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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08화 (20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8화

이평원은 대련의 시작과 동시에 서수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쥔 무기는 자신의 덩치에 맞먹을 정도로 커다란 대검.

대련용 무기는 특수 처리가 돼서 살상력이 없지만, 그렇다고 맞아서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대검은 특히나 무거운 질량 자체가 충분히 위험이 됐다.

이평원은 자신의 승리를 점쳤다.

‘고작 야구 배트 하나를 들고 왔다고?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처음에는 얼굴도 반반하니 해서 여친 정도 삼아 주려고 접근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대하던 그녀의 말투나 행동, 그리고 눈빛을 떠올리자 저절로 이가 갈렸다.

이쪽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련장에서조차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닌 야구 배트를 들고 올라왔다고?

건방진 새끼.

선민사상과 엘리트주의에 찌든 이평원은 살면서 이만한 모욕을 느끼지 못했다.

“하압!”

그 모든 분노를 담아서 이평원은 검을 휘둘렀다.

서수민의 정수리를 쪼갤 듯 떨어지는 대검의 위용은 본인이 생각해도 참 위협적인 것이었다.

서수민은 그가 검을 내리치기 직전까지 반응이 없었다. 겁이라도 먹은 건가? 아니면, 너무 빨라서 채 반응하지 못하기라도 한 건가?

이평원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이겼다!’

이평원은 자신이 이겼음을, 자신이 그녀보다 더 위에 섰음을 실감했으니까.

그런데.

쿠웅!

“어?”

이평원의 검이 서수민의 몸에 닿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의 검이 그녀의 머리에 닿기 직전, 서수민의 신형이 아주 약간 옆으로 이동했다.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빗겨 나간 대검이 애꿎은 허공을 가르며 바닥을 찍었다.

“무슨……?”

그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선공권을 먼저 잡은 것은 그였다. 상대방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을 품기까지 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대체 왜?

서수민은 무심하고 나른한 눈동자로 이평원을 지적했다.

“검에 감정이 들어갔네.”

“뭐?”

“휘두르는 자세도 엉성하기 짝이 없어. 그렇게 상반신에 무게 중심을 두고 검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바로 이렇게 돼.”

서수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평원에게 접근해 정강이를 발끝으로 툭 밀었다.

말 그대로 툭.

사실상 발끝을 정강이에 가져다 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헉!”

쿵!

그러나 이평원의 다리가 뒤로 확 밀려났고, 한쪽 무릎을 꿇게 됐다.

이평원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수민이 대단한 힘으로 친 것도 아니고, 그저 살짝 밀었을 뿐인데 이렇게 됐다.

이럴 수는 없어.

그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타올랐다.

“이익!”

“그리고,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 무기를 들고 공격을 남발하면 안 되지.”

대검을 다시 들려는 이평원의 시도는 실패했다. 서수민의 발이 이번에는 이평원의 대검을 밟고 있었으니까.

‘드, 들 수가 없어!’

그의 근력이라면, 서수민이 대검 위에 올라타 있더라도 휘두르기 충분했다. 그런데 서수민이 고작 발 하나만 올리고 있음에도 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집채만 한 바위에 깔린 것만 같았다.

이평원은 검을 포기하고, 서수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이렇게 된 이상 맨손으로라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이평원의 주먹이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닿기만 해도 사람의 뼈 정도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을 머금은 주먹이었다.

서수민은 그것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가볍게 피했다. 무수히 날아오는 주먹은 그녀의 머리카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서수민이 진심을 담아 충고했다.

“그렇게 굼뜨고, 빈틈이 큰 움직임으로는 파리조차 못 잡을 거야.”

“닥쳐!!!”

이평원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다가오려는 순간, 그의 목을 타고 강렬한 충격이 흘렀다.

서수민이 곧게 뻗은 섬섬옥수가 그의 목젖을 때린 것이다.

컥컥대던 이평원이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쥐며 뒤로 물러났다. 격렬한 통증에 그의 눈동자가 쉼 없이 떨렸다.

서수민이 유령 같은 발걸음으로 이평원에게 접근했다. 툭. 야구 방망이가 이평원의 다리를 걸어 그를 뒤로 넘어뜨렸다.

이평원의 몸이 뒤로 쓰러진다. 서수민은 그런 이평원을 내려다보며, 야구 방망이를 고쳐 쥐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벅!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무참한 구타.

은빛 야구 방망이가 잔상을 남기며 이평원의 전신을 두드렸다. 하나하나가 뼈를 울리고, 근육을 흔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객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이평원은 고통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서수민의 눈빛을 읽어 냈다.

