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2화
[지금이라도 당장 연락 취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비행기 안쪽일 텐데 어떻게?’
[계약자끼리 원격으로 통신하는 스킬 있다면서. 그거 써!]
‘안 돼. 그게 만능인 줄 아나 본데, 엄청 멀리 떨어지면 통신 안 된다.’
[뭐?]
‘정확히 내 서재의 권한이 미치는 곳까지만 가능해. 나는 한국 위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어디에 있어서 통화가 가능하지만, 해외로 넘어가면 그때는 다른 텔러의 권한과 충돌해서 통화가 불가능해져.’
권지아가 새벽 일찍 출발했으니, 지금이라면 못해도 중국과 러시아 경계 위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당장 통화를 원하면 그쪽 관할의 텔러에게 연락을 취해서 통화 라인을 이어야 했다. 유현은 해외 쪽에 아는 텔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권지아와 연락을 취하려면 권지아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것도 핸드폰을 이용한 국제전화 말고는 사실상 방법이 없었다.
‘일단 도착하면 무사히 도착했는지 연락을 취하라고 내가 말해 뒀으니까, 그때 가서 말해도 늦지는 않을 거야.’
[끄응. 그러면 어쩔 수 없기는 한데, 부디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
‘그러길 빌어야지.’
백련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것을 굳이 티 내지 않았다. 그녀보다는 유현이 훨씬 더 아닌 척해도 속으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유현은 미래에서 왔고, 그 회귀의 지식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많은 이익을 취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성장에만 그치지 않고, 이 세상의 흐름 자체를 바꾸기까지 했다.
그걸 위해 유현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안다.
그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그의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얘도 걱정이 많을 거야.’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은 곧 유현이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진다는 소리였다.
그가 알던 미래의 지식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모든 것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압도적인 유리한 지표를 상실한 것은 뼈아픈 지출이었다.
그 상실감을 본인이 아닌 이상 어떻게 공감하고 알아주겠는가?
‘앞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단순히 검의 자아로서 존재하는 직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꿈.’
백련은 문득 지난날 꿈을 꿨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검이었지만 과거를 상실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됐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아는 것은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것.
그런 백련은 유현의 손을 빌어 깨어난 이후에 잠을 자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잠을 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착각인가 아니면, 멍하니 있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무의미한 환각을 본 것인가.
그 명확한 답은 알 수는 없었다. 떠올리려 하면, 그 기억조차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 희미했다.
단 하나, 그녀가 기억하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울고 있었어.’
그게 누구일까? 너무 형상이 흐릿해서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분명 그 모습을 보면서 슬펐던 기억이 났다.
그 울던 사람이 자신이 그렇게 찾던 사람일까?
이제는 사라진 기억과 연관이 있는 걸까?
모르겠다. 알려면 알수록 수렁에 빠지는 것 같다.
백련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유현에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 * *
샤마트는 폐기함에 갇혀 초췌한 몰골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가만히 놔둔다고 해서 그가 빠져나올 길은 요원해 보였다. 폐기함은 외부에서 열지 않는 이상 내부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까.
폐기함을 내부부터 부순다는 것이 마냥 불가능 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샤마트에겐 힘이 부족했다.
천체주식회사에서 과장이 낮은 직급은 아니지만, 이 상황에서 남부럽지 않았던 과장이라는 직급은 ‘고작’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쯧. 언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 하는지 지루하군.”
“그러게 말이야.”
폐기함 주위를 지키는 두 명의 감찰실 소속 텔러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잡담을 나눴다.
“어차피 폐기함에 갇힌 시점에서 우리가 여길 지킬 필요가 있는 건가?”
“내 말이 그 말이야. 진짜 난 모르겠다. 우리가 뭣 때문에 여기서 시간만 낭비해야 하냐.”
“그렇다고 땡땡이칠 수도 없잖아. 우타타 부장님이 직접 명령하신 일인데.”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진작 떠났다.”
