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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13화 (21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13화

내지르는 검에 담긴 뇌전이 허공을 날카롭게 태웠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전류의 잔해는 작은 폭죽처럼 터져 허공에 녹아 사라졌다. 강혜림은 그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입술을 깨물었다.

‘더, 더 집중해야 해.’

그녀가 서수민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 어언 일주일.

누구보다도 무에 대해서 뛰어난 안목을 지닌 서수민은 강혜림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혜림 언니의 힘은 강하다. 검에 대한 재능은 말할 것도 없지.

서수민에겐 어떻게 보면 강혜림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쉬웠다. 그녀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검술은 대련을 통해 가르치면 됐으며, 그녀가 지니고 있는 천뢰검은 당장에 칠마흑천신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잘만 성장시키면 그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기 충분했으니까.

-그런 언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힘의 조율이다. 뇌기는 강하지. 하지만 언니는 그 힘을 완벽하게 다루기보다는, 그저 힘이 원하는 대로 풀어 주는 거나 다름없어.

강혜림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서수민의 말은 그녀가 이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불안감을 정확히 짚었으니까.

희미해서 잡아내지 못했던 것이 형상을 갖추고 눈앞에 떠오르니, 그녀는 막막하기만 했다.

천뢰검은 강하다. 하지만 그녀가 이 기술을 ‘완벽히’ 활용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없었다.

강혜림이 지금까지 천뢰검을 사용한 것은 그 힘을 완벽한 통제하에 둔 덕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천뢰검의 포악하고 패도적인 힘에 타협해, 녀석이 날뛸 수 있게 ‘길’을 만들어 줬을 뿐이다.

까득.

강혜림은 이를 악물고, 기운의 제어에 들어갔다.

이래선 안 된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힘을 활용해서는 유현의 발목을 잡고 말 것이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 기억을 잃고, 동료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 것이다.

자신이 그때 그 자리에 없어서

멍청하게 정신 공격에 당해 시간을 끌어서

그래서 유현이 죽을 뻔했다.

촤악!

휘두르는 뇌기가 강해졌다. 검 바깥으로 폭주하려고 날뛰는 번개가 서서히 가라앉듯 검신을 타고 흘렀다.

강혜림은 땀을 뻘뻘 흘리며, 기운을 억누르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힘의 제어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파지지직!

“큭!”

재차 폭주하는 뇌기에 강혜림은 손에 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성공할 줄 알았는데, 또 실패다.

벌써 1주일째 제자리걸음이었다. 강혜림의 조바심이 극에 달했다.

‘이래서는 안 돼. 언제까지 짐만 될 수는 없어.’

권지아와 서수민을 보면서 느꼈다. 과연 이대로 자신이 필요할까? 정말 자신이 유현의 곁에 설 자격이 있는 걸까? 이제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또 버려질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자신을 두고 떠났듯이.

그날 강혜림은 권지아에게 기억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기억한다. 그녀가 본 악몽이 무엇인지, 그녀가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나뭇잎을 갉아먹는 벌레처럼 마음을 좀먹는 자기혐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기만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그녀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자신을 쫓아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겁을 집어먹어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겁쟁이의 발로였다.

강혜림은 자문했다.

나는 대체 무엇에 쫓기고 또 어디로 도망치는가?

그 도망치는 곳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뚝.

“…….”

모든 잡념이 한데 뒤엉키며 극점에 치닫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강혜림이 떠올린 것은 자신에게 손을 내민 남자가 아닌 권지아의 모습이었다.

떠오르는 것은 묵묵히 땀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단련을 멈추지 않았던 그 뒷모습.

우연히 지나가면서 몇 번씩 확인했던 그 우직한 모습이 갑자기 생생하게 눈앞에 투사(投射)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녀의 영혼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장 넘고 싶은 완벽한 벽의 모습을 보여 줬다. 벽은 뚜렷하고, 또 선명해 보였다.

강혜림은 검을 쥐었다.

그녀가 권지아를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

멈추지 말고, 뜻과 의지를 품으며, 노력하는 것.

