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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21화 (22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21화

컬렉터들은 ‘기묘한 꿈’을 꿨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꿀 극적인 변화로 이어지냐고 묻는다면 다들 회의감을 표하리라.

오히려 기대하던 변화는 너무나도 미약해서, 변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꿈을 꾸고 나서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으음. 다들 그래도 여러모로 말이 많이 나오는구나.’

이른 아침 아카데미에 등교한 서수민은, 반에서 자기들끼리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의 말을 엿들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뛰어난 기감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대부분 대화는 자신이 지난밤 꿨던 꿈에 대한 것들이었다.

“와. 나 그렇게 실감 나는 꿈은 처음이었다.”

“진짜? 나는 왜 꿈을 안 꿨지?”

“알아보니까, 전부 꾸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나?”

“근데, 자고 일어나니까 몸이 이상하게 가볍더라. 뭔가 평소보다 더 강해진 느낌?”

“야, 잠만 자도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냐?”

“그런가?”

남생도 둘이서 낄낄댔다. 서수민은 심드렁하게 뺨에 팔을 기댄 채 시선은 창밖을 향했지만, 그녀의 뛰어난 청력은 둘의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밤 꿈을 꾼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네.’

그녀도 꿈을 꿨다. 천마신교의 교주였던 시절의 꿈을.

서수민에게 기분 좋은 꿈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숭상받던 천마 시절은 그녀에게 애증의 세월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옛날처럼 떠올리는 것만으로 괴롭거나 힘들었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그것도 이제 지나간 일이다. 그녀는 이제 모든 괴로움을 전부 떨쳐 내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전부 강유현의 도움 덕분이었다.

아직도 그녀는 생생히 기억한다. 자신의 턱을 잡아끌며, 강렬한 시선을 보낸 유현의 모습을. 그녀의 심장을 감싸 쥐고, 영혼까지 구속하는 그 목소리를.

전장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던 그의 손은 또 어땠는가?

“…….”

괜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수민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흰 머리카락에 피부가 백옥처럼 새하얘서 더 눈에 띄었다.

햇빛을 받아 그녀의 머리카락이 은은하게 빛났다.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는 신비로운 백발의 소녀는 그 자체만으로 그림이 됐다.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생도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를 향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강의실 내부는 고요했다.

보통 컬렉터가 된 생도라면, 한창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평소에 소심하던 사람도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성격이 바뀐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누구나 한 번쯤은 이성에게 말을 걸 법도 했지만, 서수민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가 입학 랭킹 1위이며, 같은 A랭크 생도마저 압도적으로 쓰러뜨린 강자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는 순간, 뒷문이 열리며 분위기를 깨부수는 사람이 등장했다.

“수민아! 안녕!”

“어, 유라야. 안녕.”

기숙사에서 등교한 강유라가 서수민의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카데미에 아는 사람이 없는 두 사람이 같은 반이 된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강유라와 서수민은 아카데미에서 항상 같이 다녔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저절로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 1위 서수민과 거기에 꿀리지 않는 상위권 생도 강유라.

외모도 실력도 출중한 두 사람이 모였을 뿐인데도, 다른 ‘파벌’급 힘을 지니게 된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유라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겪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수민아. 있지. 그거 알아?”

“뭐가?”

“나 오늘 이상한 꿈 꿨다?”

“꿈?”

“응. 꿈.”

꿈이라는 말에 서수민은 조금 전 엿들었던 같은 반 생도의 대화가 떠올랐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그녀도 과거의 꿈을 꿨으니까.

그것이 얼마 전 컬렉터들에게 전달된 새로운 변화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해서, 서수민은 예의상 물어봤다.

“무슨 꿈이었는데?”

“으음. 조금 이상한 꿈이었어. 막 세상이 완전 팍 망해 있었다니까?”

“음?”