“그건 맞아.”
두 텔러는 우타타가 왜 이곳을 수시로 지키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하라고 해서 시켰으니 수행은 한다만, 불만마저 숨기진 않았다.
왕이 없는 곳에서는 왕의 욕도 하는데, 직장 상사의 욕이야 어련할까.
그래도 두 텔러는 선을 넘는 말까진 꺼내지 않았다. 감찰실의 우타타 부장이 본래부터 성격이 좋은 데다가 일 처리도 잘해서 부하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아암. 빨리 적당히 이 녀석을 폐기하고 넘어가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잖아. 죽을죄를 지었어도 일단 폐기 작업 들어가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죽이면 그거대로 말이 나오니까.”
“나도 알아. 푸념도 못 하냐?”
“그래도, 이제 곧 결과가 나올 때가 됐지. 이 지루한 경비 작업도 이제 끝이다.”
두 텔러가 그렇게 떠드는 순간, 폐기실의 문이 열리며 한 텔러가 들어왔다.
수다를 떨던 텔러들은 들어온 텔러를 보고는 곧바로 허리를 폈다.
“우, 우타타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빛나는 새하얀 구체의 머리를 한 텔러, 우타타는 두 텔러에게 긴장하지 말라며 적당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래, 열심히 지키고 있었군. 고생이 많아.”
“넵! 물론입니다! 그런데 부장님이 여기 오신 것은, 폐기의 결과가 나오는 겁니까?”
“아니, 아직.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더라고.”
“아이고.”
“내가 여기 찾아온 건 아직 남은 시간 동안 캐낼 것이 더 있어서다. 잠시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나?”
“네? 아, 그야 뭐…….”
주로 불만을 토하던 텔러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다른 텔러가 나섰다.
“그런데, 부장님. 오늘은 왜 혼자 오셨습니까? 다른 부서 직원들은요?”
“그들은 지금 따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왜 그러지?”
“흐음.”
부하 텔러는 살짝 의뭉스럽다는 눈빛으로 우타타를 바라봤다. 옆에서 함께 경비를 서던 동료가 툭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뭐 해. 미쳤어? 부장님께 그게 무슨 짓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하하. 부장님. 아무래도 이 녀석, 요즘 너무 일만 해서 그런지 좀 피곤했나 봅니다.”
“음?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요즘 일만 너무 하면 좋지 않으니까.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나?”
“부장님.”
잠자코 듣고 있던 텔러가 한 발짝 나서며 물었다.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받았습니다. 부장님께서 직접 제게 그렇게 명령하셨죠.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자리를 비우라고, 하시니 저로서는 상당히 의문이 듭니다. 평소라면 저희가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심문을 진행하지 않으셨습니까?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어? 그러고 보니…….”
옆의 동료까지 그 말에 어딘가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우타타에게 묘한 시선을 향했다.
우타타는 부하들의 그 불신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부장님.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 정말로 부장님이 맞습니까?”
“…….”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두 텔러들은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비치면 곧바로 무력 행사에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그때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우타타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아무래도 내가 너희들에게 너무 경계심을 줬나 보군.”
“……잘 아시는군요.”
“그 말도 이해한다. 그래. 내가 그렇게 직접 명령을 내렸으니까. 갑자기 다른 말을 하는 걸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걸 봐라.”
우타타는 그렇게 말하며,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중앙실에서 내려온 공문이다. 최대한 혼자서 조용히 일을 처리하라는 내용이지. 읽어 보면 이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너희들도 알 거다.”
“……확실히 그렇네요. 임원급 텔러의 인장이 찍혀 있으니까요.”
“그래. 그래서다. 지금 할 일은 극비로 해야 할 일이다. 목격자가 있으면 좋지 않거든.”
그것이 설사 같은 부서의 부하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우타타의 말에 그제야 두 텔러는 경계심을 한껏 누그러뜨렸다.
