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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24화 (22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4화

우타타는 분노에 가득 찬 발걸음을 옮기며 굳게 닫힌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콰앙!

“데미알로스!”

아직도 활화산처럼 붉게 타오르는 붉은 머리가 그의 분노가 여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우타타는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독서를 하는 데미알로스를 노려봤다.

데미알로스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보고 있던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손님을 맞이해 줬다.

“우타타 감찰 부장. 난데없이 남의 거처에 들이닥치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상당히 무례하군. 아무리 자네와 내가 같은 부장이라 하더라도 우린 서로 실이 다르지 않나. 적어도 타실의 동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한 법이네만.”

“예의? 지금 네놈의 그 뚫린 입으로 예의라고 지껄였나?”

“그러면,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뻔뻔하기까지 한 반응에 우타타는 당장 저 빌어먹을 문어 대가리의 머리를 비틀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지 않은 것은 그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정말 많은 일을 보고 겪으며, 경험을 쌓은 덕분이었다.

상대가 보란 듯이 도발을 해 오니, 우타타는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새빨갛던 그의 머리색이 연해졌다.

그럼에도 완전 흰색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아직 내면에는 분노의 불씨가 남아서 다시금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데미알로스 부장. 내 그 쪽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거든.”

“그런가? 뭐, 난 지금 기분이 아주 좋으니, 어지간한 거라면 전부 답해 줄 의향이 있다네.”

“샤마트 전 과장. 어떻게 됐는지 아나?”

노골적으로 꺼낸 샤마트의 이름에도 불구하고, 데미알로스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어떻게 됐다니. 그는 이미 폐기함에 갇히지 않았나? 그 이후의 일은 나도 모르네만.”

“시치미 떼지 마. 네놈이 우리 부서 직원을 공격하고, 샤마트를 풀어 준 것을 모를 줄 알고?”

“이거,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있던 것 같군. 그러니 자네의 말을 정리하면 샤마트 전 과장이 폐기함을 탈출했으며, 그 공범으로 내가 지목됐다 이건가?”

“애초에 네놈이 아니면, 그런 짓을 할 게 누가 있지?”

우타타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만약 여기서 데미알로스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비치는 순간, 그의 농축된 분노는 한 자루의 칼날이 되어 데미알로스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네놈이 마음이 급했구나. 애초에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안전할 거라 생각했나?’

그러나 데미알로스가 보여 준 행동은 우타타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확인해 보게.”

“뭐?”

“확인해 보라고 했네. 자, 여기 오늘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네.”

데미알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오늘 어디서 뭘 했는지에 대한 자료를 우타타에게 넘겼다. 우타타는 반신반의하며 빠르게 확인했다. 제네시스 시스템의 기록에, 데미알로스는 오늘 어디에서 들리지 않고 자신의 거처에만 머물러 있음이 실려 있었다.

“그 자료에 거짓은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시스템으로 새겨진 자료는 조작이 불가능한 거니까. 우타타 자네라면 알 만한 건 다 알지 않은가?”

“…….”

우타타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데미알로스가 꺼낸 것은 절대로 틀리지 않은 대명제를 깔고 들어갔다.

제네시스 시스템은 틀리지 않는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재단’과 관련이 있는 자들뿐. 그것은 이 우주, 이 혼성계가 탄생한 이후로 절대로 예외를 두지 않은 절대불변의 진리였다.

“그거참 신기하군. 데미알로스.”

“뭐가 말이지?”

“마치 보란 듯이, 오늘 같은 날에 자네의 무고한 행적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있다니 말이야. 평소라면, 언제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꽁꽁 숨기던 게 아니었나?”

“흐음. 글쎄. 갑자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걸 하고 싶었을 뿐이네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부장의 자리에 올라온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아 왔기에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걸.”

“…….”

우타타는 말없이 데미알로스를 노려봤다. 분명 심증은 있지만, 데미알로스의 범죄를 증명할 물증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데미알로스는 용의 선상에서 벗어난 셈이었다.

‘상대는 내 부하 둘을 죽였어. 가호를 받고 있는 텔러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똑같은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있는 텔러가 아니면 불가능해. 심지어 그 격차를 뛰어넘어 죽일 정도라면, 최소 부장급은 돼야 한다는 소리야.’

힘은 부장급이며, 종족은 텔러이고, 범죄자인 샤마트를 풀어 줄 유력한 가능성을 품은 자.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데미알로스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건 제네시스를 향한 불신을 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다른 조력자가 있나? 부장급에 그런 자가 있다고?’

그가 알기로는 데미알로스와 친분을 유지하는 부장은 없었다. 우타타는 역으로 자신과 적대하는 다른 부장을 용의 선상에 올렸지만, 그것마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그의 직감은 눈앞의 데미알로스를 범인이라 외치고 있었지만, 이성은 절대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타타는 감정과 본능보다는 통철한 이성을 맹신하는 편이었다.

데미알로스는 그의 내적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낮은 소리를 흘리며 웃었다.

“뭐, 아무래도 자네의 수사가 난항에 빠져든 것 같군.”

“……그러면, 너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지켜보고 있다네.”

“지켜보고 있다고? 대체, 뭘?”

“하나의 세상이 한 꺼풀의 껍질을 벗어 던지는 모습을 말이야.”

데미알로스가 펼친 제네시스 네트워크의 창에는 지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이란, 그리고 그 안에서 변화에 저항하거나 수긍하는 자들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우타타는 그 미소가 참 역겹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즐겁거든.”

