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3화
“어서 탈출하도록 하지, 샤마트 과장.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아, 이제 과장은 아닌가?”
“……어차피 저도 이제 와서 그렇게 불리길 바라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샤마트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사태를 재빠르게 파악했다. 눈앞의 존재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은 틀림없었으니까.
상대가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그리고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움직이지.”
“네.”
* * *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를 끝낸 우타타는 샤마트를 가둔 폐기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안 그래도 폐기함의 가동 건으로 온갖 귀찮았던 승인 과정이 조금 전으로 전부 끝난 참이었다.
이제 본사를 능멸하려 했던 샤마트를 철저하게 분해해서, 놈을 구성하는 텍스트를 재조립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낼 일만 남았다.
“음?”
자신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움직이던 우타타는 복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두 텔러를 발견했다.
“뭐야. 무슨 일이지? 너희 둘은 폐기실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었나?”
“어? 부장님?”
상대 텔러도 우타타를 발견하더니, 의문이 가득하다는 기색이었다.
“부장님. 왜 여기에 계신 겁니까?”
“뭐?”
전혀 예상 밖의 질문에 우타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러는 너희들은 폐기실 입구를 지키지 않고,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네? 부장님께서 저희에게 잠시 자리를 비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라고? 내가 그랬다고?”
“네. 그런데 부장님은 왜 여기에…….”
“……!”
우타타는 부하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무언가를 느낀 그는 황급히 폐기실을 향해 달렸다. 당황해하는 수행원들이 그 뒤를 쫓았다.
황급히 폐기실에 도착한 우타타는 내부를 살폈다. 바닥에는 전투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고, 안쪽을 지키던 두 명의 부하가 사라졌다.
그리고.
폐기함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뒤늦게 뒤를 따라온 감찰실 수행원들은 안쪽의 광경을 보고 숨을 삼켰다.
“이, 이게 대체…….”
“폐기함에 가둔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모두의 시선이 우타타의 뒷모습을 향했다.
“찾아.”
우타타의 모습은 시간이라도 멈추기라도 한 듯 미동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감찰실 텔러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지금 우타타는, 그 어떤 때보다 분노하고 있음을.
새하얗던 그의 머리가 피처럼 불길한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한계까지 농축된 분노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당장 찾아───!!!”
우타타의 천둥 같은 호령이 폐기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 * *
우주를 떠도는 얼음덩어리 소행성들.
무수한 바위 조각들이 가득한 그곳에 도착한 샤마트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께서는 누구십니까?”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그야 저를 구해 줬으니까요. 혹시 부장님께서 보내신 분입니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침입자의 말에 샤마트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하게 거슬리는 태도였지만, 그래도 이쪽을 구해 준 은인이며 감찰실 텔러 둘을 순식간에 죽인 강자였다.
이쪽이 필요에 의해서 구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걸 믿고 심기를 거스르는 짓은 현명하지 않았다.
“부장님께서 보내셨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도망치는 도중에는 언제 들킬 줄 몰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이곳까지 왔다면 추적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으리라.
한숨 돌린 샤마트의 물음에 후드를 쓴 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이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확 젖혔다.
샤마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부, 부장님?!”
징그러운 두족류의 머리를 한 부장, 데미알로스를 본 샤마트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설마, 자신을 구해 준 것이 부장님이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구해 주는 위험성을 부담할 바에는 그를 몰래 죽여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아니,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상대가 정체를 밝힐 때까지 데미알로스였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대체 어떻게? 내가 부장님을 몰라볼 리가 없는데.’
아무리 데미알로스가 정체를 숨겨도, 그를 몰라볼 샤마트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랬다. 저렇게 모습을 드러냈고, 겉모습도 부장님이랑 닮았는데, 전혀 부장님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러고 보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우타타 부장의 모습을 흉내 냈었다. 데미알로스의 모습을 본 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정말로 부장님이 맞습니까?”
“샤마트 과장. 지금 그게 중요한가? 나는 죽을 뻔한 너를 구했다. 그것도 우리 부서에 아무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낼 뻔한 것을 몸소 나서며 막았지.”
“그건…….”
“오히려 내가 궁금하군. 지금 상황에서 내 진짜 정체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한가? 그렇다면 우리가 과거부터 얼마나 굳은 인연을 쌓아 왔는지, 이 자리에서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겠군.”
“아, 아닙니다!”
과거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샤마트의 안색은 죽기 직전과도 같았다. 이 정도의 사실을 아는 것은 진짜 부장님 말고는 없었다. 샤마트는 상대가 진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샤마트 ‘전’ 과장.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나?”
“부, 부장님 그게…….”
샤마트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분명,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변명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 주십시오. 저는 부서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얼마나 충직한지. 감찰실에서 제게 온갖 심문을 가해도 저는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거짓말이 아닙니다! 부장님도 보셨잖습니까! 저들은 저를 폐기함에 넣어 분쇄하려 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조바심이 들어서입니다. 부장님. 저는 여전히 펜타그램의 샤마트입니다. 저는 절대 부장님을 배신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일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렇다면, 보여 봐라.”
“네?”
“네 충성을 내게 보여. 그때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네, 네! 그, 그러니까…….”
샤마트는 자신이 지구에서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데미알로스에게 전했다.
그가 강유현을 죽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고안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보다 못한 극락정토의 출라판타카가 나섰고, 그로 인해 서재가 박살이 난 것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데미알로스는 촉수로 이루어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문어 수염을 쓰다듬었다.
