“네?”

“혹시, 지금 사상세계에 들어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네, 그런데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지금 포위망을 벗어난 일부 환상체들이 있어서, 혹시라도 가능하시다면 놈들의 토벌에 도움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아무래도 혼자서 사상세계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워 보였나 보다.

질투는커녕, 유현은 이쪽을 걱정해 주는 그의 사람됨 태도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웃으며 답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네?”

“이미, 다른 한 명이 전부 다 정리했을 테니까요. 곧 그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그게 대체…….”

책임자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그의 무전기가 울렸다. 그는 유현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연락을 받았다.

“어. 무슨 일인데? 빠져나간 환상체들 다 잡았어?”

[네. 다 잡았습니다. 다 잡긴 했는데…….]

“뭐?”

책임자는 유현을 곁눈질했다. 정말로 그의 말대로 좋은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무슨 예언자라도 되는 건가?’

책임자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상대방에게 되물었다.

“잡긴 했는데, 뭐. 혹시, 또 무슨 문제 생긴 건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 그게, 사실 저희가 잡은 게 아니라서요.]

“아니라고? 그러면 대체 누가?”

[그게…… 너무 빨라서 잘 보지 못했는데.]

무전기 너머의 컬렉터는 망설임 끝에 겨우 대답했다.

[살아 있는 푸른 번개가…… 땅 위를 다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번개가 어떻게 땅에서 움직여?”

푸른 번개가 환상체들을 모두 휩쓸고 지나갔다는 건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지만, 대답을 촉구해도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무전기 너머에서 설명하던 협회 소속 컬렉터도 자신이 본 것이 정확히 뭔지 몰라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진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우, 그래 알았다. 일단 주변 피해 상황 체크하고…… 엇?”

책임자는 무전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현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 유현이 사상세계 입구의 지척까지 다가가 있는 걸 발견했다.

“자, 잠시만요! 강유현 텔러님!”

“곧 지원군이 올 테니 걱정 말고 거기서 기다리세요.”

“네?”

유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등을 돌린 채 손을 흔들며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을 뿐.

유현의 모습이 사상세계 안쪽으로 사라졌고, 책임자는 입술을 달싹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지원군이 온다고? 대체 누가?’

책임자의 의문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의 시야의 끝에서 순간 번쩍이는 빛이 터져 나온다 싶더니, 대체 언제 나타났는지 그의 코앞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그래도 중견급 컬렉터 중에서도 나름 경험이 있던 그였는데, 상대방의 움직임을 전혀 읽지 못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실시간으로 전신에 푸른 전류를 두르고 있는 강혜림의 모습이었다.

머리색이 이전에 봤던 검정이 아닌 푸르스름한 은색이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거, 검후? 정말 검후십니까?”

“네. 도우러 왔습니다.”

“네, 네? 설마 바깥쪽 환상체들을 모두 정리한 게…….”

강혜림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방에 있던 환상체들은 제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곳 사상세계 뿐인데…… 제가 건드리지 않아도 괜찮겠네요. 그분이 들어가셨으니까요.”

“그분이라면, 강유현 텔러님 말씀이시죠?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저 위험한 곳에 혼자 들어가셨는데.”

강혜림은 그 걱정이 재밌다는 듯 살포시 웃었다. 책임자는 자신이 혹시 무슨 말실수를 한 게 아닌지, 조심히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강혜림은 굳이 그 착각을 정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도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게 될 테니까.

그녀는 그저 가만히, 유현이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고 나오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 * *

사상세계 [겔라드릭 비밀 연구소]에 들어가는 순간, 유현을 반겨 주는 것은 기이하게 생긴 환상체들이었다.

“벌써부터 손님을 맞이해 주는 건가?”

대답은 없었다.

조금 전 나왔던 실험체 11호보다 훨씬 강한 5개의 실험체는 유현을 노려봤다.

전부 다 비밀 연구소의 가장 깊은 지하에 틀어박혀 있던 솔로 넘버링 실험체들이었다. 온갖 다양한 몬스터와 짐승들이 뒤섞인 놈들은 유현을 보며 침을 뚝뚝 흘렸다.

유현은 뒤를 살짝 돌아봤다.

이대로 도망치기도 그렇고, 도망친다 하더라도 놈들은 곧바로 바깥 세상으로 뛰쳐나와 학살을 벌일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유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위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

유현의 손이 지나간 길을 따라 검은 텍스트들이 모여 하나의 가면을 이루었다.

[불완전한 ■■■■의 가면.]

악마의 가면의 공허한 눈동자 안쪽에서 붉은 안광이 터져 나왔다.

유현은 오른손에는 백경골작을 왼손에는 검 형태의 백련을 쥐었다.

이 자그마한 생명체에게 전의를 읽어 낸 실험체들이 이를 드러내며 살기를 내뿜었다. 거대한 실험체들이 내뿜는 농도 짙은 살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숨을 턱 막히게 했다.

피부에 닿는 짜릿한 감각에 유현은 가면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덤벼.”

유현의 도발과 함께 실험체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 * *

권지아는 전투가 끝나고, 뽑았던 검을 허리춤에 착용했다.

그녀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공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상세계의 입구.

공항에서부터 환상체를 쓰러뜨리며 움직인 끝에 도착한 곳이 어느덧 여기였다.

도중에 그리스 소속 컬렉터들도 합류해서 그녀를 도운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듯 싸운 덕분인지 조금 숨이 찼다.

“괜찮습니까?”

“괜찮다.”

옆에서 걱정스럽다며 묻는 컬렉터에게 권지아는 괜찮다며 답했다.

주변 컬렉터들은 대부분 권지아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번 사상세계 폭주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을 테니까.

타국의 컬렉터임에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서는 권지아의 행동은 모두의 귀감이 되기 충분했다.

그 이상으로 컬렉터들의 경외심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보여 준 무위에 있었다.

권지아는 여기까지 오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환상체들을 쓰러뜨렸다. 그녀가 보여 준 싸움은 옆에서 함께 무기를 휘두르는 컬렉터들마저도 순간, 전투조차 잊게 만들기 충분했다.

전장 위에 강림한 여신.

그게 권지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괜한 기대감만 받게 됐군.’

원래 목적은 조용히 사상세계에 방문해서 히든 피스만 챙겨서 빠르게 빠져나오는 것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정리를 했으니, 이만 물러나면 되리라.

권지아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띠링.

동전 튕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에서 은빛 동전 하나가 떨어졌다.

권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 동전을 손으로 받았다.

‘이건?’

권지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가 얻은 이 동전은, 처음 그녀가 목적으로 했던 히든 피스였다.

‘이게 갑자기 왜?’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지도 않았음에도 히든 피스를 얻게 된 권지아는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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