가장 먼저 의심했던 텔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부장님께 버릇없이 굴었습니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맡은 일을 훌륭하게 처리해 줘서 내가 더 든든하군. 앞으로도 일을 이렇게 처리해 주면, 나야 더 고맙지.”
“예. 부장님. 그러면 저희는 입구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입구에서 대기하던 두 텔러도 보냈으니까.”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희는 ‘지정 지점’에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우타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순간이었다.
두 텔러는 쏜살같이 손을 뻗어 우타타를 향해 빛의 창을 내질렀다. 혹시라도 위험 분자를 배제하기 위해 감찰실 텔러에게 주어진 ‘구속창’이라는 이야기였다.
푸욱!
“음?”
구속창에 몸이 꿰뚫린 우타타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무슨 짓이냐고? 그건 이쪽이 묻고 싶군. 우타타 부장님. 아니, 부장님의 탈을 쓴 무언가.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허. 너희들 지금 미쳤나? 이건 하극상이야.”
“하극상? 그럴 리가. 우린 지금 제대로 하고 있어.”
“이거 참.”
우타타 부장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변했다.
“어떻게 알았지?”
한껏 스산한 한기를 품은, 다른 끔찍한 무언가의 흉성.
구속창을 내지른 두 텔러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우릴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군. 감히 우타타 대장님의 모습을 흉내 내며 우릴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아. 그건가? 중간에 말했던 키워드에 감찰실 텔러끼리 통하는 암구호가 있었군. 그렇다는 것은 나 몰래 사용한 문어(問語)가 ‘지정 지점’이었나?”
“……대답해 줄 의무는 없지.”
순식간에 이쪽을 파악한 가짜 우타타의 말에 감찰실 텔러는 등골을 타고 소름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 녀석, 단순히 겉모습만 부장님의 것으로 취한 것이 아니었다.
구속창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반응도 그렇지만, 순식간에 이쪽의 암호를 꿰뚫어 보는 저 안목은 대체…….
“뭐가 어찌 됐든, 이 자리에서 네놈을 구속한다. 감히 우릴 속이고 저 배신자를 빼내려고 했으니, 불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이거 참. 이래서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
가짜 우타타는 그렇게 말하곤 발을 내디디며 움직이고자 했다.
“멍청한 녀석! 우리가 사용하는 구속창이 고작…….”
그렇게 외치려던 텔러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콰지직!
가짜 우타타의 몸을 뚫고 바닥에 고정시켰던 구속창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 무슨……?”
“부장급도 속박하는 구속창이?!”
그런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채앵!
구속창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렸다. 그 광경에 두 텔러는 곧바로 다음 대응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가짜 우타타의 두 손이 움직였다.
면장갑을 낀 손이 기이하게 뒤틀리더니, 그의 손매 안쪽부터 무수한 검은 촉수 같은 것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며 두 텔러를 휘감았다.
저항은 무의미했다.
무수한 실 다발 같은 촉수들에 힘이 가해졌다.
콰지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두 텔러의 육신이 처참하게 망가지며 무너졌다.
두 텔러는 끽소리도 하지 못하고 절명했다.
“가호를 믿고 몸으로 버티려고 했나? 우습군.”
가짜 우타타의 모습은 어느덧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 머리에 뒤집어쓴 검은 후드와 펑퍼짐한 검은 의복. 통이 넓어진 소매 안쪽으로 무수한 촉수들이 다시 회수됐다.
“그러니 적당히 멍청하게 넘어갔으면, 얼마나 좋아? 괜히 머리를 굴리니까, 빨리 끝날 일도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침입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루가 되며 흩어지는 두 텔러의 시체를 넘어서 폐기함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샤마트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존재를 보며 몸을 떨었다.
“다, 당신은 대체…….”
“나와라. 샤마트 과장.”
검은 후드 안쪽에 두 개의 붉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샐쭉 휘어져, 마치 우주에 붉은 초승달 2개만 떠다니는 것 같았다.
“석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