“과연, 그런 거였나. 그밖에 다른 것은?”
“이, 이게 전부입니다. 저는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생각하고 바로 도망치려 했지만, 거기서 하필이면 셀레스티얼 빙 부서의 부장을 만나가지고…….”
“셀레스티나.”
“네! 맞습니다. 그 간악한 년. 대체 어떻게 알고 기다리고 있던 건지…….”
“흐음.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구나. 셀레스티얼 빙 부서는 지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지.”
“분명, 그 강유현 텔러의 짓입니다. 그 자식이 아니면 연관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뭐, 좋네. 샤마트 과장. 자네가 아주 훌륭한 일을 해 줬어.”
자신을 ‘전’ 과장이라 부르지 않고 다시 과장이라 불러 주는 데미알로스의 말에, 샤마트는 황송해하며 고개를 재차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모든 일은 예기치 못한 일이지. 설마, 성령이 갑자기 그런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샤마트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비록 천체주식회사에서 다시는 활동하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혼성계에서 프리랜서로 지내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니, 이렇게 된 이상 엑소도스 쪽에 의탁을 해서…….
푸욱!
“……어?”
“그래서 말이네.”
“부장님……?”
샤마트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아랫배와 데미알로스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데미알로스의 쭉 뻗은 촉수의 손이, 그의 몸통을 꿰뚫고 있었다.
“대, 대체 왜……?”
“왜일 거 같나?”
데미알로스는 그런 샤마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입 없이 오로지 눈으로만 짓는 미소였다. 부들거리며 떨리는 문어 촉수는 데미알로스가 정말 기뻐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 줬다.
샤마트가 떨리는 시선으로 데미알로스를 보았다. 복부부터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이 서서히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샤마트는 지금 이 순간, 그렇게 두려워하던 죽음을 느꼈다.
“아, 안 돼……. 나, 나는…….”
촤아악.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샤마트의 복부를 파고든 촉수가 내부부터 튀어나오며, 그를 그대로 산산이 찢어버렸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내뱉을 틈도 없이 샤마트는 갈기갈기 흩어지며, 그대로 텍스트로 변해 흩어졌다.
데미알로스는 단순히 샤마트를 죽인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무수한 촉수들이 샤마트가 지녔던 텍스트를 휘감으며 한데 모아 그대로 흡수했다.
“샤마트. 자네의 희생은 우리 비원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걸세.”
이미 그 말을 들을 샤마트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데미알로스가 그대로 흡수했다.
샤마트가 지닌 이야기 전부를 흡수할 수는 없었지만, 데미알로스는 필요로 한 정보는 전부 얻을 수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정리가 되지 않아서 분석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리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
데미알로스는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에 시선을 향했다. 무수한 행성의 파편의 너머, 끝없이 이어진 우주의 어둠과 반짝이는 별 무리가 보였다.
데미알로스가 보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곳.
지구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저곳에 지구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이야기가 저곳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으니까.
“결국, 바뀌고 마는 것인가?”
지구의 시화 수준을 격하시켜 다른 성령들의 관심을 없앤다. 그리고 등급이 떨어진 지구를 엑소도스에 팔아넘길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 어떤가?
지구는 이전보다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
사실상 그들이 하려는 밑 작업은 실패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무산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건재했으니까.
‘그래도, 예전처럼은 힘들겠지.’
지구는 이미 많은 성령의 시선을 모으고 말았다.
이전처럼 남들 몰래 활동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데미알로스는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지구가 바뀐다면, 그 바뀐 세계에 걸맞은 방법을 취하면 되는 거니까.
이 세상이 넓게 펼친 천이라면, 지금의 지구는 그 위에 떨어진 쇠구슬이다.
쇠구슬의 무게 때문에 쇠구슬은 천을 짓누르며 아래로 침전하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지구다.
천 조각 위를 흐르는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지구로 쏠리게 된다.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 무거워진 세계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관심과 이야기를 몰고 오리라.
데미알로스는 거기서 새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둠과 하나가 되어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 텔러의 죽음은 알아 주는 이 하나 없이 우주의 외딴곳에서 사라졌다.
아주 조용히.
* * *
중국 허난성의 낙양(洛陽).
인구 1억이 넘는 행정 구역인 이곳은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갑자기 세상이 변한다는 말에 외출 인원이 대폭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것은 아주 순간일 뿐.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다시 원래 삶으로 돌아갔다.
그 낙양의 도심에 있는 하나의 사상세계. 가이드라인이라고 해 봤자, 줄 몇 개 쳐진 것이 전부인 이곳은 컬렉터들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사상세계였다.
그곳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응?”
“뭐야?”
지나가던 시민들이 호기심에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사상세계에 생긴 이상 현상에도 불구하고,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이 자리에 하나도 없었다.
서서히 빛이 강해지던 사상세계의 입구가 갑자기 확장됐다.
기존 가로세로 2m밖에 되지 않았던 입구는 어느덧 폭이 10m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부터 무언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 어어?”
“뭐야?”
갑옷을 입은 해골 병사들이 창을 쥐고 대열을 이루며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넋 놓고 지켜봤다.
그들의 표정이 바뀐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하던 한 여성의 목이 날아갔을 때였다.
“꺄아아아악!”
“도, 도망쳐!”
무수한 해골의 병사들이 도망치는 시민들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학살이 시작됐다.
비명이 겹치듯 울려 퍼졌고, 비명은 또 다른 비명을 낳았다.
세상의 변화는 단번에 오지 않았다.
그것은 목을 죄듯 천천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