쓰읍. 후우.

강혜림은 한차례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스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

떠올리는 것은 확고한 심상.

자신의 몸 안에서 날뛰는, 뇌정의 짐승을 억제하기 위한 올가미였다.

츠츠츠츠.

검을 타고 뇌기가 흘렀다. 바깥으로 튀지 않고, 말 그대로 검 자체를 뇌기가 얇은 막처럼 둘렀다.

직후 재차 날뛰는 내기로 인해 형체가 무너졌지만, 강혜림은 처음으로 머리가 확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주 순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기적이었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실마리를 발견했다.

비로소 강혜림은,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아차렸다.

‘그 누구의 짐이 되지 않게, 떳떳하게 곁에 설 수 있게. 더 노력해야 해.’

띠링!

그런 그녀에게 날아온 것은 예고 없는 알림이었다.

* * *

컬렉터와 관련된 자 중 메시지를 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제네시스 시스템을 갖춘 자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가왔으니까.

[차원 ‘지구’가 다음 단계(phase)에 돌입했음을 알립니다.]

[후원의 개념이 더욱 방대해집니다.]

[세계를 구성하는 이야기가 더욱 명료해집니다.]

[사상세계의 ‘침식’이 발생하게 됩니다.]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확장됩니다.]

[페이즈까지 남은 기간: 7일]

메시지 창을 확인한 유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어, 어어? 뭐야 이거?”

“다음 단계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 터진 거 아니야?”

생도들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해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한 일에도 놀라지 않을 임건우도 이런 건 처음이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임건우가 유현에게 슬쩍 다가가며 물었다.

“형씨.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야? 혹시 아는 거라도 있어?”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유현은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했다.

‘설마, 극락정토 때문인가?’

아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이번 극락정토가 벌인 짓은 혼성계를 흔들기 충분했으니까.

지구에 대한 평가가 바뀌게 된 것도 그런 영향이 있었으리라.

‘극락정토는 전생에서도 이와 비슷한 짓을 저질렀지. 하지만 그때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서 들키지 않았어.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내가 끼어들어서 극락정토는 수민 씨를 죽이는 데 실패했고, 자신들이 몰래 저지르려 했던 범죄가 까발려졌으니까.’

근본적인 악행을 벌인 것은 극락정토였지만, 그로 인해 상황이 이렇게 커진 것은 유현의 공이 가장 컸다.

유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생도들은 물론이거니와 컬렉터였던 교관들까지 난데없는 변화의 예고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추이를 지켜보던 유현에게 셀린의 연락이 날아왔다.

-선배님. 들리십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 셀린. 안 그래도 나도 지금 아주 당황스러워.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뭐 들은 거라도 있어?’

-조금 전 중앙실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중앙실에서?’

-네.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어, 고맙다. 확인했어.’

유현은 제네시스 네트워크를 통해 날아온 공문을 확인하고, 그것을 빠르게 읽었다.

공문의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적힌 것이 적다고 해서 그것의 의미와 가치가 낮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앙실에서 내려온 [‘차원 지구’ 차기 페이즈 안내문]을 다 읽은 유현은 창을 내리고 곧바로 권지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아 씨.’

-……그래. 나도 지금 아주 당황스럽군.

‘이따 가서 이야기하죠. 다른 사람들도 전부다.’

-알겠다.

통화를 끝낸 유현은 갑자기 벌어진 이 변화에 당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것에 걱정이 들면서도, 동시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세상은 다른 방향으로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것이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갈지.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길로 접어들게 될지.

그것은 오직 그 순간이 도래했을 때 알게 될 것이다.

* * *

[최근 전 세계의 컬렉터들에게 떠오른 메시지 창으로 인해 논란이 많습니다.]

TV는 연일 이번 컬렉터들에게 날아온 메시지에 대해서 떠들었다.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뉴스와 관련된 채널은 전부 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었다.

저명한 학자들과 교수들이 나와서 몇 시간에 걸쳐 토론을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는 진실을 알 수 없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마치, 형상이 뚜렷하지 않은 악마가 뒤에서 지금 사태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시끄럽군.’

