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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11화 (21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11화

서수민이 야구 방망이를 시원하게 휘둘렀다. 쿠에쿠의 마탄조차 가볍게 막아 내는 방패였지만, 서수민의 공격 앞에서는 무력했다.

야구 배트가 방패에 닿는 순간, 기사의 상반신이 방패째로 도려내듯 사라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구서윤이 입술을 깨물더니 외쳤다.

“동시에 달려들어!”

명령을 받은 보병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서수민을 포위해 장창을 내질렀다.

동시에 서수민도 움직였다.

어깨를 틀거나, 혹은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이거나, 발을 뒤로 뺀다. 그럴 때마다 창날은 목표를 잃고 허공만 찔렀다.

믿기지 않는 움직임.

맞을 듯 맞지 않자 구서윤은 다급해졌고, 그 감정에 영향을 받은 보병들이 동시에 창을 내질렀다.

채앵!

10자루의 창이 허공에서 얽히며 충돌했다. 그러나 이 날카로운 붉은 이빨이 물어뜯은 것은 같은 동포의 이빨이었다. 서수민의 신형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구서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잽싸게 눈동자를 굴리며 서수민을 찾았다.

‘위쪽!’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 떠오른 서수민을 잡아냈다. 놀랍게도 서수민은 가벼운 발 구르기로 10m 이상을 뛰어올랐다. 아무리 각성한 컬렉터라 하더라도, 아직 미숙한 생도가 보일 신체 능력이 아니었다.

구서윤은 그래도 지금이 기회라 생각했다.

허공에 떠오른 서수민은 그대로 물리 법칙에 따라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허공에서는 피할 수 없어!’

구서윤의 명령을 받은 기사가 서수민의 착지 지점 근처에 대기했고, 보병들이 창을 치켜세우며 서수민을 겨냥했다.

살상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찔려서 살이 꿰뚫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찔린 것처럼 고통스러울 게 자명했다.

관객에서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기에 곳곳에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 오빠. 수민이 어떡해!”

강유라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유현의 팔을 앞뒤로 흔들며 초조함을 숨기지 않았다.

유현은 뭐라고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을 하려는 것보다 먼저 서수민이 대응을 보였으니까.

떨어지는 서수민의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관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서수민의 움직임은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는 매의 그것처럼 너무나도 빠르고, 또 상식을 벗어났다.

“막아!”

구서윤의 발악과도 같은 외침에 붉은 군대가 반응했다.

창병들이 서수민이 떨어질 위치를 예측하고 창을 찔러 넣었다. 서수민은 나무를 타는 뱀처럼 날카로운 창격의 틈새로 물 흐르듯 빠져나왔다.

서수민의 몸이 반 바퀴 회전하더니, 내질러진 창대 하나를 가볍게 밟았다. 그녀는 창대를 디딤돌 삼아 가볍게 뛰었고, 보병 하나의 머리 위를 발로 사뿐히 짓밟듯 착지했다.

퍼억!

붉은 보병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옆에 있던 보병이 황급히 창대를 휘둘러 그녀를 떨쳐 내려 했지만, 창대는 애먼 허공만 갈랐다.

서수민을 놓친 보병이 그녀를 찾으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본 것은, 이쪽을 향해 떨어지는 서수민의 발이었다.

펑!

보병의 머리가 또다시 터져 나갔다. 그 이후는 똑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서수민이 걸을 때마다 붉은 군대의 머리가 터졌다.

그것은 아주 짧게 피는 붉은 마력의 꽃이었다.

한 마리의 나비가 피지 못한 꽃봉오리를 밟는 것처럼, 서수민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붉은 군대는 산산조각 나듯 꽃망울을 만개했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구서윤에게 전해졌다.

“크윽!”

소환했던 방패 기사 넷과 창병 열이 순식간에 당해 버리자 구서윤은 리바운드를 느꼈다.

다행이라면, 구서윤은 소환수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갑의 위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소환수와 소환사가 관계는 대등하지만, 그만큼 리바운드가 크다. 구서윤에겐 그런 페널티가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역소환의 리바운드는 크지 않았지만, 서수민 같은 고수에게 그런 사소한 변화는 상대방의 숨통을 노리기에 차고 넘치는 기회였다.

나비처럼 허공을 누비던 서수민이 깃털처럼 사뿐히 지면에 착지했다.

지금까지 구서윤의 곁에서 대기하던 기병이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히히힝!

붉은 말이 한 차례 투레질을 하더니, 서수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말 위의 기병들이 서수민에게 쏜살같이 랜스를 내질렀다.

퍼엉!

서수민이 쥔 야구 배트가 잔상처럼 흐릿해지더니, 기병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서수민은 산책을 하듯 걸었다. 기병들은 그런 서수민을 창으로 맞추지 못했다. 분명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서수민은 마치 유령처럼 기병들을 스쳐 지나갔다.

힘껏 가속하며, 서수민을 지나친 기병들은 모두 시간 차를 두고 머리가 터졌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광경에 관객들은 모두 압도됐다.