이렇게 두들겨 패면서도, 그를 향해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서수민의 무심한 시선에 이평원은 몸을 떨었다.

단순한 육체적인 고통에 비롯된 공포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영혼의 중심에 말뚝이 박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5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거의 100대 이상을 얻어맞은 이평원은 고통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서, 서수민 생도 승!”

대련이 격해질 경우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려야 하는 안전 요원조차 사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늦었을 정도였다.

그는 뒤늦게 호루라기를 불며 대련의 끝을 외쳤지만, 이미 서수민은 손을 털며 물러난 뒤였다.

“이, 이 무슨!”

“미친. 이평원이 아무것도 못 하고 개처럼 맞았다고?”

“방금 빠따 휘두른 거 보이긴 했어?”

너무나도 압도적인 승리에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 이평원은 황급히 들것에 실려 나갔다.

서수민은 조금 전 야구방망이의 손맛을 떠올리며, 배트 손잡이를 쥐었다 폈다.

‘으음. 손맛이 딱 좋네.’

그녀가 이 무기를 고른 것은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전부터 고민하던 것이기도 했다.

‘개방 거지 놈들이 사용하는 타구봉이라는 것이 궁금하기는 했었지.’

개방의 무인들은 타구봉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개를 잡기 위한 몽둥이였지만, 현대의 야구 방망이는 그런 타구봉보다 훨씬 더 무게 중심이 잘 잡혔고, 손맛이 좋았다.

원래부터 무기를 즐겨 쓰지 않고 굳이 사용해도 검을 고집했던 그녀가 이번 생에서는 이 야구 배트만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

서수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야! 평원아! 정신 차려!”

검은 양복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평원의 트레이닝 스승인 정강산이 애타게 외쳤다. 그러나 이미 호되게 두들겨 맞은 이평원이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

정강산이 분노에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수민을 노려봤다.

그것은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처참하게 망가진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런 제길! 이평원이 저렇게 박살 나면 내 커리어에 흠집이 난다고!’

40줄에 접어든 정강산은 컬렉터지만, 환상체와 싸우는 것이 두려워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교육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그래도 컬렉터치고는 하급의 벽이라 할 수 있는 종6품까지는 밟은 적이 있어서 대기업 회장님의 눈에 들어 이평원을 가르치게 됐는데.

‘하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계집애한테 박살이 났다고?’

상대방이 차라리 이전부터 이름이 있던 구서윤이나 라리나, 제임스 이런 사람이면 모른다.

서수민은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그 어떤 언급도 없던 생도였다. 그런 서수민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평원을 개처럼 두들겨 팼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갔는데! 이대로 가면 회장님께 깨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강산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상대방을 깎아내려야만 했다.

“너! 테스트가 우스워?! 엉?! 이 새끼가 어디서 비겁한 짓을 저지르고 지랄이야!”

정강산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서수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대체 무슨 수작이냐는 시선이었다.

정강산은 적반하장으로 언성을 높였다.

“어딜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눈을 부릅뜨고 있어?!”

“뭐가요.”

당연히 서수민의 목소리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퉁명스레 대꾸하자, 정강산은 오히려 잘 걸렸다며 그녀를 몰아세우기로 했다.

“뭐가요? 야 임마. 너 몇 살이야? 몇 살인데 어? 어른한테 따박따박 말대꾸하면서 그러는 건데?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어?! 어!”

정강산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양복의 남자들은 이평원을 박살 낸 서수민에게 좋은 감정이 없다 보니 정강산을 일부러 놔뒀고,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 자체를 흥미롭게 구경 중이었다.

서수민의 표정만 더더욱 싸늘해졌다.

“너 약물 도핑이나 그런 거 했지? 어? 솔직하게 말해. 도핑 했잖아!”

정강산이 꺼낸 것은 바로 도핑의 유무였다.

그는 어떻게든 서수민을 깎아내리고자 했다.

‘그래. 무슨 특별한 짓을 하지 않고서야 저러는 건 불가능해.’

그는 자신이 막 지르듯 내뱉은 말에 오히려 스스로가 설득력이 있다 생각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불과한 서수민의 움직임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검사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저한테 박살 나 놓고, 쪽팔리니까 그러는 거 맞죠? 솔직히 엄청 추하다고 생각 안 해요?”

하지만, 서수민은 이런 상황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보란 듯이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정강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딜 어른한테……!”