유현은 TV의 전원을 껐다.

이대로 계속 본다고 해서 딱히 몰랐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미 그는 중앙실에서 내려온 공문을 통해 향후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에 대해서 넌지시 알게 됐으니, 차라리 다른 것에 관심을 끄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다들 모이셨죠?”

확인 차 물어봤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백화 매니지먼트였으니까.

“유현 씨.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일까요?”

최근 일거리가 줄어들어서 조금 편해지려던 백서련은, 난데없이 나타나는 도깨비처럼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유현은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곧바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줬다.

“일단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어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으로 7일. 아니, 이제 6일 뒤에 지구는 한 차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그 변화라는 게 도대체 정확히 뭔가요?”

“지구가 혼성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겁니다.”

“정확히 어떻게요?”

“지금 지구는 혼성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상황입니다. 흔히들 사상통합의 날이라고 부르는, 지구에 있어서 엄청난 쇼크였던 그 현상마저도 혼성계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면 믿겠습니까?”

유현의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모두가 홀린 듯 유현의 입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제한이 이번에 더 풀리게 되는 겁니다. 지금보다 더.”

“그건 어느 정도지?”

권지아가 물었다. 회귀자인 그녀에게도 작금의 사태는 예기치 못한 일이어서 그녀도 적잖게 궁금하던 차였다.

“저도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다만 지금까지 지구가 영향을 받은 게 전체의 1할에 불과했다면, 이번 건으로 한 4할까지는 뛰지 않을까 싶네요.”

유현은 대략적인 계산을 끝마쳤다. 그는 혼성계에 ‘완벽하게’ 편입된 미래를 알고 있다. 그게 바로 페이즈 아포칼립스라 불리는 종말이었으니까.

그것을 토대로 분석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흐음.”

권지아의 이마에 새겨진 골이 더욱 깊어졌다. 그녀도 유현이 말한 4할이 어느 수준인지 대략적으로 감이 온 탓이었다.

유현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 성령님들이 줄 수 있는 후원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거겠죠. 이전까지는 포인트에만 그쳤지만, 이번 건으로 상당히 제한이 줄어들게 될 겁니다. 운이 좋다면 성령들이 직접 ‘이야기’를 건네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침식’은 대체 뭔가요?”

잠자코 있던 강혜림이 입을 열었다.

침식이라는 현상은 이 자리의 모두가 궁금해하던 주제이기도 했다.

“침식은…… 말 그대로 침식입니다. 사상세계의 침식. 해당 세계의 이야기가 현실을 좀먹기 시작하는 거죠.”

“사상세계가 폭주라도 한다는 건가요?”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침식 비슷한 것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사상세계 중 일부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을 경우 내부의 환상체가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건 여러분들도 다 아시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상통합의 시대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격동기.

그때 컬렉터들이 등장하고 사상세계가 생겼으며, 그 안쪽에서 환상체들이 튀어나왔다.

“일부 사상세계는 가만히 놔둬도 별다른 해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미노타우로스가 기거하던 라비린토스 미궁이 그러했죠. 반면에 주기적으로 환상체를 소탕하지 않으면, 환상체가 증식해서 사상세계 바깥으로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뭐, 지금 와서는 그곳은 컬렉터의 포인트 파밍장이 돼 버렸지만요.”

컬렉터들에겐 가만히 놔둬도 환상체가 무한 증식하는 사상세계란 끝없는 포인트 공급처였다.

그리고 그것은 몇 년째 변하지 않고 굳어져 협회에서는 경계선을 설치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건드리면 안 되는 불문율 수준까지 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입니다. ‘침식’이 벌어지게 되면 해당 사상세계가 현실을 좀먹으며 서서히 구현되게 될 테니까요.”

늪지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지 않으면 입구를 중심으로 늪지에 잠식된다.

바다로 이루어진 사상세계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해당 지역은 물바다가 되리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류에게는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6일 뒤의 세상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변하는 세상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세상은 아직 그들에게 안식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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