서수민은 강유라의 말에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일찍 등교한 이후 여러 생도의 대화를 엿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전부 다 ‘과거’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였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배 위의 병사였다, 어디 깊은 산속의 사람이었다, 혹은 전쟁 속에 있었다 등등.

그런 말들은 있었지만, 강유라처럼 망한 세상에 대한 것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과 비슷한 것까지도 포함해서.

단순히 멸망한 역사 속 제국 같은 이야기라고 치기엔 어딘가 걸리는 게 많았다.

“그 이야기 자세히 들어 볼 수 있을까? 정확히 무슨 꿈이었는데?”

“으음. 솔직히 나는 악몽이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살던 이 세상이 갑자기 망해 버린 줄 알았으니까.”

“세상이 망했다고?”

“응. 뭔가 서울의 풍경이랑 비슷했어. 착각이 아니라 아마 그랬을 거야. 도시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인 데다가 하늘은 새빨갛고 곳곳에서 검은 폭풍이 몰아쳤거든.”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고, 강유라가 몸을 바르르 떨며 덧붙였다.

서수민이 물었다.

“너는? 유라 너는 그 꿈에서 어땠는데?”

“무슨 생존자 집단의 일원 중 하나였어. 이름은 모르겠는데, 나 포함해서 5명이었어. 아, 맞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거구나.”

“뭔데?”

“같이 있던 일행 중에 걔랑 같이 있었어. 그 누구였더라, 수민이 너랑 테스트 때 대련했던 여자애 있잖아. 그 빨간 병사들 사용하던 얘.”

“구서윤?”

“어, 맞아. 걔였어. 지금이랑 다르게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는데, 딱 10년 이상 지나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더라고.”

서수민은 강유라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과를 내렸다.

그녀가 판단컨대 이번에 일어난 꿈은 단순히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펼쳐진 것이었다.

그 꿈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는 것까지도.

‘강유현 텔러에게 들었었어. 컬렉터가 지닌 특성은 과거에 실존했던 이야기의 힘이라고. 꿈을 꾼 사람들은 그 특성의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 그러면 유라가 미래를 본 건? 그게 가능한 일일까?’

보통 이런 경우 강유라만 우연히 독특한 꿈을 꿨다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서수민은 유라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유라의 말이었기에 그녀는 더욱 진지하게 들었다.

초월자였던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강유라가 말한 것은 전부 다 사실이라고.

서수민의 생각과 걱정이 더욱 깊어져 갈 때 강유라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수민아, 또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었어.”

“뭔데?”

“그게…….”

강유라는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더니, 서수민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 꿈속에서 내가 남자였어.”

“뭐?”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말에 서수민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 * *

모두가 꿈을 꿨을 때 유현 또한 비슷한 꿈을 꿨다.

처음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괴물들이 범람하며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때.

절망의 세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비틀던 시절의 꿈이었다.

유현은 생생한 악몽의 정취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쓰읍.”

자리에서 일어난 유현은 공용 식당으로 내려와 커피를 우렸다. 이사를 오면서 구매한 최신식 커피 머신이었다.

‘짜증나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휘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흐음.”

뜨거운 김을 내는 커피를 내려다보던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흘렸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꿈을 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간대에서 유현이 꾼 꿈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거기서 모순이 발생했다.

‘미래에 벌어질 일이, 단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 취급받을 수 있는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유현이 내린 답은 ‘그럴 수 있다’였다.

유현의 복잡한 내면을 느낀 것인지, 백련이 반응했다.

[왜? 뭐가 뭐가?]

‘백련. 너도 알고 있지?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 정도는.’

[응. 그야 너랑 나는 어느 정도 이어져 있으니까.]

‘그럼, 여기서 질문. 내가 겪었던 미래의 일은 전부 내 기억 속에 존재해. 그렇다면 그 일은 이 현대에서 있는 일이 될까, 없는 일이 될까?’

[음.]

확실히 고민을 해 볼 만한 질문이라 백련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에 유현은 식탁이 앉아 적당히 식은 커피를 조용히 음미했다.