그는 서수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서수민은 끝까지 정강산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당당한 태도가 오히려 정강산의 분노에 부채질을 가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서수민이 겁먹고 시선을 피하거나 말을 더듬는 것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정강산은 오히려 자신이 무시 받는다고 생각했다.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저, 저놈 말본새 좀 보소……!”

“그만.”

이 상황을 끝낸 것은 유현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동시에.

쿠웅!

새하얀 작살이 날아와 서수민과 정강산의 사이에 꽂혔다.

강렬한 바람이 몰아쳤다. 정강산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턱을 바르르 떨며, 지면에 꽂힌 작살을 바라봤다.

“무, 무슨…….”

그때 작살이 뽑혔다. 정강산의 시선이 작살을 쥔 손을 향했다. 그 주인은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였다. 정강산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유현을 삿대질했다.

“다, 당신 뭐야! 지금 나 공격 한 거야?! 어?!”

“공격은 그쪽이 우리 아가씨를 때리려고 한 게 공격이고.”

“뭐?!”

상황을 지켜보던 검은 양복들이 나섰다. 일부 교관들이 심각해지려는 상황을 말리려고 하자, 양복의 남자들이 그들을 제지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허. 기다려 봐요. 별로 크게 싸운 것도 아니구만.”

교관들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상대는 대정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대정기업은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한 기업 중 하나라, 그들과 괜히 척을 지고 싶은 교관은 이 자리에 없었다.

정강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들파들 떨리는 그의 입술이, 지금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정강산의 어깨를 짚었다. 선글라스를 낀 거구의 남성이었다.

“저, 전 팀장님?”

“정 선생. 여기까지만 하고 물러나시죠.”

“아, 알겠습니다.”

유현과 시선을 교환했던 검은 양복의 리더, 전 팀장이 나서자 정강산은 알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 팀장은 정강산을 뒤로하고 유현에게 다가왔다.

“내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지.”

“오. 이제 말 놓으시는 겁니까?”

“그쪽은 선을 확실히 넘었어. 대정기업이 우습나?”

“선을 넘은 것은 그쪽이겠죠. 추하게 졌으면서 이제 와서 비겁하네, 도핑이네, 어쩌네. 목소리 높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합니까?”

“뭐라고?!”

뒤에서 그 말을 들은 정강산이 격하게 반응했지만, 전 팀장이 강하게 쏘아보자 정강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전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적당히 하고 끝내지. 적당히. 무슨 말인지 알아는 듣겠지?”

“아뇨. 모르겠는데요.”

“뭐?”

“이전의 무례는 제가 참고 넘어가겠는데, 지금은 안 되겠습니다.”

유현은 작살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정강산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사람. 꿇으시고요.”

그다음 손가락이 움직이며, 눈앞의 전 팀장을 가리켰다.

“거기 당신도, 꿇으세요.”

빠직!

전 팀장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유현은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쪽에 공개 사과를, 그것도 무릎을 꿇으라는 것을 요구한 것이다.

전 팀장을 비롯한 그의 팀원들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들끓어 올랐다.

“꿇으라고? 이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우습나?”

“우습다고 한다면.”

유현은 전 팀장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지만, 유현은 전혀 기세에서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현이 이곳 분위기 자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우습다고 하면, 뭐 어쩔 건데?”

“이……!”

전 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전광욱이~.”

“이건 또 누……이, 임건우 컬렉터님?”

임건우를 알아본 전 팀장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이곳에 왔다는 건 알았지만, 이 상황에서 끼어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전에 안면을 튼 적이 있었고, 전 팀장은 임건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임건우는 전 팀장에게 어깨동무를 풀지 않은 채, 그의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

“광욱아. 요새 대정기업에서 잘해 줘? 그래서 기가 좀 막살아?”

“그, 그것이…….”

전광욱 팀장은 임건우의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상급 컬렉터를 상대로 거칠게 나갈 배짱이 없었다.

막말로 이 자리에서 임건우가 전광욱 팀장을 흠씬 두들겨 패도, 대정기업은 임건우를 두둔하며 전광욱 팀장을 쳐 낼 거다.

그것을 알기에 전광욱은 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면, 왜 자꾸 시끄럽게 굴어~. 응? 형이 듣다못해 직접 나서야겠어?”

“……임건우 컬렉터님이 끼어드실 일이 아닙니다.”

“뭐? 이야. 우리 광욱이 마이 컸네. 나한테 그렇게 말할 줄도 알고.”

임건우 컬렉터가 씨익 웃었다.

“그런데, 내가 왜 끼어들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네가 뭐라고 하는 사람. 내 친구인데?”

“네?”

전광욱 팀장의 얼굴이 멍청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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