서수민은 구서윤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자, 잠깐……!”

구서윤이 사색이 되며 그렇게 외쳤지만, 서수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야구 배트를 쥔 왼손은 뒤로하고, 구서윤의 이마를 향해 맨손을 쭈욱 뻗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렬한 손가락 튕기기!

「천마딱밤」

빠악!

구서윤이 미간에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광경을 홀린 듯 지켜보던 안전 요원이 황급히 소리쳤다.

“스, 승자 서수민!”

응당 승자와 패자가 정해졌을 때 나와야 하는 환호성은 이번에도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으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 압도적인 싸움이란, 승리를 향한 열광조차 깃들지 않는다고.

기절한 구서윤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서수민은 곧장 유현과 강유라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와! 수민아!”

유라가 서수민의 품 안에 안기듯 달려들었다.

“하마터면 지는 줄 알았어!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괜찮아 유라야. 나 멀쩡해. 다친 데 하나도 없어.”

“다행이다~.”

객석에 앉아 구서윤의 승리를 점쳤던 사람들은 모두 똥 씹은 표정이 됐다.

“아니, 대체 저 아이는 어디서 온 겁니까?”

“백화 매니지먼트는 대체 어디서 저런 인재를.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검후와 광랑 다음에 차기 컬렉터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

“미치겠군.”

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 싸움이 그 어떠한 부정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기량의 차이로 끝맺었다는 점이었다.

서수민은 구서윤보다 훨씬 더 강했고, 그래서 승리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승부였다.

“잘했어.”

유현도 이럴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서수민은 훨씬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줬다.

“혹시, 몸을 혹사하거나 한 건 아니지?”

“네. 그냥 적당히 기교만으로 승부했을 뿐이에요. 물론 내공은 조금 썼지만. 쓰지 않고서는 상대하기 힘들겠더라고요.”

서수민은 극소량의 내공을 사용했다고 말했지만, 유현은 그것을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내공을 사용하게 만들 정도로 몰아세운 구서윤이 조금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애당초 서수민이 A랭크 토너먼트에 끼어든 것부터 밸런스는 사라진 지 오래다.

강아지들 사이에 거대한 호랑이를 풀어놓은 셈이었으니까.

“다음 경기도 잘할 수 있지? 혹시 힘들거나 못할 거 같으면, 나한테 말하고.”

“푸훗. 농담치고는 재미없는 거 알죠?”

“그래도 웃었으니, 된 게 아닐까?”

서수민은 결승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질 생각이 없었다.

한때는 힘을 사용하는 것조차 두려워 트라우마에 빠졌던 그녀였지만, 이젠 아니다.

그녀가 두려운 것은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두려움을 품어야 하는 것은 결승에 올라와 서수민과 마주해야 할 생도였다.

사실상 준결승을 하게 된 라리나와 김주혁은 등골을 타고 소름이 흐르는 걸 느껴야만 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이겨도 큰일이고, 져도 큰일이었다.

* * *

천체주식회사 펜타그램 부서 과장 샤마트. 아니, 이제는 전(前) 과장이라 불러야 하는 죄인 샤마트는 마법진으로 둘러진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었다.

대성군 극락정토와 내통하여 상계의 성령을 하계로 보낸 공범 혐의가 걸린 그는 천체주식회사 내에서 최고에 꼽히는 죄인의 낙인을 받게 됐다.

그리고 그를 심문하는 것은 감찰실 소속 텔러들과 더불어, 도망치려는 그를 사로잡은 공로를 세운 셀레스티나였다.

“쯧, 독한 녀석. 어쩜 입 한번 뻥끗하지 않냐?”

셀레스티나는 한쪽 눈으로 초췌해진 샤마트를 노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샤마트는 고된 심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썩어도 과장급 텔러라 그런지 정신력이 보통의 수준이 아닌 것도 있었지만, 샤마트 또한 사실을 인정할 경우 심문보다 더한 끔찍한 미래가 펼쳐지는 걸 알기에 필사적으로 버텼다.

“뭐, 그래도 수확은 있지 않았나.”

“아. 우타타.”

셀레스티나 곁에 선 자는 빛나는 백색 구체로 이루어진 머리를 지닌 텔러였다.

몸통은 새하얀 정장을 입은 인간의 것이지만, 머리만은 달랐다. 하얀 구체 안쪽에서 검은 무언가가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일렁이는 것이 묘한 감상을 자아내게 했다.

천체주식회사 감찰실 부장 우타타.

그가 기절한 샤마트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기본적인 정보는 다 제공받았잖아. 물론 근본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지.”

“그건 그래.”

“너무 아쉬워하지 마. 우리 감찰실이 뭘 하는지 잊은 거야?”

“그럴 리가.”

셀레스티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천체주식회사의 칠실 중 하나인 감찰실은 평소에는 그렇게 업무에 충실한 곳이 아니었다. 사건이 없으면, 사실상 할 일이 가장 없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이 상당히 심각한 사안까지 가게 된다면.