* * *

중국 허난성의 낙양에서 벌어진 사상세계의 폭주 사태.

곳곳에 비상 경고가 울려 퍼지며 시민들은 도망치고 컬렉터들은 각자 무기를 쥐고 싸움에 나섰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단순히 낙양에만 그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수도나 대도시, 그곳에 오랫동안 클리어 하지 않고 방치했던 사상세계들 전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 차를 제외하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재앙.

각국의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상세계 입구 주위의 땅이 변이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닿는 건물들이 빠르게 무너집니다!”

“컬렉터들 전부 호출해! 비상사태다!”

삐이이이익!!!

전 국민에게 재난 경고 문자가 날아갔다.

모니터링을 하는 현장 책임자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봤다.

그들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손을 잡고, 부디 피해가 크지 않도록 기대하는 것뿐이었다.

‘신이시여. 부디, 컬렉터들이 무사히 이 사태를 막아 주길.’

컬렉터들을 부르면서 신의 이름을 찾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신들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답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으니까.

* * *

같은 시간대에 유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아. 지금 연락되나?]

“아. 지아 씨? 유럽에는 무사히 도착하셨나요? 그쪽은 지금 낮이죠?”

[그래.]

유현은 그녀가 무사히 도착한 것에 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꺼낼 말에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겨우 장시간 비행기 타서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빠르게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그렇긴 하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권지아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유현은 그녀가 기억을 되찾을 경우 더욱 큰 문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아 씨. 겨우 거기까지 갔는데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겠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무슨 일이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당장 생긴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삐이이이익!!!

갑자기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지는 경고음에 유현은 잠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모종의 위기감을 느낀 유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셀린.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

-선배님. 방금 확인했습니다. 현 시각 부로 세계 곳곳의 사상세계가 폭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상세계가? 정확히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사전에 전했던 변화가 지금 시작된 건가?’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 사상세계의 폭주와 동시에 환상구현체들이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죠.

‘그거 큰일이군. 알았다. 너는 일단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어.’

셀린과의 연락을 끝낸 유현은 곧바로 권지아와의 통화를 재개했다.

“아무래도 이쪽에는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당장 여유롭게 통화를 할 시간은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 이것 하나만 바로 전하겠습니다. 지아 씨.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와 주세요. 기억을 되찾는 히든 피스를 얻는 것은 나중으로 보류합니다.”

당장 유현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마음 같아서는 권지아에게 왜 그런지 이유를 전부 설명하고 싶었지만, 지금 흘러가는 상황이 가만히 놔두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당장 설명할 시간이 없지만, 제가 이렇게 말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중에 오시면 전부 설명해 드릴 테니, 지금은 우선 돌아오는 것만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지.]

권지아는 고맙게도 유현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유현은 그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곧바로 통화를 종료했다.

동시에 강혜림이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검을 챙겨 든 그녀는 조금 전까지 수련을 하고 있었는지 땀범벅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황급히 달려온 것은 강혜림도 조금 전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현 씨! 방금 소식 봤어요?”

“네. 저도 확인했습니다.”

유현은 곧바로 나갈 채비를 끝냈다. 애초에 채비랄 것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전투에 돌입할 준비가 돼 있었다.

“가죠. 혜림 씨. 날뛰는 환상체들을 모조리 쓸어 버립시다.”

“네!”

유현과 강혜림은 무기를 챙겨 들고 밖으로 향했다.

* * *

“흐음.”

유현과 전화 통화를 끝낸 권지아는 복잡한 감정에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겨우 그리스까지 왔는데, 연락을 하자마자 복귀하라니.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쏘아붙이고 원래 목적대로 움직였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권지아도 유현의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어.’

한국에서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진 바람에 자세한 전말을 듣지 못했지만, 권지아는 유현이 허투루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분명, 그녀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무슨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고민의 순간은 짧았다.

바보같이 욕심을 부리려다 일을 그르치는 것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통렬하게 깨달았으니까.

권지아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지?’

공항에서 수속을 끝내고 밖에 나온 그녀는 비행기 편을 확인하려다 바깥의 어수선한 상황을 느꼈다.

보통 사람들은 급변한 분위기 자체를 모르겠지만, 권지아는 수백 번의 죽음을 통해 빚어진 본능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으아악! 모두 도망쳐!”

그것을 증명하듯 저 먼 곳에서, 공항의 입구로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과 거친 숨결. 팔의 상처에서 흐르는 것은 분명히 붉은 피였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공항의 근방에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길 봐! 누가 다쳤어!”

“무슨 일이지? 싸움이라도 벌어진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사람들의 의문이 해소되는 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쪽을 향해 헐레벌떡 도망쳐 오는 남자의 뒤로, 여러 개의 그림자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전부 동일한 병기로 무장한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무기를 꼬나 쥐고 다가오는 병력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적어도 이 자리에 없었다.

“화, 환상체?! 어째서 여기에?!”

“컬렉터는? 컬렉터들은 뭘 하는 거야!”

시민들은 경악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곳곳에 비명이 터져 나오고, 구경하는 사람들과 도망치는 사람들이 뒤엉켜 일대에 혼란이 빚어졌다.

권지아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단순히 자리를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여기에 자리를 비우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애초에 이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면, 공항부터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권지아는 곧바로 검을 뽑았다. 명도의 곧은 도신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바로 돌아오라는 약속을 어기게 되어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는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권지아는 검을 쥐고, 시민들을 지나쳐 환상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몸 주위로 보랏빛 아지랑이가 거대한 짐승의 형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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