커피의 잔이 다 비어 갈 때쯤 백련이 두 손을 들었다.

[으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미래의 일이 과거라니. 그건 완전 모순 아니야?]

‘맞아. 어떻게 보면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지.’

[그래서, 네가 생각한 건 뭔데?]

‘내가 내린 답은, 내가 그걸 기억하고 생각하는 순간 있는 일이 된다는 거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 있던 일이 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에 백련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있는 일이 된다니. 단지 기억한다는 이유만으로?]

‘혼성계에서는 그게 가능하거든.’

유현이 확신하는 것은 바로 혼성계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혼성계는 비물질적인 것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누군가의 기억도, 과거에 있었던 일도, 전부 ‘사상세계’를 통해 현실에 나타난다.

‘원래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이번 수민 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깨달았어.’

천마 서수민의 악몽이나 다름없는 사상세계는 극락정토에서 사용한 씨앗 때문에 생성된 곳이었다.

당연히 그 안쪽에 펼쳐진 것은 서수민의 과거 이야기였고, 그것은 말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유현은 모든 일이 끝나고 그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상한 걸 느꼈다.

‘누군가의 기억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소리잖아.’

이 세상이 하나의 컴퓨터라면, 유현은 있어서는 안 될 데이터를 지닌 USB나 마찬가지였다.

이 USB가 컴퓨터의 본체와 연결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데이터는 컴퓨터 내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지금 유현의 상황이 딱 그 꼴이었다.

‘내가 겪었던 미래의 일들. 그것이 만약 혼성계의 특이성과 마주하게 된다면?’

[잠깐. 그렇다는 건…….]

‘그래. 내가 미래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순간, 미래의 일은 이 혼성계에서 이미 벌어진 사건이 됐다는 거야.’

[그러면, 그거 괜찮은 거야? 미래의 일이 이 세계에 실존하게 됐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걸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그 부분은 쉽게 확신할 수 없겠더라고.’

유현은 이 꿈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면,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이 존재했다.

최도윤, 구서윤, 황세은, 자밀라.

그들은 유현과 같은 세상을 공유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그 사람들은 과연 어떨까? 과연 그들은 유현이 알던 그 세계를 떠올릴 수 있을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내 기억이 이 혼성계에 존재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기억이 내가 알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면.’

[된다면? 그때는 설마…….]

‘그래. 그때는 뭐…… 상당히 귀찮은 일이 벌어지겠지.’

그렇게 된다면, 유현은 이 세상이 참 빌어먹은 곳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야. 잠깐만. 그러면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문제가 더 있다고?’

[너야 미래의 기억을 지닌 것이 단 한 번이잖아.]

‘그렇지.’

[그러면, 권지아는?]

‘어?’

백련의 말에 유현도 그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맞다. 권지아가 있었다.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고, 많은 삶을 반복했던 그녀가.

만약 그녀의 기억이 실제로 이 혼성계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전부 실존하는 일로 취급받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건…….’

그렇게 생각해 보니,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이미 늦었거든.’

[뭐?]

‘지아 씨 오늘 새벽에 비행기 표 끊고, 유럽으로 출국했어. 사상세계의 히든 피스를 찾으려고 말이지.’

[야! 그걸 왜 안 말렸어!]

‘내가 그걸 어떻게 말려? 본인이 한사코 가겠다고 하는데. 같이 따라가려는 것도 겨우 참았다.’

말은 아닌 척했지만, 유현도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권지아가 찾으려는 히든 피스는 잃어버린 그녀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물건이라고 했다.

혼성계란 누군가의 과거의 추억과 기억마저도 ‘현실’이 될 수 있는 곳. 서수민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사상세계가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지금이야 권지아가 모든 회차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다 친다 해도.

‘만약에 그녀의 기억이 전부 깨어나게 된다면?’

유현도 아직 읽지 못한 그 방대한 서적의 정보가 이 혼성계에 풀리게 된다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파급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유현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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