감찰실 소속 텔러들은 평소의 여유롭고 온화한 태도가 어디로 갔냐는 듯 저승사자로 변한다.

지금 저 우타타도 하얀빛을 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니 어딘가 무해해 보일 뿐. 심문에 들어가는 순간, 저 구체는 백색에서 적색으로 물들게 된다.

적색의 우타타는 셀레스티나도 감히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대상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도, 아쉽단 말이지. 그 빌어먹을 문어 대가리한테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말이야.”

“데미알로스 부장, 말이지. 그는 우리 쪽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어.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엮기에는 힘들어 보이더군. 이상할 정도로 너무 깨끗해.”

“그렇지. 녀석도 부장이니까.”

부장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텔러의 직책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짧은 두 글자의 단어에는 한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길을 걸어 왔는지에 대한 가치들이 수두룩하게 담겨 있었다.

“그런 녀석이 고작 이 정도에서 꼬리를 잡힐 리가 없지. 제길. 그래서 더 짜증이 나. 그 녀석이 아직도 멀쩡하게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어도, 막을 방도가 없다는 소리잖아.”

“그래도, 이제 곧 시간문제야. 샤마트는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어. 그러니 ‘폐기함’에 가둬 놓은 거고.”

샤마트를 가둔 커다란 유리 상자는 천체주식회사 내부에선 ‘폐기함’이라고 불리는 특수 제작 감옥이다.

폐기함이라는 그 이름답게 저 안에 갇힌 텔러는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폐기’당한다.

텍스트야말로 텔러의 존재를 이루는 근간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폐기함이라는 것은 텔러의 죽음을 의미하는 처형대였다.

“폐기함에서 뽑아낸 이야기는 해당 텔러가 지닌 역사나 다름없지. 분해된 텍스트를 나열해서 조합하면,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어떻게 보면 강제로 죽인 뒤 시체를 부검해서 그 행적을 알아차린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텔러들의 세계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물론 이 폐기함으로 텔러를 폐기하고, 그 이야기를 조립하는 것은 텔러들의 세계에서도 비윤리적인 짓이었다.

하지만, 샤마트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중앙실에서 허가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중앙실의 뜻이란 곧 회장님의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대다수의 텔러가 이것을 방해해도 회장님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그것에 회사의 규칙이다.

“차라리 유배라도 보내려 하면, 다 불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소리야?”

우타타는 셀레스티나의 입에서 나온 유배라는 말에 기겁하듯 반응했다.

“이야기조차 얼어붙은 ‘그 유배지’는 지금 와서는 폐기함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라고.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게 더 낫지.”

“알아. 나도 그냥 해 본 소리야. 후우 됐다. 난 이만 가 보련다. 어차피 여기 더 있어 봤자 나올 것도 없고,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어, 그래. 잘 가라.”

우타타의 배웅을 받아 폐기실을 벗어난 셀레스티나가 향한 곳은 기록 보관실이었다.

“왔는가?”

갈리아츠는 평소와 같이 독서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읽던 책을 덮으며 옆으로 치웠다.

셀레스티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영감. 날 부른 이유가 또 뭐야? 영감 부탁받고 그 샤마트 녀석 잡아낸 거까지는 나도 좋았는데,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바빠 죽겠어. 용건만 빠르게 말해. 처리할 일이 산더미니까.”

“쯧쯧. 그게 너한테 정보를 공유해 준 은인에게 할 말이냐?”

“아 씨. 그건 아는데, 나 진짜 바쁘다고! 안 그래도 스트레스 장난 아니야. 그 빌어먹을 문어 대가리는 또 어찌나 미꾸라지 같은지, 잡으려 해도 형체도 안 보일 지경이야.”

“그래. 안 그래도 그렇게 보인다.”

갈리아츠는 그렇게 말하며, 셀레스티나에게 종이로 된 자료를 툭 던지듯 건넸다.

셀레스티나는 왜 굳이 제네시스 넷으로 주지 않고 이런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주냐며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눈동자는 빠르게 자료의 내용물을 훑었다.

전부 다 읽은 셀레스티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깐만. 영감, 이거 진짜야?”

“그래. 진짜다.”

믿기지 않는다는 셀레스티나의 시선에 갈리아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얼마 전 내려온 공지다. 지구의 이야기 가치가 이전보다 두 단계나 올랐어.”

“무려, 두 단계씩이나? 이건 유례가 없는 일 아니야?”

“그래. 유례가 없는 일이지. 말 그대로 이번이 처음이야.”

지구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기 직전이었다. 더 이상 양질의 이야기를 뽑을 수 없는 이야기의 불모지라 불렸을 정도니까.

그랬는데, 상부에서는 갑자기 지구의 평가를 올렸다.

갈리아츠는 손바닥을 뒤집듯 태세를 바꾼 상부, 중앙실의 행동에 집중했다.

갈리아츠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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